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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3권 (38)

카지모도 2024. 4.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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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자신이 타고 있는 이 기차가 운명의 검은 피리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너는 나를 입김으로 불어 내어 그 어떤 노래를 부르려느냐.

비가.

어쩌면 나는 지금 여지껏 살아오던 모든 것과 함께, 이 기차의 울음속에 증기

로 기화되어 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형체도, 시간도, 관계도.

어린 시절 매안의 아랫몰 복사꽃 핀 냇물과 버들가지 꺾어서 불던 피리, 푸른

풋내 서투른 입김 속에 섞여 번지면 까닭도 알 수 없는 풀물이 가슴에 들어, 하

루 종일 필릴릴리 판막이 떨리곤 하였는데, 버들피리 연두 물빛 아득히 흔들리

는 아지랑이 너머로, 아아, 봄의 비늘처럼 하염없이 날리고 날리던 연분홍 살구

꽃, 꽃잎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었다.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그러던 날, 어느 해 봄, 전주로 유학하여 고향을 떠나 왔을 때.

고등보통학교 음악선생이 유난히 강모를 기꺼워하며,

"자네, 음악을 공부해 보지 않겠나?"

하고, 애착어린 격려를 성심껏 해 주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 기타, 플루트, 그리

고 클라리넷 같은 악기 다루는 법을 방과 후에까지 남아서 열심히 가르쳐 주었

다.

강모는 그때 서양의 금속 은빛 피리를 처음으로 만져 보았다.

"자네가 지금 배우는 것은 모두 기초다. 겨우 악기의 문맹을 면하는 것이지.

나는 연주자가 아니라서 더 깊고 진정한 음악혼을 자네한테 심어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허나, 그릇이 못돼. 나는 다만 안내판. 표지 역할은 할 수 있지.

그런데 자네는 세포에 음의 혼이 있으니, 꼭."

어느 악기가 나를 울려 부르는지 귀기울이고 들어 보라 하였다.

그래서 그는 동경으로 떠나고 싶었다.

실핏줄 밑바닥까지 자신을 당기는 바이올린 네 가닥 현 위에 생애를 싣고, 그

는 마음껏 떠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부서져 동강이 난 바이올린 중허리처럼 꺽이고 말았다.

참 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더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채, 앞이 보이지 않는 굴 속에

앉아 장님처럼 검은 시간의 벽을 더듬는 손. 강모는 파리한 제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흰 손등에 푸릿푸릿 돋아오른 정맥이 스산하게 비친다. 춥다. 그는

손을 오그리어 차디찬 주먹을 쥔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는지도 몰라.

돌이킬 수 없다는 것과 돌아올 수 없어다는 것은 어찌하여 같은 말인가.

두 말은 톱니같이 맞물리면서 강모의 뇌리에 송곳니를 박는다.

전주 이씨, 자신의 본향이어서 이곳에 입성할 때 감회가, 어린 나이에도 유달

리 진진하고 유심하였으나, 이제 그가 껍질 벗는 배암처럼 허물을 벗어 놓고, 기

차를 따라 몸만 빠져 나가려 하는 지금, 전주는 허연 껍데기 한 장으로 남아서

검은 기차의 꽁무니를 아연히 바라만 보고 있다. 그 서글프고 허전하게 벌어진

아구를, 버리고 달아나는 기차 증기가 허어옇게 메운다.

"제군들이여, 그대들의 관향은 어디인가?"

전주고보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심진학 선생은 말했었다.

"나는 청송 심가다. 아직까지 그곳에 가 보지는 못하였으나, 나는 꼭 나의 관

향, 나의 본, 청송에 가 보고 싶다. 아마 가 볼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

의 관향에 가 본 일이 있는가. 전주 이다. 김해 김이다. 밀양 박이다 하지만, 막

상 내가 왜 내 성씨 앞에 그러한 지명을 달고 붙여 부르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뿐만 아니라 나의 성씨를 맨 처음 쓰기 시작하신 나의 뿌리, 최초

의 거룩한 씨앗, 시조께서 나셨던 고을 관향에 가 본 이는 더욱 많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누구를 만나 수인사 통성명을 할 때

"본이 어디냐?"

고 묻는다.

그러면 으레 그 대답으로, 조선 팔도 삼천리 강산 어느 곳엔가 엄연히 실재하

는 동네 지역 이름을 대어 말하기 마련이다. 가령

"파평이요."

"달성이요."

"광산이요."

"안동이요."

"진주."

라고.

'본'이란 글자 그대로 '근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한 몸 존재의 근본.

나의 근본이 되시는 분이. 내 성씨 앞에 붙인 지명의 땅에서

"인간적인 일을 했다."

하는, 기림을 이 말은 담고 있다. 가령, 그곳이 저 경기도 연천군의 북쪽에 있는

삭녕이라 할 때, 덕망 있고 훌륭하신 성씨의 맨 처음 어른이 여기

"삭녕에서 인간을 이루었다."

