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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5권 (16)

카지모도 2024. 7. 2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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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 제국을 위하여 내 이 한 목숨 사꾸라 꽃잎처럼 흩어져서 조극의 심장으로 떨어진

충혼들을 위로하고 기리는 탑이, 어찌 경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몇걸음 떨어져 이만큼에, 살아서 오늘을 누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들을 위하여,

얼마든지 즐길 수 있도록 수만 평에 이르는 위락의 공간 턴세대공원을 베풀어 넣었으니,

여기도 조국인가, 굳이 일본 내지에서만 살려 할 것 조금도 없는 마음이 들도록, 만주

낙토 건설에 몸 바치고 심신이 쇠삭해질까 배려하여 공원 아래, 기념관 광장 바짝 위쪽에다

신식 수영장을 새로 지었을 뿐 아니라, 그 옆에다가는 축구, 배구, 농구를 비롯하여 달

리기, 체조 등의 각종 운동을 양껏 할 수 있는 국제운동장도 만들었다.

그러나 야구장은 따로 있었다. 이 아마또 광장과 기념관 광장을 관통하는 큰 길말고,

아까 저쪽 춘일정과 평안좌를 뚫어 내리는 길의 초입, 구시장 입구에 국제운동장만한

넓이로 야구장이 생기던 날, 온 봉천의 일본 사람들을 어깨를 부둥켜 안고 어린아이들처럼

팔짝팔짝 뛰었다고 했다.

야구장은 전쟁을 순간 순간 잊게 해주었다. 야구장 옆에는 소나무 수풀 우거진 가운데

봉천신사가 눅눅한 향불 연기를 에우며 서 있었다.

그리고 야구장 길 건너편에 남만주 철도총국 건물이 학교 건물에 버금가지 않을 만큼

견고한 위세를 떨치며 딱 자리 잡았다

철도총국에서 춘일정 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오자면 전신회사가 하나있고, 백계 로서아

거리와 춘일정이 만나 교차로가 되는 이 모퉁이에 우정국이 있었다. 우정국은 여기말고도

서탑거리 동쪽 끝 북시장 어귀에 또 하나 더 있었으나, 그 북시장 우정국에서는 중국 국제

우편물만 취급하였다.

전보,편지,소포,송금 따위를 가랄 것 없이 조선이고 일본이고 로서아고 간에 일단 중국

내 주소가 아닌 곳으로 보내려 할 때는 무조건 봉천 중앙우정국, 즉 춘일정 네거리

우정국으로 가지고 와야 했다.

봉천 중앙우정국 규모는 어마어마하였다. 사실은 그래서 조선 사람들은 우편 용무가

있어도 냉큼 그 안에 들어서지를 못하고 쭈밋쭈밋 바깥에서 머뭇거리기 일쑤였다. 물론

중국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게 봉천이, 구시가지말구요.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 서탑거리와 일본인 거리라는 게.

계획 도로라서 아주 간단하지요. 이걸 좀 보세요오. 아.야.어.여에 유짜,유짜에서 똥그래밀

떼어 낸 모양 말이야요."하더니 김씨는 빈 종이에 커다랗게 'ㅠ'글자를 쓰고나서"이

위에다가 아니 불짜를 옆으로 눕혀 가지구 겹쳐 놔 보세요오." 하고는 자신이 그렇게

약도를 그려서 만들어 보여 주었다. "ㅠ의 가로획 부분이 서탑거리랍니다." 그리고

눕히어진 아니 불자의 가로획인 한 일자의 붓 뗀 자리 끝부분은.'ㅠ'의 가로획 첫 붓대는

자리와 맞붙으면서'ㄱ'자 뒤집은' '모양이 되는데, 바로 이 자리, 봉천역에서 왼손 편 쪽인

북쪽으로 기찻길과 나란히 벋어 나가다가 오른쪽으로 휘어 벋은 모퉁이 공중에

'하늘다리'가 걸려 있었다. 이것을 봉천역에서 사방으로 나가는 수십갈래 복납하게 뒤얽힌

철로들이 아직 그 똬리를 제대로 풀지 못한 채 뭉쳐 있는 듯한, 철로의 여울 소용돌이 위에

둥실 떠서 걸린 천교, 텐쳐 철교였다.

