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0. 3

카지모도 2016. 6. 2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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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28 1990. 3. 1 (목)


나의 주된 관심은 지극히 사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大義를 생각하는 그 어떤 정신이 내게 있으며, 공의의 덕목을 갖추고자하는 의지가 내게 어디 있으며, 불의에 행위코자하는 뜻이 내게 어디 있으랴.

소인배, 군자의 풍모는 전혀 없다.

고작 감상적인 비분강개의 흉내.

삼일절 아침, 이를 부끄러워 한다.


또 비내린다.

국경일 휴일, 회사에는 오늘 쉬겠다고 고지하였으나 비내리는 현장을 생각하면 미상불 마음은 불안하다.

둘러보아야 할 현장.

선각반 손기태씨 아들의 백혈병, 처절한 그 어버이 마음을 내 어찌알거니와 내가 그의 상사로서 할수있는바 최선을 다하여 도와 주었는가를 생각하면 이 역시 부끄럽다.


비오는 삼일절 아침은 나를 부끄럽게 하누나.

비를 맞으며 작업하는 현장에 무언가 부끄럽고, 오늘 아침 식탁에서의 기도가 너무나 사적이었음이 부끄럽고, 모든 기막힌 불행들에게 대하여 부끄러운 아침.


15729 1990. 3. 2 (금)


어제 英이와 俊이만을 데리고 비 흩뿌리는 금정산가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른다.

비바람이 무성한 산마루는 쓸쓸하고, 겨울 나목들은 을씨년스러운 장승마냥 서 있다.

무슨 유목민의 천막처럼 띄엄띄엄 늘어서 있는 주점인지, 음식점인지를 한집 골라 들어가서 아이들 염소고기를 먹인다.

다시 케이블카 타고 내려와서 한산한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를 탄다.

오늘은 아이들 새학년.

무슨 덕담이라도 하고 싶은 아비의 심정으로 비오는 산행을 하였었던건데, 英이 俊이는 즐거웠는지.

돌아와 사들고 온 산성약주 마시고 쓰러져 잠든다.


J, 음식 해 들고 시아주버니 홀로 술마시고 있는 큰 집 갔다왔다고.

어제가 할아버지 기일이건만 J와 나말고는 누구 하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15731 1990. 3. 4 (일)


일요일, 화창한 아침이다.


어제 형과 술마시다.

다소 의기소침하신 늙은 어머니.

모처럼 英이 俊이도 할머니 뵈다.

어쨌던 자꾸 시도해야하는 대화와 친교의 포즈.

이것만이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짜리들의 결속이다.

자주 만나 어울려야 한다.

늦은 밤, 아이들과 함께 오른 택시.

우연히 해양선구 황사장 합승하였는데 그는 적지않은 돈을 아이들에게 쥐어준다.


15732 1990. 3. 5 (월)


어제, 초량 세일병원.

동은이 문병, 젊은 녀석이 허리가 부실하다. 디스크.


일요일 오후, 나른한 봄기운은 맥주를 마시게 한다.

그토록 질색을 하는 J나, 맥주를 홀짝거리는 나나 참 지독하게들 만화적이다.


슬쩍 훔처본 英이의 프로필.

먼 하늘을 무연하게 바라보고 있다.

딸아이의 어떤 외로움이 내비친다.

그리움일까, 외로움일까... 결코 부모짜리는 그 속으로 들어갈수 없다.

딸의 생각, 그 안을 좀 들여다 볼수 있었으면.


'지붕위의 바이올린'에 나오는 뮤지컬 넘버가 그런 내 마음의 표현일까?


'SUN RISE SUN SET'

Is This The Little Girl I Carried ?


15733 1990. 3. 6 (화)


숙면은 이루지 못하였으나 새벽 몸을 다그쳐 일어나 일찌감치 세수하고 면도하고 옷까지 갈아입고 내 방 책상 앞에 앉아서 최귀라의 찬송을 들으며 모처럼의 경건에 잠기고자 한다.

