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용단을 내리셔야지 이러고만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 큰 봉변 당하게 됩니다. 그게 어디 종가 한 집에만 닥칠 일인가요? 문중에
서도 대강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는데 형님이 결단을 허십시오. 생각해 보세요.
일본이 어디 쉽게 망헐 나랍니까? 그 사람들 무섭습니다. 허는 짓을 보면 모릅
니까? 요시찰인이 되어서 좋을 게 뭐 있습니까? 그렇잖어도 총독부에서 위험 분
자는 총검거하라는 검속 명령이 내렸다는데, 공연한 화근을 왜 불러일으킵니까?
그렇기만 헌 것이 아니라, 일전에 고등계 나까지마 주임이 그런 얘길 해요, 곧
징병령이 발표될 거랍니다. 아 왜, 그 육군 특별지원병 모집헐 때도, 조선 청년
들을 모두 강제로 끌어가다시피 허지 않았어요? 끌어가면 끌려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강모, 강태가 징병에 나가서 총대 잡고 싸우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헐
때는, 그때는 어쩔 셈이신가요? 일본은 절대 쉽게 안 망헙니다. 이런 시국일수록
지혜롭게 살어야지, 고집만으로는 아무것도 안되지요."
"어머니께서 저러시니 낸들 어쩌겠는가? 어머니 말씀이 사리에 어긋남이 없는
데 내 고집대로 일을 할 수도 없어. 또 이것이 어린아이 장난처럼 간단한 일도
아니고, 한 번 해다가 물릴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 내가, 종가의 종손
이 아니라면 건 모르겠지만, 나 하나가 어디 나 하나로 그치야 말이지. 참으로
이런 문제야말로 생사가 걸린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한 가문의 문을
닫는 일인데."
"백모님은 아무리 여중호걸이요, 여중군자라고 하시지만 역시 아녀자가 아니십
니까? 여자가 아무리 출중하다 하여도 결국 집안에 사는 사람이라, 세상 돌아가
는 이차와 변화를 어찌 다 알겠습니까? 막말로 , 백모님이 무슨 서류를 제출할
일이 있습니까아, 학교에 다닐 일이 있습니까, 그리고 어디 관직에 나갈 일이 있
습니까, 하다못해 그분 이름으로 누구를 만나 사교할 일이 있습니까? 그러니 도
리를 지키고 가문을 지키면 살 수 있지만, 남자가 어디 그렇습니까? 날만 새면
밖에서 살아야 허고, 해야 할 일 투성이인데, 나 혼자서 고고하고, 나 혼자서 성
씨를 지키다가, 거미줄같이 얽히고 걸리는 그 많은 장애를 어쩌실 것입니까? 단
순히 거미줄같이 얽히기만 한 것이라면 또 별 일 아니지요. 그 거미줄이 밧줄이
되고 차꼬가 되면 어쩔 것인가? 오도 가도 못하고 납작없이 앉은 자리에서 죄수
노릇 하게 됩니다. 형님, 이런 난세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그나마 목숨 보존하
고 살아 남습니다. 더구나 강모, 강태는 지금 학생이니, 그렇잖아도 조선 학생이
라면 무조건 요시찰인 대상에 오르는데 굳이 위험을 사서 부를 건 없지 않습니
까, 그러고, 이 집안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도 창씨개명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기표는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기실은 그 말이야말로 처음부터 하고 싶었
던 말이었으며, 기표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관심이 있는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기채는 그렇지 않은 편이었다. 비록 양자로 종가에 들어와 종손이 되었
지만, 자신은 한 번도 자기가 양자라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었다. 이기채의 생
모 이울댁은 평범하고 정이 많은 부인이었다. 이기채는 그네를 작은어머니라고
부르며 성장하였다. 이울댁 또한 분에 넘치게 다정하지 않고, 그저 자상하고 따
뜻한 정도를 스스로 잘 지켜 주었다. 그런 세월이 저절로 흘러 그네가 생모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도, 엄격하고 정중하면서 기품 있는 청암부인을 몹시 어려워하
기도 했지만 내심 어머니로 섬기는 심정으로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어쩌든지,
종가의 종손으로서의 할 일을 다하려고 하였다. 그가 세상에 나 맨 먼저 눈에
익은 사람도 청암부인이었으며, 기어다니면서 가지고 놀던 것도 청암부인의 반
짇고리와 실패였고, 처음으로 일어설 때 붙잡은 것 역시 그네의 문갑이 아니었
던가. 나중에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을 배울 무렵에야 자신에게 어머니가 두
분이며, 내내 작은어머니라고 부르던 분이 바로 생모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여졌을 뿐, 철이 들어 사물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
도 생모와 양모의 구분은 실제로 어려웠다. 그만큼 이기채는 온전히 청암부인의
아들로, 종가의 종손으로 길러졌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자신의 대에 와서 자신
의 손으로 이 대종가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 어찌 기색을 할 일이 아니랴.
