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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1권 (5)

카지모도 2026. 2. 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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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거리더니 한 사내가 치켜들었던 몽둥이를 내리고 나서며 하겟말을 고쳐서 물었다.

"재인패들 같은데..... 누가 행수시우?"

"내올시다."

손돌이 대답했다.

"이 마을에 어디 연고 닿는 데라두 있수?"

손돌 대신에 어름꾼이 나섰다.

"있다마다요, 이 동리 선다님께서 풍류를 즐기셔서 저희가 해마다 찾아와 놀아드렸습니다."

"선달? 큰나리, 작은 나으리?"

"저어 ....."

반가워서 나섰던 어름꾼은 머뭇거렸고 동네장정이 말했다.

"아마 감나무집 박선다님인 모양인데..... 그 어른 작년에 작고하셨소. 그리고 시방은 우리

동리에 우환이 있어놔서 외객은 받질 못하오."

"그 댁에 가면 곧 숙박을 허락할 겁니다. 제가 작은 서방님과두 안면이 있습니다." 장충

도 야속하여 조금 노기를 띠워서 말하였다.

"에이 여보슈! 설혹 생판 모르는 동리에 왔다 해도 이런 법이 없고, 우환이 있다면 필시

이 이 고장에서 있은 일이니 우리와는 관계가 없는 일인데.....더구나 친면이 있는 집을 찾겠

다는데두 부둑부둑 축객하려 든단 말이오. 이 추위에 사람이 죽어가는데 촌 인심이 그럴 수

가 있소?"

"그럴 만한 사연이 있수. 여기 그 댁 하인이 있으니 직접 물어보시구랴."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나서는데 어름꾼이 자세히 살피고 나서 반색을 하였다.

"인제 살겠네. 날세 나..... 서방님두 안녕하시구....." "글세 모른달 수야 없지만서두..... 지

금 그럴 형편이 아닐세. 작년 여름에 이 일대에 염병이 크게 돌아서 우리게에 온통 떼과부

가 났지. 우리 댁서두 큰선다님 작은선다님 모두 돌아가셨네. 헌데 이 동네보담 지체두 낮구

비천하게 사는 남짓말놈들이 동네를 깔보구 과수 겁간을 들어오지 않았겠나. 어젯밤에는 작

은아씨가 아예 홑이불에 싸여서 오리쯤 갔다가 장정들이 뺏어왔지. 그런 일루 모두들 외방

객을 꺼린다네." 광대 패거리들은 모두 낙망하여 어두운 하늘만을 바라보고 섰는데, 한 사

람이 보가가 딱했던지 동네 어귀에 있는 물방앗간이라도 괜찮다면 안내를 해주겠다는 것이

었다. 급한 김에 남의 칙간이건 안방이건 가릴 틈이 없어, 우선 이 진눈개비와 바람을 피해

야 하였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따라서 방아실이 있는 개천의 상류로 올라갔다. 물받이

바퀴는 시내를 떠나 빼어져 있었고, 어둠속에 물 흐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방아실 문을 열

어주며 마을 사람이 말했다.

"저기 쌓인 짚하구 나무루 불을 때시우. 그 대신 집을 뜯거나 불을 내면 큰코 다치리다."

"고맙수."

우선 진눈깨비를 피하니 천만다행이었다. 헐어내린 흙벽의 수수깡 사이로 찬바람이 몰아

쳐 들어왔으나, 여러 사람이 들어서니 헛간 안은 갑자기 훈훈해진 듯하였고, 그런대로 밤을

지샐 만은 해 보였다. 바람이 들이칠 적마다 문과 기둥의 아귀가 엇갈려 삐걱대는 을씨년스

러운 소리가 들렸다. 나가려던 마을 사람이 그래도 안된 생각이 들었던지 돌아서서 물었다.

"어디 길양식들은 있으슈?"

"예, 있긴 있소만..... 식기가 모자라니 좀 빌려주셨으면 고맙겠수." "내 가서 상의를 해가

지고 요깃거리라두 좀 가져오리다." "그렇다면..... 정말 고맙겠수."

그들은 잠시 볏짚 위에 늘어져서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듣고 있었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제기랄 놈의 동네 같으니..... 온갖 잡귀 역귀 제신 장군들이 몽땅 몰려와서 폐촌될 동네

같으니라고, 이런 괄시 또 처음일세."

"이 사람아 광대는 축객을 당해두 춤을 춰야 하는 법이여. 그리 악담하는게 아닐세." "에

이 모르겠수. 어서 죽어 청계씨나 되어갖구설랑 젯밥이나 얻어먹으러 다니구 싶수." 이렇게

자탄이 오고갈 때, 장충은 혼절한 여자의 손발을 열심히 비벼주었고, 손돌은 짚을 밀어내고

마른 땅 위에 불을 살구었다. 포근한 불빛이 땅바닥에 깔리면서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찼다.

