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같이 달려온 선역꾼들이 꽝꽝 얼어붙은 겨울 땅을, 곱은 손을 불어 가며 가
까스로 파 놓은 구덩이. 구덩이의 윗부분은 넓게 파서 외광이라 하고 그 아래로
다시 관만 들어갈 자리를 맞추어 판 곳은 내광이라 한다. 굴토를 끝내고, 긴 무
명 띠에 의지하여 그 조붓한 내광에 조심스럽게 방향을 맞추고 겨냥을 하여 관
을 넣으니, 광중은 마치 끼이듯이 알맞아서, 그 안에 아늑하게 들어가 누운 관
은 얼핏 순하고 평화로운 어머니에게 안긴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부인은 한세
상의 고단한 짐을 다 지상에 벗어 두고 홀가분히 조그맣게 저곳으로 돌아가 그
몸을 조용히 누인 것 같았다. 내광벽과 관 사이의 빈 곳을 석회로 메워 관 높이
까지 채우며 보토를 하고는, 이 내광이 하늘 입구를 동천개로 덮으니. 방문을
한 번 닫은 관은 영 영 저 문을 다시 열지 못하리라. 그 동천개 위로 무심한 흙
이 부어지고, 부어진 흙이 쌓이자 사람들은 질끈질끈 그것을 밟아 다지면서 차
츰 외광도 거의 다 흙으로 채웠다. 그리고 어느덧 무덤은 평토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관이나마 가까이 있었던 위안조차 가질 수 없게, 망인은 저 다져진 황토
아래 깊이 묻히어 다시는 이승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망인이 아직
살아 생전에, 정정하던 그네가 하루아침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때는 천지가 캄
캄하게 여겨졌였으나, 그래도 그것은 얼마나 호강스러운 것이었던가. 다시는 돌
이킬 수 없이 숨이 져 버린 그 순간에는, 그래도 의식은 없으나마 살아 계신
그 순간이 더 나았고, 습렴을 할 때는, 그래도 시신이나마 손이라도 만져 볼 수
있을 때가 더 나았다. 그리고 입관을 할 때는, 비록 손조차 만질 수 없었으나
어머니 모습이라도 보이던 습렴이 더 나았던 것을 절감하였다. 그런데 아아. 이
렇게 하관하니, 관이나마 어루만질 수 있었던 조금 전이 참으로 전생이었던가
싶게 벌써 까마득히 여겨지니. 어머니 계셨다는 것이 거짓말만 같았다. 이 평토
야말로 어머니가 참으로 죽었다는 것을 절감하게 하였다. 그것은 엄연한 경계선
이었다.
"제주를 하라."
축관이 말했다. 평토가 되었으니, 신주를 쓰는 것이다. 초상이 나고는 바로 신
주를 모실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준비를 하는 동안 우선 혼백이 의빙하시라고,
흰 비단을 접어 임시로 신주를 만든 혼백을 옆에 모시고, 손을 씻은 기표는, 광
중 옆의 영좌 동남쪽에 마련된 조그만 책상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초상이
나 날 밤부터 목수가 몇 날을 두고, 있는 정성을 다 기울려 곱게 깎아서 아주
좋게 만든 조붓한 밤나무판 신주는, 그러나 아직은 글씨 없는 빈 나무이다. 개
소리, 닭 소리, 사람 소리 들리지 않는 깊은 산중의 깨끗한 밤나무를 잘라다가
납작하게 깎아, 위는 둥굴게 아래는 모나게 한 나무판 앞쪽은 하얀 분면으로 개
결한다. 쏴아아. 솔바람 소리가 동짓달의 겨울 소나무 푸른 가지를 쓸어 내린
다. 그 바람 소리가 검은 먹 찍은 붓끝으로 시리게 스며든다. 신주는 밤나무로
깎은 판 두 개를 붙이어 두 면이 하나를 이루게 하였는데, 가운데 함중이 되는
쪽은 합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과도 소통이 되는 공간이 생기게 만들었다.
혼령은 갑갑한 것을 싫어하시니 그 공간에 혼백은 고요히 쉬면서, 자유로이 막
힌 데 없이 들고 나시라고 만든 틈이다. 부인이 만일 남자여서, 벼슬을 하고 이
름과 자가 있었더라면
"고모관모공휘모자모신주"
라고 썼겠지마는 다만 그의 성씨 하나만을 가지고 시집으로 와 평생토록 이씨
문중의 사람으로 살다가 가는 부읜의 신주에는 오직
"현비유인경주김씨신주"
라고 조촐히, 그러나 달필의 힘을 빌어, 살아 생전의 성품이나 기상을 그리워
하게 뚜렷하고 힘있는 획으로 씌어졌다. 그렇게 함중을 쓴 신주는 글씨를 속에
간직하고 맞붙여져, 이제는 흰 앞면에 써야 할 차례다. 티끌 하나 없는 휜 바탕
을 대하는 붓이 후드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한자 한 자 또렷 또렷 묵광 선연한
글씨를 새기듯이 써 나가는 동안, 이때만큼은 모두가 정신을 한곳에 모아 숨을
죽이어, 흐느낌조차도 잠시 멎는다. 소란스러워서도 안되는 까닭이다. 캄캄한
무덤 속 광중으로 묻힌 시신의 혼백이 몸을 떠나 허공에 있는데, 부디 이곳으로
깃드시라고 빌면서, 이마에 땀이 번질 만큼 공들여 쓰고는 끝 글자'사'에서 삐
쳐 올린 붓을 그대로 떼어 내니.
