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69 1990. 1. 1 (월)
새해 밝다.
흐린 날씨. 빗방울도 한두방울씩 듣는 듯.
하나님 나의 아버지.
새해에는 다소 순결하게 하십시오.
내가 간직한 사랑이라는 것이 주님의 사랑과 닮도록 하십시오.
아내에게 신앙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英이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주십시오.
俊이에게 진취적인 기상을 주십시오.
어머니에게 소망의 기쁨을 주십시오.
형네, 동생네와의 온유한 코이노니아의 세계를 열어 주십시오.
직장의 상황을 개선하여 주십시오.
아이들 외가에 은총을 주십시오.
전두환씨 청문회 증언 파문, 시끌시끌한 새해 벽두의 세상.
15670 1990. 1. 2 (화)
어제 형네에 가족들 모여 새해 예배.
처가, 작은 처제 풍만하고 복스런 얼굴에 이제 잔주름이 잪혔구나.
고즈넉한 황토길.
검소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오가는 소박한 거리.
지극히 단순한 색조의 풍경화.
박수근의 그림.
가족이라는 것, 이웃이라는 것.
더불어 산다는 것.
정.
물질은 결코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15671 1990. 1. 3 (수)
모든 사회의 기능이 째깍거리며 돌아가야 하는 첫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한다.
주로 화장실에서 읽히는 구약은 이제 사무엘상에 이르렀다.
다윗과 요나단.
구약의 신관, 단순명료한 사상.
민족적 이기주의의 신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내 천착치 못하는 성경읽기 탓일 것.
추운 아침.
아이들 깨워 아침 식탁의 기도.
15672 1990. 1. 4 (목)
어제 정초부터 사무실은 온유치 못하다.
Y부장이라는 사람의 유치함과 심통은.
비옵나니 새해에는 그와 헤어지게 되기를.
퇴근 버스안에서 신정애 만나다.
퇴직한지 7년여 되었던가. 이제 눈가에 잔주름 진 아줌마다.
진지한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
아카데미 총서의 죽음에 관한 제 논문들을 천착하고, 성서를 궁구하리라.
꿈.
어떤 부드러움이 깃든 꿈.
俊이 방에서 소리내어 기도.
유모어 감각과 상상력을 잃지 않는 여유를.
그 날의 일은 그 날로서 족하다.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매일매일의 생명력과 순간순간 솟구치는 새로운 기쁨은 그 분께로부터 오는 것.
유모어 감각, 상상력을 잃지 말라.
15673 1990. 1. 5 (금)
성경을 공부하다가 교리적인 강박심리의 작용에 의하여 자유로운 상상력을 방해받을 때가 있다.
상상을 방해하는 도그마.
방해받는 상상력이 옳지 않을수도 있다.
소설이 아니지 않는가?
갈등이겠지만 갈등이 아니게 수렴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부산일보 신춘문예의 소설.
빨치산 정순덕의 전기를 읽고, 그곳에서 얘기꺼리를 만든 것인데 주제도 내용도 안이하다.
시류에 편승한 소재, 시류의 어떤 보편성을 자아냄으로서 시류에 아부코자하는 자세가 엿보인다.
보오들레르.
얼마나 사적이고 유니크한가.
그러면서도 진지하지 않은가.
어제 밤, 英이 俊이 앉혀놓고 英이 방에서 맥주 마시다.
俊이의 곡예 솜씨, 손가락으로 책돌리기, 쟁반돌리기, 밥상까지 돌린다.
그것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
英이에게 나중에 크면 엄마의 잔소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낄 때가 올 것이다고 내 성장과정을 빗대어 조근조근 얘기해 주다.
부디 그 아이의 마음 밭에 닿았기를.
아, 또 가야하는 회색빛 돈벌이 놀음, 직장.
그 척박한 곳에서 유모어 감각과 상상력, 이것을 꼭 붙잡을 일이다.
아침 식탁, 네 식구의 기도시간.
이것은 아침의 순결한 또하나의 유모어 감각의 충전이다.