그러나 새벽의 냉기가 피부는 자극하는데 영혼을 자극하지는 않는구나.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순종의 겸손함이 없구나.

허영과 자기연민으로 내 속사람은 가득 차 있구나.

주신 그것을 불만스레 늘 투덜거리고 있구나.


기도를 드리지만, 우선 간구해야 할 것은 내 리비도의 더러움으로부터 나오는 기도와 분별할수 있는 영안을 줍시사고.


15734 1990. 3. 7 (수)


어제의 현장은 실로 치열한 격전장.

칼룬소드의 심통을 발라스트 탱크 속에 따라 들어가 다독거리고, 모처럼 탱크 속도 포복한다.

퇴근길, 음주의 유혹을 물리치고 집에 돌아와 내 방에서 소주 마신다.

함석헌.

한국의 계몽주의자- 자각, 이기심의 극복, 노예근성의 거부, 창조성의 추구, 역사의 발전, 이성을 향한 신뢰.


그리고 어제 회사의 화장실에서 완독한 '오이디푸스 왕'

현대 정신분석학의 하나의 도그마가 되어버린 장대한 소포클레스의 비극.

그런데 뜻밖에 느껴지는건 오이디푸스의 인간으로서의 강인함.


英이 부반장, 이런 직위가 내 딸에게 조그만 동기를 부여하였으면.


새벽 몸을 일으켜 일찌감치 목욕 마치다.

그리고 여명의 아침바다를 바라본다.


15735 1990. 3. 8 (목)


SB-363, 4월3일 진수공정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서 안심.

외주 화신기업의 이직장, 철야작업으로 공정을 지키고자한 애씀이 반쪽이 된 그 얼굴을 보면 짐작할수 있겠다.

수압시험 준비에 동분서주하는 전접반 사람들, 최반장의 피곤한듯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사뭇 씩씩하게 현장을 누비는 그런 것들이 가능한 공정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선주감독의 턱 밑에서 되지도 못하는 영어로 알랑방구 뀌어대는 나 역시 큰 물줄기를 튼 것이다.

육신의 고됨이 단잠을 이루게 한다는 이 당연무쌍한 법칙.

거기에다 정신적인 만족감 있으니 간밤의 숙면은 당연하다.


내가 공적조서 작성하여 상신한 기본공작반 진장수씨, 내일 근로자의 날에 국무총리 표창.


15737 1990. 3. 10 (토)


실로 현장은 총탄이 팽팽 날아 다니는 전장이다.

선주감독들에게 시달리고, 선급검사관들에게 시달리고, 게다가 독선의 ORDER에 시달리고.

퇴근 때까지 BLOCK 구조검사는 CLEAR되지 않고.


근로자의 날, 화창한 날씨.

휴일이건만 곧 차를 몰고 데리러 올 김춘동대리와 함께 칼룬소드의 아파트에 가서 그를 태우고 현장으로 가야한다.


봄의 문턱을 넘어 섰는가. 계절.

모든 죽은 것들이 부시시 일어나고, 죽어가는 것들도 온화한 눈빛으로 대지에 묻히는.. 봄은 왔는가.


15738 1990. 3. 11 (일)


어제 칼룬소드 아파트에 데리러 갔더니, 웬 한국 아가씨.

그제 밤, 어디서 낚아 동침한 모양인데, 그 아가씨는 의외로 젊고 예쁘고 교양이 있어 보이는 여대생 타잎이다.

한국 여성의 성도덕이 이제 이 정도로 내려 앉았는가.

내게 쇼비니즘의 어떤 선입견도 없을 것인데도, 공연히 분한 느낌이다.


칼룬소드 현장 데려와 BLOCK 검사후에 그와 심하게 싸우다.

선주감독의 횡포라고 도면을 그의 면전에 집어 던지며 소리지르는 내가 다소 기가 막히는지, 칼룬소드는 결국 내게 굴복하고 BLOCK의 탑재를 허용한다.