여인이 정신이 들었는지 다시 신음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약간 움직였다. 장충은 반가워서

여자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정신 차리슈, 정신 차려요!"

한참이나 반응이 없던 여인이 몸을 뒤채면서 가냘프게 중얼거렸다.

"수고스럽지만..... 자리를 좀 만들어주시겠어요? 심상치 않은 게, 아이를 낳을 거 ..... 같아

요."

장충은 당황해서 벌떡 일어나 동료들을 벽이 허물어진 쪽으로 모두 내쳐 몰고, 아늑한 구

석에 짚덤불을 끌어모았다. 손돌이 혀를 찼다.

"큰일났군, 겪어봤어야지....."

여인은 진통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었고, 구슬땀이 이마와 콧등에 송송 배어나와 있었다.

손돌이 어찌할 바를 몰라 여인의 머리맡에서 서성대는 장충에게 말하였다.

"동네 사람이 올 텐데 해산 도울 노파나 청해보게나."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겠수. 허지

만 소문이 나면 해주에 이르기도 전에 잡힐 게요." "어쩌려나?"

"내 한번 받아보지요. 어찌한다구 들은 적은 있으니까..... 사람 낳는 일인데 사람이 못할라

구요."

"우리가 도울 일이라도 있나?"

"물이나 좀 데워주오."

마을 사람 몇이 오지 함지에다 국밥을 넣어서 가져왔다. 그들도 아무리 광대패라지만 안

면 있는 사람들을 마을에 들이지 않고 방앗간에 재우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이거 참 송구스레 되었소. 마을에 근심이 있는 탓이니 어서 요기들이나 허슈." "저 아픈

분은 무슨 병이우?"

그들은 구석에 쪼그려 누운 몸집 작은 사내를 가리켰다. 손돌이 대수롭지 않게 여인을 돌

아보고 나서 말했다.

"나루에서 찬 떡을 먹고 관격이 들린 모양이니 곧 나을 거외다." "우리 마을 훈장님께서

약을 다소 준비해 계신데, 체할 때 먹는 평위산 한첩 달여 보내드릴까....."

"염려마슈. 이제 우리는 곧 잘 테요."

"그럼 편히들 쉬시오. 낼 아침에는 선다님 댁에서 조반 대접을 잘해 주실 거요. 밝아서는

객을 들여도 괜찮다니....."

마을 일꾼들이 돌아갔다. 손돌네 패는 늦저녁을 들었고, 여인에게도 국밥을 권했으나 도리

질을 하며 들지 않을 뜻을 보였다. 여인은 자기의 저고리 소매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밖으

로 터지려는 신음을 삼키는 것 같았다.

"좀..... 도와..... 주셔요."

여인이 나약하게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충은 우물쭈물하는데 손돌이 두 사람을 불

러 장삼을 붙들고 돌아서 있게 하였다. 가리운 옷 안에 장충과 여인만이 남게 되자, 여인은

그의 옷자락을 꼭 잡았다. 충은 두렵고 당황하여 연신 침만 넘기고 있었다.

손돌은 입속으로 중얼중얼 삼신기도를 드리며 앉았고, 다른 자들은 비워진 오지 함지에다

물을 그득히 부어 데웠다. 총각 광대는 기도를 하여도 남들이 다 듣도록 타령조로 느적지근

하게 주워넘겼다.

"어진 삼신할머니, 앉아서 구만 리 장천을 넘겨보시고, 서서 천하에 굼벙이까지 굽어보시

는 삼신 할머니, 태워주신 아기 기왕지사 떨굴 양이면 궁둥이 허리뼈를 널푼하게 열어주고,

허벅지 두덩살도 찌이꺽 열어주고, 캄캄 힐흑 음지를 휘황 광명 양지로 열어주어, 그저 지에

미 욕보이지 마시고, 가뭄에 비오는 듯이, 논에 물을 내듯, 장마에 해 나오 듯, 배 꼭지 떨어

지듯, 사흘 변비에 곱똥이 물똥 되듯, 그저 좍좍 쑥쑥 떨어지게 해줍소사." 여인의 다급한

비명이 들리더니 조용해졌는데, 옷자락을 들고 돌아섰던 자들이 고개를 돌려 들여다보고 나

서 한숨을 내쉬며 끄덕였다. 조바심을 치고 있던 손돌이 놓칠세라 그들을 다그쳤다.

"어떻게 ..... 낳았나?"

"쉬이 ..... 지금 충이가 이빨로....."

그자는 태를 끊어내는 시늉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턱을 옆으로 젖혔다.

"끊었어? 거 피는 흝어내고, 입속에 들은 건 내뱉으면 안되네, 꿀꺽 삼켜야지." "꿀꺽 삼

키라네."

