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새들을 찾아 나설 수가 없다. 오직 저 혼자, 새를 부르며, 선 자리에 선
채로 목 놓아 어둠이 깊어지는 수밖에는. 그렇게 나무가 어두워져야 새들은 돌
아온다. 한번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뿌리가 썩어도 다리를 옮길 수 없는 나무
와, 날개 가진 새의 안타까운 인연이라니. 그래서 옛 성현이신 공자도
"새는 나무를 골라서 살지만, 나무는 자기에게로 와서 사는 새를 선택할 수가
없다."
는 뜻으로
"조즉택목 목기능택조"
라고 하신 일이 있었던가. 따라갈 수 없는 공중으로 날아 다니는 새들이 진종일
비워 놓은 둥우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는지도 모르는 새가 까칠하게 비운 둥
우리를 안고, 그저 새가 날아간 곳을 바라보는 것만을 할 수 있을 뿐인 나무가
"돌아오라."
기다림이 목메인 둥우리로 새들을 부를 수 있는 목소리는 오직 어둠뿐이다. 그
리하여 전신에 차 오른 어둠이 한밤중의 고비에 이르러 묵광으로 검게 빛날 때,
그 깊은 어둠으로만, 나무는 새들의 거친 날개를 순하게 잠재워 제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새가 내일은 다시 날아간다 할지라도.
강실이는 저무는 하늘로 고개를 든 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사방으로 서서
히 내려 앉던 어둠은 그네의 머리 위에 광배를 둘러, 그네는 흡사 어둠을 이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것이 벌써 몇 년 전 일인가. 열다섯 살 소년 강모는, 사모를 쓰고 자색 단령
을 입은 신랑으로 열여덟 살 효원과 대실에서 혼례를 치르던 날 밤, 꿈 속에서
강실이를 보았었다. 전안례상 위에 놓여 있던 기러기 코에 늘이워진 청실 홍실
이 무슨 꽃수술처럼 떠오르다 바람에 나부끼며 어수선하게 뒤엉키던 잠의 물마
루에서, 실낱은 굵은 동아줄이 되어 강모를 동여매려 하는데, 강모는 어느결에
물살에 실려 매안의 아랫몰 밭둑머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 꿈 속에서 강실이
는 진분홍과 흰색이 봉울봉울 어우러진 자운영 화관을 햇무리마냥 눈부시게 두
르고 있었다. 그 화관에 햇살은 아지랑이로 일렁이며 내려앉고, 강실이의 검은
머릿단에 푸르게 미끄러지며 자운영 화관을 아득히 에워싸, 어쩌면 강실이가 꼭
햇무리를 두르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자운영 봉오리, 햇무리 화관은, 꿈 속
같은 신부의 화관이었던가. 그러나 그 꿈을 꾼 강모는 지금 여기에 없고, 아지
랑이 오르는 햇살속에 스러질 듯 나부끼는 연분홍과 연두색 옷을 입어 자욱한
저만큼에 햇무리로 화관을 두르고 있던 강실이는, 지금 날 저문 동짓달의 얼음
박힌 어둠 속에 올연히 서서 소복의 검은 머리에 어둠을 광배로 이고 있는 것이
다.
바람이 범종 소리에 실려, 저무는 겨울 골짜기를 쓸어 내리며 긴 꼬리를 달고
휘돌아 강실이의 가슴속으로 후비고 들어온다. 흰 저고리 옷고름을 말아 올리는
바람은, 얼어붙은 문고리를 애소로 두드리며 방문 밖에서 흐느끼는 그 소리로,
가슴을 헤집어 두드린다. 저고리 갈피에서 풍지가 떨리며 우는 소리가 살 속까
지 들린다. 울지마. 울지 말아라. 얼어드는 살 속으로 끼치는 바람을 달래며 가
없이 구슬프고 자애로운 손길로 종소리가 같이 울린다. 그 손길에 언 살의 한쪽
이 녹는가. 눈물이 돈다. 아아. 강실이는 두 손을 마주 쥐어 그 온기로 추위를
가리려는 사람처럼 가슴으로 끌어 올리며 저고리 앞섶을 누른다. 섶자락이 얼음
조각 같았다.
