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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9권 (25)

카지모도 2025. 5. 4.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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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으로 편파심을 가지고 듣는다면 다소 거북하실는지 모르겠으나, 쾌

활한 마음을 열어, 우리, 또는 나 자신의 존재를 돌아보자는 일념을 세우

며,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보시는 것도 무익한 일은 아니리이다."

도환이 웃으며 엇지르는 말에, 강호는 황급히 당치않다는 표시로 두손바닥

을 펴면서 말 막는 시늉을 해 보인다.

"설마 천학비재를 허물하려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원 천만에요. 소승이 혼자 흥이 나서 설하는 동안, 공연히 무료하실까 봐

저어한 나머지..."

"학채 없는 학생이라고 쫓아내지나 말아 주십시오."

"하하. 불민한 이 사람도 득천하영재이 교육지삼락야는 압니다. 이러하신

학생만 모실 수 있으면 옛 성현의 군자 삼락이 무에 부럽겠습니까."

"과찬이 꾸중 같아서 무안합니다."

"하하. 중이 왜 거짓말을 한답니까. 구업만 짓게. 이문도 없이."

도환이 거퍼 웃는다. 그는 어느결에 유쾌해졌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 동경 유학생, 유가의 젊은이는 곁에 있는 사람을 은연중 화

하게 한다.

그것은 무슨 힘일까.

"인간계 위는 하늘인가요?"

"하늘, 입니다. 천이라고 하지요."

"우리 눈에 보이는 저 푸른 하늘 말씀이요?"

"아니요. 그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공간은 그저 허공이라고 해서 십계의

'천'과는 구별합니다."

"아하아."

"천계부터는 중생을 벗어난 신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인도의 경전에 보면 이 천에 사는 신들에 대하여

"신과 같은 수명, 힘, 행운, 권능이 있다. 그들이 거느린 부하 권속들이나,

그들의 차림이며 외모는 신이 갖추어야 할 모든 형태에 알맞고, 온갖 소리

와 향기, 의복, 장식들이 아름답고 찬란하여 여한이 없으며, 감각 기관이

누리는 즐거움과 쾌락은 하나같이 신에 어울리니. 스스로 광휘에 차 있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오직 행복하게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간다."

고 했다.

"또 음식은 풍부하며 고기와 술이 넘치고, 빛나는 보석으로만 수놓은 궁전

들이 즐비한데, 그곳에는 오감의 열락이 다 갖추어져 신들은 그것을 즐기

고 있다."

고 썼는데.

"모든 신들의 왕인 샤크라(제석천)는 팔천 명의 선녀들이 시중을 들며, 오

욕의 환희를 누린다."

고도 하였다.

"이것이 하늘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천계하늘 역시 결국은 윤회

세계의 하나로서, 여기에 태어나 머무르게 되었던 인연 공덕이 다 소멸되

어 없어지면, 천인들은 다시 다른 세계로 옮겨가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저금을 다 쓴 것과 같은 상황이 되는 거지요."

"천상 천계로만 가면 윤회에서는 벗어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바로 이것이, 윤회를 아주 벗어나 버린 열반과 천이 서로 다른 점

이랍니다."

"오묘하군요."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죽어서 천계로 가는 것과 열반에 드는

것이 분명히 달라 별개인 점을 설파하시고, 비구들에게 천계로 가는 것을

바라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천계를 넘으라 하신 것이겠지요?"

"이 천계는, 질서정연한 위계를 체계적으로 세워 스물여덟 하늘을 두었는

데, 몸 가지고 살아서, 악업을 많이 짓고 축생으로 떨어져 태어날수도 있

고, 선업을 많이 쌓아 천계로 갈 수도 있는 윤회의 경계선에 선 인간이, 평

생토록 갈고 닦아 수행한바를 따라 천만다행히도 천상에 오를 적에, 열게

되는 하늘의 천문이 천왕문인 것입니다."

육신을 벗고 하늘에 들었지만 아직은 욕심이 남아 있고, 또 그 욕심의 테

두리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최고의 경지라, 이름도 '욕계'인 욕계육천, 혹은

육욕천,

그리고 선정에 따라 단계별로, 탐욕에서는 벗어났으나 아직 색심까지는 벗

지 못한 색계 십팔천,

그리고 이제는 모든 색신에서 벗어나 물질적인 사고 대상을 없애 버리고

오로지 정신으로만 사는 무색계 사천, 을 통틀어 이를 '천'이라 하는 것이

지만.

"색계 십팔천은 열여덟 하늘을 일일이 다 설명 드리기 어려우니 건너 뛰

고, 무색계만 간단히 짚어 볼까요?"

무한한 공간의 상태에 도달한 천신들이 사는 공무변처천, 무한한 인식의

상태에 도달한 천신들이 사는 식무변처천, 의식도 무의식도 없는 단계에

도달한 천신들이 사는 천 중의 천, 비상비비상처 천.

"비상 비비상처 천."

홀린 듯이 강호가 그 하늘의 이름을 따라 외운다.

"그 하늘 너머에도 또 세계가 있습니까?"

"성문이 있지요."