"삼켜야 애 명이 길지."

볼기 치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 아이가 힘차게 울었다. 저고리가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린 장충이 자기 개가죽 배자에 핏덩이를 싸안아가지고 일어났다. 손돌은 무릎걸음으로 주

춤하며 물었다.

"뭐야..... 뭐?"

"헤, 고추요. 그놈 울음소리 한번 요란하다."

"누가 듣겠네."

"어디..... 정말 아들인가..... 나두 보자."

불안에 짓눌려 있던 광대들이 장충의 두 팔 좌우로 몰려들어 희닥거리기도 하고, 어르고

만져보려고 손가락을 내미는 자도 있었다.

"부정 탄다! 저리 못 비켜?"

"압다 누가 잡아먹는대. 조것 보게, 발톱두 있네."

"어이구우! 거 뉘 자식인지 연장 하나는 잘 생겼다." "이놈아 축수를 해주도 첫마디에 연

장 소리가 뭣 하는 수작이여. 네 따위 사당 오입쟁이가 될까봐?"

"그저 사내는 밥 잘 먹고 연장 세야 하느니라."

"살결이 거무틱틱하고 입이 크니, 근석 걸찍한 수광대 감이로구나." "아니야, 털이 많고

뼈다구가 억세어서 바구리를 잘하든지 씨름을 잘하든지, 좌우지간에 왈짜가 되겠는데."

"떠들지 말어, 이 자식들아."

"낄낄낄, 압다 불알 찬 산파 주제에 뻑시기는 ..... 젠장할." "이놈아 니 애비두 받아낸 사

람이여. 네놈 대갈통이 함지박만해서 뽑는 데만 석달 열흘이 걸렸다, 낄낄낄."

"다 전생에 연분이 있는 게라니."

"흰소리 작작 해라."

"도수장에 매여서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데 암만해두 낯이 익더란 말야. 고놈이 천상 장충

이 상판이여."

"낄낄 낄낄."

이렇게들 희희낙락하는 중에 손돌이 장충의 땀에 젖은 이마와 귀밑을 닦아주며 자꾸 벙글

거렸다.

"정말 욕봤네 욕봤어, 충이는 의인이여."

광대들의 소박한 인정과 태어난 아기의 맑은 울음으로 뭉쳐진 훈훈한 기쁨이, 삭막하고

을씨년스럽던 방앗간 안에 가득히 번졌다.

"가리웠던 옷자락은 여인의 아랫도리에 덮여졌는데, 하혈이 심한지 밖에까지 붉게 배어나

왔다. 여인은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헐떡이이고 있었다. 손돌이 아이를 받아 안고 함지의

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조심스레 씻겼다. 장충은 멀건 국밥을 들고 여인의 머리맡에 앉았으

나, 그 여자는 얇아 보이는 눈꺼풀을 내리깐 채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인의 이마에

손을 대어보니 냉기가 있는데, 산후별증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국물이라두 좀 넣어주리까?"

장충의 말에 여인이 눈을 가느다랗게 열었다. 입술이 하얗고 눈에 총기가 없었다. 여인은

실눈을 떠서 장충을 올려다보고는 두려운 듯이 제 어깨 아래를 살폈다. 장충이 물었다.

"애기 말이우?"

여자가 그렇다고 눈을 내리깔아 보였다. 장충은 손짓하며 웃었다.

"저기 ..... 아들이오, 아들?"

여자가 떨리는 손을 가슴 위에서 치켜드는데, 장충이 손을 가져가니 움켜쥐며 바르르 떨

었다. 그리곤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눈두덩에 솟은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두런거리던 광대들도 조용해지고, 손돌이가 배자에 싸인 아기를 안아다 여자의 옆에 뉘어주

었다. 여인은 아기의 착 달라붙은 머리털 몇오라기를 손가락 끝에 쥐어보았다. 여자는 한참

이나 눈을 내리깔고 있었는데 표정에는 변화가 없고, 다만 눈물이 눈꼬리를 지나 귀밑머리

를 적셨다.

새벽녘에 여인은 좀 나아졌는지 고개를 움직이기도 하고, 총기가 살아난 눈빛으로 아이를

보기도 하더니, 입을 움직여 무엇인가 말하려고 애를 썼다. 장충이 오물거리는 여인의 입가

에 머리를 숙였다.

"그런 맘 아예 먹지 마슈. 살아야지..... 저렇게 잘난 아들을 낳고 왜 죽는단 말유. 내가 해

주까지는 무슨일이 있더라도 데려다 줄 테요. 뭐라구? 애 아버질 못 찾으면..... 우리 같은 걸

립 패거리가 온전히 기르기나 하겠수. 댁네나 마찬가지 신세인데. 자, 자..... 이 국이나 좀 들

고 기운을 내슈. 글세 알구 있다니까. 해주 수양산....." 여자가 걸그렁대는 갈라진 목소리로

겨우 몇마디를 던졌다.