"인제는 너도 사람을 만나야 할 것인데. 어디 가서 숨어 있는가, 어찌 얼른 나
오들 않는구나."
지난번, 아직 초상이 나기 전, 섣달을 앞둔 오류골댁은 밤이 늦도록 다듬이질을
하다가, 옆에 앉은 강실이를 보고 낮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강실아. 인제, 올 설에까지만 에미가 네 저고리 지어 줄 것이니, 내년 설에는
나보고 해도라 말고, 느그 집에서 네 식구한테 얻어 입어라잉?"
그러던 다음 날, 오류골댁은 강실이의 설빔으로, 불 고운 연분홍과 연노랑 치마
저고리 감을 반닫이에서 꺼내 마르기 시작하였다. 오류골댁이 없는 살림 중에도
강실이를 곱게 기르는 것은 꼭 새옷을 해 입혀서만이 아니라, 수다스럽지 않고
음전한 그네의 솜씨 때문이었다. 몇 년씩이나 입은 설빔을 뜯어 다시 지어내도
그네는 늘 새옷처럼 보이게 해 주었는데, 만일 물이 바래면 그 위에 다름 물을
더 놓아 작년보다 고운 색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연노랑 저고리는 이듬
해 진노랑이 되고 또 그 다음에는 연두가 되고 했다. 그런 빛깔들이 그냥 노랑
이면 노랑, 다홍이면 다홍이 아니라, 어떤 것은 스치듯이 연하고, 어떤 것은 스
며들어 짙고 깊은 색의 맛이 볼수록 사람의 마음을 당기게 하는 것이었다. 또
꼭 설빔만이 아니라 보통 옷에도 쑥물 놓은 치마와 치자물 들인 저고리며, 연옥
색 저고리에 살구꽃빛 치마를 받쳐, 무명이고 삼베고 명주 못지않게 돋보이는
빛깔을 빚어 내는 사람이 오류골댁이었다. 그런 오류골댁이 나이 스물이 넘어
스물하나가 되려 하는 딸의 설빔으로 그 동안 반닫이에 아껴 두었던 명주를 꺼
내, 무슨 마음으로, 새품을 재 새옷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며치 후 청
암부인이 하세하니, 종손녀로서 소공복으로 다섯 달 동안 베옷을 입어야 하는
강실이에게는, 말 못할 안쓰러움으로 그 어머니가 지어 준 연노랑 저고리에 연
분홍 치마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말았다. 그 옷을 못 입히게 된 애석함보다
더 애통한 일이 닥친 오류골댁은 황망히 율촌댁 큰집으로 올라가, 집에 잠시 들
르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겨를이 없어, 강실이는 출상을 하도록까지 거의 혼자
서 빈 바람 소리가 허공을 때리는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네는 사실은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 소리 속에 섞여 그냥 지나가 버릴는지도 모르는
발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고샅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반공중에 검은 구름 덩어리처럼 떠 있는 이기채의 집 골기와 지붕과 숫을대문
아래, 감싸이듯이 옴막한 오류골댁의 초가지붕과 마당과 토담, 그리고 사립문은
그대로 어두운 바랍 속에 열린 하나의 귀였다. 발소리라도 들었으면. 그냥 지나
가 버려도 좋으니, 왔다는 기척이라도 들렸으면. 강실이는, 하늘 아래 아무에게
도 말할 수 없는, 그렇다고 천지 신명에게 빌 수도 없는, 숨긴 기다림으로 온
귀를 바깥으로 기울이었다.
부처님도 내 소원은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다. 신불의 밝은 마음에 내가 무엇을
빌어 볼 수가 있을까. 사람의 도리로 바른 것을 빌어야 소원도 떳떳한 것을. 떳
떳치 못한 소원을 온몸에 채우고 서성거리지도 못하면서 붙박인 듯 한자리에 서
있는 강실이에게로, 호성암 저녁 종소리가 길게 파고 들어왔다. 그러니 발소리
만. 그냥 부디 발소리만 좀 듣게 해 주소서. 그러나, 아마 그것도, 그런 마음조
차도, 안되는 일일 것이었다. 더욱이 이런 애통의 슬픔을 당하여, 생전의 청암
부인에게 받은 귀애의 만분의 일이라도 생각한다면 어찌 이런 송구스러운 마음
을 가질 수가 있으랴. 다만 티끌만치라도. 그러면서도, 애통으로 누르려 하여도
눌러지지 않는 기다림이 강실이의 눌린 핏줄 속에서 어둡게 부풀어, 그네는 저
녁이면 사립문간에 소리 없이 그림자처럼 서 있곤 하였다.