더구나 평탄하게 번영하며 이어져 내려온 종문도 아니요, 자기가 어찌하여 양자
로 종가에 들어왔는지를 그는 누구보다도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
렇게 대단한 명분이 아니라도 좋았다.
"머슴이 발로 한 번 찼는데 그만 힘도 없이 허물어져 버리더라. 허망했지."
청암부인은 그때 이야기를 하면 꼭 웃었다. 어이없었던 그 순간이 회상되는
때문이리라. 또한, 허망한 흙더미로 무너지던 그 퇴락한 집안을 열아홉 청상의
여인 몸으로, 이날 이만큼 세워 일으킨 한 세월에 대한 감회가 가슴에 사무쳐서
그랬을 것이다.
"내, 저 동구에 열녀비 앞을 지날 때면 참 생각이 많아지느니라. 이만하신 어
른이 이 집안에 며느님으로 들어오셨길래 은연중 이와 같은 가풍이 내게까지 전
해져 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청암부인은 어린 이기채를 마주하고 앉아 집안 내력을 들려 주면서 유서를 남
기고 자결하였던 선대 할머님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하였다. 본디 말수가 많지
않은 부인이었으므로 한 번의 말도 곡진한 터이라, 이토록 여러 번 말씀하신, 그
열녀 정문까지 내려받은 할머님의 생애를 어찌 심중에 새겨듣지 않을 수 있었으
리. 청암부인은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정문과 비각을 정성껏 돌보았
다. 누구라고 그 앞을 지나칠 때는 옷자락을 여미었으며, 특히 부인들은 자신의
행실에 대한 거울로 삼을 만큼 조심스럽게 섬기었다. 뿐만 아니라, 아직 출가하
지 않은 과년한 처자들도 이 정문과 비각 앞에서 자신의 정절을 새삼스럽게 다
짐하였다. 그리고 철모르고 뛰어다니는 어린 것들까지도
"열녀 할머니, 열녀 할머니."
하며 살아 있는 사람한테처럼 그 이름을 불렀다.
"내가 만일 종부가 아니었더라면, 나도 진즉에 칼을 물고 자진을 했을 거야."
청암부인은 효원이 시집오고 나서 얼마 후 그렇게 말했었다. 부인이라면, 능히
스스로 자결을 할 수 있는 성품인 것을 효원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전에 그런 열녀가 있었더란다. 옛날 중국 제나라의 장공이 거 땅을 칠 때의
이야기지. 장공이 누군고 허면 중국에 춘추 때, 제나라 임금이었단다. 영공의 아
드님이었는데, 본 이름은 빛날 '광'자였단다. 헌데 나중에 시호를 '장'이라 했거
든. 그래서 그렇게들 부르지. 그분이 어떤 싸움터에서 용맹한 장수 하나를 아깝
게 잃고 말았더래. 그 장수 이름은 기량식이라. 장공이 이 소식을 듣고는 그 마
음에 몹시 애통히 여기고 슬퍼했는데, 어느덧 싸움을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량식의 아내를 만났드란다. 그래 장공은 얼른 신하를 보내서 그 남편이
죽은 것을 애도했단다. 신하는 가서, 저희 주군께서 보내신 신하올시다, 얼마나
분하고 망극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랬겄지. 길에서 만난 김에 그렇게 조상을
한 것인데, 기량의 처가 분연히 떨치고 돌아서며 말했드란다. ... 이제 저의 남편
기량은 죄를 졌사온데, 왕께서는 어찌 욕되이 저에게 조상을 하시나이까... 그렇
지않고 제 남편에게 죄가 없다고 하면, 저의 집이 바로 여기 가까운 곳에 있사
온데, 어찌 하필 길거리에서 이렇게 조상을 받게 하시나이까... . 그 말을 전해들
은 장공은 아차, 잘못을 깨닫고는, 그 집으로 친히 가서 식의 아내에게 문상을
정중히 하고 갔지. 그 아내의 생각에, 비록 남편은 세상을 떠났지만, 이미 죽은
사람한테라도 바르고 정당한 대접을 받게 해 주어야 헌다고 생각해, 그렇게 한
게 아니겠느냐? 죽은 이에게 그러할진대, 하물며 날마다 함께 모시고 섬기고 사
는 남편한테야 더 말하여 무엇하리. 마땅히 도리를 다하여 남편의 뜻을 하늘같
이 받들고 살도록 해라. 남편이 남들에게 대접을 받고 못 받는 것이 다 안사람
하기에 달린 것이니라."
