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0. 2

카지모도 2016. 6. 2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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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00 1990. 2. 1 (목)


어제 겨울비 추적거려 공정 역시 질척거리다.

게다가 폭풍주의보.

오늘 SB-357 진수가 가능할른지 모르겠다.

밖에 바람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유예한다는 것은 다만 마음이 게으른 때문이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오늘일은 오늘로 족하다는 말씀은 나와 같은 신경증적 인간에게는 매우 어려운 말씀이지만 오늘 할수있는 일을 아무런 합당한 이유없이 내일로 미루지 말라.

그 합당한 이유라는 것이 실은 게으름 탓이면서도 자기합리화에 의한 핑계로 속이는 마음 또한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설령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경우, 어떤 도그마로서 강박하여 자기혐오나 방기감을 불러일으키게 하여서도 안된다.


5시 일어나 俊방에서 마가복음.

기도.

나의 창조주, 나의 존재주, 나의 목적이신 주님, 내 하나님.


15701 1990. 2. 2 (금)


어제 거센 파도 속으로 SB-357 진수하다.

무사히 배는 내려갔으나 나중 DOCK GATE 닫으려다 DAMAGE.

TV 수리하려고 PP갑 차에 실어 회사근처 수리점 가져갔으나 수리점 문은 굳게 닫혀있다.

회사의 ID용과 자동차 면허시험용 사진 찍는다.


맥주 몇병, 얼근한 기분으로 노래 흥얼거리며 홍시 천원어치 사들고 9시 넘어 집에 돌아온다.

고등어자반 한 마리 지게 뒷다리에 매달고 장터 술국집에서 걸친 막걸리 사발에 불콰해진 얼굴로 만고강산을 흥얼거리며 동구를 들어서는 어떤 촌부의 아름다움, 다소곳이 운명을 수렴하는 겸손한 삶의 아름다움, 긍정의 아름다움.


15702 1990. 2. 3 (토)


어제 박이사에게 한바탕 푸념 늘어놓는다.

그에게 느끼도록 시도하는바, 그것은 어떤 공정성에 관한 문제이다.


TV는 브라운관이 수명을 다하여 수리불가란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흑백 TV는 俊이가 멀쩡하게 손을 보아 선명한 화면이 나오고 있다.

녀석의 손재주.

퇴근전의 결심은 J의 약간 찬조로 칼라 TV를 개비할 생각이었으나 흑백 TV를 고쳐 놓으니 J나 아이들의 TV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다.

정작 아쉬운건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15703 1990. 2. 4 (일)


칼룬소드, 페르디, P과장, S과장등과 함께 어제는 그만 취해 버렸다.

목장원에서의 비싼 저녁과 2차, 3차.

접대비의 지출품의 득하기가 좀 염려스럽다.


어제 취한 정신으로 갈겨 쓴 낙서.

'지랄이여, 지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 속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는 것을 아무도 모른단다.

아, 지랄이여. 내 사랑하는 너 지랄이여.

그리스도의 정신이 네게 있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네게 있으련만

나는 한줄기 네 혼돈 속에서

나의 이성, 나의 계몽주의를 구하려 하노라.

조화는 어디 있으며, 덕목은 어디 있으랴.

지랄이여, 지랄이여.

네 속에 숨겨진,

나의 진실한 입김만 돌려다오.'


15705 1990. 2. 6 (화)


SB-376,377의 기공식, SB-366 경사시험.


가수 장덕 죽었다고.

오누이가수, 그 오빠도 혓바닥 암이라던데.

참 정다워 보였던 준수한 남매이던데...

오누이란 단어에 깃든 아련한 슬픔.


그 장덕의 죽음때문인지 일과중 때로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돈독한 신앙인일지라도 부활의 소망보다 앞서는 죽음, 그 소멸에 대한 한줌 두려움과 절망감의 감정상태는 발견될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죽음이란.

완성된 삶, 실존의 궁극, 가장 자유롭지 못한 他律의 횡포에 대한 다소곳한 절대 복종이면서 또한 가장 절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오의....


내 사랑하는 사람중에 객관적으로 가장 죽음에 가까이 닥아있은 사람, 어머니.

칠십을 성큼 넘긴 내 어머니.

두렵지 않고 절망적이지 않게 죽음을 맞기 위한 훈련이 필요한 내 어머니.

어머니도 가끔 죽음을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왜 아니랴?

어머니에게 그것은 두려움일까? 집사님이지만 부활의 소망으로 기다리는 무엇은 아닐 것.

