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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8권 (1)

카지모도 2025. 1. 19.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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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세상은 무너져도 좋아라

 

보다 더 아득한 상고의 내력은 오로지 짐작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남원은 마한. 진

한. 변한이 한강 유역으로부터 남부 일대에 걸쳐 삼한을 이루고 있을 때, 마한의 영역에

속한 부족국가였다.

개국신인 단군 왕검이 천제 환인의 손자요, 환웅의 아들로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

나, 이 상서롭고 아름다운 강토의 북방 아사달에 거룩한 도읍을 정하사, 최초로 단군조선

나라를 세운 이래 이천여 년이 지나니, 고조선은 어느덧 말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한강 아래 남방 일대에는 아직 국가의 형체는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지만 진국

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부족연맹체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 진국은 강토의 남쪽이 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누이기 이전의 삼한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던 이 연맹의 부족들이 점점 저의 지리적인 환경에 따라 더욱 결속하고 혹은 멀어

지고 하면서, 경기, 충청, 전라도 지역이 동아리를 이룬 마한과,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한 진한, 낙동강 하류 경상남도 서남쪽에 근거를 잡은 변한 등 삼한으로 갈라져 갔다.

이 중에서 가장 넓고 기름진 지역을 그 범위로 삼은 마한은 삼한의 기간이었다. 목지

(혹은 월지)와 백제를 비롯하여 오십오 개 소국들이 서로 연합체를 이룬 마한의 여러 나

라 총 호수는 도합 십만여 호였으며, 이 가운데 큰 나라는 일만여 호, 작은 나라는 수천

가호 규모였다.

이에 비해 진한 십이 소국과 변한 십이 소국을 합한 총 호수는 대략 사만 내지 오만이

었다. 그리고 각 국가의 호수는 큰 나라가 사천에서 오천 정도였고, 작은 나라는 육백호,

혹은 칠백 호에 지나지 않는 곳도 있었다.

이러한 삼한의 칠십구 개 소국들은, 국가라기보다는 각각 자기가 속한 지역에 따라 여

러 부족국가가 모인 연맹체였으니, 이 조그만 부족국가에는 족장이 있어 부족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로 삼았다. 이 군장의 지휘 통솔 밑에 평지의 사람들은 움집에서 농사짓고 누에

치고 길쌈을 하며, 산간에서는 귀틀집을 짓고 목축을 했다. 그리고 해안에서는 고기를 잡

으면서 부족적 혹은 씨족적인 자치생활을 하였다.

수도를 익산군 왕궁면 일대에 두었던 마한은, 진한인 경상북도와 어깨를 비비는 접

경 지역 남원군 산내면에다 별궁을 지었는데, 그곳이 곧 달궁이라고 노인들은 말했다.

지금은 주춧돌 몇 개만이 여기저기 희미하게 묻히고 누운 흔적과, 묵은 밭뙈기처럼 버

려진 채 그저 평평한 듯한 것이 고작인 모습으로, 무심히 잡초를 다보록 뒤집어쓰고 있는

늦가을 달궁의 별궁터에 서서, 강호는

어여쁜 남원...

이라고 에이게 생각한 일이 있었다.

바람에 쓸리어 흩어지는 검불처럼, 이 자리에 살았던 누군가가 설혹 한때는 눈부시게

불탄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제는 다만 시꺼멓게 가벼이 티끌로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

아니라, 내 선조의 선조와 그 너머 더 먼 선조의 숨결이 스민 자취가 이렇게 지워지지 않

는 터를 잡아 오늘까지도 자국을 역력히 남기고 있다는 것이, 그는 느꺼웠던 것이다.

달궁 옛궁터에서는 이천 년이 넘도록 마한의 온기를 그대로 담은 발소리가 두벅두벅 다

숩게 수런거리며 울려 오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 발소리가 결코 한가로운 것일 수는 없었을 터인데도.

