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귀한 줄을 모르면, 강아지 달구새끼 한가지로 보아 죽은 다음 일을 하
찮게 해 버리고 말지마는, 사람이 그와는 다르다는 것을 안다면 그 절차를 결코
소홀히 할 수가 없는 법이지. 거적에 말아다 내버리나, 만인이 울면서 따라가
나, 결국은 흙 속으로 돌아가 썩고 만다고 간단히 생각하면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겉만 보고 속을 안 보는 짓인즉. 겉모양인 물질은, 물질 그대
로 생김새 그대로 끝나는 것 같아서 얼핏 보는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그것이 물질의 한계라. 허나, 사람에게는 정신이 있지 않은가. 이 정신의 세계
는 무형한 가운데 있어 놔서 보이지는 않지만, 물질이 끝난 다음에도 끝도 갓도
없는 끈을 달고 나가는 것 아닌가. 허나 정신, 정신 허지마는 이 정신이 무엇인
지를 잘 모르고들 산단 말이야. 그러니 초상의 예란 망인이 이미 형체는 죽었지
만 그 사람이 생전에 가진 마음,. 하던 일을 전부 추리는 일이라고 봐야지. 시
신을 싸다가 내버리는 일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 번거롭고 세세한 절차가 모두
다 형식이고 헛것이겠지만, 그 하나하나의 절차를 모두 다 고인의 정신을 수습
하는 일이요, 고인을 이 우주 순환 속으로 아무 걸릴 것 없이 돌아가게 해 주는
정신이라고 생각하다면 단 한 가지도 소홀히 할 수가 없는 법이라. 이 우주의
순환 법칙은 사람이나 만물이나 다 같아서, 오면 가고 가면 오고, 자꾸 변하는
것 아닌가. 밤 되면 낮 되고, 낮 되면 밤 되고. 자꾸 돌면서 없던 것이 나오고,
있던 것은 없어지네. 그렇게 하룻밤 이틀 밤 돌면서 생물은 수명이 다하는 것인
데, 하루살이는 별, 달을 모르고, 일년 못 채우고 한 계절 살다가 죽는 놈, 매
미 같은 놈은 쭉지 달고, 소리 허고, 호화스럽지만 눈, 얼음을 모르고, 그것이
어리석어 미물이라 허지 않나. 그렇지만 사람도, 일생 백 년, 오십 년 살면서
제 눈에 보이는 것 제 귀에 들리는 것만 보고 듣다가 가느니, 그래서 제 눈에
안 보이면 없다 하고, 제 귀에 안 들리면 엇다 해 버리거든, 사람이 죽어서 그
형체가 안 보이니 그것으로 끝인 줄로 안단 말이지. 허나, 눈에 보이는 잎사귀가
다 떨어져 버린 저 나무가 죽은 것같이 보여도, 뿌리는 죽지 않아서 이듬해 새
잎이 돋아나지 않는가. 살삼의 정신도 그와 같아서, 보이는 몸이 없어진 다음에
도 정신은 남어 뿌리가 살어 있는 것이니, 그 부모의 정신을 잘 보존허고 흐트
러지지 않게 거두어들이는 것이 아들 손자 며느리가 허는 일이야. 보통, 인간은
그 한세상을 살 때, 좋은 일만 허고 살 수가 없으니, 살면서 정신이 흩어지기
마련인즉, 못 당헐 일 당해서 슬프고, 원통하고, 고통스럽고, 아프고, 놀래고.,
분해하고, 정신이 다 그때마다 안정을 못허고 흩어지는 법이지. 또 너무 기뻐도
제 정신을 못 채리고. 인간은 눈으로 보는 것으로 정신이 나가고, 귀로 듣는 것
으로 정신이 나가니, 좋은 것은 너무나 좋아서 도가 지나쳐 충격적 발산을 허
고, 나쁜 것은 나뻐서 또 그러해, 기침에 밀가루 날아가듯 정신은 흩어진단 말
이야. 그러다 보니 제가 제 몸하고, 혹은 제가 남하고, 서로 상극이 되는 일이
많어서 정신이 온전히 제 모양이나 자리를 마련하고 있지를 못해. 그 상극해서
흩어진 기운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추모도 하고, 또 부모 생전의 일을 돌이켜 자
신의 정신을 돌아보는 반성도 하고, 이런 것은 이렇구나, 저런 것은 저렇게 하
는 것이 옳았을텐데, 내 마음으로 취사해서 자꾸 자손의 마음에 응결시켜 덩어
리를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바로 천추 효성이야. 그래서 되도록, 그 정신 담긴
유골이라도 오래 보전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거든. 백골은 백골대로, 정
혼은 정혼대로. 장작에 불이 다 타면 남는 것으니 불 꺼진 재에 불과하듯이, 사
람도 살던 불 꺼지면 죽고, 또 죽으면 그만이지만, 수천 년 전, 밝은 정신의 정
기를 모아 놓은 사람은, 죽어 뼈가 녹아 없어져 버려도 원전이 안 없어져, 그
원전이 정신이라. 수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정신의 빛이 환하게 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죽으면 그만인 경우가 통례라. 본디 인간이 그 원력을 받고 태
어난 해와 달의 밝고 환한 기운이, 살면서 저상되고, 찢어지고, 없어지니. 원전
이 있어야 감전이 될 것인데, 정신을 잃어버린 몸이 저 갈 길을 어찌 찾고, 길
갈 힘을 어찌 얻겠는다. 그저 형체는 사람이라고 있지만 속은 불빛이 없어 캄캄
하니, 산다고 헤매다가 죽으면 사그라지는 것이지. 그래서 마음을 지켜라, 성품
을 지켜라,정신을 차려라, 하는 것이야. 원기를 안 잊게 하려고. 허나 보통의
사람은 이 기운을 다 소모시켜서 죽은 다음에까지 빛을 발할 만한 여력이 없는
억이라. 그리고 어두워, 자기가 돌아갈 신향의 밝은 세계로 못 가는 것이고. 하
여 후손들은, 상례를 행할 때 부모의 정신을 잘 갈무리하여 자신의 빛으로 삼으
려는 정성과, 행여라도 망인의 혼백이 밝은 세상으로 가는 길에 무슨 탈이 없도
록 오직 신명을 돕는 정성으로 해야하네. 어찌든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있었던
모든 궂은 일과 멍든 일을 다 풀어 버리고, 마지막 가는 길에, 흩어졌던 정신을
정하게 추스려서 좋은 곳으로 잘 갈 수 있게끔. 남은 사람들이 지성으로 수습해
주는 것이 상례인데, 이런 멍사를 모르고 그저 형식적인 절차만 까다롭게 따르
면서 비단 명주 호화 상여로 실어만 내간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야. 그저
허례일 뿐."
본디 그가 왔던 일·월의 본체로 돌아가기 위하여 세상 만물의 근원이요, 사람
의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대,물,불,바람,땅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청암부인은 어
두운 땅 속으로 들어갔다. 인간이 밝은 세상으로 오기 위하여 맨 처음 어머니의
캄캄한 태중으로 들어가듯이, 부인은 우주의 태속으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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