아, 나는 어머니의 그 고적한 심장 속으로 한뼘도 들어갈수 없다.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진짜 독립된 영혼으로서의 용기를 가르쳐 준적이 없는 것처럼 어머니 스스로도 실존에 대한 그 어떤 꿋꿋한 용기도 갖고 있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고는 있나..

어머니는 스스로의 독립된 영혼으로서의 당신의 목숨을 살아오지 않으셨음을 나는 알고 있으나.

나는 어머니 속으로 한발짝도 들어갈수 없다.


15706 1990. 2. 7 (수)


조선소의 현장, 특히 대선조선의 현장은 실로 곤혹스러운 곳.

거듭된 회의 결과 나온 나의 결론은 1, 2선대 2척의 화물선을 동시에 건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밀어부치기가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


어제 보건소에 가 자동차 면허를 위한 적성검사, 시작이 반이라던가.


새벽3시.

욥기와 마가복음.

태어나 마흔 세 번째 맞는 생일.

俊 책상 앞 불끄고 앉아 새벽의 고요함에 영혼을 잠그고 기도.

아버지 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나의 주님.

나를 이기게 하소서. 중심을 주소서.

나머지 허락하신 나의 생을 의연하게, 자신있는 신념으로 살아낼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좋은 아비, 좋은 남편, 좋은 아들, 좋은 형제,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도록 이 사적인 강박의 사슬들을 끊게 하소서.

나의 주님이시여.

사십을 훨씬 넘은 이 젖숭이에게 의연함을, 불혹의 연륜을 이제는 갖게 하소서.


어머니도 형네의 누구도 내 생일을 기억해 주지 않음에 어린애다운 섭섭함이 다소 있으련만 짐짓 개의치 않는다는 포즈의 어딘가에는 가엾은 감상주의 한 마리 숨어 있을 것이다.


15707 1990. 2. 8 (목)


현장의 분주함, 여기저기 이것저것에 신경 써야 할 일들은 늘 산적해 있다.

2공장으로부터 BLOCK을 운반해 오는 과정, 이 또한 난리법석을 치루고.

해상크레인 동원, 접안 선박 이동, 전도, 탑재....


퇴근하여 남포동 나가서 俊이 책, 만두, 초콜렛, 맥주 사들고 돌아와 안방 책상앞 앉아서 POP SONG 책 넘기며 J와 함께 옛 멜로디를 흥얼거려 보기도 한다.

찬찬히 밀려오는 옛 정서는 다분히 감상적이다.

옛날은 아름다웠던가.

아니, 아니다.

돌이켜 보면 처연함으로 착각한 유치함이 아니었을는지.


俊이 방에서 나는 俊이에게 말한다.

'俊아. 너는 정신이 우위에 있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질이 너를 지배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되.'

俊이는 대답한다.

'아빠.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뿌듯한 충일감. 과연 내 아들.

俊아. 현대를, 사회를, 관계를, 모든 時空을 지배하는 듯한 저 맘몬의 귀신만을 따라가서는 안된다.

정신을, 고귀한 정신을, 우리 속에 숨겨진 그 드높은 빛을.

俊이 두 손 모두어 잡고 기도.

우리 오늘 이 기도를 잊지 말자.


15708 1990. 2. 9 (금)


겨울장마.

어제도 질척질척 비가 내려 현장의 공정도 질척거리고.

반면 비가 와서 들뜨지 않게 가라앉은 현장의 풍경은 안온한 그림이기도 하다.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엘렉트라'

작은 분량의 그리스 고전.

고대에도 현대와 동일한 갈등의 정신.

神의 법, 인간의 법.

엘렉트라의 어머니를 향한 복수심은 과연 프로이트의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개념의 전형이 추출될만한 무엇이 있었던가.

단순한 구조, 명료한 사상, 뚜렷한 구성, 확고한 캐릭터.

입센적인 복잡한 복선도 없이 단순 명쾌한 에게해의 색채.


15710 1990. 2. 11 (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

비오는 날의 오후라는 옛날 유행가의 정서.

부루스의 그 노래는 참 정겹기도 하거니와 무언가 아련한 실연의 아픔이 담겨 있는듯도 하다.


퇴근길, 동아수산의 정상무 만나서 한잔 걸치는 것을 시발로 맥주집을 전전하며 대취하다.


40줄의 정상무가 모시는 30줄의 손사장.

동아수산, 개인기업인데 조그만 덩치의 손사장이라는 젊은 친구는 우리나라 개인소득세 납부 랭킹 6위라고.

이름도 모를 외제 고급차, 전용 승마용 말이 몇필이고 운운...

현장을 설치는 그 조그만 친구의 풍모는 돈냄새가 아니라 뚝뚝 흐르는 자신감이다.