현비유인경주김씨신주 효자기채봉사
드디어 이 신주는 그냥 무심한 빈 나무판이 아니라. 형체를 잃어버린 부인의 넋
이 들어와 안정하는 정허가 된 것이다. 영결 종천. 육신을 가진 몸이 명을 다하
여 마치고 그 혼백이 몸에서 떠나 버린 것이 곧 죽음이라면, 그 넋이 허공에서
방황하지 않고, 안혼정백,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집을 마련하여 드리는 것은
자식된 도리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리라. 드디어 혼이 정착하신 이 새로 지은
신주를 받들어 영좌에 모시고, 그 뒤에는 혼백을 넣은 상자를 같이 놓고, 그 앞
에 술과 사과,배,밤,대추,과일, 그리고 어포,육포에 실혜를 진설하여 음식을 울
리면 흐느끼어 제사한다. 신주를 이루어 지은 것을 고하는 제주제이다. 향을 사
르고 술을 따른 후에 축관은 망인의 혼백에게 독축을 하였다. 그 축문 읽는 소
리는 구슬픈 물소리가 되어 유장하게, 적송의 푸른 구름머리를 쓸어 내리는 바
람 소리와 더불어 혼백의 설움을 위로하는 손길로, 흙을 채워 평토가 된 광중을
쓰다듬었다.
유우세에차아 이임오 지워얼 임자아사악 이시입칠이일 시인유우 고애자아아 기
이채애 가암소오고오우우 혀언비이 유우이인 겨엉주우 기임씨이 혀엉귀이두운서
억 시인바안시일다앙 시인주우 기이서엉 보옥유우 존려엉 사구우조옹시인 시비
잉시의이
계미년 동짓날 갑자삭 이십칠일 병진날에, 어머니를 여의어 슬프고 외로운 아들
기채는 감히 맑은 마음으로 고하나이다. 어머니 경주 김씨께서, 형체는 이미 어
두운 땅 속으로 돌아가셨사오나, 혼신은 저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십니다. 오
모실 신주는 이미 지었으니, 엎드려 비옵건대, 존귀한 영을 그간 한겊 혼백으로
묶어 두었으나 이제는 신주를 따라 여기 기대시어, 옛 혼백함을 떠나 새로 지은
이 신주에 들어오소서. 부디 다른 데로 가지 마시고 여기 의지하시어 자손에게
의탁하소서. 이제 신주를 썼으니 이윽고
"생지소래면 사지소거라."
일생 동안 그가 살아온 모습을 보면, 죽어 그가 갈 곳도 알 수 있다하고 나 온
곳을 알면 나 갈 곳도 안다 하였니만, 대관절 이 우주의 동,서,남,북, 이십사
방위 어디에서 인간은 왔으며, 또 다 살고 갈때는 어느 길을 따라 어디로 가는
것인다. 참으로 몸은 현묘한 것이지만, 온전하게 지키어 살다가, 자기 갈 곳으
로 분명하게 돌아가는 사람이란 과연 몇이나 될까. 이렇게 육신은 사라지고 혼
백은 남는데, 혼은 넋의 맑은 기운이요, 혈이며, 백은 넋의 탁한 기운이요, 뼈
라고 한다. 애초에 어머니의 태중에 정혈이 어리어 형체가 생길 때는 그저 형체
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다 커서 분만되어 나올 때 풀입하며 듣고 보는 것은 혼
백이요, 마음과 뜻으로 복중에 안정하여 싸고 있는 것은 정신이라고 하였다. 이
혼백은 천지의 음양에서 받는 것이며, 정신은 부모의 음양에서 받는다고도 하였
다. 그러니 혼백이 우주의 자식이면, 정신은 인간의 자식인가. 이 정신이 깃든
혼백이 신주에 머무는 것이라면, 이것이 어찌 한낱나무판대기에 불과한 것이라
고 감히 생각할 수가 있으리오. 그러나 신주는 아무나 만들 수는 없었다. 우선
첬째 신주를 모실 사당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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