아, 얼마나 풍성한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얼마나 현란한 기쁨이냐, 주님의 심장은.
토요일 양복찾고.
그리고 절제. せつせい. Temperance.
15676 1990. 1. 7 (일)
신년들어 회사는 부쩍 유치의 도를 더해가는 듯 하다.
쥐어짜부치기의 수법, 그런 입으로 시대정신 운운하는데 가소롭구나.
부당한 것에 어필할수 잇는 용기도 없으면서.
그러나 어쩌랴.
나도 한 마리 예스만을 발음할줄 아는 구관조인 것을.
새롭게 하소서의 간증.
음담패설을 주로 구사하여 사람을 웃기는 개그작가 전영호씨.
자전거에 올라서서 전봇대에 전도 포스터를 붙이며 밑에 받치고 있는 풀투성이 아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 마주 껴안고 울었다는 그 정경이 어느 영화의 감동적인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일요일.
英이의 새벽기도.
그리고 슈베르트의 리트.
풍부한 정서적인 환경 속에서 살고 싶은 열망에 나는 늘 앓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사양'
나오지의 유서.
"누님, 나는 귀족입니다."
일요일, 다시 달려가야 하는 현장.
15676 1990. 1. 8 (월)
어제 새양복 빼입고 현장 들렀다가 이상욱 결혼식 참석.
일요일 오후 몇병의 맥주 사들고 돌아와서 모처럼 내 방 창문으로 하오의 겨울바다 내려다 보면서, 닐 다이아몬드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Jonathan Ribingstone SAeagull' 들으면서, 죽음에 관한 논문을 뒤적이면서, 그 맛있는 맥주잔을 뒤집으면서 일락에 잠긴다.
나의 칩거적 일락.
소극적이고 도피적인 일락이라고 자괴하지는 말자.
아이들 교회에서 돌아와 함께 녹화된 '대부' 본다.
몇번을 보아도 가히 명작이라고 할수 있다.
프란시스 코폴라의 치밀한 연출은 화면 어느 구석 흠잡을데가 없다.
말론 브란도의 중후함이나 알 파치노의 강렬한 눈빛 역시 관객을 빨아들인다.
바로크적인 고전적 색조의 화면의 컨트라스트.
명화다.
마루에 쓰러져 잠들다.
전기장판의 따뜻함에 혼곤히 잠들어 숙면 이루다.
해양대학의 소형 실습선이 등장한 꿈, 영도인 듯 하지만 훨씬 아름다운 어느 해안의 거리, 노을을 받아 우아하게 빛나는 언덕의 건축물들, 그리스인가.
그러나 월요일 현장을 예감하는 불유쾌함이 꿈의 배경에 깔려있음을 기상한후에 느낀다.
월요일 아침.
아침 놀이 비낀 저 쪽 수평선의 하늘.
구름들은 섬처럼 수평선 위에 흩어져 늘어섰다.
15677 1990. 1. 9 (화)
꿈- 계엄령하의 서울거리, 수많은 전경들이 줄지어 휴식하는 가운데 체포된 대학생이 꿇어 앉아있다. 한 전경이 방망이로 그의 머리를 내려친다. 딱!하는 소리가 어느 건물 창밖으로 보고 있는 내 귀에도 뚜렷이 들린다. 형, 손철수와 헤매는 서울거리, 정능, 媛이도 스치고 어머니도 스치고...
그러나 꿈의 난삽함에 비하여 비교적 숙면 이루다.
15678 1990. 1. 10 (수)
쥐어 짜 부치는 박이사, 나도 역시 연쇄적인 조건반사로 밑의 사람들에게 짜 부친다.
저돌적인 돌관작업식 쥐어짜부치기도 효과가 있겠으나, 냉철한 상황판단에 의한 이지적인 관리방식이 훠씬 더 장기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나는 중얼거린다.
경험론적 즉흥성에 의하여 관리되어지는 대선의 현장.
나는 실로 나의 일을 사랑하고 있지 아니하다.
