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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4권 (40)

카지모도 2024. 6. 2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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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만물이 다 뿌리가 있으며 가지가 있다. 이 뿌리를 잘 돋우어야 가지와 잎

사귀가 무성한 법, 무심한 푸성귀나 나무 한 그루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야 더 이를 것이 있으랴. 무릇 조상은 뿌리요, 자손은 그 가지나 잎과

같은 것이니 조상을 잘 위해야 자손이 성하여 잘 되어갈 것이 아닌가. 효자 효

부는 조상 받들기를 지극한 성심으로 하여 영원한 세월 동안 귀하게 되어서, 그

몸을 세상에 드러내고 이름이 빛난다. 진정으로 효도하는 것은, 생존한 부모에

게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조상도 잘 받드는 것이 또한 성효이다."

하여, 집을 지으려면 받드시 먼저 사당을 지어야 한다. 만일 가세가 몹시 가난

하고 집터가 좁으면 단지 한 칸 사당을 지어도 되지만, 할 수만 있으면 삼간 이

상으로 짓고, 사당 안에는 시렁 다섯 개를 매어, 그 중의 북쪽 벽 시렁에 감실

을 만든다. 그리고 이 감실에 고조, 증조, 조, 부와 그 배의 여 신주를 모시

는데, 만일 초취의 부인과 사별하고 재취·삼취를 했을 경우, 예를 갖추고 만난

그 부인들은 신주를 만들어 곁에 나란히 모시지만, 첩인 서모는 사당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다만 서자인 그 아들이 자기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제물을 넉넉하고 풍부하게 갖추어 성대히 차리는 것만이 성효가 아니니, 오직

변함없는 마음으로 성의와 공경을 다하여 제사를 받들어야 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 처지대로, 메 한 그릇과 갱 한 그릇이라도 온 정성을 다 바쳐서 정

결하게 올리면 신명이 기꺼이 흠향하실 것이다."

라고 하지만, 할 수만 있으면 형편 닿는 대로 제전을 따로 두어 제사에 쓸 제물

을 그 밭에서 마련하고,

"대부는 제기를 빌어 쓰지 않으며, 제기를 미처 마련하지 못했을지라도 보통 그

릇과 같이 값싼 것으로 대용하지 않는다."

고 '왕제'에 쓰인 것이나,

"군자라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제기는 팔지 않는다."

고 한 '곡례'의 글도 있지만, 사당에 무엇보다 먼저 갖추어야 하는 것이 제기이

다. 이 제기는 오직 제사에만 정결하게 쓸 뿐, 다른 일에는 쓰지 않아야 한다.

신주를 모시는 의자 교의, 신주가 앉으실 좌요, 신위마다 앞앞이 갖춘 제상,큰

탁자, 작은 탁자, 촛대, 그리고 큰 상과 수건, 향안, 향로, 향합, 향, 향숟갈,

부젓가락, 또 기제 때마다 한 위씩 받들고 나올 때 쓰는 개좌, 여 치 정도로

끊어서 만들어 놓은 띠풀 묶은 다섯 개 , 띠를 담은 모반, 축문을 담는 쟁반 축

판, 축문, 종이, 벼루, 붓, 먹,거기다가 술병과 주전자, 술잔과 받침, 퇴주 그

릇, 물병, 그리고 간장 종지, 초접시에, 뚜껑 있는 밥그릇, 국그릇, 숟가락, 젓

가락, 이것을 올려 놓는 접시, 소채 음식을 담을 큰 접시, 커다란 떡 접시, 편

틀, 적 담는 큰 접시, 어적들, 뿐 아니라 과일, 포, 식혜를 담을 그릇과 생선,

육류 음식을 담는 사발이나 접시, 국수 사발, 제사를 마친 후에 음복할 음식을

담는 큰 접시, 그 음식을 나눌 때 쓰는 숟가락, 음복 음식 받는 그릇, 그리고

제기를 씻는 통. 이것만이 아니다. 이밖에 가마솥, 시루, 술 푸는 구기, 모난

광주리, 둥근 광주리, 도마, 칼, 화로, 적쇠, 그리고 세숫대야, 수건, 수건걸

이, 목욕통, 횃불에 제복. 이렇게 제기와 제구를 세세히 갖출 적에, 사당에 모

신 조상의 신주를 위하는 것은 생존한 부모 섬기는 것보다 더 극진하고 공손하

였으니, 오죽하면 누가 무엇을 끔찍이도 위하고 받들 때

"이게 무슨 신주단지냐."

"조상단지냐."

고 말할 것인가. 매일 새벽이면 사당의 주인은 일찍 일어나, 넓은 소매에 검은

비단으로 가를 두른 겉옷 심의에 복건을 쓰고 대대를 띠어 의관을 정제한 뒤 사

당에 들어가 섬돌 아래 서서 향탁에 분향하고 절을 하여 밤 사이의 문안을 여쭙

는다. 뿐만 아니라 주인이나 주부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 나갈 때는, 사당의 바

깥문 안에 들어와 서서 잠시 사당을 바라보는 것으로

"다녀오겠습니다."