이 달궁의 머리 지리산을 경계로 진한과 서로 국경이 맞물린 곳 정령치, 황령치, 험준

한 봉우리에 마한은 용맹스럽고 지혜로웠던 정장군과 황장군을 파견하여 적국의 침략을

막았다 하는데, 정장군이 주둔하던 곳은 정령치요, 황장군이 지키던 곳은 황령치로서, 아

직까지도 그 이름과 자리가 이토록 뚜렷이 남아 있으니.

깍아지른 험산 준령 첩첩한 지리산의 정령치 꼭대기에서, 강호는 구름의 운해를 허리마

다 머리마다 흰 너울로 감고 까마득히 이랑져 굽이치는 산능선의 검푸른 물마루를 내려다

보며, 저도 모르게 깊이 몸을 떨었다.

바로 그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리에다 성첩을 쌓고 그 성가퀴 뒤에서 바람 속에

두 눈을 부릅뜨며 외침을 막고자 우뚝 서 있던 정장군의 체온이, 사납고도 그리운 힘으로

순간 그의 온몸에 후욱, 덮씌어 접심이 된 탓이었다.

아마 그 정장군, 황장군을 정령치, 황령치 고갯마루에 파견하면서부터, 마한이 안심이

되야 가지고 별궁을 이 달궁에다가 세우기 시작했을 것이여. 여그가 바로 그 품 아래닝게

로.

누런 앞니마저 다 빠져 버리고 몇 대 안 남은 마을 노인은 그때 일을 마치 눈으로 보기

라도 한 듯이 말했었다.

아무도 데불지 않고 혼자서 그렇게 마한의 옛터를 돌아보던 스무 살의 청년 강호는, 그

걸음으로 내쳐 운봉까지도 가 보았었다. 운봉 또한 진한과의 경계여서 유적이 있다고 들

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운봉에는 놀랍게도 순라로라 부르는 길이 나 있었다. 그것은 운봉면 가산리에서

부터 매요리, 권포리를 거쳐 가장촌 뒤를 돌아서 저 정령치에 이르기까지 상,하 이중으로

확실하게 뚫려 있었는데, 이는 마한이 진한을 방어하기 위해서 일부러 설치한 국경 경비

도로였던 것이다.

국경 경비 도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눈물 나게 소박한 이 옛길을 따라 마한에서는

수시로 국경을 순시하면서, 진한이 혹시 뜻밖의 순간에 쳐들어올는지도 모르는 사태를 미

리 막았노라 하였다.

그때 깎고 다듬어 뚫은 길이 아직도 이처럼 뚜렷이 남아 있은즉, 이때부터 이미 남원은

남방의 중요한 부족국가로, 마, 진 양국의 경계에서 마한 국방에 요새지를 이룬 것이 분

명하지 않은가.

이 남원이 참으로 묘한 곳이니라.

조부 동계어른 이헌의는 그 무렵에 이제 고보를 졸업하고 청년이 된 강호를 앉혀 놓고

그렇게 말한 일이 있었다.

시정의 사람들은 흔히 남원하면 맨 먼저 그냥 춘향이부터 떠올리던 걸요. 또 끝내 춘향

이밖에는 모르고, 학생들조차도.

강호가 이헌의와 마주앉은 그날의 사랑에서 조부에게 웃음 띄운 음성으로 응대하자 이

헌의는 다만

무지해서 그러하다. 모르는 줄도 모르고. 허기는, 모르는 줄을 알면 이미 반절은 아는

것이지. 하더니 이윽고 물었다.

그러면 너는 네 고을 향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냐? 한집안에 살면서 아들을 셋아나

낳도록까지 제 시어미 성씨를 모르는 며느리도 있다더라. 그건 또 양반이고, 어떤 사람

은 돌아기시도록 몰랐다가 위패를 보고서야, 아하, 우리 시어머니가 아무아무 성씨였구

나 하는 사람도 있었더래.

그 말씀 끝에 강호는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어 그처럼 마한의 옛길을 더듬어 오직

홀로 한 바퀴를 돌아보았던 것이다. 마치 입향조께서 낙담하여 맨 처음 이 마을 동구로

들어오시던 길목을 이번에는 후손이 다시 한번 그대로 되짚어 거꾸로 걸어 보듯이.

