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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0권 (26)

카지모도 2023. 10. 12.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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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김산이가 와서 두령 도합 아홉 사람이 자리들을 정돈하고 앉았다. 도

중에 중대한 회의가 열리는 까닭에 여러 두령이 다 정숙하였다. 그중에 몸이 고

단한 이춘동이는 어디 가서 눕고 싶으련만 그런 말을 감히 하지 못하였다. 꺽정

이가 이춘동이의 온 까닭과 이봉학이의 낸 계책을 대강 이야기하고 끝으로 청석

골을 아주 버리고 가는 것이 도중의 중대한 일이라 여럿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

정을 짓겠다고 말하였다. 꺽정이 옆자리에 앉은 오가가 꺽정이를 돌아보며 “일

을 소상 분명히 알지 못하구는 의견을 말씀할 수 없으니까 일에 대해서 의심나

는 걸 먼저 좀 여쭤보겠소.”하고 허두를 내놓은 뒤 “지금 식구들 가서 있는

데가 위태할 것 같으면 식구들을 어디루든지 다시 피난시킬 것이지 우리들이 새

삼스럽게 피난갈 까닭이 무엇이오?”하고 물었다. 피난간단 말이 꺽정이 비위에

거슬려서 “누가 피난간다구 말했소.”하고 뇌까렸다. “여기를 버리구 자무산성

으루 간다니 그게 피난가는 게지 무어요.”하고 오가의 들이대는 말에 꺽정이는

대답할 말이 막히어서 이봉학이를 보고 “자네가 말하게.”하고 대답을 떠맡기

었다. “여보 오두령, 나하구 이야기합시다.” “녜, 말씀하시우.”하고 오가가

얼굴을 이봉학이게로 돌리었다. “지금 식구들 가서 있는 데가 위태하니 우리가

가서 보호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식구들을 도루 데려오거나 어떻게든지 해야지

그대루 내버려 둘 수는 없지요?” “식구들을 그대루 내버려 두다니 말이 되우.

그런 말은 물을 것두 없소. 다른 말 길게 할 것 없이 대장께 여쭤본 말씀을 다

시 한번 말씀하면 자무산성이구 어디구 안전할 데루 식구들을 다시 옮기는 건

부득이한 일이겠지만 여기서 관군을 대항하기루 작정한 우리가 갑자기 여기를

버리구 다른 데루 옮겨갈 까닭이 무어냔 말씀이오.” “우리가 지금 여기두 지

키구 식구들두 가서 보호하자면 힘이 두 군데루 나누일 텐데 부족한 힘을 두 군

데루 나눴다간 두 군데서 다 낭패보기가 쉬우니까 여기는 아주 비어버리구 식구

들 있는 데루 같이 가서 순경사 대군과 거기서 접전하거나 형편 봐가며 자무산

성을 가서 웅거하구 대항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할 줄루 나는 생각하우.

” “자무산성이 어떤 곳인지 나는 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거기두 안전친 못할

