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님. 이제 저는 어르신들
계신 곳으로 돌아갑니다. 이무것도 모르는 불민한 제가 감히 이 집안의 살림을
맡은 종부가 되어, 가문의 영예를 빛내는 대신 많은 누를 끼치고, 할 일을 다하
지 못한 채 송구스러운 혼백이 되었사오니. 부디 이승에서의 허물을 나무라지
마옵시고, 이 부끄러운 후손을 너그러이 받아 주소서. 축관이 혼백 상자를 받들
고 맨 앞에 서서 사당으로 가는데, 그 뒤로 명정이 따르고, 명정 뒤에 널을 공
손히 들어 조심스럽게 모실 때, 상주 이기채와 오복의 유복친들은 모두가 슬피
울며 그 뒤를 따라갔었다. 그리고 이튿날 날이 밝아 무정한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마당으로 들어와 널을 상여에 실을 제, 축관은 처연하게 고사를 올렸다.
영이기가 왕즉유택 재진견례 영결종천 영좌를 실은 상여를 이미 메게 되었으니
가면 곧 무덤이옵니다 서럽게 그지 없사오나 보내는 예를 베풀어 영원토록 이별
함을 고하나이다 만장의 행렬을 앞세우고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니, 묘에 먼저
가 있던 집사자가, 미리 파 놓은 광중 곁에 휘장을 치고, 널을 모시며 전을 받들
영악을 설치하여, 멍석과 짚자리를 깔고 있었다. 광중이란, 말이 점잖아서 흉
하게 들리지 않지만 사실은 시체를 묻는 땅 속의 구덩이가 아닌가. 여기에는 살
이 도사리고 있을 염려가 많은지라, 그것을 무찌르고 쫓아내기 위하여 방상이
네 눈깔을 부릅뜨고 창을 들어 광중의 사방을 찔렀다. 붉은 황토 아가리를 벌리
고 있는 구덩이의 훙상이 아직도 무슨 나쁜 기운을 머금고 있을지 몰라, 이번에
는 운삽과 아삽의 부채를 광중에 대고 부쳐 살기를 멀리 날려 보냈다. 그리고
다시, 삼베 석 자를 끊어 아무것도 쓰지 않고 깃대로 만들어 달아서 세워 들고
온 공포를 뜯어내, 광중 안을 휘이 휘이 둘러 남아 있는 못된 기운의 찌꺼기를
다 몰아낸 다음, 그 헝겊으로 관을 개끗이 훔치며 씻어 닦았다. 드디어 정갈하게
살기를 물리친 광중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무명 긴 가닥과 장목에
의지하여, 혹 관이 기울거나 다른 물건이 함께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숨을 죽이
며 관을 내려보냈다. 하관. 아아. 이제 망인은 지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기채는 자신의 가슴 밑바닥이 관을 따라 발밑의 땅 속으로 빠져 버리는 것 같은
허망함에, 아이고오, 곡성 대신 어허, 탄식을 하고 말았다. 그의 몸이 구덩이로
쏠리는 것을 옆사람이 부축한다. 그리고는 집사자가 건네주는 현훈을 받아 축에
게 주었다. 현훈은 토지의 신 산신에게 드리는 폐백이다. 현은 검정색도 아니
요, 청색도 아닌 검푸른 비단으로 무궁한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며, 해의 기운이
고, 양인데, 길이는 여덟 자이다. 훈은 붉은색 비단으로, 영원한 땅을 상징하는
것이며, 달의 기운이고 음이다. 길이는 역시 여덟 자이다. 가난하면 각각 하나
라도 되지만 이 현훈은, 관에 명정을 덮어 놓고
"아무개의 널이 여기 들어왔소."
하고 산신에게 고하여 올리는 폐백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로 몇 장이고 성의
껏 챙기는 것이 좋았다. 이것은 모두 백지로 단정하게 싸서 붉은 것은 실로, 푸
른 것은 푸른 실로 묶어, 상현·하훈이니, 푸른 비단은 광중의 왼쪽 위에 놓고,
붉은 비단은 오른쪽 아래에 놓는다. 이기채가 이마를 조아려 통곡 재배를 하고
는 차마 일어나지를 못하는데, 집사자들이 광구를 가리워 덮을 나무판을 가지고
와 옆에 섰다. 송진이 온몸에 가득 차 있는 생소나무 널판은 화강석 돌 못지않
게 단단하고 썩지 않아 동천개를 하기에는 상품인 목재다. 무덤 속의 망인이 비
록 좁은 공간이지만 그나마 자유로이 숨을 쉬고, 하늘의 기운과 맞닿아 있으라
고, 관 위에 바로 흙을 붓지 않고 내광위에 횡판으로 동천개를 덮는 것이다.
"상례는 제 성의 없으면 못허는 것이라."
문장 이헌의는 종부 청암부인의 운명 소식을 듣고 종가에 올라왔을 때, 그 초종
절차를 지휘하며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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