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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29)

카지모도 2023. 8. 30.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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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전인이 왔다갔습니다.” “서울 전인이 언제 왔다 언제 갔어?” “어

젯밤에 와서 자구 오늘 새벽에 갔습니다.” “편지 답장두 해야겠구 온 사람에

게 물어볼 말두 있는데 왜 여기까지 데리구 오지 않구 그대루 보냈단 말인가.”

“그러지 않아두 저이 주인이 편지 답장을 맡으러 저하구 같이 가라구 말하니까

그 사람 말이 답장 맡으러 다른 데까지 갈 것두 없구 또 서울 볼일이 있어서 곧

가야 한다구 합디다. 그래서 그 사람은 서울루 바루 가구 저만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이 혹시 무슨 다른 말이 없든가?” “다른 말씀은 별루 듣지 못했습니

다.” 꺽정이가 그 심부름꾼에게는 더 캐어물을 말이 없어서 신불출이더러 데리

고 나가서 행하를 주어서 보내라고 이르고 옆에 앉은 이봉학이를 돌아보고 “천

왕동이나 있었더면 얼른 가서 자세한 소식을 알아오라겠는데 지금은 하는 수 없

으니 졸개라두 하나 보내볼까.”하고 의논하였다. “최서방은 의심스럽구 김선달

은 숨어 있다는데 졸개를 보내면 어디루 보냅니까?” “그것두 그래. 포청 속내

를 알아보는데 우리 중에 온이만한 사람이 없으니 온이가 한번 갔다오는 게 좋

으까.” “한두령이 가면 좋다뿐입니까. 알아보는 건 고사하구 웬만하면 주선해

서 빼내올 수두 있겠지요.” 꺽정이가 윗간에 있는 한온이를 바라보고 “여게

폐일언하고 자네가 한번 서울을 갔다오게.”하고 말을 일렀다. “저더러 가라시

면 내일이나 가지 오늘은 못 가겠습니다.” “오늘은 무슨 못 갈 일이 있나?”

“오늘이 저의 선조부 기일입니다.” “기일이라니 제삿날이란 말이지. 제사를

고만두구 가두 좋지만 하루쯤 늦어서 큰 낭패 없을 테니 내일 가게.” 꺽정이가

한온이에게 말을 다한 다음에 다시 이봉학이를 돌아보며 “온이가 내일 떠나서

모레 저녁이나 글피 아침에 서울을 들어가구 서울 가서 포청일을 알아보는 데

이삼 일 걸리구, 그러구 우리게 기별을 할 테니 그 동안에 우리는 가서 이흠례

를 요정내구 오세.”하고 말하니 이봉학이는 가도 좋고 안 가도 좋단 의사인 듯

“형님 생각대루 하시지요.”하고 대답한 뒤 박유복이는 안 가기를 바라서 “김

선달에게서 또 기별이 오더라두 형님이 안 기시면 어떡합니까. 이

흠례는 이 다음 다른 기회에 처치하시지요.” 말하고 김산이는 가기를 조여서

“이춘동이에게두 가신다구 말씀하셨구 또 황두령더러두 그리 오라구 말씀하셨

으니까 이왕이면 갔다오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하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김산

이를 묻지 않은 말참견한다고 나무라고, 또 박유복이더러 이흠례를 그믐 안에

잡지 못하게 될 것 같으면 일을 중지하고 온다고 말을 이른 뒤에 예정대로 마산

리 길을 떠났다. 꺽정이가 두령 네댓 데리고 가면 봉산군수의 연명 행차는 고사

하고 황해감사의 순력 행차라도 넉넉히 엄습하려니 속셈을 잡아서 졸개는 짐꾼

으로 하나밖에 더 데리고 가지 아니하였다.