것이오. 우리가 가서 산성 안 백성은 어떻게 잘 처치하더라두 산성 근방 백성들

입에서 소문이 처져나가면 관군이 곧 뒤쫓아올 것 아니오.” “자무산성으루 피

난하러 가자는 줄 아시우? 아니오, 자무산성을 웅거하구 앉아서 관군을 대항하

잔 말이오. 소문나는 걸 저어할게 무어 있소.” “관군을 대항하기루 말하면 여

기가 자무산성보다 훨씬 낫지 않겠소. 다른 설비는 고만두구 군량 한가지만 가

지구 말하더라두 여기는 지금 관군이 수설불통하게 에워싸두 한 달쯤 넉넉 지낼

군량이 있지 않소. 그것만 해두 어디요.” “그건 그렇지만 우리가 아무 승산 없

이 여기 앉았으면 한달 지내구 그 뒤는 어떻게 하우? 서림이가 여기를 목표 대

구 꾀를 내바쳤는데 서림이 모르는 자무산성 같은 데 가서 접전을 하게 되면 서

림이 꾀가 어긋나서 우리게 유리할 것 아니오. 군량으루 말하면 옛날 유명한 장

수는 일부러 없애버리구 대적과 접전한 일두 있답니다. 군량이 넉넉치 못한 게

되려 접전에 이가 될는지 누가 아우.“ ”여기를 버리구 자무산성으루 옮기자는

건 구경 서림이가 무서운 까닭이구려.“ ”서림이의 꾀를 꺽어놔야 우리게 승산

이 많으니까 그 꾀를 꺽잔 말이지 서림이가 무서울 거야 무어 있소.“ ”우리가

다년 근사를 모아서 이만큼 만들어놓은 근거를 헌신짝같이 버리구 다른 데루 간

다는 게 순전히 서림이 때문이니 그게 무섭지 않아두 똥싸는 격이오.“ ”청석

골을 버리구 가는 게 우리게 유리하면 버리구 가는 게지 아깝다구 지키구 앉았

다가 낭패 볼 가닭 있소. 우리가 만일 이번 접전에 지는 날이면 서림이란 놈을

공명시켜 주게 될테니 사람이 애성이 있지 않소. 이번 접전은 어떻게든지 꼭

이겨야 하우.“ ”서림이가 잘될까 봐.“ 하고 오가가 이봉학이의 말을 뒤받으려

고 말 시초를 낼 때 황천동이로부터 시작하여 맨 나중 박유복이까지 여러 두령

이 모두 이봉학이의 말이 옳다고 떠들어서 오가의 말은 마침내 중동무이되고 말

았다. 오가가 한동안 입술을 빼물고 앉았다가 꺽정이를 보고 “여러분은 죄다 자무

산성패가 되어버려서 다른 의견이 더 없을 모양이구 나 하나만 청석골패루 떨어

졌는데 좋은 의견을 낼 주제가 못되니 대장께서 잘 생각하셔서 얼른 결정지으셨

으면 좋겠소. 일이 결정난 뒤에 나는 따루 대장께 청할 일이 한가지 있소.” 하

고 말하여 “따루 청할 일이 무어요?” 하고 꺽정이가 물었다. “일을 결정지으

신 다음에 나중 말씀하지요.” “먼저 말하나 나중 말하나 마찬가지 아니오. 말

하우.” “말하라시면 먼저라두 말씀하리다. 그건 다른 청이 아니라 만일 여기를

버리구 가기루 작정하시거든 나만은 여기 남이 있게 해달란 청이오. 내가 여러분

뒤를 따라가서 조금이라두 조력할 일이 있으면이야 이런 말씀을 어찌 하리까만

쓸데없는 나이는 많구 특별한 재주는 없구 말하자면 도중의 무용지물이니까 옛

소굴의 지킴 노릇이나 하게 해주시우.” “그건 허락하기 어려운 청이오.” “청

해서 허락을 못 받으면 나중에 장령 거역하구 군율이라두 받을는지 모르겠소.”

“오두령두 반심이 생겼소?” “반심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하늘이 내려다

보시지 내가 서림이같이 반복한 놈이란 말씀이오?” “그러게. 장령 거역한다는

게 웬 소리요.” “나는 여기를 버리구 가느니 차리리 여기서 죽구 싶소.” “진

정이오?” “진정이다뿐이오. 나는 청석골서 죽는 게 고소원이오.” “진정 그렇

다면 내가 다시 생각해 봐서 회의 끝난 뒤에 말하리다.” 꺽정이가 오가와 수작

을 그치며 바로 여러 두령들더러 “너희두 다른 의견이 있거든 다 말들 해라.”

하고 말을 일렀다. “오두령이 혼자 뒤에 떨어진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안될 말

입니다.” “안간다구 어거지를 쓰면 목을 빼가지구 가나요 어쩌나요. 할 수 없

지요.” “오두령은 차차 물론하구 졸개들까지두 다 각각 자원을 받는게 좋을

듯합니다.” “자원을 받으면 군기가 문란해집니다. 군령으루 시행해야 합니다.

”“도중 상하 백여 명이 한데 몰려가면 군량 변통이 참말 큰일입니다.” “접

전을 하자면 졸개가 많을수록 좋을 텐데 있는 것들을 두구 갈 까닭이 있습니까.

군량은 노략질해서 먹일 수가 있지만 졸개야 노략질 해서 쓸 수가 있습니까.”