돈이 후광이 되어 만들어주는 자신감.

그러나 나는 그 자신감 뒤에 숨겨진 열등의식의 분위기를 간파할수 있다.

존재의 삶을 살지 못하는 불안감 한줌 있음을 나는 알아챌수 있다.


15711 1990. 2. 12 (월)


지구상에서 그를 이길 사람없다던 타이슨, 더글라스에게 K.O패 당한다.

일요일 점심 식사중 모두 환호.


교회에서 발행하는 청소년 문집 '질그릇'

그곳에 실린 英이 글에서 딸아이의 고지식함을 느낄수 있다.

제 어미와 같이 감정에 장식이나 허영이 없다.

다소 완고하다.

英이의 장점이자 단점.

장점은 장점인데 여성이란 아무래도 다소의 부드러운 장식과 허영같은게 필요한 것은 아닌지.


월요일.

안개 자욱한 아침.

식탁에 둘러앉아 베드로 전서의 봉송, 기도.


15712 1990. 2. 13 (화)


이기심을 완벽하게 극복해 낸 성인들의 삶.

그 행복감을 나는 감히 상상할수 있겠다.

가시, 이기주의는 스스로를 찌르는 가시.

간 밤 꿈은 이기심이라는 추상적인 개념 하나가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주연으로 열연한 난삽한 드라마.

새벽, 깨어난 머릿속은 그다지 맑지 못하다.


英이 교회의 문집.

사춘기 때의 신앙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감수성으로 획득한 신앙.

순수한 감성의 마음 밭에 들어선 神意識.

교회문화에서 수렴되는 하나님.

英이의 주님은 어떤 분위기의 하나님일까?

英이의 기도하는 마음의 색깔은 어떤 색일까?

英이가 바라보는 영원이라는 개념은 어떤 것?

英이가 읽는 성경에는 무슨 얘깃거리가 있을까?


英이 문집에 있는 글.


'신앙은 단순히 밤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만이 아닌 것.

신앙은 단순히 어둠을 헤치고 빛을 향해 나가는 것만이 아닌 것.


신앙은 단순히 있을수 있는 미래의 영광을 기다리는 것만은 아닌 것.

신앙은 단순히 짜릿한 죄의 황홀감을 미워하는 것만은 아닌 것.


신앙은 과감한 노력이요, 장열한 모험이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자를 섬길수 있은 힘인 것이다.'


어제 이기수반장, 촌에서 담근 밀주 한병을 선물한다.

이거야 말로 마음을 치는 선물이다.


15716 1990. 2. 17 (토)


英이의 포즈.

부모에게 반항한다기 보다 그 무표정한 포즈는 일종의 경멸을 나타내는 포즈이다.

줄곧 英이 문제를 생각한다.


英이의 사고방식, 부모에 대한 생각들, 선입관.

그것들을 몽땅 바뀌게 할만한 지혜는 내게 없다.

이토록 황폐한 마음을 갖게 하기까지 그 아이는 나름대로 어떤 아픈 턴널을 거쳤을 것인데.

아비짜리의 바보스러움이라니.

아니다. 지금 그 턴널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사춘기의 감수성에다가, 대학에 대한, 성적에 대한 강박이 두께를 더하고.

호기심과 분홍빛 성적 동경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나는 딸아이의 어느 구석도 이해할수 없는 남자일뿐이다.


무슨 고민이 있다면 제 어미의 품에 몸을 던져 울음이라도 터뜨리려무나.

한떨기 꽃이었던 英아.

英이의 골짜기, 맑은 냇물소리. 그 영롱한 울림은 아직 내 귓가에 사라지지 않고 있다.


15717 1990. 2. 18 (일)


J가 전해주는 말.

어제 한밤중, 英이는 제 엄마와 오랜시간 깊은 얘기들을 나누었던 모양.

아무런 심각한 감정은 없다는 英이는 오히려 저에게 심각한 부모들이 이상하다고.

자식과 부모와의 생각차이, 부모는 다만 노파심일까?

일단, 모녀간에 숨겨진 문제를 노출시켜 대화를 나누었다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제 딸아이는 조심스럽다는 것.

다시 한번 제 인생의 성공을 위하여, 그 목표를 향한 열정을 일으키기를 원한다면, 그에 대한 부모짜리의 방법론이나 지혜가 없을바에야 이제 우리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딸아이를 다룰 수밖에 없다.

나의 딸, 보석처럼 고상하고 찬란하기만을 기원하였던 그 아이는 지금 하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공주님은 지금 성에서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아 그 황무지에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부모짜리는, 지혜롭지도 못하고, 뚜렷한 가치관도 확립치 못하고, 확고한 도덕관조차 갖고 있지 못하고, 요지부동의 목표의식 하나없는 우리 부모짜리는 그저 조심스럽게 그 아이를 지켜볼 뿐일 것.


