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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0권 (9)

카지모도 2023. 9. 24.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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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온이가 만손이 내외의 지공스러운 접대와 지성스러운 공궤를 받고 하룻밤을

편히 지냈다. 이튼날 아침에 한온이는 덕신이 아비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아침때

오마고 했다는 사람이 이른 아침때가 지나고 늦은 아침 때가 지나고 해가 한나

절이 다 되도록 오지 아니하였다. 만손이나 집에 있었으면 한번 보내보기도 하

겠는데 만손이가 남부에 들어가고 없어서 한온이는 초조한 맘을 억지로 참으며

기다리었다.

‘윤원형 집 차지 방에서 인제 일어섰겠지.’ ‘지금쯤은 남촌을 건너섰으렸

다.‘ ’지금쯤은 남소문 큰길 어귀에 왔으렸다.‘ ’인제 다 왔겠는데.‘ ’아

니다, 볼일을 잊은 것이 있어서 윤원형 집에서 자기 집으로 도로 간게다.’ ‘볼

일 다 보고 인제는 나섰겠다.’ ‘가까운 샛길로 오나 큰길로 돌아오나. ’ ‘걸

음을 좀 재게 걸었으면 벌써 여기까지 왔을 텐데 인제 겨우 남성 밑골 갈림길에

나 왔지. ’ ‘굼벵이라도 그 동안에 굴러왔겠는데 여태껏 아니 온담.’ 한온이

가 이와 같이 생각으로 윤원형 집에서 만손이 집을 오기도 하고 또 덕신이 집에

서 만손이 집을 오기도 하였다. 덕신이집에서 만손이 집까지는 한번만 오지도

않고 두세 번 되거푸 왔다. 그러나 정작 사람은 오지 아니하여 한온이가 기다리

다 지쳐서 “무슨 까닭 있는 사람을 내가 공연히 기다리는군.” 하고 퇴침을 베

고 드러누웠다. 이때까지는 자주자주 방문을 열고 내다보느라고 방문 앞에 앉

아 있었던 것이다. 해가 한나절이 기운 뒤에 덕신이 아비가 비로소 왔다. 한온이

가 오래간만에 만나는 인사를 하기는 차치하고 받지도 않고 첫밗에 “아침때 오

마구 했다며 왜 이렇게 늦었소?” 하고 책망하는 말로 물었다. “만날 사람을

만나구 오느라구 늦었습니다. 어제 저녁때 가서 못만나구 오늘 식전에 가서 여

태까지 기다리다가 겨우 잠깐 만났습니다. ” “그래 김치선이 있는 데를 물어

봐 준다구나 합디까?" "김치선이 가서 있는 데를 아주 알구 왔습니다." "상제

님께서 곧 만나보시긴 어려울 것 같은데, 그게 낭패 아닐까요?" "어디 가 있기

에?“ "시골 가 있답니다.”“시굴 어디?” “서울서 가깝긴 합디다. 용인이랍디

다.” “서울 있는 걸 시굴 갔다구 외대 주지나 않았을까?” “내가 박차지를

보구 김치선이 있는데를 손동지한테 물어봐 달라구 부탁하니까 박차지 말이, 김

치선이 거처는 손동지께 물어볼 것 없이 자기두 안다구 합디다. 그래 어디 있느

냐구 물은즉슨 손동지가 봐주어서 영부사댁 용인 전장의 마름을 얻어 해가지구

갔다구 합디다. 박차지두 차지들 중에 유력한 사람인데 마름출척이야 모르겠습

니까?” “언제 갔답디까?” “바루 엊그저께 처자까지 데리구 내려갔다구 합디

다.” “전장은 용인 어디랍디까?” “소지명은 물어보지 않았는걸요. 상제님께

서 용인을 내려가실랍니까?“ "아니.” “대체 김치선이는 무슨 일루 보실라구

그러십니까?” “치선이가 좌포장댁 청지기에게 무슨 들은 말이 있다구 해서 그

말을 좀 물어보려구 그러우.”“그럼 좌포장댁 청지기게루 바루 알아보시는 게

좋지 않습니까?” “좌포장댁 청지기루만 들었지 청지기 성명은 못 들었는걸.”

“좌포장댁에 왠 청지기가 많겠습니까? 하나기가 쉽구 기껏 많아야 두서넛이겠

지요.” “좌포장댁 청지기에 혹 친한 사람이 있소?” “저는 없습니다.” “친

한 사람으루 다리 놓을 길은 있소?” “그건 알아보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러면 그런 길 하나를 속히 뚫어보우. 그러구 물어볼 것은 좌포장이 서림

이란 자를 데리구 무슨 계책을 의논했는데 그때 청지기들두 들었다니 그 계책이

무슨 계책인가, 또 서림이란 자가 어디서 무얼하구 지내나 그걸 알구 싶소. 서림

이란 자가 조정에 귀순한 뒤 일은 샅샅이 알았으면 좋겠소.” “별일이 아니라

서림이의 뒤 파보는 일입니다그려. 그건 좌포장댁 청지기보다 좌포청 포교들이

더 잘 알는지 모르니까 어떻게든지 알 수 있겠습지요.” “글쎄, 지금 나는 알아

볼래야 알아볼 길이 없소.” “내가 어느 길을 뚫는지 뚫어가지구 자세히 알아

다 드리오리다. 설마하니 그런 일쯤이야 못 알아내겠습니까. 염려 맙시오.”하고

덕신이 아비는 곧 알아올 것같이 장담을 하였다.