퇴근길, 이종숙등과 소주.
젊은 친구들의 타산적인 의식구조는 내 젊었을적 그 호기의 어리석음과 대조가 된다.
황금주의가 날로 가속화되어 가는 시대.
옛날에는 좀 더 정신적인 쪽에 가치를 두는 대화가 술좌석에는 어울렸었는데.
참 자유롭지 못한 불쌍한 시대에 그들도 나도 살고 있다.
무언가의 노예가 되어, 시스템이나 산업구조나, 이지러진 관계와, 속박되고 박탈되어, 이윽고 적응 순치되어 가는 것이 뚜렷이 보이건만 자신들은 도무지 이 사실을 의식도 하지 못한채 그것이 행복인양, 희희낙낙하는 딱한 군상들...
다소 늦잠.
아침식탁의 기도.
英이- 여자답게, 즐겁게, 나뭇잎에 비치는 반짝이는 했살처럼.
나의 딸내미, 내 어여쁜 아이야.
15679 1990. 1. 11 (목)
어제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J는 전화통을 붙잡고 곤혹스레 쩔쩔매고 있다.
전도사님과의 통화인데 英이를 대전의 성경대회에 보내달라는 설득과 권유였다.
연이어 나와 바꿔 통화하였는데 그 간곡함에 결국 승낙하고 만다.
형과 통화하였는데 어머니 기도원에 가셨다고.
기도원의 호젓함 속에 잠겨 엎드려 통회하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면 좀 야릇한 기분이 든다.
어머니. 정녕 어머니의 주님을 뵙기를.
4시 기상.
俊방에 전 벌려 기도.
15680 1990. 1. 12 (금)
바쁘디 바쁜 일과.
SB-362 P/E BLOCK 탑재, SHOT BLASTING 물량의 SHORTAGE로 공정 흐름 뒤죽박죽, 각종 UTILITY의 노후, 기능인력 수급의 어려움.
현장여건은 열악한데 선대 회전율을 이정도로 이루어나간다는 것은 대단하다.
이 대단함을 경영진은 마음 속으로는 인정할지언정 내색않고 더욱 쥐어짤 뿐이다.
英이 대전 성경대회 다녀오다.
성구 암송대회였던 모양인데 좋은 성적이였다고.
퇴근길, 홀로 소주 한병, 마늘 냄새 가득한 입속에 잇몸이 부르트다.
피곤한 육신은 참 편안한 잠 이루다.
새벽, 열왕기 상 읽다.
俊 방 불끄고 어둠 속에 앉아 기도드린다.
열렬하게, 주님께서 지배하시는 삶을 살게 되기를.
"마음대로 행하지 말고, 정의를 단연 행하고, 가능성 속에서 동요하지 말고, 현실적인 것을 대담하게 붙잡으라.
자유는 사상에의 도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속에만 있다.
다만 하나님의 계명과 그대의 신앙만을 의지하고, 불안한 주저를 버리고 生起의 폭풍 속으로 나서라.
그리하면 자유는 그대의 혼을 환호하며 맞이하리라." -본 훼퍼-
15681 1990. 1. 13 (토)
바쁜 일과중, 그나마 잠시의 나의 시간이라는 것은 화장실에서 쭈그려 앉아 읽는 독서의 순간이다.
레이몬드 찬들러 '필립 마로우의 우수'
추리소설, 이 정도의 성격을 창조할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대단한 문학성이다.
더쉴 해미트의 객관적 시각으로 냉정하게 그려내는 하드 보일드에 비하여 챈들러의 작품은 짙은 허무주의가 깔려있는 하드 보일드 터치이다.
새벽.
현대문의 성경으로 읽는 구약, 구약의 난삽하게 느껴졌던 스토리가 차츰 질서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오늘 토요일.
SB-365 진수, 17일에는 SB-362 진수, 60톤 크레인은 20일경 수리, 외주 기능인력의 유휴사태 해소책 찾기, 가공공장 LAY OUT 개조공사....