강실이는 집으로 날아가는 저녁 까치가 살구나무 시린 가지를 차고 위엣집 은행
나무 둥우리로 날아가듯이, 먼 길에서 부음을 받고 황황히 돌아오는 강모가, 이
고샅으로 지나가는 그 발걸음 소리를 들으려고 이렇게 귀를 기울이지만, 그러나
부음은 강모를 흡인하여 부를 만한 어둠이 아니었던가.
그는 오지 않았다. 큰집으로 올라가는 문상객들의 발소리가 두세두세 들리고,
솟을대문 문간에 걸어 놓은 등롱이 젖은 주황으로 흔들리며 길게 고샅을 비추어
도 강모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러면 어디 있다 허드라도 할머님 상을 당했는데 안 올 것인가. 그 분이 어
떤 할머니시고 강모가 또 어떤 손자라고... 오고 말고. 알기만 험사 오고말고."
문중의 사람들은 침통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었다.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연락도 못허고, 소식을 모르니 올 리가 없지. 알어도 못
오고 있는가."
출상을 하는 날, 기다려도 끝내 오지 않을 강모를 두고 사람들은 무거운 혀를
찼다.
"이런 맹랑헌 일이 있는가, 그래. 상놈의 집구석도 아니고, 제 아무리 무슨 사
정이 있고 억하심정이 있다고 해도 조모 상을 당한 놈이 천리가 멀다고 안 올
수가 있는가 말이야. 아니, 신의주 압록강이 무슨 황천 너머 구천도 아닌데, 출
상을 허도록 안 와? 이런 천하에 호로자식이 있어? 참말이지 소문날까 무서운
일이네. 무서운 일이야. 허기는 내 동네, 이웃 동네, 삼동네가 다 알고, 온 남
원 군내가 다 알아 버릴 일이지 이게 감춰질 일인가? 문상객이 하나 둘이간데?
눈뜬 장님이 아니고서야 강모 없는 것이 안 보여? 형제간이나 많어야 뒷간에 갔
는갑다 허지, 손자라고 달랑 하나 있는 것이 어디 앉었던 흔적도 없으니, 누구
라도 그 말을 않게 생겼어? 이거 도대체 집안이 어떻게 될라고 이러는 건지. 강
모가 명색이 종손 아니라고? 종손. 종갓집에 초상났는데 종손이 치상도 못허고
어디로 가서 동낭치같이 헤매고 다니는 게, 그게 집안 형색이니. 이거 원, 참."
기표는 다른 사람들 있는 데서는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참았던 울화를, 잠시 틈
이 비었을 때, 동생 기응에게 터뜨렸다.
"일이 민망허게 됐지요. 아무리 상주 계시다 허지만 초초허게 혼자 그 경황을
겪으시니. 속이 상허고, 원통헌 일이구만요."
기응이 대꾸하였다.
"강모도 강모지만, 강태도 와야 헐 것인데요. 친손자, 증손자가 다 독자들인데
그 어째 공교롭게 또 둘 다 집에가 없어 놓으니, 궤연도 처량허고, 그보담도 집
안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아들을 두지 못한 기응은, 진심으로 마음이 아파 기표를 바라보았다. 강실이 하
나를 낳고는 더 자식을 얻을 수 없었던 그는
"생산 못한 다른 사람에 대지."
하고는 마음에 다른 생각을 끼우지 않았지만, 큰집 작은집의 두 조카를 아들이
나 다름없이 여기면서 은연중 마음을 의탁하고 있었던 기응으로서는, 어느 날
홀연히 종형제 나란히 집을 떠나 버린 후 돌아오지 않는 강모와 강태가 괘씸하
다기보다 원망스럽고, 또 그저 기다려지기만 하였던 것이다.
