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문지방을 넘어올 대 청암부인의 일별은 새각시의 됨됨이와 친정의 가르
침, 범절 등을 알아보고도 남았을 것이지만, 아직은 다 본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새각시는 청암부인 앞에 다소곳이 눈을 내리뜨고 서서 지극한 공경이
예를 다하여 공손히 평절을 한다. 두 손을 이마 위에 마주 대고 앉아서 하는 큰
절보다, 오히려 평절이 더 어렵다.
절을 하기 전에, 구름 위에 뜬 것처럼 날아갈 듯 가볍게 서 있는 모습은 전아
하고 맵시가 있어야 하며, 모으고 선 두 발도 안순음전해야 한다.
그리고 사르르 앉을 때는, 마치 꽃잎이 곱게 날아앉는 듯 소리없이, 꺾이거나
기우뚱거리지 않도록, 언제 앉는 줄 모르게 앉아야 하며, 두손을, 다소곳이 모아
눕힌 양 무릎 바깥쪽 방바닥에 내려놓을 때, 역시 살포시 어여쁘게 놓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고개를 수그릴 때는, 공경하는 심정이 가슴에서 우러나와 그
마음을 공손히 조아려 바치는 아름다움이 진정으로 무르익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때 팔굽을 굽히면 안된다.
그렇다고 뻗장다리처럼 버티고 앉아서 고개만 툭, 떨구었다 쳐드는 것은 상놈
의 절이라고 호된 꾸중을 듣는다. 곧고도 부드럽게 펴서 잘생긴 나뭇가지처럼
어깨를 받쳐야 고개가 납작 앞으로 어푸러지지 않고, 절 하는 이의 모습에 품격
이 있으며 모양이 아름답다. 절은 예와 미의 꽃이라, 하는 이도 받는 이도 향기
로와야 한다.
연꽃송이, 매화송이, 모란을 받치듯이 조아린 고개를 따라 사푼히 기울이는 등
허리의 안존함, 위에, 절 받는 눈길이 다사로운 미소를 내린다. 그러면, 고개를
들고 공손히 조용하게 일어섰다가, 다시 처음같이 앉는다.
“절 한 자리 허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은 물론이고 친정, 외가, 진외가까지 다
보인다.”
고 청암부인은 말했다.
“양반의 절이란 우아하고 격이 있어 점잖어야 한다. 무슨 절을 그렇게 교색
으로 간드러지게 허느냐. 기생이라면 모를까, 여자 교색이란 남의 눈에 드러나면
천격인 법이다.”
간신히 절을 다 하고 부인 앞에 앉은 새각시를 향하여 이렇게 한 말씀 내리
면, 새각시는 콧등에 땀방울이 돋아나며 어쩔 줄을 모르고, 그말은 곧 지엄한 꾸
중이어서 큰 흉이 된다.
이 첫번째 대면에서 무슨 말씀을 들었는가는 문중 부인들의 관심거리였다. 그
리고 그것은 나중에까지 두고 두고 그 새각시를 재는 기준이 되었다. 첫자리의
첫절이 그렇게 무서웠다.
절하는 자리에서 새각시는, 시댁의 범절 앞에 자신의 친정 가문의 범절을 여
실히 보여 주게 되는 셈이어서, 단순히,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는 의례
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개는 별 말씀 없이 절을 받지만, 그 면전에서 크게 꾸중을 듣고 불호령을
들은 새각시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너 그 절 어디서 배웠느냐?”
이 한 마디만으로도 이미 백 마디 만 마디를 들은 것과 같았다.
눈만 빗득 잘못 떠도, 앉고 서는 것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걸음 떼는 발이 자
칫 덤성 조심성이 없어도 바로 흉이 되었다. 방정맞고 수선스럽게 절을 하면 상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너 신행 너무 일찍 왔다. 가서 다시 처음부터 새로 배워 오너라.”
방바닥에 눈물 떨어지는 소리가 툼벙 툼벙 들리던 그 새각시들은, 그러나 해
가 바뀌고 또 이듬해가 되고, 삼 년이 지나고 하면서 점점 절하는 모양이 고와
지고, 드디어는 남의 절을 흉보게 되곤 하였다.
아무리 매운 꾸중을 들었어도, 다시 원뜸으로 절 하러 갈 일은 얼마걸러 곧
생기기 마련이고, 같은 말씀 또 듣지 않으려면 잠을 안 자고라도 다리가 붓게
연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니 자연 다른 버릇도 스스로 깨우쳐 고칠 만큼도 되었다.
하여, 이 집안 범절의 엄중함이 어느 누구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게 되는 것
이다.
물론 그 중에는
“어여쁘다.”
“양반이 분명허구나.”
칭찬을 받는 새각시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 말씀이 없거나 고개만 끄덕이어도 새각시는 황감하여 안도의 한
숨이 남모르게 새어 나왔다.
