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학이와 박유복이가 사랑방에 와서 여러 두령 중의 밖에 나간 사람까지 다
불러 모아놓고 상의한 끝에 박유복이.배돌석이.황천황동이.길막봉이.이춘동이 다
섯 두령이 두목.졸개 십여 명을 데리고 선진으로 가기로 대개 작정하고 짐짝에
서 가지고 갈 병장기들을 꺼내놓는 중에 꺽정이가 나와서 갈 사람 작정한 것을
듣고 이봉학이 더러 “자무산성으루 가는데 일체 일을 맡길 테니 자네가 선진을
거느리구 가게.” 하고 말을 일렀다. “아까 의논들을 할 때 유복이두 나더러 가
는 게 좋겠다구 말을 합디다만 나는 여기서 안식구들 길 떠날 준비를 시키려구
빠졌습니다.” “길 떠날 준비야 별거 있겠나. 여기 남은 사람이 시켜두 넉넉할
톄니 염려 말구 가게.” “녜, 형님 분부대구 선진을 맡아가지구 가겠습니다.”
“그러구 오주는 왜 여기 남겨두나. 오주두 마저 데리구 가게.” “그럼 내일 내
행할 사람이 아주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오주를 내행 배행할 사람으루
남겨놨나? 만일 어린애들이나 울면 길에서 미쳐 날뛰라구.” “오늘 산성 아래
동네 도평 가서 동네사람을 모아놓구 우리 일에 거행을 잘 하두룩 일러두자구 의논
들 했는데 오주가 가서 만일 해거나 부리게 되면 우리 위신이 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주는 빼놨습니다.” “유복이가 가는데 무슨 염련가. 오주를 다잡는데
유복이 윗수갈 사람이 또 어디 있나.”
꺽정이의 말과 같이 곽오주를 다루는 데는 박유복이만한 사람이 다시 없었다.
곽오주가 어린애 우는 소리에 광증이 발작될때 꺽정이의 호령질로도 제지는 되
지마는 박유복이는 곽오주의 뒤를 지성스럽게 쫓아다니며 발작 안되도록 미리
단속하고 혹시 발작되더라도 않는 아이 다루듯 하여 곱게 가라앉히고 꺽정이같
이 큰소리를 내지 아니하였었다.
먼저 가기로 작정한 다섯 두령 중의 이춘동이가 그 모친에게 간단 말하고 온다
고 나가더니 한동안 착실히 지난 뒤에 와서 무슨 말을 할 텐데 입이 잘 떨어지
지 않는 모양으로 주저주저하여 “무슨 할 말이 있나?” 하고 꺽정이가 물으니
이춘동이는 그제야 입이 떨어져서 “나는 내일 내행 갈 때나 가겠으니 오늘 선
진에서 빼주시우.” 하고 말하였다. “오늘 못갈일이 무언가?” “지금 어머니께
가서 나는 먼저 자무산성으루 가니 나중오시라구 말씀했더니 어머니가 억지공사
루 나더러 여기나 그대루 있지 다른 데루는 갈 생각 하지 말라구 말하십디다.
그래서 모자간에 그러니 안 그러니 한참 말다툼을 하다시피 한 끝에 나는 갑니
다하구 나오니까 어머니가 위에 쫓아나오시면서 너는 가거나 말거나 나는 안 간
다, 자식이 어미 말을 안 들으면 모자간 의절이다 하구 소리소리 지르십디다. 공
영한 망령의 말씀이지만 내가 오늘 그대루 가면 참말 뒤에 안 오실는지 모르니
까 사리대루 말씀을 잘해서 의향을 돌려가지구 내일 일행에 같이 가시두룩 할
생각입니다.” “오늘 갈 일행 중에 대궐고갠가 어디루 가는 직로를 잘 아는 사
람이 자네뿐인데 자네가 안갈 수 있나. 가게. 자네 어머니가 다른 데루 가기 싫
다시면 여기 기시게 하구 자네도 나중에 다시 와서 뫼시구 있게그려. 자네가 어
머니를 뫼시구 있거나 우리를 따라오거나 그건 나중 다시 이야기할 셈 잡구 오
늘은 가게.” 꺽정이 말에 이춘동이는 녜 대답을 아니하지 못하였다.
이봉학이가 다섯 두령 외에 곽오주까지 두령 여섯 명과 두목.졸개 열 명을 거
느리고 늦은 아침때 길을 떠났다. 도평을 해 지기 전에 대어보려고 점심참 외에
는 별로 쉬지도 않고 길을 건몰았건만 짧은 해에 칠십리 길을 오자니 자연 일력
이 모자라서 캄캄 어두운 뒤 겨우 대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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