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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3권 (39)

카지모도 2024. 4. 6.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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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도 따라서 묵연히 고개를 떨어뜨리었지.

"제군들이여, 그대들은 조상의 간절한 염원이 어리고 어려서 그 정혈로 생긴

사람들이다. 좋은 자식을 낳고 싶은 제군의 부모 양위께서 합심하여 정성으로

합일하시고, 그 부모 두 분을 낳으신, 그대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대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렇게 하셨다. 조부모와 외조부모님, 네 분의 염원

이 제군의 부와 모를 낳으시고, 그 부와 모께서는 또 제군을 낳으셨는데. 제군

하나의 몸에 벌써 숨소리 닿는 조상 여섯 분이 직접 작용하시거늘, 증조와 고조,

또 그보다 더 윗대조로 아득히 더듬어 올라가자면 그 수를 다 어이 헤아리리.

이 모든 조상의 지극한 염원으로 자식들을 태어났고, 이제 드디어 제군이 세상

에 났다. 자, 제군들이여, 지금 이 순간, 자기의 머리터럭과 얼굴, 가슴, 그리고

손이며 손톱들을 한번 스스로 만져 보라."

아이들은 웃지 않았다.

다소 장난스러운 기분으로 킥 소리를 터뜨린 놈도 있었지만, 힐끔 옆의 친구

를 곁눈질하며 어쩐지 떨리는 손으로 쑥스럽게 까끌까끌한 머리통을 어루만지거

나 가슴을 쓸어 보는 표정들은 자못 진지했었다.

"제군들은 이윽고 그대 자손들의 조상이 될 것이다."

이 몸이, 지금은 다만 남의 자손 된 몸에 머무르고 있지만, 미구에는 남의 조

상이 될 몸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라.

나는 청송으로 가리라.

"가서, 우리 시조 할아버지 기식하시던 자취를 찾아가 흠숭하고, 우리 몇 대조

할아버지께서 어이한 연고로 언제 청송을 떠나, 어느 길을 따라서 지금의 이곳

전주에 입향하시었는지, 꼭 그 어른 오신 그대로 발자국 밟으며 따라 걸어와 보

려 한다."

아름다우리.

오는 길에는 새도 울겠지.

그 옛날 고개 마루 언덕을 넘을 때 잠시 앉아 쉬시던 너럭바우며 붉은 비늘소

나무 둥치, 그리고 고불고불 황톳길, 길섶에 강아지풀 석양을 받고도 있었을 것

인데, 느릿느릿 흐르는 강물은 세월보다 멀리 누워 아득하였으리라.

그 길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을지.

아니면 속절없이 무너졌을지.

하다못해 토막진 한 뼘 길 촌단이라도, 가시덤불 쑥굴헝 그 어디 남아 있기만

하다면 나는 가서 내 가슴에 끌어안아 주고 싶다.

그리고, 그 옛골 그리운 관향에는 아직 누가 어떻게 남아 있으며, 다른 혈족붙

이들은 또 어디로 나뉘어 떠나갔는지, 어디서 살고 있는지. 이삭을 줍듯이 한 톨

한 톨 주워 알아보려 한다.

"제군들이여, 그대들의 본은 어디인가."

심부재하면, 시이불견이요, 청이불문이라.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저것이 무엇인가."

하고 찾아보려 해야 비로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느니.

"이 세상에 사람이 몇 억 년이나 살았는지 몰라도, 귀와 눈구녁이 있다고는 하

지만 바로 듣고 바로 본 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개가 삼밭 지나듯이 핵심 속으로

는 못 들어가고 바깥에서만 빙빙 돌다 마는 경우 허다하리라."

우선 조선, 비록 국호는 없어졌다 하나, 나라는 여전히 백성을 품고 있으니,

우리가 제 핏줄과 성씨를 확실히 간수 건사하고 있노라면, 성씨들이 켜켜이 성

을 지어 지키는 나라를 누가 감히 파고들어 오겠는가. 정치적으로는 멸망했을는

지 모르나, 결코 귀화 승복하지 않은 성통과 정신들이 시퍼렇게 살아서, 등걸 죽

은 자리에 또 새순 날것인데.

이 나라 조선의 성씨를 가진 사람 중에서 반상과 빈부를 막론하고, 본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제군들이여.

부디 그 땅으로 찾아가 보라.

그것이 바로 나를 찾는 첫걸음이다.

대저 우리가 나라를 어디 가서 찾을 것이냐. 정객은 정치를 통해서 찾으려 할

것이요, 군인은 싸움을 통해서 찾으려 할 것이다. 정객도 군인도 아닌 일개 학생

이나 시민 백성은, 공염불 같은 구호로만 나라를 찾자고 부르짖을 뿐, 아무런 대

책도 방법도 없지 않은가.

나는 생각한다.

나를 찾는 길이 곧 나라를 찾는 길이라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조국을 알 것 아니냐.

모국이라는 말에는 어미가 들어가고, 조국이라는 말에는 할아비가 들어가는 속

뜻을 곰곰히 짚어 보기 바란다.

