꺽정이와 이봉학이가 사랑에 같이 앉았다가 이춘동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어
째 오느냐, 무슨 연고가 있느냐 들이 연달아서 묻는 바람에 이춘동이가 꺽정이
에게만 겨우 절 한번 하고 이봉학이에게는 인사 수작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서 어제 재령읍에 들어가서 순경사의 동정을 알아보고 곧 밤길로 떠나온 사연을
일장 이야기하였다. 꺽정이가 이춘동이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 이봉학이를 돌아
보고 “식구들은 여기 두었으면 아직은 아무 염려 없는 걸 공연히 피난시킨다구
순경사 손에 갖다가 넣어준 셈이 되었으니 저걸 어떻게 하면 좋은가. 식구들을
이리 도루 데려온단 말인가. 우리들이 마저 그리 간단 말인가?”하고 안식구 피
난시키자고 주장한 이봉학이를 탓하듯 말하니, 이봉학이가 머리를 잠시 숙이고
있다가 치어들고 “형님, 저 이두령더러 말 한마디 물어보구 나서 선후책을 의
논하십시다.”하고 말한 뒤 “순경사가 각처루 관자를 부쳤다니 어디어디 부쳤
다던가?”하고 이춘동이더러 물었다. “모두 다섯 군덴데 첫째 강원도, 그 다음
에......” “강원도 어느 골?” “강원도란 말만 들었소.” “황해도 순경사가 강
원도 수령에게 관자할 까닭이 있나?” “그래두 알아온 아이가 강원도라구 말합
디다.” “그런 관자가 아닐 겔세. 강원도 순경사에게 공문이나 사찰을 부친 모
양일세. 그러구 그 다음엔?” “봉산, 서흥, 평산, 금교 네 군덴가 보우.” “봉
산군수하구 상의하구 또 봉산에다가 관자를 할 리가 있다구?” “봉산은 아니오.
” “그럼 한 군데는 어디야?” “어디든가 그 골 이름이 입에서 뱅뱅 도는데.
” “해준가?” “아니오.” “재령서 가까운 신천, 안악, 문화 이런 골인가?”
“그런 군이나 현이 아니고 도호부 같은데.” “황해도내 사도호부의 서흥과 평
산은 들었으니 그 나머지 연안이나 풍천일세그려.” “옳지, 풍천이오. 풍천이
그렇게 얼른 생각이 안 났소.” “우리 식구들 있는 곳을 공격할 작정이면 첫째
해주서 군사를 조발할 것인데 해주가 어째 빠졌을까?” “그 속은 모르겠네.” 그
동안에 이춘동이 왔단 말을 듣고 황천왕동이, 배돌석이, 박유복이, 길막봉이가
차례로 오고 맨 나중에 곽오주가 왔다.
먼저 온 다른 두령들은 이춘동이를 보고 “자네 왔나.” “웬일인가?” 이와
같은 간단한 인사만 하고 이봉학이와 이춘동이의 문답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앉
았는데, 곽오주는 와서 앉으며 바로 이춘동이더러 “처음부터 이야기해야 나중
온 사람두 알지, 그 속을 모른다니 그 속이 대체 무슨 속인가?”하고 투덜거리
었다. 이춘동이가 순경사의 수상한 동정을 다시 이야기하여 여러 두령들에게 들
려주는 동안에 이봉학이는 꺽정이와 선후책을 의논하였다. “순경사가 우리하구
식구들하구 따루 떨어져 있는 것을 알구 우리와 식구들을 동시에 공격할 계획인
가 봅니다.” “어째서?” “식구들 있는 데만 공격할라면 강원도 순경사와 약
속할 일두 없을 것이구 또 금교 찰방에게 관자할 일두 없을 것 아닙니까? 내
요랑에는 순경사가 자기 데리구 온 정병과 풍천, 재령 두 골 군총을 거느리구
식구들을 공격하구, 봉산, 서흥, 평산 세 골 수령과 강원도 순경사와 서루 호응
해서 우리를 공격할 계획인 것 같습니다.” “식구들을 도루 데려오지 못하면
우리가 한 패는 거기 가서 식구들을 보호해야겠네.” “우리가 두 패루 갈리는
건 우리에게 대단 불리하니까 우리가 다 함께 식구들 있는 데루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여기는 어떻게 하구?” “여기는 내버리구 가잔 말씀입니다. 여기
가 전 같으면 그대루 있을 만한 곳이지만 여기 지리와 우리 허실을 샅샅이 잘
아는 서림이가 조정에 귀순한 뒤에는 잠시두 맘놓구 있을 곳이 못됩니다.” “
여기를 아주 버린다면 우리가 어디루 가나 그걸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 “향
일에두 말씀했지만 자무산성을 우선 웅거하구 앉아서 서서히 좋은 자리를 구하
는 게 어떻습니까?” “글쎄, 자무산성을 가서 웅거하다니 있을 집두 없구 먹을
양식두 없는 걸 어떻게 하나?” “지금 토역을 할 수 없으니까 우선 급한 대루
목벽으루 눈비 가릴 의지간이나 더러 만들구 또 산성 근방 동네 백성들을 어르
구 달래서 손아귀에 넣어놓으면 과동할 양식은 어떻게든지 변통이 될 줄 압니
다.” “도회청 회의를 열구 여럿의 의견을 들어보세.” “도회청을 치우구 말구
할 것 없이 이 사랑에서 회의를 여시지요. 지금 오두령하구 김두령만 오면 다
모입니다.” 꺽정이가 가까이 있는 신불출이를 보내서 오가와 김산이를 곧 오라
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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