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학이는 꺽정이가 그런 말을 물을 줄 미리 알고 기다린 것같이 꺽정이의
말이 떨어지자 곧 “우리 요전 가서 하룻밤 자구 온 자무산성이 어떨까요. 더
마땅한 데가 없으면 거기두 잠시 피난처루 좋을 줄 압니다. 우리 식구들 가 있
는 곳을 관군두 알아선 안되지만 첫째 서림이가 몰라야 안전합니다.” 하고 대
답하니 꺽정이가 이윽히 생각하다가 “자무산성이 잠시 피난처는 될는지 모르나
여러 집 식구들이 가서 당장 거접할 데가 없는 걸 어떡하나?” 하고 말하였다.
“집이 십여 호나 되니 원거인들만 어떻게 처치하면 우리 식구들이 잠시 거접이
야 못하겠습니까?” “원거인들을 어떻게 처치하잔 말인가. 광복산 처음 갔을
때처럼 모두 죽여 없애잔 말인가?” “죄없는 백성들을 죽일 것 있습니까? 어디
든지 가서 집 사가지구 살 만한 밑천들을 주어 보내두 좋겠지요.” “그럼 소문
이 나지.” “만일 소문들을 내면 어디든지 쫓아가서 집안을 도륙낸다구 을러
보내지요. 그럼 소문들을 못 낼 겝니다. 소문낼 것이 정히 염려되면 토막나무집
을 몇 채 지어주구 산성 안에서 밖에들을 못 나가게 붙들어 주지요.” “그놈들
이 안식구들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것 같은가?” “우리 중의 누구든지 하나 안
식구들을 따라가 있을 것 아닙니까?” “글쎄”하고 꺽정이가 다시 생각하여 보
는 중에 “안식구들 갖다 둘 만한 곳을 내가 한 군데 말씀하리까?” 하고 이춘
동이가 말하였다. 꺽정이가 이춘동이를 돌아보며 “어디?” 하고 묻는데 여러
두령의 눈도 이춘동이에게로 모이었다. “해주 박대장 기신 데가 어떱니까? 내
생각엔 그만한 데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박대장은 의기가 태산 같은 분이라 전이
라두 여기 대장께서 위급한 때 식구를 좀 맡아달라구 하시면 못한단 말을 안하
실 텐데 지금은 더구나 두 분이 겹사돈을 정하신 터이니 싫다실 리 있습니까.
두말 않구 맡아서 자기 식구같이 보호해 주실 겝니다.”
하는 이춘동이 말에 꺽정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나서 “식구들을 연중이 노
인에게루 보내는 게 좋겠네.” 하고 이봉학이를 돌아보니 이봉학이도 자모산성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거기가 좋겠습니다.:” 하고 찬동하였다. 꺽정이가 다시
이춘동이를 보고 “식구들을 해주루 보내자면 자네가 먼저 가서 사정을 이야기
해야겠네.”하고 말하니 “내행들 갈 때 내가 배행으루 가게 되면 그때 가서 이
야기해두 좋습니다.”하고 이춘동이는 대답하였다. “그러면 자네는 식구들 갈
때 따라가서 아주 거기 눌러 있을 텐가?” “내가 무재무능한 위인이지만 사람
부족할 때 충수라두 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행 배행을 가라구 하시면 내행들 데
려다 두구 곧 오겠습니다.” “여러 길루 갈려나가지 않으면 사람이 부족할 것
없으니까 자네는 거기 가서 식구들 봐주구 있는 게 좋겠네.” “그건 하라시는
대루 하겠습니다.” 이춘동이 말끝에 한온이가 꺽정이를 보고
“제가 대장께 말씀 한마디 여쭐 것이 있습니다.”하고 말하여 “무슨 말?” 하
고 꺽정이가 물었다. “이런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기는 부끄러운 일이나 저
루 말씀하면 접전할 때 여기 있어야 여러분을 도와 드리긴 고사하구 되려 여러
분께 누를 끼칠 위인이니까 저 이두령과 같이 가서 식구들이나 보호하구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온이의 말을 꺽정이는 웃으며 듣고 “그렇게 해라.
” 하고 선뜻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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