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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3권 (34)

카지모도 2024. 3. 2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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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는 모든 관계의 사람들이 오복의 경우를 헤아려 슬픔

을 표하고 복을 입지만, 요사한 사람을 위해서는 순서에서 한 등급을 낮추어 입

고, 시집을 갔어도 남편이나 자식이 없으면 부장기를 입으며, 서자는 자기를 낳

은 어머니를 위해서도 삼년복을 입니 못한다. 또 첩도 남편의 장자나 뭇 아들이

죽었을 때, 그를 위하여 애통히 여기고 복을 입는다.

부모상에 대나무와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 것은, 그 나무의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물론이고, 오동나무도 다 자라면 속이 메워지지만, 지팡이를

만들 만큼 어려서 아직 크기 전에는 비어 있다.

혹 누구는 그것이,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에 너무나 노심 초사하여 속이 다

녹아 없어진 것을 슬퍼하며 기리어 짚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무 사

심 없이 자신을 모두 비워 내고 존재의 천연심으로 돌아가, 우주 정기의 공간에

서 부모와 자식이 아무 걸린 데 없이 서로 감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충정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나면서부터 제 한 몸에 모

든 것을 가지고 있으니, 죽순에 응축된 마디 수 그대로 일년 안에 다 커 버린

뒤, 더 자라지도 줄지도 않으면서, 사시 사철 푸르고 청청하다. 그리고 마디마디

절도가 있어 엄준한 성현 군자 그대로이다.

대나무를 베어 만든 피리나 대금 단소 같은 악기에서 울리는 음향을 율이라

하는데, 이것은 우주 천지 음양의 기운 중에 양성 소리이다. 양은 하늘의 기운을

받은 것으로 아버지를 상징하니, 부상에 대나무 지팡이를 짚는 것은, 아버지의

정신을 받들어 추모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대나무의 마디마디는 아버지를 잃은 자식의 슬픈 마음의 옹이를 나타내

며, 더울 때나 추울 때나, 해가 바뀌나 변함없이 추모의 마음을 이어가겠다는 다

짐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동나무도 겉으로 보아 아무 마디도 없는 것 같지만, 속을 자세히 들

여다보면 눈에 얼른 안 보이는 마디가 가다 있고, 가다 있고 하여, 겉으로 드러

나지 않으면서도 속으로 깊은 어머니의 자애 심정과 같은데.

오동은 베어서 거문고를 만든다. 오둥 중에서도 석산에서 큰 오동은 소리가

짱짱하여 깊고 맑은데, 이것은 여라고 한다.

'여'는 음성 소리이다. 음은 땅의 기운을 말하는 것이니 어머니를 상징하여, 모

상에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고 울며, 어머니 정신을 그리워하고 새기는 것이다.

대는 차고 오동은 다숩다.

나무의 성품과 온도가 그리하매, 음률도 대나무로 만든 악기는 폐부를 찌르며,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심정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대나무 잎은 서슬이 날카로우며 오동나무 잎은 크고 넓어 치마폭 같

다.

그러니 이 율과 여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율려가 되어, 심원하고

그윽한 현묘에 이르듯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신과 기운을 빈 마음으로 받아들

여, 그 혼백과 통하고자 하는 자식의 효심이 지팡이에 간곡하게 어리어 있는 것

이다.

또한 대나무의 겉마디나, 오동나무의 속마디처럼, 정연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사람이 가고 오는 것 또한 그 한 마디인 것을 돌아보게 하고, 하나의 마디가 끊

어져도 또 다음 마디가 이어져 높이 높이 커오른 이 나무들을 바라보며, 조상과,

부모와, 자식이 서로 그와 똑같은 이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이 대나무 지팡이

저장이요, 오동나무 지팡이 삭장이다.

음, 양의 조화는 오묘하여, 하늘이라고 오직 양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땅이라고 오직 음으로만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에도 음, 양이 두루 있고, 땅에도 음, 양이 고루 있다. 사람 또한 남자라고

그냥 양이 아니요, 여자라고 다만 음이 아니니, 남자에게도 음, 양의 기운이 함

께 들어있고, 여자에게도 음, 양이 성품이 같이 들어 있어, 어느 한편으로 치우

치지 않고 고루 갖춘 사람만이 그 조화로움으로 이 세상에 상생의 덕을 베풀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몸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시에 살면서 어린 이기채를 기르고, 이제는

영결 종천, 다시 서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시는 어머니, 청암부인의 입관을

할 때.

굄목 두 개를 백지로 싼 등상 위에 관을 올려 놓고, 풀솜으로 관 안을 깨끗하

게 한 후에 사람들은 백지를 잘라서 위로부터 아래까지 펴서 놓았다. 그리고 관

의 가장자리로도 백지를 병풍처럼 세워 놓은 뒤, 차조의 짚을 태운 재를 서푼

두께로 고루 깔았다.

그리고는, 방판에 기대어 세워 놓았던 백지를 덮어서 재가 보이지 않게 가렸

다.

그러더니 그 위에다 칠성판을 깔고, 자주색 안을 받친 붉은 명주 지요를 깔았

다.

지요의 머리쪽에는 자주색 명주 헝겊 베개가 꿰매어져 있었다.