15682 1990. 1. 14 (일)
어제 SB-362 진수.
1월 17일 SB-363의 진수가 임박하니까 MAIN ENGINE, 각종 보기류, 각종 의장품등 탑제를 위하여 30톤 크레인은 전쟁을 치룬다.
토요일 퇴근하여 시내나가 만두 사들고 어머니께.
무엇이 어머니의 깊은 기쁨인가? 자식들의 어떤 포즈가 어머니에게 기쁨이겠는가?
피붙이들의 어떤 관계의 모습들이 늙으신 어머니의 따뜻한 위로가 되겠는가?
속속들이 채워져 용솟음치는 관계의 아름다움.
내가 어머니의 기쁨이 되려면 나는 어드렇게 깨어나야만 하는지.
참담한 아들들, 슬픈 어머니.
늦은 시각, 딸기 사들고 내 아내와 자식들 곁에 돌아온다.
15684 1990. 1. 16 (화)
60톤 크레인의 상태는 사람의 간을 조리게 한다.
그것이 또 탈이나 멈추면 모든 작업은 그야말로 큰일이다.
이상난동의 겨울이라는데도 현장의 겨울은 춥다.
그러나 현장의 어수선한 추위도 어떤 동기에 고무된 마음일때에는 그다지 추운 것도 아니다.
아이들 치과.
저녁후 英이가 농담삼아 얘기하는 남자미용사의 얘기에 즉각 맞받아 대꾸하는 J.
성에 관계되는 그 언어의 참혹함에 옆에 있던 나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참으로 딸에게 하는 어미짜리의 언어의 구사라는 것이 이토록 생경하다니.
오히려 英이가 능숙하게 얼버무려 곤혹스런 분위기를 넘겨 준다.
J의 숱한 좋은점에 비하여 직선적 무배려의 언어구사는 굉장한 폭력임을 스스로 느끼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J의 면전에서 그에 대해 충고의 얘기라도 꺼낼라치면 오히려 즉각 반발의 곤혹스런 언어가 튀어 나올테니.
꿈, 크리스마스의 교회, 성결교회, 옛 부하직원 조성현네 가족들, 성극들을 공연하고.
모처럼 밝은 분위기의 꿈을 꾸다.
따뜻한 막내 녀석 곁에 잠자는 아내.
썰렁한 안방의 어둠속에서 깨어 일어나 화장실에서 구약 읽고, 안방에 정좌하여 소리내어 요한계시록 읽다.
기도.
"너는 차지도 덥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한다" -요한계시록 3/16-
15685 1990. 1. 17 (수)
진수공정의 급박함, 바야흐로 크레인은 사뭇 불꽃이 튄다.
후속공정은 숨가쁘게 쫓아오고.
그런데 그토록 노심초사 이틀만 이틀만 참아달라는 60톤 크레인은 그만 주저앉고 만다.
WHEEL과 RAIL의 빡빡함, 300 A까지 전압은 오르고 그예 주행 MOTOR는 타버린 것이다.
비상, 비상.
울어버리고 싶은 현장.
철야작업.
밤늦게 P과장, 윤직장 데리고 중국집 요리와 백알.
15688 1990. 1. 20 (토)
참 겨울맛나는 새벽, 방안에서도 쨍쨍한 추위.
유리창에 성에가 끼었다.
어린 시절, 정능의 겨울이 생각난다.
놋쇠 손잡이를 잡으면 손이 쩍쩍 들어붙고, 마당의 펌프는 불을 지피고 뜨거운 불을 붓고 한참을 녹여야 물이 올라오곤 하였지.
들녘에는 눈이 싸이고, 눈사람, 눈싸움.
나의 유년의 겨울은 그렇게 추웠지만 나는 추운줄 몰랐다.
그 겨울 소년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내 보물 1호인 조그만 책장에 꽃인 학원사 발행의 세계소년 문학전집, 집없는 천사를 읽으면서 나는 참 많이도 눈물을 흘렸고, 삼총사를 읽으면서는 얼마나 가슴 두근거렸던지.