2시 깨어나 화장실에서 함석헌 읽고.

英이는 일찌감치 학교로.

俊이의 상식수준은 그 또래보다 월등하다.

많은 독서때문일 것이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일은 닥아 오는데 공부는?


15740 1990. 3. 13 (화)


비교적 원만한 현장의 하루.

때로 유치한 독선의 포즈들에게 피곤하기도 하였지만.


돌아와 운전면허 교재 좀 들척이다.

간밤의 잠은 설첬다.

음주도 없었는데, 잠 들기 직전 어떤 상황의 암시가 내 의식 속에 비집고 들어와서는 수면의 그 무의식에다 대고서는 감놔라 대추놔라 한다.


새벽5시, 혼미한 정신 추스려 일어나 목욕하고 함석헌 읽는다.


참여의 기독교, 역사의식의 크리스찬.

'모든 인간은 목적도 의미도 모른채 아침에 내몰면 초장으로 나가고 저녁에 들여 몰면 외양간으로 들어오는, 그러다 결국 푸주깐으로 가고마는 가축의 떼가 되어 버렸다. 역사에 방향이 분명히 있다. 진화의 목적도 틀림없이 있다.'


자유, 점점 더 자유한데로 나아가는 것이 역사다.

그것은 영원한 정신을 드러냄이다.


어제 바람이 몹씨 불더니, 이 아침 해원은 잔잔하게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며 누워 있다.


15741 1990. 3. 14 (수)


퇴근후 며칠만에 내 방 창가에 앉아 마시는 소주.

시나브로 술이 취해가며 긁적거린 낙서.


술은 마시고 싶어 마실 것.

예수께서 지켜보시는 내 자유의지로서만 마실 것.

타성으로 마시지 말 것, 도망가기 위한 방편으로 마시지 말 것, 절망감정으로 마시지 말 것, 기분을 내기 위하여 마시지 말 것, 무위에서 도망가려고 마시지 말 것.

그래, 이성적으로 술이 땡길 때, 육체가 즐거이 소리쳐 부를 때, 목마른 사람이 옹달샘에 엎드리듯이 그렇게 마실 것.

밥이 고픈 것처럼, 정신이 술을 구할 때, 육신이 술을 고파할 때, 그 때 감로주로서만 마실 것.

마시는 술은 반드시 맛이 있어야 하며, 취하는 정신은 흐느적거리는 육체를 다소 자랑스레 내려다 봐야 할 것.

정신이 피하여 버린 술도 술이 아니고, 육체가 피하여 버린 술도 술이 아니라는 것.

정신과 육체가 정답게 어깨동무하여 술을 부를 때, 그 때에서만이 비로소 술이 술로서 유혹하도록.

술은 그래, 꼭 마시고 싶어서 마실 것.

잊기 위해서도 아니고, 고양되기 위해서도 아니고, 회오와 환희의 몸부림도 아닐 때.

꼭 마시고 싶어서 마실 것.


새벽, 단잠이루고, 기도드린다.

청량하게 지저귀는 새소리, 새소리.


15743 1990. 3. 16 (금)


SB-363, 일기예보에서 황천이라고 하여 취소하였으나 화창한 기상이므로 허둥지둥 수배하여 공시운전 떠나다.


일찍 일어나 목욕하고 발톱깎는다.

하이든 현악4중주.

끝없이 행복감을 자아내는 저 부드러운 멜로디와 봄동산의 따스함 가득 느끼게 하여주는 저 화음...


'그리스도인은.

善人도 아니고 君子도 또한 아니다. 그는 信仰에 사는 사람이다.

賢者도 아니고 智者도 또한 아니다. 그는 希望에 사는 사람이다.

理解者도 아니고 自覺者도 또한 아니다. 그는 사랑에 사는 사람이다.'

-오주혜-


15744 1990. 3. 17 (토)


근성이 약한 나는 타인의 고집, 강인함 앞에서는 약해 진다.

