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조선은 성씨를 중심으로 엄격히 이루어진 사회였다.
세종실록에 보면 벌써 이때 우리나라의 성씨 수는 약 이백오십 개, 본관의 수
는 일천오백여 개가 넘었다고 한다.
"조선 왕조의 양반 지배 체제가 존속하는 동안, 성과 본관을 감히 가지지 못한
천인들고 있었으나, 한말에 근대적인 호적 제도가 시행된 뒤부터는, 조선 사람이
면 누구라도 성과 함께 본관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성씨와 본관의 우열에 대한 관념은 아직도 남아 있으니.
본디 성씨와 더불어 본관 제도는 계급적은 우월성과 신분의 상징으로 대두되
었던 만큼, 그것에 입각한 신분 관념은 오랜 세월 음으로 양으로 층층이 뿌리를
내려, 좀체 쉽게 떨치거나 바꾸기 어려운 탓이다.
그러므로 본관은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어떤 성원들의 혈통
계열을 표시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것의 높고 낮은 구분을 좇아, 그에 속한
성씨들의 등급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대를 더듬어 올라갈수록 더욱 심하였겠지만, 성과 본관의 등
급은 동성동본의 성원들을 내적으로 결속시키고 범주화하여, 그들이 가진 지체
를 굳게 유지해 나가게 했다.
그런즉, 같은 등급의 성씨와 본관을 가진 성원들은 자기들 무리끼리 하나의
계층을 형성하였고, 그 계층의 벽은 우열이 견고해서 감히 타파하거나 넘나들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혼사를 할 때면 이 벽은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토록 오랜 우리의 성씨를 일본제
국주의 침략자들은 무도하게도 깡그리 부수고 근거를 말살하여, 창씨 개명하라
한다. 저희들 일본식으로 바꾸라 한다. 안 바꾸면 죽이겠다 하니, 목숨이 더러워
어쩔 수 없고, 후손을 보존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시국을 원망하며 창씨하는
경우, 자신의 본관을 성씨로 세우는 사람도 많다. 그나마 참혹한 마음 한 자락을
눈물로 비빌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군들이여.
사람의 한평생에 길떠날 일이 많다 하나, 일본으로, 중국으로, 아라사로, 미리
견으로, 구라파로, 드넓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활약하고 다닐지라도, 한 점
내 존재의 씨앗이 비롯되었던 본관 근원지에 못 가보고 만다 하면, 이 아니 허
퉁한 일이겠는가. 씨앗 없는 과일 같은 것이리라.
자두, 사과, 복숭아, 수박, 그 맛난 과육을 사람이 다 먹어 치운다 해도, 씨앗을
먹히지 않는 한 그것들은 다시금 온전히 나무와 넝쿨로 살아나 번창할 것이다.
잃은 것은 살, 잠시일 뿐.
"그대들은 그대들의 씨앗 속으로 돌아가 보라."
고 심진학 선생은 말했었다.
"부디 그 땅으로."
라고도.
강모는 전주 이씨 관향을 찾는 대신 지금 그 땅과 고향을 버리고 타향 만리,
객창 천리, 아득한 만주 삭방, 아는 이 하나 없는 남의 나라 남의 땅으로 실려
감에 만감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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