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요. 그래서 칠반생이란 말이 있습니다."
일곱 번 되도는 생이라.
"수행력에 따라 인간이, 인간에서 하늘로 갔다가, 하늘에서 인간으로 왔다
가 수천 년, 수만 년에 되풀이하여 일곱 번째, 일곱 생을 살고 하늘로 돌아
가면 이번 생을 마지막으로, 이제 다시는 인간으로 안 온다는 말씀인가
요...?"
"인간이 한평생 살면서 수행을 많이 하고 죽으면, 윤회의 법칙에 따라 다
음 생을 받을 때 천상에 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천상의 삶은 영원 무궁
한 것이 아니어서, 그 천상에 날 만한 일을 한 인연 공덕이 다하면 이제
인간계로 다시 오게 되지요. 천상에서 인간계로 온 사람이 꾸준히 정진하
여 올바로 살다가 죽으면, 이번에도 역시 천상으로 가겠지요. 이것이 일반
생이랍니다."
"천상에서 이승으로 왔다가 다시 천상으로 가는 생, 한 번이요?"
"그렇습니다.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 이반생, 삼반생."
"그게 어느 만한 세월일까요?"
"아무리 길어도 결국은 유한한 시간이랍니다."
도환은 침묵하고, 강호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렇다면 이 인간 세상에는 짐승 껍데기 막 벗은, 축생에서 처음으로 사
람되어 나온 자도 있고, 육반생 지나 이번에 생을 끝내고 죽어 천상으로
가면, 다시는 인간으로 오지 않을 칠반생째의 사람도 섞여 산다는 말, 아니
가. 이 혼재. 그래서 도저히 사람이랄 수 없는 개, 돼지, 축생만도 못한 사
람도 있고, 인간에 살면서도 천상의 향기를 지니고 있어, 고결함과 그윽 미
묘하고도 살신성인 희생하는 아름다운 이도 세상에는 있는 것인가.)
다시는, 인간으로 안 온다.
이 말의 여음에 강호의 가슴이 찡 울린다.
어쩌면 그것은 이 말을 맺는 도환의 음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는 단호하여 간절했다.
"오르고 내리고 칠반생을 하는 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을 겪으며 그만큼 더
욱더 수행이 되어 견고한 공덕이 쌓인다는 뜻이겠지요?"
"선한 노력은 인간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향상시키고, 악한 노력은 끝없
는 업을 지으니까요. 작업."
"일하는 것을 작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어원은 불교에 있는 말입니다. 나를 움직여 일을 한다는 것은 곧
행위를 말하고, 그 행위가 무엇이냐에 따라 업이 다르게 지어지지요. 행위
에 대한 노력이 수행이니까, 일을 한다는 말은 업을 짓는다는 말과 뜻이
같은 동의어예요."
"참, 소스라칠 사건이구만요. 그런 뜻인 줄 몰랐습니다."
등골이 떨린 강호가 놀라 전율한다.
"불교의 스물여덟 하늘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공거천이
요, 또 하나는 지거천이며, 나머지 하나는 지하천인데, 이중에 인간과 밀접
한 관계가 있는 하늘이 지거천, 말하자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하늘이 지
거천입니다. 이는 인간 바로 위의 사천왕천과 제석천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이 두 하늘은, 하늘이로되 아직도 지상에 속하는 하늘이어서
'지거천'이라고 부릅니다."
지거천에서는 인간과 하늘이 빈번히 왕래하는지라, 하늘은 인간에 비치고
인간은 하늘에 숨결을 끼쳐, 섞이어 비벼지매 서로 한 몸같이 통류하는 정
이 십계 가운데서도 유달리 각별하였다.
사천왕도 뭇하늘 중에 한 독립천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육욕천에서 가장
낮은 하늘이요, 지거천의 두 하늘에서 또 초위이니. 그는 지거천 우두머리
인 제석의 다스림에 예속되어 있다.
"더욱이나 사천왕은, 제석의 외신으로서 제석을 받들며 수호하는 무장의
임무를 띠고 있기에, 가장 가까운 제석의 측근 직계 권속이요, 최고의 무신
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제석천은 사천왕을 거느리고, 사천왕은 동, 남, 서, 북 천왕마다 귀신을 두
부류씩 거느리어 뭇중생을 관할하도록 휘하에 두는데, 이 여덟 부류의 귀
신을 일러서 팔부신장이라 한다.