대렴포에 감긴 청암부인의 시신은 얼굴에 검은 멱모를 쓴 채로 묵묵히 누워

있는데, 입관할 사람들은 중목 세 개를 관 위에 상, 중, 하로 걸쳐서 놓고, 가로

묶을 베 횡교와 세로 묶을 베 종교를 중목 위에 걸쳐 놓는다.

드디어 두 사람은 위에서 시신의 머리를 받들고, 두 사람은 허리를 받들고, 두

사람은 다리를 받들어, 시신을 들어올린다.

중목 위에 모신 시신을 횡교, 종교로 묶은 뒤에, 관의 좌우에 서서 상, 중, 하

중목 놓인 곳에 걸쳐진 횡교를 똑같은 힘으로 잡고 들어올릴 때, 다른 사람은

얼른 중목을 빼낸다.

들어올린 그대로, 지하의 묘혈로 내려가듯이 시신은 관 속으로 내려졌다.

균제 방정, 바르게 되었는가 살핀 사람들은, 종교, 횡교의 매듭을 풀어서 시신

위에 펴 놓고, 낙발을 담은 주머니는 머리 쪽에, 손톱을 담은 주머니는 겉면에

씌어진 방향을 따라 뒤섞이지 않도록 좌우의 손 옆에, 그리고 발톱을 담은 주머

니는 양 발 옆에 넣으면서, 관 속의 사우 네 모퉁이 빈 곳에 입던 옷과 종이로

보공을 하여 채우고, 그 위에 홑이불 천금을 덮는다.

이제 관 뚜껑 천판을 덮을 차례이다.

그러면, 다시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꿈

에 본다고 보는 것이며, 마음에서 그린다고 보는 것이랴.

애원 극통의 심정이 살을 마르게 하고 뼈를 녹게 하여도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가슴을 두드려 피멍이 들어도 소용이 없다.

그 심정을 헤아리어 천판을 덮기 직전에 망인의 얼굴을 덮은 검은 멱모만은

잠시 벗겨서, 자손들에게 부모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해 주니.

그 얼굴을 대하며 이기채는 무너져 통곡한다.

아아, 어머니.

부디 평안히 가소서.

이 세상에 남겨 놓고 가시는 일 아무것도 근심하지 마시고, 돌아보지 마시고

부디 안혼정백, 편안히 쉬소서.

그리우신 아버님을 맨 처음 만나던 날 입었던 옷 그대로 입으시고, 지금 어디

쯤 마중 나와 계실 그 옆으로, 부디 좋은 곳으로, 다 떨쳐 버리고 가볍게 가소

서.

너무 오래 다른 유명에 살아서 몰라보면 어찌하리, 하시더니만, 입으신 그 옷

보면 아버님도 반가우시리다.

열여섯 살 아버님이 남겨 놓고 가신 세상, 일흔셋이 되도록 어머님이 다 맡아

서 사신 이야기, 그러면서도 차마 말 못하게 못 사신 세상, 이제는 만나셔서, 부

디 그 정회를 다 나누소서.

폐를 도려내는 이기채의 처참한 곡성이 청암부인을 덮는다.

그 위에 검은 멱모를 다시 씌운 사람들은, 하늘의 뚜껑인가, 천판을 닫고, 관

의 귀퉁이에 투웅 투웅 못을 박는다. 나무못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차단하여 무정하게 가로막은 문, 검은 관 뚜껑에 못 박

는 소리가 심폐의 한복판으로 깊이 저며들어 효원은 관 위로 고꾸라지며 흐느끼

어 곡을 한다.

 

김씨 맹인님 김씨 맹인님

황혼이 점점 밝어가는디

무슨 잠을 그리 오래 주무시고 있습니까

어서 일어나서 극락 세계를 오시라고 하니

극락 세계에 가시거든 맹물 향물 쑥물로 잘허고 오셨다고

진 세상으 입든 옷은 저녁 보신 낭구에 걸고

마른 옷 입고 오셨다고

사대 부친 왕림해 가시거든 염불로 질을 닦을 테니

잘 들어 보고 극락 세계로 잘 가시요 그려

 

상여를 매고 장지로 떠날 상두꾼들이 머리에 삼베 두건을 쓰고 양쪽에 열한

명씩 줄을 맞추어 서 있는데, 상여 앞의 선소리꾼이 놋쇠 요령을 울린다.

 

땡그라앙 땡그라앙 땡그라아앙

 

삼동의 한가운데 동짓달의 에이는 찬 바람 속에 오늘따라 무엇하러 파랗게 트

인 빙청 하늘이, 노적봉 위 저 먼 상상에 앙장처럼 걸려 있는데, 상여 지붕 위에

차일같이 두른 넓은 앙장은 속이 시리게 흰 빛이다.

발인 일시와 장지, 하관 일시, 반우 일시를 적어서 대문간에 붙여 놓은 발인기

의 백지 끝이 바람에 일어났는가, 흐느끼는 풍지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누르며

검은 먹빛은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다.

먼 곳에서 오는 조객인지 막 발인하려는 대문을 들어서던 노인 하나가, 마당

에 선 상두꾼들과 덩그렇게 높이 든 상여를 보더니

"허어."

허망한 한숨을 자른다.

바람 자락이 허공에서 운다.

"강모, 왜 강모가 안 보여?"

누군가 등뒤에서 숨죽인 소리로 수군거린다.

"모른대요."

대답하는 이 음성도 낮다.

"아니, 할머니가 돌아가셨그만, 손자는 어디로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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