절을 하고 나서도 다 끝난 것이 아니어서, 나갈 때, 만일 무망간에라도 어른에
게 엉덩이를 보이고 돌아서는 날이면, 뒤꼭지에 떨어지는 불호령에 소스라쳐 혼
이 다 흩어지고 만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알던것도 잊어 버리고, 않던 짓을
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치며 사뿐히 문지방을 넘어가야 비로소 절차가 끝난
것인데 절을 하고 막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흉이 퍼져 마을로 날아갔다.
청암부인은 절을 받을 때만 그리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동거지 하나
라도 잘못된 것이 눈에 뜨이면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한번은, 무슨 일로 동촌댁 질항의 집에 잠시 들렀는데 꾸중을 한 일이 있었다.
본시 사람은 착한데 성품이 맺힌 데가 없고 게으른 이 사람이, 남편의 저고리
동정이 오래 되도록 갈아 달지 않아, 가무름하게 때가 오른것을 천연스럽게 횃
대에 걸어 놓은 모양이 본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로고, 저 저고리 동정 좀 보소. 사람이 신, 언, 서, 판이
라고, 우선 의관을 단정히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거늘, 제 서방 옷 형상
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낯으로 고개를 들고, 나요, 허는고.”
동촌댁은 기어 들어가는 자라목으로 황급히 저고리를 끌어내려 우물쭈물 구석
지에 치웠다. 그래서 또 내처 꾸중을 들었다.
“옷이란 그 사람의 몸이나 한가지인데, 남편 옷을 그렇게 아무런 정성도 없
이 함부로 구겨서 아무 데나 박아 넣으면, 그게 제 남편을 구겨 박는 것하고 무
엇이 다른가. 세상에는 공것이 없느니, 내가 정성을 들이면 들인 만큼 내 앞으로
쌓이는 법인 걸, 정성 한 톨 쌓지 않고 무슨 염치로 해뜰 날을 바라는고.”
부인은 진심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제 대접은 제가 받는다.”
는 말을 남겼다.
그네가 한번은 꼼꼼하면서도 오종종한 삼종질의 집에 들렀다가, 마침 그날 밤
제사에 쓰려고 남원 장에서 사 온 제수들을 마루에 내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 중에는 집 터안에서 마련한 것도 있었지만, 젓가락 같은 초 여러 자루와
배득배득 마른 조기, 그리고 그만그만한 과일 몇 가지며 바가지에 담아 놓은 대
추만씩이나 한 반이 그네의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무엇이냐?”
묻는 청암부인에게 그는 얼른 대답을 못했다. 왜 묻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그
러는지 짐작이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수인 줄 번연히 알고 묻는 것이어서 공
연히 당황이 되었다.
“제사 음식이란, 자손이 제 부모 선영한테 드리는 정성인데, 네 정성이 이렇
게 잘잘해서야 어디 감응인들 크게 하시겠느냐. 이렇게 못난 것 여러 개 올리지
말고, 차라리, 비용이 안되면, 단 한 가지를 올리더라도 제일 크고 좋은 것으로
쓰는 것이 좋으니라. 그래야 신명도 흡족하실 것이다. 네가, 큰 것을 놔 두고 그
옆에 차등한 것을 고르는 마음의 몰골을 들여다보아라. 장부가 그래서야 되겠느
냐. 큰 것을 올리는 것은 바로 너를 크게 만드는 것이니라.”
청암부인의 궁목은 참으로 남이 들여다볼 수 없었다.
서릿발의 시선이 닿는 극한까지, 자신의 안력을 다하여 쏘아보는 끝머리 마지
막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으리오.
그 서슬로, 모질고도 무거워서 막막하기 그지없는 한세상을 온몸으로 떠맡은
채, 황량참담한 돌짝밭에 자신의 살로 거름을 주고, 자신의 뼈로 길을 깎아 오늘
에 이른 부인에게, 세상 사람들은 ‘청암대신’이라는 별호를 드려 칭송하고 우
러르니, ‘여중군자’, ‘여중호걸’, 드리우신 그 산악은 거대한 지붕인가, 가없
는 울타리인가.
그런데 이제, 이승에서의 무거운 살의 짐을 다 덜어 버리고, 오직 가볍게 마른
뼈로 조그맣게 남겨진 부인의 몸은 애처롭고도 홀가분해 보인다.
홈실댁은, 이제는 잡아 보아 아무 소용이 없ㄴ느 부인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마른 잎사귀처럼 아무 기운 없이 부스러질 것만 같은 손이다.
얼마를 그러고 있던 홈실댁은 양손의 열 손톱과 양쪽 발의 발톱을 모두 가지
런히 깎는다. 마지막 무거움을 잘라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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