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회청은 벽도 없고 문도 없는 사발허통한 대청인데 뒤와 양옆은 휘장이나 꽉
둘러쳤지만 앞은 그대로 터놓아서 춥기가 한데와 별로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추위,더위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꺽정이가 자기 생각만 하고 겨울에도 매일
조사를 여기서 보고 중대한 일 있을 때 좌기를 여기서 하는 까닭에 청 밖에 섰
는 두목과 졸개는 말할 것 없고 청 안에 앉는 두령들도 덜덜 떨 때가 없지 아니
하였다.
이 날은 날씨도 잔풍하고 남향 대청에 낮볕이 들이쬐어서 도회청 안이 그다지
춥지 않건만 낫살 먹은 오가는 추워 죽겠다고 꺽정이에게 사정하고 화로를 갖다
놓고 쬐었다. 여러 두령이 하나 빠진 사람 없이 다 모인 뒤 꺽정이가 신불출이
와 곽능통이더러 도회청 근처에 오는 사람을 금하라고 분부하고 한온이더러 서
림이 계책을 여러 두령이 듣게 이야기하라고 명하여 한온이는 처음에 두 가지
계책만 대강 이야기하려고 하다가 서울 갔다온 이야기를 자세 듣기 원하는 두령
이 많아서 마침내 먼지 꺽정이에게 이야기한 대로 한번 다시 되풀이하였다. 꺽
정이가 한온이의 이야기 끝나기를 기다려서 “서림이놈의 계책이란 걸 다 들었
으니 인제 대책을 생각들 해서 말해 보라구.” 하고 두령들을 돌아보았다. 여러
두령이 다들 잠자코 있는 중에 오가가 좌중에 들떼놓고 “나이값으루라두 내가
먼저 한마디 할씀하지.” 하고 말한 뒤 곧 이어서 “첫째 관군이 여러분을 멀리
끌구 나거려구 꼬이거든 그 꼬임을 받지 말구, 또 둘째 관문이 한쪽을 틔워놓거
든 그 틔워놓는 쪽을 더 경계하면 서림이 꾀가 허사가 되지 별수 있겠소." 하고
대책을 말하였다. 오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봉학이가 고개를 가로 흔들고 "관군
이 우리를 꼬이다니, 우리더러 뒤쫓아나오라고 일부러 도망하는 체한단 말 아니
겠소? 일부러 도망하는 체하다가 뒤쫓지 않으면 도루 앞으로 대들 것은 정한 일
인데 도망하는 것 뒤쫓지 않을 수는 있지만 앞으루 대드는 걸 막지 않을 수야
있소? 그러구 관군이 가령 열 길루 쳐들어온다구 하구 우리 도중 상하 일백오십
여 명이 열 길루 갈려나간다면 한 길에 불과 열댓 명씩 나가게 되겠구려. 관군
의 쳐들어오는 길두 나가 막을 사람이 부족한데 쳐들어오지 않는 길까지 경게하
구 있을 사람이 남을 수 있겠소? 도대체 이번에 관군이 얼마나 올 줄루 생각하
시우? 내 생각엔 적어두 몇천 명이 올 것 같소. 우리 칠팔 인이 마산리에 모이
는 걸 잡으려구 자그마치 오백 여 명이나 왔구 오백 여 명이 와서두 이를 보지
못했으니까 이번 우리 소굴을 치러 오는 데는 몇천 명이 오지 않겠소? 순경사가
만일 단단히 준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군사를 거느리구 올는지두 모르겠소. 순경
사가 금교역말 같은 데 와서 유진할 듯한데 금교역말에는 오지 않구 해주 감영
으루 감사를 보러 간 것이 준비를 단단히 차리는 속인 듯싶소. 엄청난 대군이
올는지 모르지만 줄잡아서 이 삼천 명 올 샘 잡구 한 길에 이 삼백 명씩 열 길
루 쳐들어온다면 우리가 각각 두목 졸개 여남은씩 데리구 나가서 막을 수 있겠
소? 이 삼백 명을 짓치고 빠져나가기두 쉽지 않거든 이 삼백 명을 못 들어오게
막기가 어디 쉽소. 막아서 뭇 들어오는 길이 더러 있더라두 여기까지 들어오는
길이 못 들어오는 길보다 더 많을 줄 알우. 그러구 보면 관군이 여기를 우리 몰
래 들어오는 건 차치물론하구 우리 알게두 들어올 것 아니오." 하고 긴말로 오가
의 대책을 반박한 끝에 “내 생각엔 식구들을 어디 안전한 데루 피신시켜 놓구
서 관군이 들어올 때 열 길루 들어오거나 스무 길루 들어오거나 우리는 일백오
십여 명이 한 길루 나가서 한 길씩 물리쳐서 다 물리치면 물론 좋구 그렇지 못
하면 목숨인들이라두 도망하는 게 상책일 듯하우.” 하고 자기의 대책을 말하니
다른 두령이 거지반 다 그 대책이 좋다고 찬동들 하였다. 여러 두령뿐 아니라
꺽정이도 이봉학이의 대책을 언짢진 않게 여기나 생각에 식구들을 보내 둘 만한
곳이 없어서 “안전한 데가 어디야. 마땅한 데 생각나는 데가 있나?” 하고 이
봉학이더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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