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손 어멈이 들어올 때 건넌방 앞에서 “상제님, 큰쇠 여기 왔습니다.” 하고
소리쳐서 한온이가 방 앞문을 열고 내다보니 큰쇠는 방 앞을 지나서 마루로 올
라가고 만손 어멈만 방 앞에 섰다가 웃으면서 “늙은것이 찬바람맞이에 나가 섰
느라고 혼났습니다.” 하고 공치사를 하였다. “누가 놈이 할멈더러 치운데 나
가라구 했소.” “아들 대신 나갔지요.” “만손이가 여태껏 나가 섰다가 지금
막 들어왔는데 놈이 할멈이 무슨 요공이요.” “상제님 방문 닫구 들어앉아 기
셔두 바깥일을 용하게 아시네.” “방문만 닫혔지 내 귀야 닫혔나.” 큰쇠가 마
루로 난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한온이가 만손어멈더러 “치운데 혼났으
니 어서 안방 영감 옆에 가서 몸을 녹이우.” 하고 웃음 섞어 말한 뒤 앞문을
닫고 돌아앉아서 큰쇠의 절을 받았다. “그 동안 몰라보게 컸구나. 내가 너를 정
초에 보구 거의 일년 만에 보는가부다.” “첨지 영감 상사 때 할미하구 같이
가서 뵈었습지요.” “그랬던가?” “창황중에 보셔서 잊으셨나 보이다.” “그
런게지. 너 저녁을 먹구 왔느냐?” “할미가 빨리 가 다녀오라구 재촉해서 저녁
두 못 먹구 왔습니다.” “그럼 저녁을 먹어야겠구나.” “아니올시다. 조그만치
입시는 하구 왔으니까 가서 먹겠습니다.” 한온이가 안방을 향하고 놈이 어멈을
부르니 만손이 안해가 녜 대답 소리 떨어지며 곧 건너왔다. “이애가 저녁을 안
먹었다는데 먹일 밥이 있겠나?” “숫밥은 없지만 상제님 얼마 안 잡수신 대궁
이 그대로 있습니다.” 만손이 안해가 한온이의 묻는 말을 대답한 뒤 곧 큰쇠를
돌아보고 “놈이 아버지가 지금 저녁을 먹으니 와서 같이 먹어라.” 하고 말하
였다. 큰쇠가 처음에 싫다고 사양하다가 한온이가 가서 먹으라고 이르고 만손이
안해가 가자고 끌어서 마침내 안방으로 건너갔다. 얼마 동안 지난 뒤 만손이가
큰쇠를 데리고 건너왔다. 만손이는 화로의 숯불을 부저로 집어가지고 불어서 등
잔불을 당겨놓고 곧 가려고 하는 것을 “왜 가려구 그러나. 저애 이야길 같이
듣세. 게 앉게.” 하고 붙들고 큰쇠는 두 손길 맞잡고 섰는 것을 “너두 게 앉아
라.” 하고 이른 다음에 한온이가 큰쇠를 보고 “내가 네게 물어볼 말이 많다.”
하고 말문을 허두를 내었다. “서림이란 사람을 너 아느냐?” “알다뿐입니까
늘 보는걸요.” “서림이가 지금 어디 있느냐?” “저의 댁에 있습지요.” “너
의 댁에서 하는 일은 무어냐?” “하는 일은 아무것두 없습니다. 사관청의 대령
포교들 이야기 소일이나 해줍지요.” “서림이의 식구는 어디 있느냐?” “저의
댁 행랑에 있습니다. 그 아들은 청석골 떨어져 있다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
었습니까?” “죽긴 왜 죽어.” “서림이가 식구들 데려올 때 아들이 안 온 것
을 보구 자식 하나 있던것 죽였다구 펄펄 뛰더랍니다.” “그 자식이 볼모루 잡
혀 있을 줄은 생각 못하였던 게지.” “서림이 아들을 청석골서 볼모루 잡아 두
었습니까. 그럼 서림이는 처자를 이쪽 저쪽 양쪽에 볼모 잡힌 셈이구먼요. 저의
댁 영감께서 서림이의 안해 딸 그외의 그 처가 떨거지까지 행랑에 두신 것이 역
시 볼모 잡으신 게지 별겝니까.” “서림의 처가 떨거지라니, 그 장모된다는 노
파두 너의 댁 영감이 붙들어 두셨느냐?” “서림이의 처남 내외두 댁 행랑에 와
있습니다. 그 처남이 서울와서 좀도둑질하다가 좌포청에 잡혀 갇힌 것을 서림이
가 빼놓으러 왔다가 저마저 잡혔답지요? 그 처남을 저의 댁 영감께서 백방으루
내놓아 주실 때 댁 행랑에 와 있을 조건으루 내놓아 주셨답니다. 행랑에 있으면
떨어 내쫓을 것들인데 뒤쪽으루 행랑에 끌어들이시는 걸 보면 서림이 도망 못하
게 볼모 잡아 두신게 환하지 않습니까?” “너의 댁에서 그것들 요를 먹이느냐?
” “서림의 처남은 저이 가지구 온 걸루 끓여먹구 지내구 서림이만 댁에서 먹
을 걸 대주시는갑디다. 서림이 내외는 행랑에 두셨지만 행랑 원역두 안 시키십
니다.” 안방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고 곧 이어서 마루에 콩콩 발소리가 나더니
만손 어멈이 건넌방 밖에 와서 "애 어미가 너를 좀 보잔다. 잠깐 나오너라.“하
고 만손이를 불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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