그 감수성이 이 겨울 한줌 남아있으려는지.
英아, 俊아.
너희는 고향의 어떤 겨울 기억이라도 있느냐?
뿌리없는 부모는 너희도 또한 아스팔트 킨트로 만들고 말았으니.
고향없는 도시의 아이들.
15690 1990. 1. 22 (월)
마루 전기장판 위에서 잠들었다가 한밤중에 깨어나다.
왼팔의 통증, 어디라 꼬집어 말할수 없는 우릿하게 아픈 통증은 대단하다.
J를 깨워 주무르게한다, 파스를 붙인다하다가 지긋한 통증을 안고 그대로 잠의 구렁 속으로 떨어진다.
새벽 다시 지끈거리는 통증, 그러나 희안하게도 일어나 화장실 다녀오고 새벼의 홀로 예배 후에는 거짓말처럼 아픔이 가셨다.
참 이상하기도 하다.
육체적인 아픔은 육체의 상태와 관계없는, 어떤 정신의 상태 또는 심리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어지는 오묘한 원리가 있을 것이다.
어제 J와 함께 비디오 '백야' 보다.
발레, 클라식 발레의 엄격함, 절제, 질서라는 속성은 쏘련과 같은 정연한 통제사회에서 꽃피울 여견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지도 않다는 내용의 영화.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결핍된 사회에서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모양이다.
15691 1990. 1. 23 (화)
올겨울들어 가장 추운 새벽, 서울은 영하 20도를 밑돈다고.
민정, 민주, 공화 3당 합당으로 대한민국 들썩하다.
여야의 정치구도에서 보혁구도로 되는 것인지.
나는 이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는 분별할 안목은 없으나 이제 과거 독재로의 회귀는 있지 아니할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15693 1990. 1. 25 (목)
매서운 추위.
혓바늘 돋은 형편없는 몸뚱이를 이끌고 현장의 하루를 버티어내다.
싸늘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근로하는 노동에 대하여 좀 부끄럽지 않아도 좋았다.
일찍 돌아와 俊이 방에서 잠들다.
새벽, 육체의 컨디션은 많이 좋아지다.
英이 열여섯번째 맞는 생일.
엎드려 기도.
인간이란 간사한 동물.
육체가 무성할 때, 인생이 화려할 때, 상황이 낙관적일 때에는 창조주를 기억하지 않는다.
창조주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패배할 때, 좌절할 때, 늙어 병들 때, 상황이 꽉꽉 막혔을 때 비로소 창조주를 기억해 낸다.
잘 나갈 때는 자기 잘난 탓, 좌절할 때에는 창조주가 만든 운명 탓.
'청년들아, 네가 아직 젊었을 때 네 창조주를 기억하라.'
15694 1990. 1. 26 (금)
연휴의 첫날.
아이들과 시내 나간다.
우리 형편에 거금을 주고 英이 그렇게 갖고싶어하던 키보드 사주다.
英이는 한동안 이 악기에 폭 빠져 있을 것이다.
바람처럼 媛네 왔다가다.
15695 1990. 1. 27 (토)
어머니께 가려고 준비하고 있으려니 전화가 울린다.
모두 경주에 가기로 하였으니 올 필요없다고.
추운 곳으로부터 밀려오는 싸늘한 비애 한줄기.
명절, 오전 키보드 연주, 그리고 저녁때까지 J와 마주 앉아 고스톱친다.
15696 1990. 1. 28 (일)
확신없는 삶, 고독한 실존을 수렴하지 못하는 삶.
신앙은 확신일진대 나의 확신없이 부박한 신앙을 탄식할지어다.
타인과의 관계로서 존재하는 삶이라면 그 관계로 인하여 기뻐하고 고뇌하는 삶을 살다가, 홀연 관계가 사라져 자신의 참 실존과 딱 마주쳤을 때 살아갈수 있는 인식의 정점, 그것이 바로 신앙이다.