일요일.

아침나절, 둘러앉아 손뼉치고 무릎치고하는 게임, IQ 게임이라던가.

그리고 제 책상앞 앉기를 노심초사 바라보고 있는 아비 어미는 아랑곳없이 줄곧 TV 앞에 앉아있는 英이.

꼭 부모 속을 태우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만 같다.


15720 1990. 2. 21 (수)


어제밤 누워서 J와 함께 '새롭게 하소서' 듣는다.

계리사, 큰 회사의 부장. 어느날 홀연히 모든 직업을 버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가난, 아내의 병.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깨달은 그는 오직 신앙의 삶을...

아, 나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신앙의 세계.

부끄러운 가치관, 패역한 세대- 이 자본만능의 산업사회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패역함이 내재되어 있는 세대일 것인데, 그 곳에 빌붙어...

내 딸에게는 아무런 가치관 하나 형성시켜 주지 못한채.

쥐새끼처럼 그 분의 눈치나 보는 정도의 신앙.


엎치락 뒤치락. 완전하게 잠을 설치다.

그러나 비몽사몽간의 무의식의 신경 끝에 은밀하게 심어져 오는 목소리.

주님의 음성, 주님의 최면술.

주님께서 주시는 신비한 힘.

거의 밤을 지새운 것 같은 기분이지만 일어난 정신은 맑기만 하다.


俊이 방에서 불꺼 기도.

딸, 도와주소서. 지혜를.

세상살이를 두려워 말게 하소서. 어제 라디오의 그 남자처럼.

살이의 형태에 그리 집착하지 않게 도와 주소서.


15721 1990. 2. 22 (목)


마음과 뜻은 극기와 절제를 지향하고는 있으나 일상이 주는 감정상태와 육신은 찰나적인 쾌락 쪽으로 향하게 하고야 만다.

퇴근길의 술.

아이들 양과자 사들고 돌아온다.

이제 학원에 가지 않는 英이, 아빠의 퇴근을 마중하여 준다.

얼마나 기쁜지.


죽음과 같은 잠, 꿈도 없이 한판 잘 잤다.

비내린다. 겨울장마.

청회색 새벽 공간을 가르며 몰아치는 겨울 바람을 동무삼아 겨울비는 내린다.

오늘 현장의 공정은 죽을 쑤더라도 비오는 날의 안온함은 어딘가 내 영혼까지도 안온하게 하여 준다.


15722 1990. 2. 23 (금)


어제 하루종일 주룩주룩.

공정은 죽을 쑤고 박이사는 짜증을 부려대지만 비가 오니 마음은 차분하다.

퇴근 길, 음주의 유혹을 이겨낸다는 것은 하나의 용기있는 결단이다.


편한 잠.

4시30분. 英이방에서 울리는 괘종시계의 알람소리.

英이 방문 두드려 깨운다. 어제 저녁에도 일찍 잤다는데 이 아가씨께서는 새벽잠을 도무지 이겨내지 못한다.

문을 두드리기 수차례, 겨우 책상 앞 앉았는가 하면 조금 있다가 문을 열게 하여보면 뺨에 붉은 자욱, 엎드려 내처 잔 것이다.

어떻게 하면 英이가 열심을 내게 할수 있을까?

오빠나 언니나 누군가 있어서 좀 길잡이를 하여 주었으면.

이렇게 하기싫은 것 억지로 한다고 무슨 효과가 있을까?

확 정신이 들게 할만한 동기 하나 없을까?


俊이 방 앉아 성경 뒤적인다.

俊이 새 교과서를 뒤적인다.

죽음에 관한 논문을 뒤적인다.

그리고 내 속, 저 깊은 곳에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은 내 신앙의 숲을 뒤적인다.

내 입술과 혀의 뿌리에 아직도 마르지 않은 기도의 샘물도 뒤적인다.

주님, 나의 모든 것,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 나의 존재가치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

책임지소서.

오직 주님이 맡아주셔야 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이 책임지셔야 겠습니다.

모든 것은 바로 주님의 책임입니다.


15723 1990. 2. 24 (토)


어제 아이들 봄방학.

俊이 우등상, 개근상.


英이 성적.

국어1:우, 국어2:수, 사회1:수, 지리1:미, 수학1:우, 물리1:수, 화학1:미, 생물1:미, 체육:수, 교련:수, 음악:우, 미술:우, 한문:미, 영어1:우, 불어:미, 가정:미, 가사:우.