“마산리서 지내보니까 졸개들 없는 것이 되려 주체궂지 않아서 좋습니다.” 여

러 두령이 이런 말들을 옥신각신 지껄일 뿐이고 청석골을 버리고 가는 데 대하

여는 오가의 말과 같이 다른 의견들이 없었다. 꺽정이가 마침내 식구를 보호하

러 가기로 결정을 지어서 말한 뒤에 “오두령의 청은 어떡할까?” 하고 이봉학

이를 돌아보니 이봉학이는 오가의 가고 안가는 것을 대수롭게 알지 않은 듯 “

오두령 생각대루 하라시는 게 좋겠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박유복이가 이봉학

이의 뒤를 받아서 “오두령이 혼자 떨어져 있겠다는 건 망령의 말입니다. 허락

하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는 것을 꺽정이는 미처 대답하기 전에 먼저 오가가

볼멘소리로 “여보게 이 사람. 자네가 이 늙은 놈이 효수당하는 걸 눈으루 보고

싶은가. 자네가 그런 말씀 하는 건 일가에서 방자하는 셈일세.” 하고 박유복이

를 나무랐다. “왜 자청해서 효수를 당한단 말이오. 그게 망령이지 무어요.” “

망령이거나 본정신이거나 하여간 나는 죽으면 죽었지 청석골을 버리구 다른 데

루 가진 못하겠네.” “왜 전에 없이 공연한 고집을 세우시우.”“내가 이번 고

집이 처음 겸 마지막일세.” “처음이구 마지막이구 고집 세울 까닭이 무어요.

나는 까닭을 모르겠소.” “나는 청석골에 살지 못하면 청석골서 죽는 것이 신

상에 편한 까닭일세.” “순경사 난리 치른 뒤에 다시 와서 살면 고만 아니오.

공연한 고집 세우지 마시우.” “내가 남유달리 청석골에 정이 깊어 들어서 잠

시두 떠나구 싶지 않은 걸 어떻게 아나.” 박유복이는 오가의 얼굴을 뻔히 보며

쓴입맛을 쩍쩍 다시는데 황천동이가 박유복이 대신 나서서 “여보 당신이 청석

골에 정이 깊이 들어서 잠시두 떠나구 싶지 않다는 건 멀쩡한 거짓말이오.” 하

고 오가의 말을 타박하였다.

