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날아간 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빈 둥우리가 재와 같이 삭아 버리는 나
무의 가슴패기나, 한번 떠나간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그를 기다리던 집
터는 무너지고 황폐한 마당에 우북한 쑥대만 바람에 씻기는 땅이 서럽다면. 사
람의 마음도 나무나 땅일 수 있을진대, 그 마음이 서 있는 나무나, 기다리는 땅
에, 새와 사람이 되는 이는 또 누구인가. 결국, 오지 않는 강모를 더는 기다리
지 못하고 아흐레 만에 청암부인의 출상을 하던 날. 맨 위에 부운과 같이 높이
떠 있는 백포에 검은 단을 돌려 두른 앙장을 차일처럼 드리우고, 그 아래 진분
홍 사엽받침 연꽃 봉오리를 정수리에 얹은 지붕 보개를 둥그렇게 덮은 상여는
참으로 화려해서 오히려 저승의 것이었다. 이승의 누구라서 그 한세상이 저토록
고운 색깔의 잔치 속에 온갖 길상의 사믈을 데리고 어여쁘게 희롱하며, 그것들
을 누려 본 일이 있었으리. 단 한 순간만이라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승을 떠나는 망인의 마지막 가마를 그처럼 곱게 꾸미는 것인지도 모
른다. 눈물나게 그립거나 못 누려 본, 혹은 어이없이 잃어버려 회한이 깊은 그
무엇을 이제 색깔로 상징하여 형형색색 치장해 주고, 부디 이 다음 세상에서는
이 모든 색깔들을 다 누릴 수 있도록, 온갖 무늬와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새기
는 것인지도 모른다. 혼인의 날보다도 더 곱게 꾸미어 멀리 타고 가는 가마. 그
것이 상여였다.
그 상여의 지붕 보개의 연봉에 꼬리를 둔 네 마리 굽이치는 용은 각기 그 머리
를 몸의 네 모서리 위에 서려 두었는데. 그 상서로운 수염 밑에 좁으장하면서도
편편한 판자로 사방에 윗난간을 돌린 면에는, 오색 구름과 연꽃과 병아리들이
무늬를 놓아 그린 단청 속에 놀고 있고. 그 난간의 앞뒤와 좌우의 한 가운데서
어여쁜 동자와 천녀가 공손히 시립하여 사면을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윗난간의 네 귀에는 부리에 쇠고리를 문 봉수가 우뚝 솟아 머리를 하늘로 들
고 있는데, 쇠고리에는 오색 색실로 곱게 짠 매듭 유소가 길게 물려, 흔들릴 때
마다 투명하고 은은한 음향이 울렸다.
살아 생전의 무거운 한 생애를 다 벗고 떠나가는 저승의 가마에 실린 망인의 혼
백은 다만, 저렇게 스러지게 맑은 소리로 은은하게 울리는데. 살아 있는 사람들
은 망인의 죽음을 빌려 사실은 그 자신이 살고 싶은 그 무슨 영원과 소망의 치
장을 저렇게, 색깔로, 모양으로, 무늬로, 간절하게 꾸미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승에서 누리어 살고 싶은 세상을, 저승으로 가는 망인의 상여를 꾸미며 간절
히 빌어 보는 손. 그러나 혼백에게는 이 또한 부질없는 이승의 시늉이요, 벗어
놓고 가는 꽃신에 불과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 윗난간 바로 아래 붉은 띠를 연하게 두르고, 거기 파랗고, 노랗고, 빨갛고,
하얗고, 검은 색실로 수실을 내려 찰랑이게 한 다음 휘장으로 몸을 애워싼 상여
에, 금방이라도 사람이 나와 앉아 팔을 짚고 내다볼 것 같은 아랫난간까지 단청
을 입혀 두르고는. 겨울 하늘 시리게 푸른 빙천으로 상여가 덩실 떠오를 때, 강
실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 복받쳐, 떨리는 소리로
곡을 하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 청암 할머님이 저 상여를 타고 떠나신다는 슬픔
이 가슴을 저미어, 살에 묻은 체온이 저만큼 떠나가는 것 같은 애절함에 목이
메이면서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밀려 올라와 강실이를 흥건하게 적신 심정은,
참으로 고운 색깔들이 떠나가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저 휘황하고 아름다운 색
색 가지 색깔들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저렇게 가는구나. 이승을 떠난 저
승의 언덕 어느 먼 곳으로 가고 가면서, 서럽게 소리도 없이 나부낄 그 색깔들
이 그렇게 애잔하고 목메이게 가슴을 후비어, 강실이는 사립문간에 서서 오래
울었다.
"여자는 그 일생에 오색으로 치장을 두 번 하는데, 한 번은 시집 가는 가마를
탈 때고, 한 번은 저승 가는 상여를 탈 때지."
옆에서 누군가 그렇게 낮은 소리로 말했었다.
강실이는 오채 찬란하게 흐느껴 울면서 물살처럼 고샅을 굽이굽이 흘러내려가는
만장을 앞세우고, 덩실하니 높이 떠서 눈물의 물마루를 타고 가는 상여를 뒤에
서 배웅하였다. 그 휘황한 슬픔의 물살은, 웬일인지 강실이의 몸에서 빠져 나간
모든 색깔을 싣고 그렇게 멀리멀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루만져 볼 길
도 없이. 저만큼. 아득하게.
강실이는 저의 한세상에서 저렇게 고운 색깔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무치게 들어, 오래오래 그 상여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한 생애
를 다한 색깔들이 떠나는 것을 배웅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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