이 하늘다리 바로 옆, 휘익 오른쪽 시부대로 서탑거리로 구부러지려는 입구에 오경의

노도구 파출소가 목을 조여 누르듯이 버티고 있는데, 바로 또 그 옆, 버들거리 유곽 골목

첫들머리에는 일본 경비대가 이빨을 박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서탑이 서 있다.

하늘다리 노도구 파출소, 그리고 경비대만 아니라면 버들거리에서부터는 북시장까지

일직선으로 온통 조선인들의 터전이었다.

김씨의 면점을 버들거리와 서탑을 끼고 새로 난 신시장의 어귀에 작지만 네모 반듯한

터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제 남선상회 자리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일면점은 조선인 거리에 있었으나, 이 면점 맞바라기로 뚫린 일본인 거리가 바로

남만주 철도총국과 야구장을 끼고 흐르는, 번화가 춘일정 가는 길이었다. 면점 점방에

앉아서 보면'금성비루'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잡화점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얼

하려 하시는데요?" 강태는 차분히 묻는다. 김씨 얼굴에 순간 붉은 빛이 번진다. 상기가

되는 탓이리라. 강모는 강태한테 번번이 놀란다.

함께 뒹굴어 크면서 흙장난하던 사촌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모르는 것이 많다 싶어질

만큼, 강테한테는 뜻밖의 면모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ㄷ다.

어려서는, 강모가 강실이의 살구나무 밑에서 흩날리는 살구꽃잎 곱게 모아 사금파리

밥그릇에 꽃밥을 담고 놀 때, 강태는 뒤안의 대나무밭 시퍼렇게 속구친 아랫동을 쳐서,

창을 깍고 칼을 깎아 우우 아이들을 몰며 고샅에서 함성을 질렀다.

자라서는 강모가 문중의 종손으로 핏줄을 이어받듯 토지도 당연히 물려받아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강태는 청암부인을 맹렬하게 공격하며 가차없이 비판하였다.

강태의 언사에는 조롱과 증오가 비늘같이 번뜩이었다. 그러나 강모는 강태를 따라

나섰다. 그만큼 종형 강태한테서는 누가 쉽게 따지고 들 수 없는 삼엄한 힘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 골수를 찌르는 준절함이 너무나 차가워서 자칫 그가 강모를 냉소하는 것처럼

여겨졌으나, 강모는 만주땅에 당도하여 전에 못 보던 강태를 발견하고 다시금 놀랐던

것이다. 뜻밖에도 강태는 자상하였다. 얼핏 보아서야 강모가 훨씬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

모색이었으나, 그는 자기한테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란 터럭만큼도 듣고 싶지 않은 속성질이

있었고, 강태는 낟선 데 와서 보니, 처음 만난 사람이나 험상궂은 막벌이꾼과도 곧잘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면모가 있었다.

사람들도, 인상대로라면 강모한테 말붙이기가 더 쉬울 것 같은데 오히려 날카롭게 보이는

강태 쪽으로 먼저 말을 건내기 예사였다.

"너무나 곱게 그려 놓은 귀공자 같으셔러."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기운이 깊이

배어 있는지라, 강모는 막사는 사람들한테는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주인 김씨의

언담이었다. 기질은 다르지만 그 성깔이나 용모가 강태라고 결코 강모만 못하지 않을

터인데, 지금 김씨를 대하고 있는 저러한 태도가 바로 "나는 지도자로서의 소양을 기르고

있는 중이다."라고, 눈 내리던 날 전주 고사정의 망월, 모찌즈끼에서 정종 잔을 앞에 놓고

단호하게 잘라 하던 말을 증명해 보이는 모습이겠지. 싶어 강모는 새삼스러은 눈으로

강태를 본다.

"품목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냥 막연히 잡화라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바로 그걸

의논하겠다는 것인데요오. 이렇게 한번 해 볼려구요, 여긴 조선 사람 둥지잖습니까?

