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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0권 (11)

카지모도 2023. 9.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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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물어보실 일이 없으시더라도 데리고 와서 문안을 시켜야겠지요

만 그놈이 집에도 한만히 나오질 못합니다. 물어보실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면 내가 가서 보고 물어다 드리는 게 어떨까요?” “그놈을 내가 꼭 좀 봤으면

좋겠네.” “그럼 어떻게든지 불러내서 데리고 와야겠구먼요.” 하는 순이 할멈

말끝에 만손 어멈이 나서서 “그저 나오라고 해서 잘 나올 것 같지 않거든 마누

라가 급살을 맞았다고 기별하구려. 그럼 곤두박질해서 뛰어나올 테니.”하고 웃

으니 “이 늙은이가 얼쩡하고 남을 방자하지 않나.”하고 순이 할멈이 눈을 흘

기는 체하였다. “살기 싫증이 날 만큼 살고도 죽기는 원통하우.” “임자는 죽

고 싶어서 몸살이 났나.” “나는 얼른 죽기를 바라우. 얼른 죽어야 영감 손에

묻힐 테니까.” “난 묻어줄 영감도 없지만 영감이 있더라도 지금 죽으면 원통

해서 눈이 감기지 않겠소.” “무에 그리 지원 원통하우?” “아비 어미 없는

손자 남매를 일심정력으로 길러가지고 성취를 못 시키고 죽으면 원통하다뿐이

오. 큰쇠마저 장가를 들여놓고 죽어야지.” “큰쇠 장가 들인 뒤엔?” “순이 할

멈하구 이야기 좀 하게 쓸데없는 소린 고만 하우.” 한온이가 만손 어멈의 말을

중동무이시킨 뒤 순이 할멈더러 “만손 어멈 실없는 말을 본받는 것 같지만 큰

쇠에게 할멈이 병이 났다구 기별하면 그 댁에서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두 내

보내줄 것 아닌가?”하고 의논성으로 말하였다.

“그야 내보내 주겠지만 그놈이 할미 앓는단 소릴 들으면 잠시라도 놀랄 것이

애색하지요.” “순이 할멈 그런 줄 몰랐더니 자애가 끔찍하군. 잠깐 애색한 건

참구 어떻게 그렇게 해보게.” “상제님 분부를 거역할 수 있소. 그렇게 해보리

다.” “그럼 지금 곧 가서 데리구 오게.” “내 걸음으로 지금 농포안 집에 가

서 잿골로 사람 보내서 불러내다가 데리고 오자면 해가 질 테니 내일 데리고 오

는 게 좋지요.” “내가 지금 시각이 바쁘니 오늘 좀 데리구 오게. 해 지면 어떤

가? 여기서 자지.” “나는 다시 오면 순라 때문에 가기가 어렵지만 그놈은 포

장댁 사람이란 패가 있어서 순라잡힐 염려 없이 밤에도 다니니까 그놈만 보내도

록 해보리다.” “그래두 좋지만 그놈이 이 집을 아나?” “전에 와본 일이 없

지요. 아마 집을 모르면 자세히 가르쳐 보내지요.” “그놈이 만손이 얼굴은 아

나?” “알구말구요. 놈이 할미도 아는걸요.” “그럼 저녁때 만손이더러 골목

밖 큰길에 나가서 기다리구 있으라구 함세.” “그놈이 서울 골목을 휑하게 다

아니까 잘못 찾을 염려는 없을게요.” “그럼 얼른 가서 한 시각이라두 빨리 보

내주게.” “놈이 어른을 좀 기다려 보고 가야겠는걸요.” “만손이를 보구 갈

일이 무언가?” “놈이 혼인을 내가 정해 주었는데 색시집에서 이 집 의향을 알

아달라는 일이 있어서 지금 와서 늙은이 내외를 보고 말하니까, 아들이 오늘 일

찍 나온다고 아들의 말을 듣고 가랍디다그려.” “그건 큰쇠가 왔다 갈 때 말해

보내면 되지 않겠나. 만손이 기다리지 말구 어서 가게.”

순이 할멈이 나간 뒤 얼마 안 되어서 만손이가 돌아왔다. 한온이가 만손이더

러 “순이 할멈이 지금 막 나갔는데 길에서 만났나?”하고 물으니 “골목 밖에

서 만났습니다.”하고 만손이가 대답하였다. “놈이 혼인에 물어볼 말이 있다는

데 말하던가?” “네, 들었습니다.” “순이의 남동생 큰쇠가 좌포장집 상노루

들어가 있다기에 내가 좀 불러 보내라구 했는데 그 말두 하던가?” “그 말은

못 들었습니다. 상노루 들어간 제 얼마 안되는 놈이 무얼 알까요?” “글쎄 서

림이가 어디서 무얼 하는 것쯤은 알는지 모르지.” “덕신이 어른 왔다 갔습지

요?” “아침에 온다던 사람이 점심때가 지난 뒤에야 왔는데 김치선이가 영부사

댁 마름을 해서 용인으루 내려갔다네그려.” “그럼 어떻게 하실랍니까?” “덕

신이 어른이 서림이 일을 자세히 알아온다구 장담은 했지만 그 장담을 믿을 수

가 있나.” “글쎄올시다.” “큰쇠가 여길 와본 일이 없다니 자네가 저녁때 골

목 밖에 나가서 기다리구 있다가 데리구 들어오면 좋겠네.” “그렇게 합지요.”

저녁때가 다 된 뒤 만손이가 골목 밖에 나가서 큰쇠 오기를 기다리고 섰는데 그

어멈이 나와서 자기가 대신 서 있을 터이니 잠깐 들어가서 저녁밥을 먹고 나오

라고 말하여 만손이가 집에 들어와서 저녁밥을 먹기 시작하자 곧 그 어멈이 큰

쇠를 데리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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