덕신이 아비가 허튼수작을 잘 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욱이 한온이에게 허튼수

작을 할리는 만무하지만, 당장 희떱고 시원스럽게 보이는 맛에 뒷갈무리 못할

장담을 곧잘 하는 버릇이 있는 까닭에 그 장담을 꼭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

나 한온이는 아쉬잡아 엄나무로 그 장담에 희망을 붙여서 “곧 좀 알아봐 주.

믿구 있을 테니 그리 아우.”하고 뒤를 다져 부탁하였다. “상제님 부탁을 범연

히 생각할 리 있습니까. 내가 발바닥이 닳두룩 돌아다녀서라두 그예 알아오겠습

니다.” “내가 서울서 오래 묵을 사세가 못 되니 속히 알아봐 줘야겠소.” “

녜, 빨리 알아오리다.” “오늘 해전에 회보를 들을 수 있겠소?” “오늘 해전은

어려운걸요.” “그럼 내일은 되겠소?” “내일은 아시게 해드릴 수 있겠지요.”

“내일 어느때쯤 알 수 있겠소?” “내일 이맘때 또 오겠습니다.” “내일 점심

때가 저녁때나 되지 않겠소. 기다리기 힘드니 에누리 속을 미리 알아둡시다.”

“상제님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 나는 아침때 올라구 일찌거니 서둘렀지

만 남을 만나보자니 저편 사정이 어디 내 맘대루 됩니까. 그래 조금 늦었지요.

그래두 오늘은 빨리 만나본 셈입니다. 요전에 자식의 일루 그 사람을 만나볼 때

는 식전에 가서 저녁때까지 온종일 기다려서 겨우 만나봤습니다.” “참말 덕신

이가 어디루 피신했다지?” “녜, 그 자식 때문에 나두 그 동안 한번 형조에 끄

들려갔다가 박차지의 주선으루 놓여나왔습니다.” “이번 형조에서 사람 잡는

것이 우리 생각엔 좀 우습소. 우선 영감 부자를 두구 말하더라두 영감은 피신하

구 덕신이가 무사히 집에 있다면 혹시 모르겠는데 일이 뒤쪽이니 우습지 않소.

” “그건 최선칠이(최가의 자다) 한 일을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댁에서 서울을

떠나신 뒤에 선칠이가 댁 사업을 계적해 보려구 했는갑디다. 댁 사업으루 말씀

하면 영특하신 선조부 영감께서 터전을 잡아놓으시구 후덕하신 선영감께서 뒤를

받치셔서 남소문 안호령이 서울 안을 울리게 된 것인데 선칠이 같은 변변치 않

은 위인이 계적을 한다니 누가 말을 듣습니까. 술잔 값이나 생기면 흥흥 코대답

이라두 하지만 안 생기면 코대답이나 할 리 있습니까. 너는 너구 나는 나다 할

테지. 더구나 선칠이의 사지 어금니 같은 사람이란게 문성이.호성이.호불이 이

런 솔봉이들이니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아이들 불장난밖에 더 될 것 있겠습니

까. 그런데 그 얼뜬 자식놈이 문성이 꾀임에 빠져서 선칠이게를 자주 다니는

모양이기에 다니지 말라구 누차 일렀지요. 그랬건만 그 자식이 아비를 기이구

꾀꾀루 다니다가 종말에 아비 기인 벌역을 받은 셈입니다. 이번엔들 잡힐 때 녹

쇠가 첫고등에 잡히구 그 다음에 선칠이며 선칠이 집에 다니는 놈들이며 다 잡

혀서, 녹쇠 같은 시라소니가 어떻게 잘못하다가 잡혀가서 여러 사람을 붙었는가

부다 생각했더니, 속내를 알아보니까 의외에두 녹쇠가 선칠이 집의 소위 도룩이

라구 꾸며 둔 것을 훔쳐다가 형조에 바치구 밀고를 했답디다. 그래서 다른 사람

들이 흑산도루 가게 작정이 되면 녹쇠는 곧 놓여나올 모양입디다.” “녹쇠가

최가를 고발했다! 그거 참 사람이란 알 수 없군. 그런데 최가의 집에 있는 도룩

을 어떻게 훔쳐냈을까?” “녹쇠가 선칠이 집에 가서 심부름해주구 있었답디다.

” “최가를 해내려구 근사를 모았구려.” “처음부터 그런 맘을 먹구 심부름꾼

노릇을 하러 갔는지는 마치 모르겠습니다.” 여담이 너무 길어져서 한온이가 오

늘 해를 이야기로 보내서는 안될터이니 미진한 이야기는 내일 하자구 말하고 행

중 소용으로 가지고 온 필찬 상목 댓 필 중에서 한 필을 꺼내서 술값으로 주고

어서 가서 일을 보아 달라고 덕신이 아비를 쫓아보내다시피 하였다. 덕신이 아

비를 보낸 뒤 한온이는 혼자 누워서 덕신이 아비의 장담을 믿기가 어려우니 오

늘 용인을 내려가서 김치선이를 찾아볼까. 소지명을 모르더라도 용인읍에 가서

영부사댁 전장 있는 곳을 물으면 대번 알 수 있겠지. 내일 덕신이 아비의 회보

를 들어보아서 용인을 내려갈까. 그 늙은이가 설마 내게다 헛장담을 했을 리 없

겠지. 생각을 질정 못하고 있는 중에 만손이 집안 식구의 말소리와 다른 여편네

말소리가 안방에서 나는데 그 말소리가 한온이 귀에 장히 익으나 말소리 임자는

언뜻 생각이 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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