남만주에서는, 그런데 그게 말이 둥지지. 둥지를 틀자면 일이 많지 않겠어요? 목수가 대패

들고 서 있대서 집이 바로 지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조선에서 여기 봉천 서탑거리루 왔대서

곧 보금자릴 얻는 것은 아니거든요오?" "그래서요?" "그냥 간단히 말해서 난 보금자리

둥지의 둥지 노릇을 해 보겠다아, 그거지요." "둥지의 둥지요?" "그러니까 우선 국수말고도

김치나 떡에서부터 온갖 짠지 반찬을 만들어 팔구요. 고국에서 먹던 맛 그대로요. 우리

조선옷 바지 저고리에 차미 저고리. 버선 같은 것. 댕기, 비녀를 판단 말입니다. 얼레빗

참빗 같은 것도."

"그건 좋은 생각이시구만요. 우선 재료가 제대로 없어서 채 마련 못한 의.식을 여기 와서

구입할 수 있다면, 비록 자기 돈 내고 사는 것이지만 편리하고 고맙게 생각할 걸요?"

선선히 김씨 생각에 동조를 하고 나서는 강태와는 달리 강모는, 도대체, 국수는 그렇다

치고 김치나 떡을 만들어서 '팔고'또'사 먹는'행위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아 어이가 없었다.

더욱이나 짠지라니, 도대체 어느 인간이 위안의 장꽝마다 놓인 독아지 속의 고추장과

된장에 박은 짠지를 다 파고 산단 말인가. 하. 강모는 도무지 상상이 안되었다.]

거기다가,무어 버선? "그것뿐만 아니라 내가 꼭 해보고 싶은 거는요오.고국에서 오는

편지를 사람들한테 전해 주고, 여기서 쓴 편지를 고국에다 보내 주는 일, 소포 보따리를

전달해 주는 일입니다." "아니, 그 업무는 우정국에서 취급하지 않습니까?" 강태가 고개를

갸웃하고 묻자, 김씨는 얼른 두 속은 들어 말 막는 시늉을 하였다.

"그거야 글씨도 알구 주소두 아는 사람 얘기죠오. 아 어디 어디 산밑에 버드나무골,

그렇게 밖엔 저 살던 델 말 못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또 고향에서도 봉천 서탑 산다더라,

까지밖엔 모르는 수도 많고, 나야 이 거리에서만 삼십 년 이상 살았으니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누가 어느 날 조선으루 가는지, 누가 누구랑 로씨야로 가는지 훠언하니껜요.

그 인편을 이용하자는 겝니다. 조선 사람은 일본놈 우정국보담 동포 인편이 더

미덥거든요." "그러니까 사설 우정국 노릇을 하겠다는 셈이로군요." "그건 좀 거창하지만."

"해 볼 만은 하겠습니다." "그러자면 자연히 글 쓸 줄 모르는 사람 편지 대필도 해 줘야

하구요. 또 고국에서 온 편지를 대신 읽어도 줘야겠지요오." "돈도 상관하실 겁니까?"

"여기와서 뼈빠지게 번 돈을 고국으로 보내고, 또 거기서 이쪽으로 보내온 돈을 환전도 해

주면 서로 좋지요." "구문을 좀 남기고?" "아무래도 사람이 그 일에 붙어서 품을 들이게

되니껜요." "혼자서 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아이고오, 어림도 없지요오." "그럼 장차 일꾼을 많이 써야겠구만요?" 그러니까 김씨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잡동사니 알상용품 물건을 모아 놓고 파는 잡화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일 좀 같이 도와 줍시사구요." 어느새 고구마 쟁반을 밀어내

버린 김씨가 강태 앞으로 한 무릎 다가 앉았다. "어떻게요?"

강태는 이미 자기한테 부탁할 일이 무엇일 것인지를 짚어 아는 표정으로, 짐짓 모르는

척하며 대꾸한다. "공부하는 분이라 주경야독 여념이 없는 줄을 알지만요,야독하시구요,

주경으로다가 편지 대필, 대독, 소포 꾸레미에 주고 써 주는 일 같을 것을 좀."

좌우간 글씨에 관계되는 쪽 일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시간 파는 값일랑은 서운찮게 쳐 드릴 테니껜요." "내 시간이 얼마나 비싼 줄을

모르시는구만요." "모르면 배워야지요. 모르는 것은 세 살 먹은 어린애한테도 배우랬는데,

하물며 이렇게."