하는 것이 곧 '본'이다. 그러니, 단순히 시조의 탄생지를 기념하거나 다른 성씨와

구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한 성씨의 시조가 되실만큼 어질고 크신

어른의 덕행과 학문, 정신을 훼손 없이 이어받자는 각오로 관향, 본을 쓰는 것이

다.

그러니까 이 본을 굳이 제 이름 성씨 앞에 밝히는 뜻은

"삭녕에서 그분이 사시던 모습을 그대로 이 몸에 이루리이다."

하는 결심과 다짐이요, 자신이 그분의 자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표시다.

"이 세상에 근본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혹자는 훗날에 오다가 잃거나 잊어 버릴 뿐.

허나, 근본을 모르고서야 뿌리 없는 줄기가 어떻게 창창히 뻗어 나가며 가지

는 또 어떻게 우거질 것인가. 하물며 열매야.

내가 오늘 우리 성씨의 수수만만 잎사귀 중에 한 이파리로서, 내 조상의 맥을

짚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나아가 곧 겨레의 맥을 짚는 일과 꼭 같은 것이다.

그 둘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바로 한 몸의 조직, 이 손과 저 손의 엽맥인 것이

다. 그 맥들이 모여 우리 민족의 역사 세포와 모세 혈관, 힘줄, 근육, 그리고 뼈

와 살을 이루느니. 우리는 자기 자신 하나하나에 대하여 진정한 존재 자각을 지

엄하게 가져야만 한다.

제군들이여.

우리는 외톨이가 아니다.

또한 외톨이여서도 안된다.

기댈 데 없고 매인 데 없는 외돌토리는 생명의 유기체 속에서 그만 피돌기가

막히고 끊어져 겉돌아 버린다. 나만 그렇게 끊어지고 마는가. 내가 끊어지면서

불행히 남의 것도 끊어 놓는다.

그 외톨들로 가득 찬 강토는 단 한 톨의 씨앗도 품을 수 없고, 실뿌리 하나

뻗을 수 없는 박토, 각동배기로 떠글거리는 삭막한 돌짝 자갈밭에 불과할 터인

즉. 비옥한 미래를 어이 꿈꾸랴.

내 조상을 잊지 않는 것이 나를 잇는 길이다.

우리는 조상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이 훗날, 어느 누군가의 조상이 될 때, 자손에게 어떤 존재로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우선 이 자리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제군들, 각자의 관향이나 고향, 혹

은 시방 살고 있는 주거지의 내력과 설화를 조사해 보도록 하라.

마을의 유래, 유적을 찾아보라.

조상의 땅에까지 갈 수 없는 사람은 멀리 갈 것 없이 자기 동네 우물가 버드

나무는 누가 언제 심었는지, 저절로 났는지, 지금 이 동네 이름은 왜 그렇게 지

었으며 언제부터 불리기 시작했는지, 또 이곳에 예전에는 무엇을 하던 어떤 곳

이었는지, 맨 처음 이 동네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였으며, 그는 어느

곳에 터를 잡았는지, 그가 살던 그 집은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섬세한 지도를

그려 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적어 놓아라.

실없이 보이는 이 면밀한 그림이 바로 당대의 기록이요, 후대한테는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대들의 성씨

관향에 가 보기 바란다.

그곳이 그대들이 성지이다.

그 성지를 순례해 보면, 오늘보다 더 구체적이면서 절실한 이야기가 얼마든지

생생하게, 질기게, 거룩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웅혼하고 지혜로운 지형의 기맥과 울분의 용틀임, 들꽃 같은 어여쁨, 아쉬워

고개 숙인 인생의 애잔함, 그리고 끝없는 좌절과 소망의 회오리 숨결들이 점점

이 고을 고을 새겨진 골목길들을 결코 놓치지 마라. 붙잡으라. 그 이야기와 삶의

흔적들을 지금 우리가 놓치면, 이제는 아무도 못 찾는다. 끝내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국토와 마을과 집안마다 흘러내리는 이 숨결과 이야기

를, 갈피마다 주워 담아 품고 길러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인

지도 모른다.

우리는 위태로운 외나무 다리다.

보라, 이제 세상은 급속도로 무너지고 부서지리라.

우리는 이미 나라마저 잃지 않았느냐.

물려주신 조상의 강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일본에 짓밟힌 채 오늘날 나

라는 없어져 뜻밖에도 식민지의 백성이 되어 버린 우리.

이것은,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군들은 제군의 자손들에게, 식민지의 조상으로서 이 더럽고 서러

운 식민지를 또 다시 물려줄 것인가. 원하지도 않은 그들에게. 그리하여 영원히

못난 굴욕의 조상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심진학 선생은 그때, 목이 꺾인 채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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