자신의 성씨 시조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 본관은, 달리 관향 혹은 향관, 성관

이라고도 한다.

물론 우리가 단군조선 개국 이래 본관을 써온 것은 아니다.

애초에는 풀과 나무 같은 우리말 본디의 생래적 이름이 저마다 있었을 것이

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한반도와 중국의 문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적

극적으로 한화를 꾀하였던 신라 정책을 따라 중국 성과 본관의 제도는 유입, 수

용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정착된 시기는 대개 신라 말엽부터 고려 초기로

본다.

박, 석, 김 신라의 3성에, 이, 최, 정, 손, 배, 설을 비롯한 진골 육두품 계층이

일반 백성들과는 다르게 비로소 확실한 성을 가진 것이 이때였다.

"그러다가 고려에 들어서는 지배 계층에 널리 성이 보급되면서 본관 제도 역

시 함께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뒤, 전국의 군과 현이 명칭을 바꾸고 각읍 토성을

나누어 정리한 다음, 유이민들을 정착시켜 살도록 했다.

그러면서 신라의 유물인 폐쇄적 골품제도를 청산하고, 신 왕조를 이끌어 나갈

기틀로서 새로운 지배, 지도 계급으로 지방의 호족을 기용하며, 그 성씨가 살고

있는 지역을 밝혀 매기는 본관 제도를 실시하였다.

이렇게 백성을 지역별로는 군현제로, 계층별로는 호적제도로 편성함으로써 상

호간에 신분이 질서를 유지하고, 이 질서를 통하여 중앙 집권의 손이 미처 닿을

수 없는 지방을 통치하면서, 징세와 조역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었던 것이

다.

인간의 삶을 이루고 있는 바탕은 기본적으로 동서고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혈연과 지연이였다.

이 중에 성은 부계의 혈통을 나타내는 징표로서, 한 조상의 줄기와 가지 아래

끊임없이 지며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성을 보여 준다면, 본관은 조상이 어느 한

때 그곳에 머물러 몸소 거주하며 살았던 땅 지역을 가리키는 바 '공간'의 의미가

더 크다.

"따라서 성이 같고 본관도 같으면 거의 본능처럼 부계 친족 혈속의 친근감을

남달리 밀접하게 느끼는 것이다."

허나, 만일에 성과 본관 중 어느 한 가지가 다르다면 이는 이미 혈연은 아니

어서 서로의 대인 상관에 판이한 차이가 생긴다.

이 성과 본과의 관계를 좀더 살피어 본다면, 성도 본도 같은 동성동본, 성은

같으나 본이 다른 동성이본, 성도 다르고 본도 다른 이성이본이 있다.

본래 성씨와 본관은 아무나 쓸 수 없었으므로, 그 시대 사회 속에서 계급적인

우월성과 신분을 드러내는 표시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이 제도는 왕실

에서 귀족과 일반 지배 계급으로 파급, 확산되었으며, 나아가서는 드디어 양민,

천민에 닿기까지 두루 씀에 이르렀다.

"맨 처음 성을 쓰기 시작할 때, 스스로 정하여 쓰는 자칭성도 있고, 나라에서

내려 준 사성도 있다. 본관도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나라에서 붙여 준 본관은, 그 본관을 받게 된 연유와 성격, 또 그것

을 쓰는 사람의 신분과 직역에 따라 서로 격차가 있었다. 의미 또한 현격하게

달랐다.

여기서도 신분의 차이는 확연하였다.

말하자면 본관의 고을 읍격이 높은 성씨나 이미 명문이 된 가문은 그 본관을

명예롭게 생각하였고, 외딴섬이나 향, 소, 부곡 또는 역과 진을 본관으로 한 계

층은, 어떻게 하든지 기회만 있으면 이 미천한 본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처럼 신분과 지역을 세분하여 파악했던 본관도 고려 후기를 지나 조선에 이

르면서,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일대 변혁을 겪게 되는지라. 신분 구조가 엄청나

게 뒤바뀌어 기왕의 본관은 획기적으로 개편, 변질되었다.

이에 속현의 승격과 소속의 이동, 군과 현의 구획 폐합 등으로 촌과 향이 새

로이 정리되니, 이를 따라 신분 이동을 꾀하고자 했던 것이다.

관향을 제정하던 당초에는 성의 본관과 거주지가 서로 일치하였지만, 후대로

올수록 차츰 달라져서 고려나 조선 시대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간 귀족과 관료

층은, 대체로 이 둘이 서로 같지 않았다.

이는 지방의 토성이 상경하여 벼슬에 임하기도 하고, 서울의 관료가 낙향하기

도 하며, 조정에서 백성을 이주시키기도 하여, 유이민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탓이

었다.

그러므로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이미 뿌리와 얼개가 그물코처럼 촘촘히 얽히

어 파고들어갈 여지가 없는 성을 바꾸려고 하는 일은 극히 적은 반면에, 본관을

변경하는 경우는 매우 많아졌으니. 이는 관향이라도 바꾸어 신분 상승을 꾀해

보고자 하는 편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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