한온이는 이날 밤에 제를 지내고 이튿날 아침에 서울길을 떠나는데 두 패 교

군에 별배까지 세웠다. 교군은 소교요, 별배 세운 자기 집 사람은 말할 것 없고

교군하는 졸개들도 다 포망과 패랭이를 쓰게 하여 훌륭한 상제님 행차로 보일

만하였다. 한온이의 소교가 미륵당이를 지나올 때, 주막에서 말을 묻던 보행꾼

하나가 소교 뒤에 따라가는 별배를 바라보고 근두박질하여 쫓아나오며 “여보게

나 좀 보게.”하고 소리쳤다. “자네 웬일인가?” “상제님을 뵈러 오네.” “상

제님 지금 서울 가시네.” “하마터면 길에서 어긋날 뻔했네.” 잠깐 동안에 소

교가 벌써 멀찍이 앞서 나간 까닭에 별배가 그 보행꾼과 같이 달음박질로 따라

와서 소교 옆에 붙어오며 “여기 개미치가 왔습니다.”하고 한온이에게 고하였

다. 교군꾼이 교군을 내려놓고 별배가 앞 휘장을 걷어친 뒤 개미치란 사람이 교

군 앞 땅바닥에서 절을 하였다. 한온이가 그 사람의 절은 가만히 앉아 받으며

그 사람에게 말은 하대하지 않고 하게로 “무슨 일루 이 치위에 내려오나?”하

고 물었다. “청석골 여러분 중에 서씨 성 가진 분이 기십지요? 그분의 심부름

을 맡아가지구 오지만 실상은 상제님을 뵐 욕심으루 오는 길입니다.” “서씨의

심부름? 무슨 심부름인가?” “편지 심부름입니다.” “뉘게 가는 편지야?” “

손서방이란 사람한테 전하란 편진데 그 속이는 아마 상제님께 오는 편지두 들었

는갑디다.” “대체 자네가 그분을 어디서 만나봤나?” “삼사 일 전에 길에서

만나뵈었습니다.” “삼사 일 전이면 스무 며칠날인가?” “스무이튿날인가 봅

니다.” “그때 편지를 주구 전해 달라구 부탁하던가?” “아니올시다. 엊그저께

스무나흗날 다 저녁때 편지와 노자를 저 있는 움퍼리루 보냈습디다. 제 움퍼리

는 스무이튿날 만날 때 보구 가셨지요. 편지 가지구 오는 사람에게 전갈해 보낸

말씀이 이 편지를 청석골 탑고개 동네에 사는 손서방에게 갖다 전하는데, 한시

각이라두 빨리 전해야만 첫째 그대의 주인이 낭패를 면하게 될테니 곧 떠나서

밤 도와 가라구 합디다. 다른 사람의 일두 아니구 상제님 일이라는 걸 밤길이

고생된다구 안 올 수 있습니까. 그래서 하룻밤 하루낮에 어제 송도 와서 자구

지금 탑고개루 나가는 길인데 천행으루 이렇게 길에서 만나뵙게 됐습니다.” “

내가 낭패를 면하게 될 일이 무어야?” “상제님께서 서울 오실 때 최가의 집으

루 오시지 말란 통지가 아닐까요? 제 어림에는 그런 듯싶습니다.” “최가란 게

누군가?” “댁에 있던 서사 최갑지요.” “최서방이 그저 그전 집에서 살지?”

“수표교 천변의 좋은 기와집을 사가지구 이사했습니다.” “누가 집값을 대줘

서 좋은 기와를 사들었어?” 최가가 주인의 재물을 제 것같이 쓰고 좌포청의 포

교와 형제같이 지내는 것을 개미치가 신이야 넋이야 이야기하는데, 한온이는 기

가 막혀서 한참 동안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하다가 “그런 이야기는 나중 자세

히 들을 셈 잡구 우선 편지나 이리 내게. 어디 보세.”하고 개미치의 이야기를

가로막았다. 개미치가 괴나리봇짐에서 꺼내 주는 손가에게 가는 편지를 한온이

가 중간에서 뜯어보았다. 그 편지봉 속에 동봉한 편지가 두 장이 들었으나 겉봉

쓴 것을 보니 한 장은 ‘수남모친께 부치노라’요 또 한 장은 ‘오두령 개탁’

이요, 한온이 자기에게 오는 편지는 없었다. 손가 보라고 적은 사연은 간단한 안

부 외에 동봉한 편지들을 분전하라는 부탁뿐인데 수남어머니에게 가는 편지를

아무도 모르게 갖다주라는 당부가 좀 수상스러웠다.

‘오두령 개탁’속에는 무슨 말이 있나 하고 한온이가 먼저 뜯어본즉, 그 사

연의 대개는 처남을 포청에서 빼내왔으나 병이 위중하여 가위 명재경각이라 인

정상 차마 객지에 혼자 두고 갈 수 없으니 장모 되는 노인을 삯마라도 태워서

하루바삐 김치선이 객주로 보내주고, 또 병인이 죽기 전 저의 누님을 한번 만나

보아지라고 하여 천륜의 정을 막을 수 없어 허락하였으니 안해를 장모와 같이

보내주기 바란다는 뜻이고, 그 외에는 장모와 안해가 오는 것을 보고 자기는 곧

회정하겠다는 말과 이십사일 기한을 어기게 된 사정은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는

말과 대장께 죄책을 당할 일이 걱정이란 말을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한온이가

그 편지를 다 보고 나서 생각하니 자기에게 낭패될 일이란 것이 우선 허무맹랑

한 말이고 김치선이 기별에 스무사흗날 포청에 잡혀갔다는 사람이 스무나흗날

편지를 부쳤다는 것은 거의 천변지이와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편지 글씨가

서림이의 필적이고 편지 끝에 연월일이 십일월 이십사일인즉 김치선이의 기별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데, 김치선이가 병풍 상성한 사람이 아닌 바에 삼백 리 전도

에 잇속 없는 거짓 기별을 할 까닭이 없다. 한온이는 아무리 생각해야 일을 대

중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그 안해에게 전하란 편지를 한온이가 궁금

한 마음에 마거 뜯어보고 싶으나, 남의 내외간의 하는 편지를 몰래 뜯어보기가

점직하여 뜯어볼까말까 편지봉을 손에 들고 만작만작하다가 마침내 궁금한 마음

을 못 이겨서 곱게 뜯어서 훔쳐보려고 생각한 것이 봉하기를 하도 단단히 하여

생재기가 찢기는 까닭에 얼없이 다시 봉할 수 없을 바엔 마찬가지라고 그대로

북북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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