황천왕동이가 타박에 오가는 골을 벌컥 내며 “내가 거짓말을 했으면 사람의

새끼가 아닐세.” 하고 맹세지거리를 내놓았다. “청석골에 정이 들어서 잠시두

떠나지 못하겠단 말이 그래 정말이오?” “거짓말루 알아두 고만이지만 남의 말

을 무턱대구 거짓말이라구 타박하는 법이 어디 있나. 아무리 우리네 무간한 사

이라두 그건 인사불성일세.” “내 생각엔 거짓말이 분명한 걸 어떡하우.” “무

어야, 거짓말이 분명해? 이 사람이 뉘 부아통을 터트릴 작정인가? 분명하거든

분명한 증거를 대게.” “올 여름 광복길은 마누라님 병환 급보를 듣구 경황없

이 간 게니까 말할 것 없지만 작년에 광복 갈 때 어째 그런 말이 없었소? 작년

까지 설들었던 정이 올해 와서 갑자기 깊이 들었던 말이오? 그게 거짓말 아니구

무어요.” 오가가 오금을 박히고 할 말이 없는 것같이 한참 아무 소리 못하다가

풀기없이 한숨을 한번 쉬고 나서 “작년 광복두 나는 가구 싶지 않은 걸 죽은

마누라쟁이가 발동을 해서 마지못해 갔었네. 말하자면 마누라쟁이가 죽을 자리

보러 가는 데 따라간 셈일세.” 하고 스러져가듯 말하였다. “당신이 전에는 판

관사형 구실하느라구 마누라님 꽁무니를 따라 갔지만 지금은 묘지기 노릇하느라

구 마누라님 산수 밑을 떠날 수 없는 게지. 당신이 돌아간 마누라님 위해 세상

에 난 사람인 건 내남없이 다 아는 터인데 그렇게 실토루 말하면 누가 무어라겠

소.” “자네 조롱은 내가 받아 싸지만 내 진정은 자네가 좀 덜 알았네.” “당

신 속을 내가 꿰어뚫구 보듯이 알았지, 무슨 소리요.” “자네가 아무리 소명하

기루서니 내 속이야 나만큼 잘 알겠나. 마누라의 무덤두 내가 여기 있어 수호해

야 묵뫼가 안되겠지만 그 보다두 내가 죽어서 묻힐 땅이 여기니까 나는 여길 더

날 생각이 없네.” “죽어 묻힐 땅이란 게 죽은 뒤 마누라님하구 한 구뎅이에

묻히잔 말이 아니오. 내가 덜 알긴 무얼 덜 알아.” 황천동이의 오가 오금박는

것을 빙그레 웃고 보던 꺽정이가 홀저에 정색하고 “도중 공론하는 자리에 실없

는 소리 작작 지껄여라.” 하고 황천동이를 나무란 뒤 오가를 돌아보고 “그래

정말 죽기 한사하구 여기를 못 떠나겠소?” 하고 다져 물으니 오가는 선뜻 “내

소회는 다시 더 말할 것이 없소. 인제 좌우간 대장 처분만 바랄 뿐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꺽정이는 청석골을 아주 비어버리고 가느니 한 끝을 남겨두는 것이

마음에 합당하여 “그러면 오두령은 아직 여길 지키구 있어 보우.” 하고 오가

의 청을 들어주었다. 여러 두령 중의 박유복이가 얼굴에 좋지 않은 기색을 나타

내는 것이 꺽정이의 처분을 언짢게 여기는 모양이나 본래 입이 굼뜬 사람이 더

구나 대장의 처분을 거슬려 말하기가 어려워서 말은 못하고 끙끙거리기만 하였

다. 오가가 이것을 보고 “자네가 또 일가에서 방자할 생각인가 앗게 앗게.” 하

고 손을 홰홰 내저은 뒤 곧 꺽정이를 보고 “내가 대장 위해서 청석골 유수 노

릇을 잘할 테니 대장께서 소원 성취하시는 날 나를 송도유수루 승차나 시켜주시

우.” 하고 너털웃음을 내놓았다. 오가 수다떠는 바람에 박유복은 말문이 열리지

못한 채 그대로 막히었다. 꺽정이가 오가의 실없은 말은 대꾸 않고 “누구든지

가구 싶지 않은 사람은 오두령하구 같이 여기 남아 있어두 좋다.” 하고 좌우쪽

여러 두령들을 돌아보니 배돌석이, 황천왕동이, 곽오주, 길막봉이 네 사람은 혹

시 자기들더러 남아 있으랄까 겁내둣이 간다고 뒤떠들고 이봉학이, 박유복이, 이

춘동이, 김산이 네 사람은 잠자코 있었다. 이봉학이는 청석골을 통히 비어버리고

가자고 주장하는 사람이고 이춘동이는 길라잡이로 가야 할 사람인즉 다시 가네

안 가네 말할 나위가 없지마는 박유복이와 김산이는 남아 있을 의향이 있는 것

같이 보이었다. 꺽정이가 먼저 박유복이더러 “너는 오두령하구 같이 여기 있을

라느냐?” 하고 물으니 박유복이는 “아니오 갈랍니다. 오두령은 망령으루 안

간다지만 제야 왜 안가요.” 하고 대답하고 그 다음에 김산이더러 “너는 여기

있을 테야?” 하고 물으니 김산이는 처음에 “가든지 있든지 대장께서 하라시는

대루 하겠습니다.” 하고 두동싸게 대답을 하였다가 접전이 무서워서 갈 생각이

적으냐고 황천왕동이에게 조롱받고 또 다른 사람이 다 간다고 분명히 말하는데

혼자 두동싸게 말한다고 이춘동이에게 책망 듣고 “저두 가겠습니다.” 하고 고

쳐 대답하였다. 꺽정이의 명령이 아니면 오가와 같이 남아 있을 두령이 하나도

없는데 꺽정이가 명령하지 않고 가고 안 가는 것을 두령들 자의대로 하라고 말

하여 오가 하나 빼놓고 두령이란 두령은 다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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