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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3권 (29)

카지모도 2024. 3. 24.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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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죽은 것을 아직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지상의 양명 속에 선 둥치는 이미 베어져 죽었을지라도, 지하의 어둠

속에 뻗은 뿌리는 따로 살아 남은 것일까.

나무는 지상의 둥치와 지하의 뿌리가 그 길이나 모양이나 굵기가 똑같다고 하

니, 하늘을 찌르게 높았던 소나무의 푸른 꼭대기 그만큼 땅속의 땅 속, 저 깊은

어둠의 골에 뿌리의 끝은 닿아 있으리라.

헌데, 분수처럼 위로 솟구친 양분은 둥치가 잘렸으므로 더 가지 못하고 다시

뿌리로 내려간다. 그 소나무 정기가 뿌리의 끝끝까지 하얗게 어리어 백설기처럼

덩어리져 엉겨 있는 것이 바로 백복령이다.

캄캄한 땅 속의 뿌리에 무성한 가지마다 눈부시게 하얀 덩어리로 엉기어 있는

백복령의 한가운데는, 소나무 뿌리들이 꿩 꼬리마냥 박혀 있는데.

이런 나무 한 자리에서 캐내는 백복령이 보통 몇 가마니씩 된다.

“이것은 백복신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도 귀 헌 집 사람들은 이걸로 떡을 해

먹었느니라. 이걸 찹쌀허고 버무리기도 허고 멥쌀 허고 버무리기도 해서, 여기다

인삼가루를 곱게 빻아 가지고 같이 버무려. 그러고는 팥 한 켜 놓고, 백복령 버

무린 쌀 한 켜 놓고, 형형색색 맛있는 것들도 놓고 시루에다 찌면 된다. 이것은

정말 몸에 좋은 떡이니라. 오죽이나 귀하고 좋은 약재면 백복신이라고 신자를

붙여 부르겠느냐. 이걸로 떡을 해서 노나 먹자. 그러다가 신선될라.”

그때 효원은 백복령의 떡보다도, 얼마만한 기운이면 나무가 베어져 없어진

다음에도 이 년씩이나 더 살 수 있는 것인가, 깊이 놀랐었다.

백복령이 그렇게 어리는 것이 어찌 하루아침의 일이리오.

살아 있는 줄 알고 전심전력 힘차게 솟구쳐 올려 보낸 기운이, 제 몸통 잘려

버린 자리에서 얼마나 허망했을까.

거기 이미 둥치는 없고, 막막한 하늘만 무심한데,

가자, 도로 가자. 갈 곳이 없다.

어둠 속으로 우우 내려가는 그 기운은, 어쩌면 몸을 잃은 혼백일는지도 모른

다.

어둠의 뿌리 끝으로 다시 돌아가는 기운이야 솟구치는 기운하고 어찌 같으리.

적막한 혼백을 뿌리에 부리고 눈물같이 하얗게 어리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뿌

리는 다시 새 기운을 빨아 올려 지상으로 보냈다가 도로 내려와 뿌리 끝에 어리

는 세월이 칠 백여 일, 이년이나 쌓이면, 이토록 휘황한 한 세상이 열리는 것이

다.

베어진 둥치를 잃어 버리고서야 비로소 이만한 백복령이 어리는 것이. 효원은

예사롭지 않아서 오래 그 일을 생각했었다.

“죽지 않고 천 년을 산 소나무는 그 가슴속에 구슬이 열린단다. 송진이 어리

고 어려서 고약마냥 엉기고, 또 세월이 가고 가서 한 천 년 지나면 이제는 돌덩

어리같이 단단하고 해같이 말간 구슬이 되는데, 그게 바로 호박이니라.”

송진이 마치 안개나 이슬같이 맑은 어린 소나무가, 어떤 간난신고 비바람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살고 살면 천 년이 가며, 그 천년이 어떻게 어리

면 그토록 투명하고 영롱한 구슬이 될 것인가.

도려 낼 수도, 베어 낼 수도 없는, 그 댓진보다 끈끈한 점액을 가슴에 담고,

엉기고 엉기게 두어,뒤엉긴 송진이 옹이로 박힌 소나무, 차마 삭이지도 못한 그

무슨 진액인가.

그러나, 그것이 구슬이 된다니.

효원은, 백복령을 뿌리에 하얗게 남겨 두고 온 소나무 관목으로 짠 관 속에

누우실 할머님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효원의 가슴속에 뻗으신 할머님의 뿌리에 백복신 정령이 서럽게 눈부

시게 어리는 것이 보이는 것만 같아진다.

아아, 할머님. 구슬은 어디에 열리시려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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