글씨 좋고 문장 좋고, 식견도 있고, 부청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으며, 지금 다시 뜻을

세워 학문을 닦고 있으니, 이런 분이 우리 제일면점 잡화상의 업무를 도와 주신다면, 나는

동업자 얻은 것이나 진배없다. 하였다.

"우리가 아무리 쪽박 하나 차고 왔다지만 그래도 조선 사람인데, 신언서판이야 알지요.

우리 점방이 대팔 업무를 할작시면 글씨가 얼굴이구 문장이 대들본데, 그게 번듯해야 점방

면이 딱 서지요. 믿음성이 있어 보이구요. 글씨가 신통찮으면 사람까지도 그닥 시원치 않어

보이잖습니까?" "아니, 장사하실 분이 글씨 애호론자로 먼저 나서시려고요?"

"머, 김창호 같은 요녕성 제일 부자도 사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요. 글이 글씨

아닙니까아." "그럼 그 값이 얼만지 어디 두고 봅시다." 반승낙이 섞인 대답을 떨어뜨린

강태가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문다. "나두 정말 안해 본 일이 없었어요오. 지금에야 점방을

늘리네 마네 꿈 같은 이야기 하지만." 한시름이 놓인 듯 김씨는 탄식처럼 말했다.

"아 일본놈들 벽돌 굽는 데 가서 온몸이 벌겋게 익어 제 살이 곧 벽돌이 되오록 일을

했었잖아요? 그게 얼만 줄 아세요오? 일천 장에 겨우 일 원이에요. 일 원. 내가 동생을

데리구 함꼐 했는데, 하루 종일 꼽사가 되게 해두 둘이서 천 장을 해내기 바빴습니다.원."

그보다 더한 일도 했었다. "등짝이 벌어지게 거기서 한 일년 일하다가 돈두 적구 견디기도

어려워서 춘하로 갔댔지요. 거긴 좀 나을까 하고. 금광이 있었거든요. 춘화에는, 내가

그때 스물세 살이었댔는데.... 둥무 일곱이서 허리띠 졸라 매고 어디 우리두 금이란 걸

구영이나 한번 해 보자 했습니다. 금광 노동해서 돈 모으면 금을 살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웬걸.

"아이들 또래들을 데리고서 백 메다 지하루 내려가 하루에 한 립방이나 되는 흙을 파내야

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한 립방 못 파냇지요. 숨은 막히고 낯바닥은 늘 때꾹에 흙먼지가

눌어붙어 까마귀가 아저씨 아저씨 부르게 까막둥이, 게으르다고,할당량을 못 채웠다고,

말로 다 할 수 없이 두들겨 맞고, 참. 그렇게 알하구선 하루 오륙십 전벌이를 못햇어요.

산송장이 따루 없었습니다." 그래서 팔월 보름 추석날에, 죽을 힘을 다해서 도망가기고

하고, 머리를 모아 꾀를 내었다. "명절이나 부모한테 다녀오게 해 주십시오." 애가 타게 몇

날 며칠 번을 갈라 서로 들어 간청한 끝에, 이들은 겨우 통행증명서를 한 장씩 받게

되었다. "그놈들도 우리가 추석 명절 쇠는 것은 알았으니껜요." 그런데 같이 갔던 또래들이

광산에서 나오자마자 숙덕숙덕 하더니만, "함께 다니면 왜놈의 눈에 뜨여 잡히게 되니 우리

무두 흩어지자." 고 하면서, 그들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가 버리거, 김씨만 덩그러나 아무도

없는 길에 혼자 남게 되었다.

"난 그때까지두 치렁처렁 머리를 한 벌이나 되게 땋아 늘어뜨리구 댕겻어요. 이렇게,

아. 그런데 우도구에 와서 하룻밤을 나구 겨우 몰래 빠져 나오는데 그만 생뚱같이, 머리

떼문에 왜놈들한테 붙들렸지 뭡니까아.어이, 야.너.쥐꼬리, 이리 오너라."

그 때 그 순사의 음성을 흉내내며, 김씨는 야비하고 냉혹한 표정까지도 지어 보였다.