총점: 136/170, 학년석차: 93/545, 학급석차:10/55.


俊이 성적.

도덕:수, 국어:수, 사회:수, 수학:수, 과학:수, 체육:미, 음악:수, 미술:우, 한문:수, 영어:수, 기술:우.

총점:149/160, 학년석차: 65/523, 학급석차: 8/53.


15725 1990. 2. 26 (월)


英이의 공부를 향한 집착, 열정은 너무나 미약하다.

저녁내내 미적미적거리다가 10시도 안되어 잠이 들고 아침 기상은 그야말로 너무나 힘이 든다.

이놈의 계집애를 어떻게 하면 정신이 확 들게 할수 있을까?


꿈, 어지럽고 어지럽운 꿈.

英이와 관련된 다양한 드라마.

어찌해야 英이의 깊은 마음에 감동을 주어 변케 할수 있을까하는 주제의 꿈.

꿈 속에서 아비는 제 종아리를 피가 나게 때리기도 하고, 英이가 울먹이기도 하고, 제 학교의 선생과 교회의 전도사와 면담하기도 하였는데.


<밤>

모처럼 베란다 내 방 조그만 전등불 테두리안에 잠겨 소주에 토닉워터 타서 홀짝거리며 슈베르트 듣는다.

백조의 노래, 테너 피터 쉬라이어가 부르는 슈.베.르.트.

바리톤과는 다른 맛, 테너의 리트.


오늘 아침 출근 전, 英이 방에서 따님과의 단독 회담.

주저리 주저리 읊는 두서없는 아비짜리의 얘기들.

장래, 장미빛 미래, 2년의 참음과 노력, 이 사회에서 창조적인 삶을 영위하려면 좋은 대학을 나오는수 밖에는 없다, 시시한 삶을 살려느냐? 꿈꾸어라 네 미래를, 그 찬란한 네 삶을.

사춘기, 공상과 호기심과, 책을 펴들면 글자대신 어른거리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 선생님, 교회의 남학생들, 노래. 의지가 없으면 힘들다. 딱 2년만 한 곳으로 집착하자.

英아. 너는 요즘 너무나 완강해서 엄마 아빠가 들어 갈 틈을 주지 않는다. 엄마가 아빠가 뵈기 싫어, 싫어 싫어하고 도리질 나더라도, 너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생각하여 주는 사람은 엄마 아빠밖에는 없단다. 너를 도와 주고 싶어. 너를 도와 줄수있도록 네 완강함을 조금만 비켜 앉아 주려무나.


얘기중에 英이는 별다른 표정을 내비치지 않았는데, 비 뿌리는 아침을 나서 출근하는 머리위에서 '아빠!'하고 부르는 英이의 목소리!

올려다 보니 담요를 털면서 빠이빠이 손을 흔들어 주는 내 딸네미가 있다.

내 英이, 내 수린이.

그 너의 손짓 때문에 오늘 아빠는 얼마든지 행복하였다.


아이들은 교회의 부흥회가고, 늙어가는 내외가 있는 호젓한 아파트 5층의 공간.

이런 호젓한 분위기에서 모종의 행위가 있을법하지만, 나는 슈베르트를 듣고, J는 드라마를 보고.


15726 1990. 2. 27 (화)


어제 11시 넘도록 교회있다가 돌아 온 英이는 새벽 4시가 되자 俊이를 깨우더니 교회를 향한다.

고갈산 정상에 십자가 세우는 행사갖는다고.


英이가 교회를 향한 열성의 1/10만 공부에 열을 내었으면.

다만 교회문화, 라기보다 교회에서의 또레들과의 어울림의 재미로움에만 탐닉해 있을까봐 염려스러운데.


J는 예수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아이들이 열심이니 자연스레 관심이 기울어지는 모양이다.

내가 일독을 권하여 건내주는 두권의 책.

우찌무라 간죠 '기독교 문답'과 곽신희 목사 '현대인의 신앙고백'


15727 1990. 2. 28 (수)


아침 날이 밝아 어제 새벽 아이들이 세워 놓은 고갈산 정상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俊이가 건내주는 쌍안경이 없더라도 북쪽으로 비스듬이 팔을 벌리고 섰는 십자가가 보이는 듯 하다.

늘 그곳에 있으소서.


내일 할아버지 忌日.

어머니 내일 내려 오신다고.

어머니에게서 나를 차단하는듯한 형네, 媛네.

그 야릇한 경원의 포즈와 그들의 물질주의나 감각주의를 생각하면 잔잔한 비애가 이는데.

이것은 소외감일터인데.. 나의 서운하다는 그 감정의 옹고집은 또 얼마나 서글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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