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조그만 둥지
"만주 벌판 다 돌아다녀야 이렇게 조선 사람 모뎌 사는 데 없다."고 주인 김씨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봉천의 '서탑거리'는, 도시의 서쪽 모서리 하늘에 걸린 철교 텐쳐
하늘다리로부터 동쪽을 향하여 시칸방까지 광목필을 풀어 던진 것처럼 하얗게 벋은
시부대로 일직선 길 양쪽 언저리 일대를 둥그렇게 가리키는 말이다.
묘한 일이었지만 이 서탑거리의 시작과 끝. 그러나까 광목필의 이쪽과 저쪽 끝자리에는
똑같이 시장과 유곽이 있었다.
거리가 시작되는 하늘다리 바로 야래, 노도구 파출소와 일본 경비대석조 건물이 양버티고
선 옆구리 골목은 일본인 전용 유곽 야나네마찌, 버들거리였고, 버들거리 입구에는
신시장이 있었는데, 동쪽으로 뻗친 도로를 따라 한 오 리 남짓, 이 킬로미터쯤 내닫다가
주춤 머물면 조선인 동네 끝 시칸방에 이르렀다. 그 시칸방을 낀 옆구리에는 또 중국인
전용 유곽인 북기 골목이 휘엇하니 구부러져, 음울하게 웅성거렸다.
이곳에는 북시장이 섰다. 서탑에서 갈 때는 동쪽 방향이지만 봉천 시가지를 층으로 놓고
볼 적에는 북쪽에 위치하여 북시장이라 불리는 이 거리부터는 중국인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만일 서탑거리를
잣대같이 잘라 본다면 "신시장과 북시장 사이에 있다."고도 할 수 있고, 버들거리와 북시
골목, 그러니까 "일본인 유곽과 중국인 유곽 사이에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밤이고 낮이고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북시장 어귀에는 북시 파출소가
날카롭게 돋은 송곳니처럼 박혀 있어서 서탑거리는 "노도구 파출소와 북시 파출소 사이에
끼여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조선 사람을 요시찰, 위험하고 수상하니 결코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너희들은 우리 아가리 안에 들어 있다. 고 파출소는 이끝과 저끝에서 차가운 이빨을
번뜩이며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서 또 한곳, 봉천 경찰서는
노도구 파출소 안쪽 골목에 서탑 파출소를 세웠다.
버들거리와 신시장이 한바탕 엉크러진 모퉁이. 길가 쪽으로 호국 법륜사 웅장한 절이
대청 황족들의 영세불망 치적 기념 비석들을 즐비하게 데불고서, 서글픈 위용을 스산히
떨치는 그 한가운데, 아아하게 치솟은 서탑이 보였다.
이미 하잘것없이 무너져 버린 왕저처럼 묵은 담장이 허물어진 채, 아무라도 넘나들게
방치된 사찰의 중심에 청와 벽돌탑이 허옇게 헐벗은 듯 드러나 보이고, 그 옆구리 터진
담장 쪽으로 서탑 골목이 뚫려 그대로 나가면, 마적 출신이었으나, 러.일 전쟁때 일본군
별동대로 암약하다가 후에 청나라에 귀순하여 요녕성.흑룡강성.길림성 전체인 동삼성에
군림하는 봉천군벌을 이루었으며, 나아가 그 지배 영역이 화북.화동을 비롯하여, 멀리
강소성에까지 이르렀던 장작림이 기차를 타고 오다가 열차 폭파로 폭사당한 철로에
다다랐다. 한 때, 그 세력을 중원에 떨치어 육.해군 대원수를 자칭하고 북경 정부를
장악하기도 했지만, 일본 관동군에게 폭사당한, 그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자리는 바로 쌍굴
조금 못 미친 지점, 황도둔이었다.
"의롭다고는 못해도, 전설적인 풍운아인 것만은 분명해, 장작림을 일본의 후원으로,
군벌로 성장했고, 일본은 또 그를 이용해서 동북 진출을 하려고 획책했지만, 장작림이 자기
고향인 봉천성(요녕성)을 비롯한 동북 범주를 넘어서서 전국적인 규모의 대군벌로 막강한
세력을 키우고, 미국 등과도 연계하기 시작해서 일본 뜻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자, 죽인
것으로 봐야지"
강태는 전에 대궐 같은 장작림의 옛집 대문 잎에 서서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이 골목으로 꺽어 들어가는 초입이면서 넓은 시부대로에 면한 귀퉁이 장소가
제일면점, 김씨 김성직의 집, 강모가 들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하니 이 집을 길갓집도
되었고 골목 첫 집도 되었다. 골목 쪽으로 들어앉은 살림집은 안채였고, 서창이 달린 방과
부엌이 따로 있는 건너채가 강모의 거처인 셈이었다.