이번에도 도환은 도표를 그린다. 아마 그러는 편이 강호가 이해하기에 빠
르고 쉬우리라고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만다라도 사실은 불교의 본질인 깨달음의 경지와 우주적인 진리의 근본과
오묘한 세계를 그림으로 압축시켜 그려낸, 법칙의 도표아닙니까?"
도환이 천왕문 땅바닥에 하늘을 띄운다.
욕계이천, 도리천에 제석천이 산다.
욕계일천, 사천왕천에 사천왕이 산다.
사천왕은 그 아래 팔부신장을 거느리시는데.
팔부신장은 부처님의 위덕을 진정 사모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
하는 여덟 신장으로서 팔부신중이라고도 하는, 사천왕의 권속이다.
"팔부신중은 진호국가의 성격이 강해서, 나라가 위난을 당하였을 때 특히
크게 존중을 받는 신앙의 대상이지요.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이 팔비신중의
도상을 조립해서 모셔 왔는데, 우리나라 경우에는 불교 도입 초기부터 조
상을 세웠다고 봅니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 국가의 안위를 기원하고 백성
의 평안을 염원하는 법회가 성행하면서, 팔부신중을 각별히 섬겼지요. 이
팔부신중 가운데 용은 따로이 독존으로 모시는 신앙과 사상이 널리 민간에
퍼졌어요."
"그렇다면 그 팔부신장, 팔부신중은 어디에 모셔집니까?"
"부처님이나 승려들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나 본존불 주위에 많이 조각되지
요. 석굴암에 가면 신라 시대의 조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탱화에는
반드시 중앙의 부처님을 받드는 팔부신중이 사방에 배치되었습니다. 그것
이 원칙이었으니까요. 또 천왕문에 사천왕과 팔부신중을 모십니다. 이는 팔
부신중이 사천왕의 권속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몰랐습니다."
강호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뿐이었다.
도환은 뾰족한 돌멩이로 바닥에 도표를 그린다.
"이 신장들은 다 명확한 소속이 있습니다. 동방지국천왕 휘하에는 비사사
와 건달바가 있는데, 비사사는 식혈육귀라, 무시무시하지요? 그런데 건달바
는 참 독특한 신장이에요. 술과 고기를 일절 안 먹고 향기만 맡는 음악의
신이 바로 건달바거든요."
"건달바...라니, 저...무위도식하는 건달...하고는 혹시 무슨 상관이?"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재치있게 묻는 강호한테 도환은 선선히 대답한다.
"상관이, 있습니다."
"예?"
강호가 공연히 민망하여 반문한다.
"생활 속에 널리 퍼져 뿌리가 깊던 불교 용어가 의미 전이를 일으킨 것이
지요. 술과 고기를 안 먹는다는 면이 일을 안한다는 것으로, 향기만 맡는
음악의 신이라는 점이 주색잡기에 빠져 빈들거린다는 것으로."
"거, 참."
"그런 말은 이 외에도 많습니다."
"조선의 오랜 숭유억불 정책이 불교에서 쓰이는 언어의 비하에 영향을 끼
친 바 클 터이고, 많이 쓰여 흔해지면 높던 말이 낮아지는 경우도 있지 않
습니까, 왜."
"맞는 말씀이에요."
"헌데 참 이상하군요. 음악의 신 건달바는 북방다문천왕의 비파와 잘 어울
릴 법한데, 칼을 든 동방지국천왕 휘하라니."
고개를 갸웃하는 강호의 말에 도환이 웃는다.
"지국은 칼만으로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아, 참 의미심장한 상징 같은데요."
강호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그가 비록 불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한 종교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사상
이 표출된 갖가지 모양과 빛깔과 설치는, 문외한인 강호의 심성과 사유를
자극하매. 저절로 마음이 열렸던 것이다.
"남방증장천왕을 팔부신장 가운데, 말 머리에 사람 몸을 하고 사람의 정기
를 빨아 먹는 구반다와 아귀 벽협다를 거느리시고, 서방광목 천왕은 호법
의 용과 악취가 나는 귀신 부난다를, 그리고 북방다문천왕은 얼굴 모습과
몸의 생김새가 괴상하고 사나운 귀신 야차와 신통력으로 사람을 호려 잡아
먹는 지옥 귀신 나찰을 부리고 계십니다. 이중에서 용은 특별히 우리 민간
에, 조화능력이 무궁무진하며 신비한 힘을 가진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어졌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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