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혼불 8권 (2)

카지모도 2025. 1. 20. 05:22
728x90

 

이 무렵 백제의 주요 군사기지는 남원에 있었고, 신라의 군사기지는 운봉에 있었다. 두

고장은 바짝 코를 맞대어 숨만 쉬어도 부딪치는 곳이다.

운봉이 그때는 신라 영지가 됐거든. 자고 새면 빼앗고 빼앗기는 접전 전투 끝에 신라땅

이 되었겠지. 그래 신라에서는 백제를 막기 위해 운봉면 가장촌 뒤에 수정산성을 쌓고,

준향리 뒷산에는 준향산성, 장교리 뒤에다는 합민성, 가산리 뒷산에 가산산성, 성리 뒤에

는 성리산성 등등 손으로 다 꼽을 수 없게끔 운봉에다 수많은 성을 쌓고 쌓았지. 이에 대

비해서, 백제는 운봉면 가산으로부터 정령치에 이르기까지 견고 면밀한 답사를 해서 두

겹으로 순라로를 설치하고는 대방군, 그러니까 주로 남원읍에다가 집중적으로 국방시설을

했을 것 아니냐?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러다가 결국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리어 나당 연합군을 조직하고,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린 뒤 삼국을 통일하였는데.

통일신라 신문왕 5년에 왕은 이 대방군에다 남원소경을 설치했다. 남원이란 말이 이제

드디어 처음 나온 것이다.

경주를 대경 즉 큰서울이라고 하고, 남쪽에는 남원소경, 서쪽에는 서원소경을 두었어.

작은서울이라는 것이지. 그러한즉 이 남원소경은 전라도 일대를 다스리는 지방 행정의 중

심지가 된 거야. 충청도 일대의 행정 중심지는 서원소경, 청주를 가리키고.

고려 때에는 어찌 되었고?

강태가 공부하는 학동처럼 진지하게 물었다. 그는 성격은 남보다 날카로웠지만 또 그만

큼 치밀하여 무엇이든지 알다가 마는 것이 없었다. 명경에 비친 손금처럼 한 손이 한 눈

에 정연하고도 확실하게 들어와야 사물에 대한 직정이 풀리는 사람이 강태였다.

왕건 태조가 즉위한 지 이십삼 년 만이고 후백제를 고려로 통일한 지 오 년 만에 전국

의 행정구획을 재정비했지. 그리고 주, 부, 군, 현의 이름을 일신했는데, 남원소경은 이

때부터 남원부라고 개칭이 됐어.

이 남원부에 속한 다섯 현은 순창현, 임실현, 운봉현, 방수현, 장계현이었다.

그러다가 흥망은 덧없어서 오백 년 고려가 망하고 왕조에 조선이 들어서니, 이때가 태

조 원년 칠월 십칠일.

건국 초기에는 옛제도를 답습하여 그냥 있다가, 태종 13년 시월에 조선 팔도를 새로이

구획지어 정하고 도, 주, 군, 현의 명칭을 고칠때, 전국에 칠십사 개 도호부를 설치하였

는데, 남원부는 이름도 당당한 남원도호부로 승격, 개칭되었다.

전라도에서는 관찰사가 있고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와, 목사가 부임하는 나주말고는 제

일 큰 성읍이 된 것이다.

따라서 고려 때에는 순창현을 비롯한 다섯 개 현만을 관할하던 것이 이제 일 부, 일 군

과 아홉 개 현을 자신의 자락에 다스리게 된 남원도호부.

즉 담양부와 순창군, 그리고 임실현, 무주현, 곡성현, 진안현, 용담현, 옥과현, 운봉

현, 창평현, 장계를 포함한 장수현을 관할하는 남원도호부는 그 규모가 실로 웅장하고,

흥왕한 속에 분주하였으리라.

용성지 기록을 보면, 남원도호부 동,서,남,북 사대문에 수문장이 밤낮으로 지키고 있어

서, 중앙과 각 지방 관원들이 위엄있는 모습을 갖추어, 화려하게 내려오고 올라가는 행차

들 수행과 안내하기에 겨를이 없었고, 손님 맞는 공광인 용성관은 공무를 띤 관원들로 날

마다 북적북적 붐비었으며, 이 내객들을 접대하는 데 관수미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 민폐

를 끼치기 쉬운지라, 오직 손님들을 대접하는 소용에만 쓸 비축미를 따로이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하더라.