타협하는 것이다.

또한 근성이 약한 나는 타인의 불쌍함, 연민 앞에서는 약해 진다.

이것 역시 타협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보고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하다고 평하는, 이른바 外柔內剛이라는데.

그게 아니다.

다만 근성이 약한 까닭인데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토요일의 현장, 도무지 어떤 여유의 짬을 낼수도 없다.

그러나 꿈꾸는 것은,

여우같은 마누라, 토끼같은 새끼들.

내 가정, 내 유일의 뜨락.

내 뜨락에 몸을 눞이고자하는 소탈한 욕망.


15745 1990. 3. 18 (일)


화창한 봄날의 일요일.

실내악들을 골라 듣는다.

현장을 나가지 않아도 좋은 이 봄날 아침의 일락.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바 그것은 본질적으로 음악이다.

화평과 조화, 창조주와의 질서.


'예수님은 추꾼들의 선생이라오. 춤 추시는 솜씨가 기막히다오. 우리 모두 재치있게 배워야 하오.

우리 시대에 와서 그리스도가 익살꾼, 또 춤의 님으로 나타남으로써 우리도 기뻐해야 할 이중의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인생의 춤으로 인도하실뿐 아니라 우리들의 신앙의 근본적인 측면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이 측면은 우리 시대가 너무 엄숙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이를 거의 망각하였던 측면이다.'

-하아비 콕스 '바보제'-


15746 1990. 3. 19 (월)


어제 英이 때문에 한바탕의 소동.

일요일 학교로 공부하러 간다는 아이가, 집에서 빤히 내려다 보이는 교회 마당에 나타난다.

J는 헐레벌떡 내려가 英이를 잡아 와서는 다시는 교회에 가지 말라고 닥달한다.

英이는 아이들과 작별인사만 하고 학교로 가려고 그랬다고 눈물 뚝뚝.

英이의 모호한 그 공부자세에 화가 나고, J의 단순하고 성급한 행동에 부아가 치밀고, 거기대고 신경질을 쏟아 부운 내 꼬라지도 한심하고.


英이에게 편지를 써서 그 아이 책상 위에 놓아둔다.


15750 1990. 3. 23 (금)


꿈- 도시의 변두리, 전세대적인 분위기의 풍경. 그 거리를 나는 징그런 동물을 들고 걸어간다. 곳곳에 안면있는 얼굴들.


개운치 못한 머리속을 흔들며 일어난다.

화장실에서 이사야 읽고, 일찌감치 목욕 마친다.

앙세르메가 지휘하는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의 '에그몬트 서곡'

이어서 최귀라의 찬송 울리게 하여 놓고 내 방에 앉는다.

침묵의 기도를 드리는데.

무엇인가, 내 기도의 모든 것들을 응축한 하나의 核은.


낮게 드리워진 흐린 아침 하늘.

걱정스러운 것은 SB-363의 공정.

또한 글피로 닥아 온 자동차 운전 필기시험.

4지선다의 시험, 어려울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들고.


나의 경제도 염려스럽다.

자동차 운전학원의 교습비서껀.


15751 1990. 3. 24 (토)


회사에서는 자동차 구입 바람이 불고 있다.

심지어 현장의 기능공들까지 새차들을 뽑는다고 야단이다.

시절은 바야흐로 호시절인가.


英이는 26일날, 3박4일의 수학여행, 설악산.

俊이는 30일날, 3박4일의 수학여행, 속리산.

흐린 하늘, 엷게 안개가 펼처져 있다.


<밤>

오늘 회사의 변소깐에 앉아서, 전에 한번 읽었으나 완독의 의미는 오늘 두어야 할 책, 시바이처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완독하였다.

며칠째 시바이처를 읽는 노가다의 화장실은 고귀한 냄새로 가득 찼을 것이다.

요즘 내 잦은 배변 욕구는 그 책의 부름은 아니었을는지.