표시 하고 돌아와서도 역시 그와 같이 하여 예를 갖추는데, 만일 바깥에서 밤

을 지내고 왔을 경우에는 향탁에 분향하고 절을 두 번 하며, 혹 열흘 이상 걸릴

만한 곳에 가게 되면 그 향탁 앞에서 재배한 다음 분향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아무개는 장차 어디에 가겠으므로 감히 고합니다."

글로 써서 읽음으로 사뢰어야 한다. 돌아왔을 때에도. 그리고 정월 초하룻날 아

침과 동지, 매월 초하루·보름달에는 하루전에 사당을 깨끗이 청소하고, 이튿날

날이 밝으면 일찍 일어나 사당문을 열고 발을 걷은 뒤, 감실마다 앞앞이 새로운

고일 접시를 놓고 온 가족이 옷을 갖추어 입고 참례를 한다. 또한 명절 때가 되

면 그때에 나는 음식을 천선례를 하고,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 일일이 사뢰

며, 그 밖에도 망친의 생일을 맞았을 때, 늙어서 가사를 아들에게 위탁할 때,

사당을 수리할 때, 집을 사서 옮겨 갈 때, 그리고 주인이 적자나 장자를 낳았을

때, 집안에서 사림이 죽었을 때, 언제나 사당에 가서 분향하고 반드시 글월로

고하여 말씀드려야 한다. 그저 깎아 놓은 나무판대기에 형식적으로 글씨 몇 가

적어서 '아무개 신주' 라고 한다고 그것이 다가 아니라, 이만한 정성을 가지고

받들어 모시는 정신과 가격이 있어야만 신주를 삼가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폐

일언하고 집안에 사당을 모신 자손은 농사일이며 잡다한 바깥일에 마음을 쓸

틈이 없이 오직 사달 받드는 데 온 정신이 다 들어야 한다. 그런즉 제 몸뚱이

궁글어 제 손발로 일해서 겨우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감히 사당 모실 생

각을 못하는 것이다. 또한 장지인 묘소에서 직접, 격식에 맞추어 혼백이 응신할

글씨를 쓸 만한 견식과 학문을 갖춘 집안에서만 신주를 만들어 제주하고, 신주

만들었다는 재주제를 지내는 것이다. 그러니 일반 평민들은 사당은 커녕 제 한

몸 누일 방 한 칸 넉넉지 않은 형편에 무슨 여유로 사당을 지으며, 또 그 많은

절차에, 참례에, 사당 제사에, 집안에 시시콜콜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일일이

문자를 써서 고해야 하는 것은 누가 알아 챙기리오, 심지어는 나가면 나간다,

들어오면 들어왔다, 일어서면 선다, 앉으면 앉는다. 일일이 아뢰어야 하는 일이

란, 논밭 일에 허리뼈가 빠지고 놉일이라도 해야만 풀칠하는 나날에, 몰라서도

못하고 겨를이 없어서도 그렇게는 못할 것이라. 신주가, 다만 거미줄과 먼지 구

덩이에 파묻힌 나무때기 한 조각에 불과하기 십상이다. 그들에게는 사당도 없

고, 문자 속도 없고, 겨를도 없었다. 그러니 아예 신주를 모시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제사가 돌아오면 신주 대신 지방을 백지에 써서 흔백을 모시고, 끝나

면 소지하여 그 불꽃을 허공으로 날려 보낸다. 죽은 사람의 혼백은 신주에 깃든

다지만, 신주라고는 남의 것 구경조차도 한 일이 없는 처지에, 감히 내 것 지을

생심은 꿈에도 먹지 못하고, 한 번 묻히면 그대로 썩어서 흔적도 없을 망인을

차가운 땅 속에 꾹꾹 밟아 묻어 놓고, 이제 광중이 다 메워져 맨땅같이 평토가

된 무덤을 내려다보니, 아아. 사람이 살았었다는 흔적이 어디 있느냐. 죽은 사

람을 땅 속에 묻는 슬픔에 무슨 상하가 있고 귀천이 있으며, 반상이 있으리오.

비록 격식을 갖추지 못하고 무지렁이로 살아 아는 것이 없고 어리석다 하더라

도, 어미나 아비, 형제, 혹은 아내, 남편이 죽어 땅 속에 묻히는 절통함이야 가

슴을 찢어 애를 끊는 아픔에 비길 수 없으리니.

어아아, 서러워라.

아직은 성분이 안된 평토의 평평한 무덤 앞에 남루하고 서러운 상것 상제들은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고 흐느끼어 몸부림치며 통곡하다가, 그래도 돌아서기 미

어지게 애통하여 남루하게 올망졸말 주, 과, 포, 혜를 펼치고 한바탕 목을 놓아

땅을 두드리고 울며, 망인이 유택에서나마 편안하게를 빌어 간단히 제사를 지낸

다. 이것이 바로 사부 양반 등의 '제주제' 대신인 셈으로 속칭 '평토제' 라 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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