드나드는 출입문이라면 아무래도 점방 쪽이 늘 열려 있으니 손쉬웠지만, 가게인지라
영업에 방해되고 번거로울 것을 생각하여 식구들은 골목길로 난 쪽대문을 썼다.
이 쪽대문에서 서탑 골목 안으로 몇 발짝만 주춤주춤 들어가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왼편 쪽에서 서탑 파출소가 튀어나왔다.
손바닥 한 장 펴서 덮기에도 모자랄 정도로 가깝고 좁은 거리 면적에 노도구 파출소와
서탑 파출소, 그리고 일본 경비대 건물들이 숨소리가 들릴 만큼 바투 밀집해 붙어 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일본인을 보호하고 조선인을 감시하는 데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라는 증거였다.
"왜놈들이야 서탑거리가 조선 사람들로 득실거리나까 늘 아슬아슬 하겠지만 , 그
중에서도 유독 서탑 근처에 경찰 공안력을 집중시킨 까닭은, 아마 이 부근이 봉천역에서
내린 사람들이 서탑거리고 들어서는 첫들머리인데다가 번화하고, 무엇보다 조선인들의
쪽박에다 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아 세운 서탑소학교가 바짝 가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서탑 골목에 막 발을 이여 넣을 때, 왼쪽 첫 집이 강모가 사는 곳이요. 오른쪽 첫집은
협화여관이었다. 그리고 좀더 안쪽으로 철로 쌍굴을 향하여 걷다 보면 골목거리인데도
네거리가 열려, 왼쪽으로는 버들거리, 오른쪽으로는 서탑소학교로 가게 되었다.
골목 네서리 왼쪽 모퉁이를 위압적으로 누르고 선 것이 서탑 파출소였고, 오른쪽
모퉁이에 자리한 것은 조선여관. 조선여관에서 네거리를 건너뛰면 서탑 목욕탕이요,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고급 조선 요릿집 명원관이 나왔다. 그리고 명원관 바로 코앞에는
로서아 공원이 푸르고 울창하여 이국적인 풍취를 돋우는데, 공원과 담벽이 맞붙은
서탑소학교 운동장은 언제나 개방되어 조선 사람 누구라도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었다.
"아 우리 조선 민족이 빈손에 쪽박 차구 월강해서 만주땅으로 올 적에는, 다 참혹지경에
남다를 각오를 뼈에 박아 새긴 바 있지 않았겠어요? 수토가 달라서 물똥 싸구 피똥 싸구
얼어 죽구 굶어 죽구, 살어 남기 끔찍해서, 차라리 내 죽느니만 못하다는 세월이 가도 가도
끝이 없었지요. 그거 일일이 말 다 못합니다. 그런 지경에서도 우리 조선 민족들 참
강인하고 무서웠습니다. 여기 서탑소학교 새울 적에요. 어떻게든 자식들을 가르체야 한다.
우리들은 기왕에 조국 산천 다 내비리고 타국 만리 떠도는 신세가 돼서 남의 나라 변병에
빌붙어 살지마는, 우리네 아들 딸은 기어코 가르쳐서 우리네 아들 딸은 기어코 가르쳐서
조선말도 잊지 말고, 조선글도 잊지 말고, 문명한 지식들을 많이 많이 갓듯 배와
좋은 세상 살으라구. 아주 신던 짚신까지 벗어들구 쫓아올 지경으루 성금들을 냈지요오. 열이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비나(비녀)빼서 들고 온 낸(여인), 닳아 빠진 은가락지 뽑아 들고 온 낸, 상투 깍아 달비하라고 들고 온 나그네(남자), 참, 눈물에 목이 메지 않고는 못 봤댔어요."
조선말로 조선글을 배우는 조선인 소학교를 자력으로 만주땅 봉천의 서탑거리에 세운
조선 사람들은, 꼭 꿈만 같아서 자식들을 학교에 갖다 넣고는 하도 벅차고 기꺼워, 공연히
운동장이라도 한번 더 밟아보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학교는 사람들
모이는 장소가 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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