그 분의 위대함, 그것을 끄적거릴 주제가 아님은 나는 너무나 정신적인 유아이기 때문이다.

년전, 나는 그 스승께 압도당하였지만, 나의 사적이고 쾌락주의의 생활양식이며, 유물론자의 환경이며, 의지박약, 가치관의 결손등등으로 인하여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형해화된 나의 위인들, 스승들을 생각한다.

프란치스코, 아우구스티누스, 시바이처, 우찌무라 간죠...

하다 못해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까지.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울부짖고 있는 바다.

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저 태종대 기슭을 침범하는 바다.

시바이처를 생각하면서 한잔 소주를 들면서, 아우성치는 바다소리, 울부짖는 바람 소리를 보며 들으며 나는 감상에 젖는다.

스스로가 벌레와 같다는 회오를 짖씹으며.

그러나 그러나 벌레는 시바이처 스승을 닮고자 한다.

나의 정신, 의지따위야 어떻든 그 분을 닮고자하는 이 심장이야말로 벌레를 벗어난 예수님 것이 아니겠느냐.


15752 1990. 3. 25 (일)


모처럼 달디 단 잠이었다.


俊이는 제 친구 두경이와 제 방에서 2시까지 공부하고, 英이는 어김없이 교회로 달려가고, 빈 책상 위에는 불성실한 공부 흔적만 가득 남아있다.


오늘도 미친 듯이 바람은 불어옌다.

나무들이 휘청 허리를 꺾고 가지들은 몸을 떨며 잎새들은 촐랑댄다.

구름 속에서 햇살은 부채처럼 바다의 복판을 비추고.


15753 1990. 3. 26 (월)


어제의 바람은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불어댔다.

60톤 크레인은 WIRE로 꽁꽁 LASHING하여 놓고 기사는 돌려 보낸다.

면허시험 문제집 공부하다.


英이는 요즘 교회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뻔뻔스러운 英이의 표정에, 대놓고 야단도 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을 밖에 없다.


15754 1990. 3. 27 (화)


英이 공부할때의 포즈와는 완연히 다른 씽씽한 생기 가득하여 수학여행 떠나다.


바람은 잠잠해졌는데, 월요일의 현장은 한 乳臭 물씬한 사내의 심통스러움으로 피곤.

오후 멀리 덕포까지 가서 자동차 운전 면허 필기시험.

합격이다. 이정도 수준의 문제에 합격률이 25% 정도라는게 믿겨지지 않는다. 그토록 젊은 친구들이.


4월 25일 기능시험.

오늘 자동차 학원에 등록하려 한다.


15756 1990. 3. 29 (목)


어제 비내리고 현장은 질척거리다.

회사의 화장실에서 요즘 읽는 책은 이상의 수필.

번득이는 기지, 도회적인 감각, 세기말적인 풍자는 조금도 현대와 차이가 나지 않고 오히려 현대를 앞서고 있은 에스프리까지 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이상은 이상으로서의 빛을 잃지 않았다.


그저께는 칼룬소드가 양주를 2병 선사하더니, 어제는 이기수반장이 촌에서 담근 노오란 색깔의 청주를 정성스레 병에 담아 선물한다.

퇴근하면서 빈대떡 몇장 사들고 돌아와 몇잔 마신다.

입에 짝짝 달라붙는 밀주의 맛.


15757 1990. 3. 30 (금)


英이 돌아오고 俊이는 떠나다.

설악산에서 돌아 온 英이는 씽씽하고, 속리산으로 떠나는 俊이는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녀석은 많은 사람 어울려 떠들썩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제 자동차 학원 속성반 등록.


15758 1990. 3. 31 (토)


俊이가 제 엄마에게 수학여행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은 일요일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俊이의 원칙은 어린 나이라서 더 엄격할수도 있는데 이 어리석은 부모들은 俊이의 내향적인 성격때문이라고 걱정을 하였다.


수학여행에서 돌아 온 英이는 아직도 그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 취급주의품을 어떻게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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