"소리 성, 들을 문?"

"맞습니다. 그곳은 부처의 음성을 들은 이들, 곧 불교의 교설을 듣고 스스

로 해탈하기 위하여 정진하는 불제자들이 모여 사는 세계올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말씀 끝에 지자를 붙입니다."

"오호, 성문지..."

"그 다음 단계는 연각이온데, 불교의 가르침을 듣고 도를 깨닫는 성문과는

다르게, 부처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깨친 분을 연각이라 합니다."

"어떻게 스스로 깨칠 수가 있습니까?"

"홀로 인연의 법칙을 잘 관찰하여 깨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연각지는 독각

이라고도 하는데, 독성의 세계를 일컫는 말씀입니다."

강호는 타오르는 눈빛으로

"독각...독성..."

이라는 말을 되뇌어 본다.

지금까지는 한번도 들어 본 바 없었던 불교의 하늘이 전혀 낯설지 않게 느

껴지면서, 그 어떤 광휘로 가득 차 빛을 발하는 세상의 그윽하게 황홀한

광명이, 강호의 가슴을 환히 비추는 것만 같아, 빛이 어린 눈빛이 일렁인다.

오늘을 잊지 못하리라.

"그 위에도 세계가 있습니까?"

꿈꾸듯 묻는 젊은이의 음성에 도환은 그만 느꺼워진다.

(함께 가고 싶은 사람.)

느꺼움을 누르며 도환이 대답한다.

"물론입니다. 연각의 위에는 보살이 계시지요."

"보살...이라면?"

"부처에 버금가는 성인이시지요. 보리살타를 줄인 말씀입니다. 이는 이미

부처와 같은 경지에 든 지혜의 구도성자로서 불교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인

간상으로 봅니다. 아시는 보살의 이름이 있으신가요?"

강호는 순간 잠시 멈칫한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한 마디씩 짚는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미륵보살, 문수보살, 약수보살...보현보살."

"장하십니다."

보살은 능히 스스로 깨달아 깨침을 이루는 거룩한 존재들이지만, 부처가

될 권리마저 뒤로 미루고 윤회의 이 세상에 머물기 자원하여, 일체의 중생

을 모두 교화 구제하겠다는 대원을 발하매,

"보살은 오로지 중생에 대한 생각뿐이다."

고 선가귀감에는 씌어 있다.

하화중생의 큰뜻을 서원으로 세워, 자신이 쌓은 선근공덕을 아낌없이, 가련

한 중생을 위하여 베푸는 회향이 보살의 본질이다.

"보살은 중생을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뱃사공 같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중생을 수레에 태워 열반의 언덕으로 시렁 나른다는 성문, 연각, 보

살의 역법을 삼승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성자들은 끝끝내 부처에 이르지는 않으십니까?"

"아니요, 결국에는 보살들도 불과를 성취하시지요."

"아아."

"그 다음이 드디어 구극인 부처의 세계, 불입니다."

이 말을 나직이 밀면서 도환이 무슨 까닭인지 호르르 한숨을 내쉰다.

여기에 이르는 길이 멀어서였던가.

아니면 아직도 너무나 아득히 남아서였던가.

도환은 고적해 보였다.

"소승이 그림으로 한번 그려 보여 드리리까? 십계를."

장삼자락을 앞으로 모두어 걷으며 천왕문 바닥에 쪼그리고 앉는 도환을 따

라 강호도 엉겁결에 무릎을 꺾어 구부린다.

천왕문에 들어서던 아낙 하나가 복판에 마주앉은 이 둘을 보고 머뭇거린다.

그러나 이윽고 개의치 않으면서 사천왕한테 꿉벅꿉벅 서둘러 절을 바치고

는, 여전히 거기 앉아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는 이들이 아무래도 의아한

지, 천왕문을 벗어나다 말고 힐끗 뒤돌아본다.

아무러나, 도환은 발치에 부스러지는 조그만 돌조각 한 개를 주워들고, 흙

묻은 것을 훅 불어 버린 뒤, 위로부터 아래로 주욱 명쾌한 직선을 내리긋

는다.

하늘이 뜬다.

"자, 이제 사천왕이 어디쯤 있는 하늘인지 짚어 보시겠습니까?. 바로 우리

가 지금 앉아 있는 이 하늘 말입니다."

도환은 그림에서 돌조각을 떼어 내며 천왕문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인다.

만면에 웃음이 번지는 도환의 얼굴이 홍조를 띠고 있다.

"바로 여기."

저 앉은 자리의 눈앞에 그려진 도표에 '인간'이라는 글자가 쓰인 자리 바투

위쪽을 강호가 손가락으로 슬쩍 짚는다.

"예, 거기. 그곳, 욕계 일천. 사천왕천에 이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 동,

남, 서, 북 사천왕이 계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첫문에."

아까 들은 말을 되새기며 강호가

"맞는가."

하는 눈으로 도환을 바라본다.

도환이 고개를 깊이 주억인다.

"한번 천계로 올라갔다가도 거기에 갈 만큼 지었던 착한 일 한 인연 공덕

이 다하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도 있단 말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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