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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3권 (33)

카지모도 2024. 3. 2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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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를 것이다마는, 나는 그때, 많이 울었느리라. 처음에 너를 가져, 부끄럽

고 고마운 중에 아들 낳기만을 간절히 축수하였더니, 천지 신명이 무심하지 않

고 조상의 음덕이 내게 끼쳐서, 손 귀한 집안에 해 같고 달 같은 너를 낳았는데.

젖도 떼기 전에 큰집으로 너를 보내 놓고, 아무도 모르게 돌아앉아 눈물 짓곤

하다가, 아니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마음을 다잡아 먹곤 했었더니라. 비록

너를 떼어 보냈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 나이 젊고, 너의 아버지 옆에 계시니, 큰

집의 형님처럼 고단한 데 비기랴.

아이는 또 낳으면 된다. 이 다음에도 부디 아들 낳아지이다. 하늘이 감응하사

아들 낳아지이다. 전생이 있다 하면, 내가 아마 전생에서는 형님의 아들을 양자

로 데려왔었던가 보다, 이렇게 전생의 빚을 갚는가 보다, 데려왔던 아들을 돌려

보내 드렸으니 이번에는 부디 내 인연으로 나한테 태어나는 내 아들을 주십소

사.

헌데 그때 너도 많이 울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강보의 떡애기가 무엇을 알

랴마는, 낯이 설어 그랬던가, 품이 달라 그랬던가, 그보다는, 어미 젖을 양껏 빨

아야 할 애기가 그리 못하여 울었던 것이리라. 소년의 청상으로 젖이 날 리 없

는 너의 어머님이 손수 밤을 낮같이 너를 보살피어, 깊은 잠을 주무시지 못한

채 암죽을 끓이고, 데우고, 너한테 먹이셨지마는, 아무래도 애기 입에는 달지 않

았던가. 너는 숟가락을 혀로 밀어내며 먹지 않고 늘 배가 고파 보채다가, 밤이

되면 젖 달라고 우는 소리가 아랫집 나한테까지 역력히 들렸었다.

젖이 있는 어미는 애기를 달래기가 쉽지마는, 안 그런 사람은 우는 애기를 달

래는 것같이 힘든 일이 없는데, 너의 어머님 심정도 오죽하셨으리, 생모가 바로

터 아래 있는데, 아무리 양자로 데려와 당신 자식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네가 그

렇게 울면 얼마나 나한테 미안하셨겠느냐.

허나, 나는 나대로 부질없는 젖을 대접에 받아 장독대의 정한 곳에 흘려 부으

며, 참을래도 참을래도 눈물이 북받쳐 흘러 무심한 대접을 적시었다. 아마, 내

젖의 절반은 흘리지 못하고 참은 눈물이 가슴에 모여 고인 것이었으리라.

그날은 몹시도 추웠는데 눈발까지 섞여 날려 고샅에 발소리도 일찍 끊어지고

밤이 유난히 깊었었다. 세안 삼동이었지. 그날따라 너는 초저녁부터 칭얼거리더

니 밤이 점점 깊어갈수록 어떻게나 자지러지게 우는지 내 귀에 그 울음 소리 파

고들어, 나는 좌불안석 방안에서 서성거리다가, 방문을 열어 보다가, 주저앉았다

가, 일어섰다가, 어찌할 줄을 몰랐다. 꼭 어디가 아픈 것도 같었고, 배가 고파 그

런 것도 같었다.

조그만 애기 창자가 다 마르고, 그 조그만 애기 배가 등에 가 붙은 것만 같어

서, 내 가슴이 미어져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 내 새끼.

달려가서 보듬어 주면 금방 그칠 것만 같아서 토방까지 내려섰다가 다시 방으

로 들어오기를 몇 번이나 했어도 너는 울음을 그치지 않었다.

밤이 되면 젖이 더 불어, 짜내려고 대접을 들다가, 나는 더 못 참고 대접을 내

려놓고 웃집으로 올라갔다. 우아랫집이 한 울안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게 몇 걸

음이나 되었겠느냐.

그래도 그 걸음은, 가서는 안되는 걸음이었다.

목이 쉬어 우는 너를 달래는 너의 어머님 음성이 마당에까지 들리는데, 등불

을 돋우어 놓은 방안의 불빛이 붉고, 방문에는, 너를 등에 업고, 방 네 귀퉁이를

가로 지르고, 세로 지르고, 둥그렇게 돌면서 하염없이 너를 어르는 너의 어머님

그림자가 비쳤느니라.

얼음같이 찬 바람은 허공에서 배폭 찢는 소리로 울고, 너는 방안에서 어미 가

슴 찢는 소리로 우는데, 나는 무슨 못할 짓 하러 온 것마냥 가슴이 쿵쿵 뛰어

수습하기 어려운데, 한 모금만, 꼭 한 모금만 이 젖을 먹이면 네 울음이 그칠 것

만 같았다. 누가 도로 아들을 찾어오겄다는 것이 아니라, 젖 모자라는 애기가 저

렇게도 울고, 나는 젖이 불어 짜내야만 헐 형편이니, 한 번만 먹이자고, 우선 애

기 울음을 달래자고, 그렇게 말씀 드리고 싶었다.