에리히 프롬이 간파한 '군거적 순종의 원칙'.
그 군거의 무리로부터 벗어나 마주치는 실존, 그 때 꿋꿋하게 설수 있는 단 하나의 근거, 그것이 신앙이다.
새벽2시 눈이 뜨인다.
俊이 방에 앉아 마태복음 소리내어 읽는다.
그리고 크게 소리내어 기도.
"자 이제 오너라, 영원한 자유에의 도상의 최고의 향연이여, 죽음이여.
이 세상에서는 우리에게 보이기를 꺼리는 것을 마침내 보기 위하여.
우리들의 덧없는 육신과 현혹된 우리의 혼의 질곡의 쇠사슬과 벽을 부수고.
자유여, 우리는 훈련과 행위와 고난에 있어서 오랫동안 그대를 찾아 다녔다.
죽음에 임해서, 지금 하나님의 얼굴 속에 그대 자신을 보노라." - 본 훼퍼-
15697 1990. 1. 29 (월)
어제 홀로 안방에 앉아 정종잔을 기울이며, 키 보드로 유행가 가락을 읊조리다가 쓰러져 잠들다.
견디기 힘든 고적감, 관계들의 허망함을 숙고할수록 엄습해 오는 비애.
그 비애는 핏줄로부터 소외당한다는 비수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
결국 술로서, 술을 향해 달려가고야 마는 나약한 도피.
다시 새벽.
에스라 읽는다.
본회퍼는 말한다.
자유의 실체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다만 스스로를 다스릴줄 아는 훈련만이 그것을 획득할수 있다고.
나는 홀로 나를 훈련시킬수 있을까?
나 홀로 내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허약해 빠진 나를 붙잡아 단련시켜 줄 어떤 존재나 상황이 필요하다.
수도승같은 절제와 극기.
그러나 또한 관계끼리 그러구러 살아가며, 사랑하고 싸우고 지지고 볶다가, 때로 마셔 취하고 취생몽사... 적당하게 죄도 지어가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한평생이면 또 어떠하랴.
15698 1990. 1. 30 (화)
어제 연휴후의 첫출근, 현장의 출근율은 30%를 밑돈다.
전혀 작업이 이루어질수 없는 상황.
날씨가 풀림에 따라 그간 한파로 얼어붙었던 금수관 동파.
이 정도의 추위에 이 모양이니 한 열흘 강추위가 계속된다면 부산이라는 남쪽 고장의 상황은 아비규환일 것이다.
종일을 현장을 걸으면서, 어머니와 형제를 생각하며 쓴 비애를 짓씹는다.
퇴근 무렵, 불현 듯 불꽃과 같이 그리워 지는 아내와 아이들.
내 관계의 존재에 의미를 주는 최소 단위의 내 因子.
15699 1990. 1. 31 (수)
어제 잠들기 전 치밀어 오르는 욕정.
이불 밖으로 두 손을 모두어 잡고 기도드리자, 이내 고른 숨결로 잠들게 하시다.
꿈- 오래전 헤어졌던 친척들이 사는 동네, 아마 북한의 어느 산 마을인듯한데 고모들도 있고.
어머니와 함께 누군가를 찾아 다니다 어머니를 잏었다. 어머니를 소리쳐 부르자 느닷없이 박이사가 나타난다. 그도 친척들을 찾아다닌다고.
4시30분, 싸늘한 공기 속에 깨어나다.
죽음에 관한 글들, 세상의 그 어떤 사랑도 죽음을 이길수는 없다. 단지 예수님의 사랑만이 죽음을 이길수 있다.
참으로 죽을수 있은 사람만이 참으로 살수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모순이 아니고 PARADOX 인 것이다.
무릎꿇고 엎드려 기도.
하나님 나의 아버지.
스스로를 훈련시킬수 없는 이 의지박약을 도와 주소서. 부축하여 힘을 주소서. 어린아이의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를 어른다운 의연한 발걸음으로 만들어 주소서.
주님, 똑바로 설수 있게 도와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