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목과 졸개들은 어떻게 하느냐 의론이 났을 때 박연중이 사는 동네 형편이
두목, 졸개를 다 끌고 가면 우선 잠시라도 들여앉힐 처소가 없는데 추운 동절에
한둔도 시킬 수 없고 난처하다고 이춘동이가 말하여 신불출이, 곽능통이 두 시
위 외의 두목, 졸개 십여명만 뽑아서 데리고 가고 그 나머지 팔십 명 사람은 아
직 오두령에게 맡겨두자고 의론이 귀일하였다. 갈 바에는 한 시각이라도 빨리
가는 것이 좋고 또 청석골을 비다시피 하고 가는 것을 가근방 백성들에게라도 알
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이날 밤에 밤길로 떠나기로 하고 말과 노새를 있는 대로
다 타고 가는 것이 좋고 또 군용에 쓸 재물을 넉넉히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고
두령 외의 시위들까지 다 부담을 태우기로 하여 대무한 것만 꺽정이가 작정한
뒤 그외의 여러 가지 길 떠날 준비는 이봉학이에게 통히 쓸어맡기었다. 회의 파
한 뒤에 이봉학이가 곧 도중 재물 맡은 박유복이와 도중 살림 보는 김산이를 데
리고 길 떠날 준비를 차리는데 이봉학이는 청석골을 다시 올 생각이 없는 사람
이라 병장기의 쓸만한 것과 재물의 가지고 갈 만한 것을 하나 남기지 않고 다
골라서 부담 속을 채우고 남는 것은 데리고 갈 두목, 졸개의 질짐을 만들게 하
였다. 가지고 갈 물건을 손모아 놓은 것이 너무 많아서 되골라 내놓았건만 부담
스무짝 외에 짐 열댓짝이 착실히 되어서 대개 열 명쯤 뽑으려던 두목, 졸개를
짐짝 수효대로 늘려 뽑았다.
청석골 안이 술렁술렁하는 중에 저녁이 지나고 밤이 되었다. 대장이 탈 황부
루에만 안장을 지우고 두령과 시위가 탈 말과 노새 열 필에는 부담을 실리고 두
목, 졸개 열다섯은 저희들의 질 짐짝을 각기 맡아 가졌다. 혼자 떨어져 있을 오
가가 꺽정이에게 하직하고 여러 두령과 면면이 작별할 때 생리 곧 사별이 될것
같이 앞짧은 소리를 많이 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오가를 조롱하느라고 자발적게
조상하는 시늉으로 곡하는 소리를 내었다가 꺽정이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섣달 스무남께 가까운 때 밤길을 가자니 춥기야 춥지마는 이삼일 전보다 추위
가 훨씬 풀리고 또 달이 새벽까지 밝은 까닭에 밤길이라도 낮길 못지않게 많이
갔다. 일행이 많고 그중에 무거운 짐을 진 짐꾼이 맣아서 홀가분하게 차린 단신
행인같이 길이 빠르지 못하지만 이튿날 해전에는 박연중이 사는 동네를 대어 들
어갈 수 있었다. 이춘동이 떠나온 뒤 무슨 일이 났는지 몰라서 중로에서 황천왕
동이를 보행으로 먼저 보내보았다. 황천왕동이는 안식구들 갈 때 한번 갔다온
길이라 나는 듯이 가서 보고 저녁때 수십리 밖까지 되마중을 나와서 동네가 무
사하고 백손 어머니가 지난 밤에 순산 생녀하였다는 소식을 알리었다. 노산이고
더구나 오래 단산한 끝에 순산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여러 두령들은 꺽정이에
게 분분히 치하하나 꺽정이 당자는 욕심으로 “이왕 나면 쓸 자식이나 날 것이
지.” 하고 시뻐하였다.
산기슭에 일자로 붙은 동네집이 게딱지 같은 것까지 수효에 넣어 쳐야 열에
겨우 하나 더한 열한 집뿐이었다. 동네 사람은 남녀노소 합해야 불과 이십여 명
이나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으로 두번에 온 청석골 일행이 짐승은 치지 말고
사람만 근 칠십 명인즉 아홉 집이 사람 사태에 파묻히지 않을 수 없었다. 양식
은 미리 준비하여 놓은 까닭에 식사는 외려 여차고 방간은 갑자기 늘릴 도리가
없는 까닭에 방에 잘자리 부족한 것이 제일 큰 탈이었다. 여편네는 여편네끼리
사내는 사내끼리 각각 몰려 자고 집집마다 부엌까지 사람이 자도록 변총하였건
만 그래도 주인의 수하 사람과 손의 졸개들 자는 곳은 몸을 눕힐 틈이 없어 서
로 기대고 앉아서 눈들을 붙이었다. 방이 어떻게 째이든지 백손 어머니 해산방
에도 같이 자는 사람이 방안에 그들먹하였다. 여러 사람이 한 방에서 같이 자게
되니 자연히 방문을 수세게 여닫아서 집안의 산모가 촉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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