"젊을 때는 혈기에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마는, 어서 인제 그만 와야 헐텐데요.
형님들 연세도 있으시고, 또 제가 책임진 식구들에 자식들까지 모다 어쩔라고."
기응의 말에 기표는 허어, 하더니 혀를 찼다. 그것은 아들 강태에 대한 역증이
었다.
"젊은 혈기? 아니 누구는 저만헌 나이 안 겪었는가? 저만 젊어? 이 세상에? 다
른 젊은 놈은 가만히 있는데 왜 저만 나서서, 무슨 중뿔날 일이 있다고 날개도
안 돋은 놈이 죽지를 쳐, 치기를. 뭐? 평등사회? 계급이 뭐 어쩐다고? 귀때기
아직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디서 그런 소리는 줏어 듣고 혹해서. 무산자 혁명,
이런 소리 허면서 그놈이 나갔네. 어리석은 놈. 전주까지 보내서 고보 졸업시켜
놓으니, 그동안 다른 게 아니라 그 공부 몰두했던 모양이지. 어리석은 놈. 세상
이 그렇게 간단헌 것인가? 수백 수천 년을 살어온 세상의 이치가, 그래 제가 배
운 글 몇 줄로 바뀔 수 있다고 참말로 믿는단 말이야? 시늉으로 잠시 관심을 가
져 보는 것이 아니고? 어리석은 놈. 절대로 만만치 않은 것이 세상이야."
기표는 한 일자로 입을 다물고.
"세월이 수상해서."
기응이 무어라고 더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조즉택목 목기능택조."
는 새와 나무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은 저 살 곳의 땅을 선택할 수는 있으나, 땅은 사람을 골라서 살게 할 수
없다."
는 뜻도 있을 것이니, 나무는 간절한 어둠으로 새를 부르지만, 살던 곳을 버리
고 어디론가 가 버린 사람을 기다리는 빈 땅은 무엇으로 그 사람을 부를 수 있
는 것일까.
큰집에서는 지금 막 청암부인 영위에 저녁 상식을 올리는지, 율촌 큰아버지 이
기채의 곡성이 폐를 찢는 설움과 원통함으로 터져 담 아래 이곳까지 낭자하게
들려왔다. 여기서 몇 걸음 안되는 큰집의 솟을대문 그림자를 밟고 오류골댁 사
립문에 이른 것은 곡성을 실은 만수향내다. 그 향내는 뭉글뭉글 고샅의 어둠을
배로 핥으며 나직히 기어 내려 사립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더욱 어두워지는
어스름에 깊이 섞이어 강실이의 온몸을 에워싸며 살 속으로 배어들었다. 아아.
강실이는 몸 속을 뚫는 만수향내에 어질머리를 일으킨다. 그것은, 몇 년 전 열
아홉 살에 숨을 거둔 문중의 오라버니뻘 강수가 한 대소가의 누이 진예를 마음
에 두었다가 끝내 그 정을 가누지 못하고, 상사로 병을 얻어 그만 이승을 떠나
고 만, 그 혼신의 설움을 싣고 있었다. 그것이 어찌 강수의 혼신에만 실린 설움
이리오. 강수는 죽은 후에, 그토록 그리었으나 이웃 마을 둔덕 너머 아느실 최
문으로 시집간 진예 대신, 깨끗하게 살다 죽었다는 어느 먼 곳의 처녀 혼백을
맞이하여 굿을 하고 명혼을 치르었다. 그리고 강실이는 그 명혼의 신랑과 신부
가 허수아비 몸을 불빛 아래 누일 때, 명아주 여뀌가 제 등밑에서 부러지는 소
리를 아프게 들었다. 그리고, 그때, 발끝에서부터 등을 타고 번지던 싸늘한 냉
기에, 땅위에 누운 강실이는, 여기가 무덤 속인가. 이제 나 죽으면 이렇게 홀로
흙 위에 눕겠지. 하고 가슴 밑바닥이 찢어지는 통증에 비명 배신 어금니로 눈물
을 지그시 물었었다. 그 눈물은 흘러내리지 못하고 살과, 가슴의 갈피와, 더 어
두워 보이지 않는 골짜기에 고이고, 배어, 삭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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