허나, 나는 그리 못하고 말았느니라. 이것이 한 번이 아니고 번번이 되면 어찌

할 것이냐, 무슨 일이든 그 한 번이 무서운 일이지, 한번 저지른 일은 두 번 일

을 쉽게 하게 만드느니. 이 한 번을 못 참으면, 형제간 우애하기 어려우리. 이제

는 울리든 때리든, 내 아들이 아니다, 형님의 아들이다. 내가 나서서는 안된다.

이번에는 내가 나를 어르고 달래었느니라. 허나, 나는 일개 새끼 낳은 아낙에 불

과한지라, 눈물이 앞을 가려 찬 바람에 얼어붙고, 그 위에 또 눈물이 새로 흘러

내렸었다.

그보다 더 내 마음을 가로막는 것은, 혹시라도 너의 어머님이 어찌 생각하실

는지, 털끝만치라도 오해하고, 서운히 생각하신다면 어찌할꼬, 하는 것이었다. 너

의 어머님 정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내 일에 앞서 살펴드려야 마땅한 일인데,

애기 좀 운다고, 생모 유세한다 하신다면 얼마나 송구스럽고 민망한 일이냐. 젖

안 나시는 너의 어머님 앞에 보란 듯이 젖을 먹여 울음을 달랜다면, 내 속은 그

게 아니라 하더라도 너의 어머님 한스러우신 심사를 어지럽게 해 드리는 것밖에

또 무엇일까.

차라리 우는 너를 무섭게 윽박지르고 번거로워 짜증내시는 기색이 보였더라면

내가 달려들기 쉬었으련만, 그 준절 엄중하신 성품에 음성 한 번 변하는 일 없

이 오직 자애로 너를 어르며 안타까워하시는 너의 어머님 모습이, 내 속을 쓰리

게 하였더니라. 아무리 네가 울어도 나를 부르지 않으시는 너의 어머님 심정을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나는 그날 밤, 바람이 살을 가르는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은 채, 턱을 가슴에

박고, 소리도 못 내고 많이 울었다. 눈 섞여 날리는 동지 섣달 설한풍에, 아프게

불어오르는 젖을 너 대신 부둥켜 안고 한없이 울다가, 온몸이 얼어서 집으로 내

려왔었느니라.

이울댁은 이기채의 등뒤에서 눈물을 흘리고, 이기채는 청암부인 시신 앞에서

그칠 줄 모르고 곡을 한다.

내가 죽어도 네가 그리 슬피 울어 주려느냐.

이울댁은 문득 속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소렴을 마치고 대렴을 한 뒤에, 입관까지 하면, 이기채는 거친 베옷에 오

동나무 지팡이를 잡고 성복을 할 것이다.

그때도, 청암부인을 위해서는 모상이니 재최 삼 년을 입겠지만, 남자로서 남에

게 양자를 간 사람이나 여자로서 남의 문중으로 시집을 간 사람은, 그 생가 부

모나 친정 부모를 위하여 입는 복을 한 등급씩 낮추어 입는 법이라, 생모 이울

댁을 위해서는, 지팡이를 짚는 장기 일 년만을 입을 것이다.

최는 상복의 앞가슴에 달린 베 조각인데, 부모를 잃은 효자가 비애를 억누르

는 뜻이 있는 것이라, 눈물받이라고도 하며, 부판은 뒤에 붙이는 베 조각으로 비

애를 등에 짊어진 것을 나타낸다.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극추생마포로 베옷을 지어, 가위질 한 그대로 아랫단을 너실너실 꿰매지

않은 옷 참최의 상복을 삼 년간 입는다.

아버지 여읜 상복을 '참'이라 이름 지은 것은 창자가 끊어지고 슬픔을 달리 나

타낼 말이 없기 때문이리라. 극추생마포는, 삼승베로, 삼베 중에 제일 거칠고 얼

금얼금 발이 굵은 것이다. 최는 또한 효자의 슬픔을 말하는 것인데, 어머니의 죽

음에는 차등추생포로 옷을 지어 아랫단을 꿰매어 입는 상복, 재최 삼 년을 입는

다.

그 다음 복은 장기로서, 지팡이를 짚고 일 년간 재최를 입는 것인데, 적손이

그 아버지는 죽고 조부가 생존해 있을 때, 조모를 위하여 입는 복이다.

다음은 부장기이다. 상복은 입지만 지팡이를 짚지 않고 일년 동안 입는 것으

로, 조부모, 백숙부모, 형제, 그리고 맏아들 아닌 뭇아들의 죽음에 입는다. 만일

맏아들을 잃었을 때는 그 복이 다르다.

대공복은 대공친인 종형제와 종자매들을 위해서 입는 상복으로, 굵은 베로 지

어 아홉 달 동안 입고,

소공복은 소공친인 종조부, 종조모, 형제의 손자, 종형제의 아들, 재종 형제들

을 위해서 다섯 달 동안 입는다.

끝으로 시마는, 종증조부, 종증조모, 종조의 형제나 자매, 그리고 형제의 증손

과, 뭇 현손들을 위하여 석 달 동안 입는 것이다.

그래서 참최, 재최, 대공, 소공, 시마를 일러 오복이라 하고, 장기, 부장기는 상

복을 입되 지팡이를 짚는가 안 짚는가를 구분하는 일이다. 물론 지팡이를 짚는

상의 슬픔이 더 무겁다.

다른 상복은 모두 복식과 기간이 하나인데, 재최만은 관계에 따라 삼년, 장기,

부장기, 오월, 삼월의 다섯 종류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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