청암부인은 손부 효원을 앞에 앉혀 놓고, 기량식의 아내가 지아비를 잊고 통
곡한 '식처곡부'의 행실을 들려 주었다. 그때 기량식의 아내는 자식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안팎으로 오복의 동족인 오속의 어느 가까운 일가 하나도 없어, 의
지하고 살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오복이라 하면, 초상을 당했을 때 망자
와의 혈통관계를 따라 입는 다섯 종류의 단계별 상복으로 참최, 재최, 대공, 소
공, 시마를 말한다. 상복 가운데 가장 중한 참최는, 극추생마포 제일 굵고 거친
삼베로 지어 아랫단을 꿰매지 않은 상복이다. 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혹
은 아버지를 여읜 맏아들이 할아버지 상사를 당해 상주가 된 승중조부의 상에
삼 년을 입는다. 또한 양자가 양부의 상을 당했을 때, 아내가 남편의 상을 당했
을 때, 그리고 첩이 정실부인의 상을 당했을 때도 참최를 입니다. 재최는 차등추
생포 굵은 베로 옷을 지어 단을 꿰매는데,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서 삼 년 입는
상복이다. 아버지 없는 손자가 할머니 상을 당했을 때, 어머니가 맏아들 상을 당
했을 때, 며느리가 시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대공복을 입
는 대공친으로는 남편의 겨레붙이 모두인 남편의 조부모, 백숙, 남편의 종
형제, 종자매, 질부를 말하며, 소공복을 입는 경우는 종조부모, 재종형제, 종질,
종손이고, 시마는 그 중 복이 가벼워 삼 개월만 입으면 되었다. 남편 형제의 증
손과 남편 종형제의 손자를 비롯하여, 서모, 유모와 사위, 장인, 장모에게 입는
이 시마를 입을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다함이니, 막막한 천지에 혈혈단신 기량식
의 아내만 홀로 남은 것이다. 그 아내는 남편의 시체를 성 아래에 누이고, 머리
를 풀어 피를 토하며 통곡하였다. 길을 가던 사람도 무심하지 못하여 모두 발걸
음을 멈추고 서서 이 정경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밤낮으로 처
참하게 통곡하니, 열흘째 되는 날에는 그 통곡이 진동하여 흔들리고 눈물에 금
이 가서, 성이 그만 절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 아내는 그제서야 드디어 남편을
장사지내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여자란 대체로 반드시 의지하는 데가 있게 마련
이건만 나는 천지에 혼자로구나. 여자란 일찍이 아버지가 계실 때에는 아버지에
게 의지하고, 남편이 있으면 남편에게 의지하고, 자식이 있으면 자식에게 의지하
는 것이다. 허나 지금 나의 처지는 위로 아버지가 계시지 않고, 옆에는 남편도
없으며, 슬하에 자식도 없다. 안으로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내 정성을 어디에 보
일 것이며, 밖으로도 의지할 곳이 없으니 내 절개를 누구에게 보인단 말이냐. 그
렇다고 내가 어찌 딴 남편을 고쳐 섬길 수 있겠느냐. 차라리 죽음이 있을 뿐이
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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