겁에 잔뜩 질린 김씨는 순간 무조건 튀었다. "나야 도망다니던 참이라 무조건, 잘 잘못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덮어놓고 순사하면 줄행랑을 놓았을 것 아닙니까? 그것이 의심을 더

산 짓이 돼 버리구 말았지요. 아 글세, 내가 뭐 아무리 달아난다구 칼 찬 순사를

당하겠어요? 잽혔지요 머. 머리꽁지를 확 나꾸어 납아채드만요. 그대로 끌려갔댔지요.

그랬더니 경찰서로 가는 것이었어요. 참, 겁은 겁이 나드구만요오." 끄집히어 안으로

들어가니, 겨울철도 아직 아닌데 북방이라 벌써 난로불을 한쪽에 피워 놓고, 순사 한 놈이

앉아 있다가 히끗 눈을 치뜨며 "어디로 가는가?" 장부까지 펼쳐 놓고는 위압적으로 물었다.

"추석날이라 부모님 뵈이러 랍니다."고 기어들어가는 소리고 대답했지만, 그 일본 순사는

기다란 칼을 타고 철걱거리며 다가오더니, 수상쩍다는 듯 어디서 무얼 하다 오는가,부터

이것 저것 서태 잡듯 꼬치고치 캐물었다.

제가 아무리 순사라도 도망가려는 내 마음속까지야 뒤지지 못할 것이고, 또 나는

통행증을 어떻든 가지고 있으니 책잡힐 것을 없다, 하고 뱃심을 좀 가질 요량으로 심호흡을

깊이 들이마시는데, 그 순사가 불시게 군도를 쓱 뽑더니 내 모리를 꽉 움켜쥐구 잡아당기지

않겠어요?아야.소리 지를 겨를도 없이 그놈을 내 머리채를 날이 시퍼런 군도로 뭉텅뭉텅

베는 것이었어요. 목을 베는 줄 알았지요. "그래두 난 한 마디두 못했어요. 가슴속이 벌벌

떨리면서, 넘무나 분하구 서러워 눈물이 툭툭 떨어졌지요. 무섭기두 했구요. 허지만

그놈들하고 무슨 얘기를 하겠어요?"

그렇게 해서 난 하이칼라가 되구 말엇습니다. "글세 머리두 제 마음대루 못하구

다녔으니, 우리 조선 간민들이 처음에 여기 만주로 들어왔을 적에, 청나라에서

조선인들한테 영을 내렸잖아요? 치발역복하라구. 즈이들 모냥으로 앞머리 아마빡부터

정수리까지 몽땅 까까루 밀구선 뒤꽁지만 늘이구 모조리 호복 입으라구. 그렇게 안하면

부쳐먹을 땅 한 뼘도 안 준다구. 말 안듣는 사람을 몽둥이로 쪼아내구, 그래두 안 듣는

사람을 그 사람 사는 집에다가 불 지루구 다 그랬잖었어요?"

그래도 우리 조상들이 오랑캐 변발에 호복을 입는 것은 조선의 백성으로서 나라를 욕되게

하고, 조상의 후손으로서 선조를 욕되게 하는 짓이라고, 자기 자신의 근본을 팔아먹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끝끝내 청조의 명을 따르지 않았던 일을 김씨는 이야기했다.

제 나라에서 무어 대접이나 한번 제대로 받어 봤다든가, 아니면 행실이나 한번 해 본

것도 아니면서, 백성으로서의 순정만은 본능처럼 뜨겁게 가지고 있었던 조선족들이,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 채 남의 나라 남의 땅에까지 흘러 와 어떻게든

발붙이고 뿌리를 내려 보려고 몸부림하는 몸빗은 가여운가, 위대한가. 참으로 가련한

백성들이로다.

강태 낯빛에 푸른 골이 패인다. 이마 위로 뻗친 줄이 머리 속까지 퍼렇게 물들인다. 멍이

드는 것 같다. 힘줄이 돋는 것이다. 김씨는 어느새 묵묵히 입을 다물고, 강모는 강태의

얼굴이 어둡고 푸르게 잠겨드는 것을 침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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