"마 ..... 망해사..... 역노...... 신계 사람..... " 여자의 손이 툭 떨어지고 검은 눈동자가 고정

되었다. 마치 가까스로 이어왔던 생명력이 아이를 무사히 출산하고 나자 심지가 닳아버린

등잔의 마지막 불티처럼 사그라진 것만 같았다. 장충은 장삼자락을 펴서 여자의 안면을 덮

었고, 손돌이 죽은 여자에게서 아기를 안아 불 곁으로 데려갔다. 아기는 장충의 개가죽 배자

에 싸인 채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허탈하게 여인의 곁에 앉아 있던 장충이 중얼

거렸다.

"참으로 인연이 모질기두 허우."

"그러게 말일세. 삼십삼천 도솔청왕께서 이 적막 천지에 하필이면 우리에게 살덩이를 던

져주셨으니....."

"나두 아마 이렇게 태어났을 거요."

"아비 되는 사람을 못 찾게 되면 어쩔 텐가?"

"우리 광대산 재인 말루 데려다 기르지요."

장충은 어쩐지 자기의 출생에 관하여 생각이 났고, 지나온 세월들이 서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는 제 부친이 누구인지 어디 살았는지 전혀 몰랐고, 어머니조차 장충의 아버지가 딱히 누

구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장충의 어머니는 색줏집 갈보보다도 더럽

고 천하다는 여사당이었던 것이다. 남의 머슴이나 장돌뱅이나 고작해야 관노 녀석들을 상대

로 몇푼 안되는 행하를 받고, 하룻밤 안겼다가 정처없이 다른 고장으로 떠나는 신세였었다.

어머니의 행하를 빨아 먹으며 거사질을 했던 사내만도 대여섯이 갈렸으니, 그가 숱한 남

자들 중 누구의 자식이었는지 모친이 모르는게 당연한 일이었다. 당신의 동무 되는 사당패

들이 둥그렇게 서서 치마폭으로 가리고 밭두렁에다 장충을 떨구었던 것이다. 장충의 어미는

길에서 낳은 갓난아기를 재인들게 맡겨 놓고는 서너 달씩 각처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었다.

장충은 열살 남짓까지 절의 보살 손에서 자라다가 광대산으로 옮겨가 무동 노릇을 하며 잔

뼈가 굵었었다. 장충은 자라나서 두 번 먼발치로 그의 어미를 보았고, 마지막에는 모가비 되

는 사내가 모친이 강원도 땅에서 노중 객사했다며 머리카락 한 줌을 쥐여 주던 것이 어머니

에 관한 기억의 전부였다.

장충은 그의 팔 안에 갓난애의 부드러운 약동이 전해오는 것을 느끼며, 이상스레 새로워

지는 서러운 마음으로 이 새빨간 살덩이를 안고 있었다. 손돌이 불쑥말했다.

"자네 내자두 좋아하겠군."

"데려다 기르면 십상이지만, 해주까지 백여 리 길에 거기서 문화까지가 같은 거리인데.....

차라리 자신 없으면 해주에 맡길라우."

"해주에 우리 연고라야 기방이 고작 아닌가?"

"그애들 중에 양자 넣어줄 사람이 있을 겁니다. 관기로 나가 있다가 부잣집 권문가에 첩

으로 들어앉은 퇴기들이 많지 않습디까?"

"들일라구 할까아."

"첩으로 들어앉은 퇴기란 게 원래 자손이 바르게 마련이뇨. 아무리 서자란들 대갓집 애첩

의 양자나 되어보우. 우리네하군 아예 팔자가 갈리는 게유." "아무튼, 제 애비를 찾아야 하

네. 핏줄이란 무서운 게야." "딴은 그렇소. 해주까지 가서 결정을 내리지요. 길이 멀어서 큰

일이군." "이렇게 태어난 꼴루 미루어, 쉽게 죽을 놈은 아닌갑네. 가며 가며 인가가 나올

적마다 동냥젖이라두 돌려가며 얻어먹이세."

먼 데서 닭 우는 소리가 잇달아서 들려왔고, 개 짖는 소리도 들렸다. 그들은 비로소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빨리 이 마을에서 떠나야 함을 깨달았다. 손돌이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깨기 전에 어서 가야겠네."

"그러지, 빨리 행장을 꾸리세."

장삼으로 덮어놓은 여인의 시체를 잠시 내려다보던 장충이 혼잣말로 , "데려다가 양지바

른 곳에 묻어줘야지."

"하자, 손돌은 난색을 지었다.

"가엾은 인생일세. 그래야 뒤탈이 없겠지만. 어디 우리에게 연장이 있어야지." "산야에 아

직 잔설이 녹지 않았을걸."

"장충이 침통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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