그뿐이 아니었다.

중앙집권 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조선의 행정이 더욱 견실하게 발전하고 또한 온 나라

가 병자호란을 겪은 뒤라서, 십칠 대 효종 5년에는 전국적으로 군사제도를 쇄신하여 개편

했는데, 이때 우리 남원에는 전라좌영을 두게 됐다.

전라도에는 중, 좌, 우, 전, 후 모두 오 영을 두었으니, 가장 막중한 중영은 전주, 그

리고 좌영은 남원, 우영은 나주, 전영은 순천, 후영은 여산에 있었다.

남원 좌영의 총병력은 마병이 사백삼십육 명, 보병이 사천육백오십칠 명, 장교들에게

직속된 표하병이 이백팔십칠 명, 척후와 정보 정찰을 맡은 당보병이 일백이 명, 수졸 졸

병이 사백구십이 명으로, 총 오천구백칠십사 명의 대군단을 이루어 참으로 그 규모가 어

마어마하였다.

전라좌영이 운봉에도 있잖었어요, 왜?

강태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는 싸움에 관심이 많아, 전에 어려서 무슨 일로 아버지 기

표를 따라 운봉에 갔을 때, 운봉장대 유적이 남은 터를 본 기억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숙종 34년에 전라좌영을 남원에서 운봉현으로 옮겼거든. 왜냐하면 그곳이 경상도와 전

라도를 제압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야.

운봉이 거 중요한 곳이구려.

강태는 눈을 빛냈고, 강모는 나직이 한 마디 하였다.

고을 이름은 아름다운데, 늘 사납게 곤두서서 싸워야 해.

하지만 운봉이나 남원이나 한집안의 마루요, 토방이니까.

남원도호부에 속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영조 때.

이 고장 남원은 뜻하지 아니한 수난을 당하고 말았다.

사실은 내가 이 말이 꼭 하고 싶었다. 이 말을 하려고 그토록 유구하고 융성하고 중요

했던 남원을 꼼꼼히 얘기했는지도 몰라. 그 남원을 알아야만, 이 남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강호는 강모와 강태를 바짝 끌어안는 눈빛으로 두 아우를 얽으며 음성을 조여 줄였다.

영주 16년 경상도 지방에서 큰 반란이 일어났다. 찬구란 사람이 일으킨 것이었지. 찬

규. 그는 비천한 종, 천노, 하예였다.

아니 반란이라면 혁명이었을 텐데 아이들 동네 싸움이 아니고서야 문자도 모르고, 병법

도 모르고, 더구나 학식 덕망도 없을 그런 자가 어떻게 무리를 규합하고, 작전을 세우고,

선봉에 서서 그 무리를 이끌어 싸우게 할 수가 있단 말이요? 의아하여 눈썹을 찡그리며

묻는 강태에게 강호는 대답했다.

고려 때 만적의 난도 있었다.

만적이, 최충헌의 사노?

그래. 찬규도 종이었지. 사노지자. 어느 이름 없는 절에 속한 종의 자식으로 태어난 찬

규는 제 아비처럼 나면서부터 종이었다. 성은 물론 모르고. 그런데 이 찬규는 아주 기골

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였다더라. 허나 그것만은 아니었으리라.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에 미천한 찬규를 따라 괭이, 삽, 막대기 하나 추켜들고 맨몸뚱이 맨발로 나선다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이니. 그렇게 제 몸 제 목숨 다 던지며 부르짖어 나서게 할

만한, 그 어떤 무섭고 강력한 힘을 그는 반드시 뜨겁게 지니고 있었을 게다.

찬규는 본디 남원의 언저리 조그만 사찰에 매인 사노였으나, 일찍이 그 절에서 도망하

여 자기를 뒤쫓거나 알아보는 이 없을 고장을 찾아 멀리 멀리 산을 넘고 강을 건넜던 것

이다.

그리하여 낯설고 물 설은 고장 영남 지방의 이 골 저 골 골짝진 절을 떠돌아다니면서

승 노릇을 하였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불 8권 (4)  (0) 2025.01.22
혼불 8권 (3)  (0) 2025.01.21
혼불 8권 (1)  (0) 2025.01.19
혼불 7권 (51, 完)  (0) 2025.01.18
혼불 7권 (50)  (0) 2025.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