강호가 더터본 그 늦가을 풀머리 눕는 길들에는 아직도 마한의 바람이 불고, 부족국가

의 눈물겨운 피가 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남원을 무엇이라 불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익명의 세월이 익으면서 부족국가 연맹체들이었던 삼한이 각각 세력을 모아서 진한

은 신라를 세우고, 변한은 가야 제국을 이루었으며, 마한은 백제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북쪽에는 고구려가 섰다.

이 무렵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러 문헌에 남원 고장의 이름이 밝혀지기 시작했는데,

최초로 드러난 백제 때의 이곳 지명은 고룡군이었다.

마한을 병합하여 국토를 넓힌 백제는 온조왕 31년에 국내를 크게 남, 북 이 방으로 나

누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이 년 후에 동, 서, 남, 북, 중앙 오 방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각 방에는 달솔이라는 벼슬을 두어 다스리게 하고, 방을 다시 십 군으로 세분하여 군에는

덕솔을 두었다. 그 가운데 특히 큰 대읍에는 담로라 해서 왕자나 왕족을 임명하여 다스리

게 하였는데, 이 남원 옛고장은 남방의 대읍인지라 틀림없이 담로를 임명했을 것이다.

그것은 물경 지금으로부터 천구백여 년 전 일이었으나, 낱말에도 체온이 있는가, 강호

는 이상하게도 달솔, 덕솔, 담로 같은 명칭들이 오늘날의 군수, 도지사보다 더 친근하고

정답게 느끼어져서 속으로 되뇌이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후, 백제 오 대 초고왕 31년에는 이 고룡군이란 지명을 바꾸어 대방군이라고 했지.

이때는 어느 때냐, 중국으로 말하자면 후한 마지막 영제때라. 한나라 사백 년 왕업이 영

제에 이르러 극도로 쇠약해지자, 촉한의 유비, 동오의 손권, 위나라 조조가 서로 솥발같

이 대립해서 다투다가, 마침내 위나라가 한, 오를 멸하고 일시 삼국을 통일할 무렵이었

어. 이렇게 중원에 군웅이 할거해서 치열한 싸움을 하는 통에, 요동땅의 공손 강이란 사

람이 고구려로 들어와 가지고 낙랑군 일부를 빼앗아서, 지금의 황해도 지방에 대방군을

세운 일이 있었지. 이 대방군을 세운 것이 초고왕 41년인데, 다음 왕위에 오른 육 대 구

수왕은 우리 고장 이름을 남대방군이라고 고쳤거든. 남녘 남짜를 하나 앞에다 더 붙인 게

지. 원래 이름에다. 아마 공손강이가 세운 대방군과 글자가 똑같애서 구별하려고 그랬을

거야.

강호는 그해 겨울, 아직 전주고보에 다니고 있던 강모와 강태가 종항간에 함께 동절기

방학을 맞아서 매안으로 돌아왔을 때, 모처럼 같이 앉아 무릎을 맞대고 그런 이야기를 들

려 주었다.

삼국유사에는 조위 때에 남대방군을 두었는데 이것이 즉 지금 남원부의 옛 이름이다.

남대방군의 남쪽은 바닷물이 천 리나 미치었으니, 이 바다를 가리켜 한해라고 하니라. 고

기록되어 있는바, 한해는 여수 앞바다 남해를 가리킨 것이 분명하였다. 그렇다면 남대방

군의 행정관할 구역은 조그마한 읍이나 면 혹은 마을 단위가 아니라, 멀리 순천, 여수

에까지 미쳤다는 말 이 아니겠는가.

국가가 있으면 반드시 국경이 있고 국경에는 늘 병사들이 일으키는 충돌과 분쟁이 그치

지 않는 법이지. 고대 삼국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욱이나 백제와 신라는 마한과 진한

때부터도 그러했지만, 국경을 두고 서로 침범 침입하기를 그치지 않았어. 끊임없이, 크고

작은 것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을 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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