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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1권 (6)

카지모도 2026. 2. 6.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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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겨를에 땅 파고 흙 덮고 하겠수. 우리 식대루 묻으면 되지." 광대패는 그들의 동료

가 길을 가다가 죽으면 길에다 얕게 파묻고 잔돌멩이들을 그러모아 덮어주는 것이 상례였

다. 지나는 해인들은 이 무덤을 알아보고 가엾은 광대의 넉을 위로할 겸, 행로에 재앙도 물

리칠겸 하여 저마다 돌멩이를 던져주고 가는데, 얼마 안 가서 길가에는 자연스럽게 돌무더

기의 탑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광대가 죽은 자리에는 창부라는 익살맞고 심술궅은 도깨비

가 지랄병을 물려줄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법이었다. 길이란 광대들이 태어나는 곳이자 살

아가는 동안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며, 죽는 곳이며, 묻히는 곳이었다.

손돌과 장충의 수작을 곁에서 듣고 있던 어름사니가 제안을 하였다.

"죽은 사람 장사 지내는 것보담두, 산 애기 먹여 살릴 궁리를 해둬 야지. 돌림으로 젖 얻

어먹이는 일이 쉽진 않을 게유. 잠깐만 지체해서 우리 길양식으로 지닌 귀리를 내어 미숫가

루라두 준비해둡시다."

"그러세, 추렴젖을 못 얻어먹이면 꼼짝없이 꽃귀신 만들리." 그들은 하늘이 부옇게 되었

을 때에야 자갈목마을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아기는 손돌이 찬바람을 쐬지 않도록 품안

깊숙이 감싸안았고, 장충은 지게를 지고 갔다. 산 사람을 메고 왔던 지게 위에 이제는 거

적으로 말아 묶은 시체를 메고 그들은 싸늘한 새벽길을 걸었다.

얇게 덮였던 진눈깨비가 얼어서 바스락대며 미투리 틈을 비집고 부서졌다.

연안읍을 돌아서 봉세산 줄기가 주지곶으로 내닫는 고개 마루턱에 그들은 여인의 시체를

묻었다. 아기는 털배자 안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시체 위에 피뭍은 장삼을 덮어주고

그 위에 거적 한 장을 둘둘 말아 묶은 다음에 얼어붙은 흙을 덮고, 굵직한 돌맹이들을 얹었

다. 마지막으로 표적 돌을 얹으면서 가객인 손돌이 나직하게 명복을 빌었다.

"허허! 가는구나, 훌쩍 떠나가는구나. 한도 많은 험한 세상, 몸은 두고 넋만 간다. 넋이야

넋이로다.

쉬어 가오 쉬어 가오, 몬지 같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떠나갈 제, 일망대해에 스러지는 거

품이며, 장강 천리에 흘러가는 잎이로다.

설어라 서러워라, 인생 일장춘몽인데 하룻밤을 울고 가는 두견새가 네로구나. 에헤, 넋이

야 넋이로다."

키가 껑충한 소나무들이 이리 구불탕 저리 구불탕 총총한 숲을 이룬 봉고개 마루턱에 어

느 한 많은 비녀의 돌무덤이 이루어졌다. 그 여자의 보퉁이 속에 있는 것은 아마도 역노 보

의 신물인 듯, 삼베에 여러 겹으로 싼 은가락지 하나와 포목 몇필, 엽전 두 꿰미, 그리고 갈

아입을 무명 저고리 치마가 한 벌이었다.

그들이 봉고개를 내려올 때 아기는 우연히도 그참에 깨어나서 맹렬하고 왕성하게 울며 보

챘는데, 마치 제 어머의 초라한 육신이 묻힌 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듯하여 광대들의 정 많

은 심금을 울려주었다.

안개가 골짜기마다 내려 퍼져서 떠오르는 햇살에 흩어지고 있었다. 손돌네 패는 해주를

바라보고 계속 걸었다. 아직 정월이라 장꾼들이 드문 노상은 한적하였다. 그들과 낯이 익은

마을에서는 놀다 가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손돌네는 지체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그

들은 샛다리에 이르러 부근 창고지기의 아낙에게서 동냥젖을 얻어먹였다. 아낙네가 말하기

를, "내 이렇게 젖 빠는 힘이 세차고 많이 먹는 아기는 처음 보았소." 했으니 아기가 건강

하여 별탈이 없는게 다행한 일이었다. 그날 밤이 되어서야 손돌 일행은 해주에 도착하여 용

당포에서 묵었다. 장충은 패거리가 떠나기 전에 아기 일로 하여 아침 일찍 수양산에 올라갔

다.

망해사는 산성의 후미진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과연 신계 사람 보를 예전부터 잘 안

다는 노승이 있었는데, 그를 만난 지 수년이 지났고 아직 온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 추

노가 급박해져서 관서 방향으로 계속 올라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노승은 장충에게서 보의

아내가 노중 객사햐였다는 말을 듣자, 나무관세음보살 하고 나서 말하였다.

"아기를 노승에게 맡기십시오. 산 아래 신도의 집에 기탁하겠소이다." "그럴 필요는 없습

니다. 저두 집과 가정이 있는 몸이니 제가 데려갈까 합니다. 다만 아버지 되는 사람에게 이

애를 전할까 했지요."

장충은 막상 아이의 혈육이 없음을 알고는 도무지 남에게 내맡길 수가 없었다. 노승은 고

개를 끄덕이며 합장을 하였다.

"뜻이 그렇다면 천만다행이오. 인정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복을 받으리다." "우리두 처음

에는 아이 일이 난감하여 어디 소실댁의 양자로나 넣을까 했습니다. 걱정은 다른 것이 아

나라, 저희도 천업으로 빌어먹는 터에 자라서도 저희 같은 천생이 되겠기에 말입니다."

"정이 두텁다면 누구 손에 자란들 어떻겠소. 더구나 그것은 부처님께서 점지한 인연이요."

"예, 하루 사이에 이 어린것과 뗄 수 없는 정이 들어버렸습니다." "어디 사는 뉘시오?"

"문화 광대산 재인말에 사는 장충입니다."

"애 아비에게서 기별이 온다면 틀림없이 전해주리다." 장충은 길에서 맺은 이 기이한 인

연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아마도 구월산의 산신께서 그들 부부의 소망을 가엾게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딸 하나를 낳고는 여태 태기가 없는 장충의 처는 무녀였다. 그러니 자

연히 관계가 그리 잦지 못하였고 후사를 걱정하던 참이었다. 장충은 아내가 이해하도록 잘

타일러서 이 아이를 제 아들로 키을 생각을 해두었다.

구월산 줄기가 송화와 문화를 가로지르고 수렛고개에 이어진 산이 광대산이었다. 까막내

를 건너 십여 리 들어가면 논은 없고 고작해야 화전이나 일굴 정도의 척박한 땅이 골짜기

사이에 틀어박는데, 빽빽한 송림 사이에 광대들이 모여 사는 삼십여 호 남짓의 마을이 몇군

데 있었다. 부근 현의 사람들은 이곳을 재인말이라 불렀다. 손돌레 패거리는 대보름놀이로

비웠던 마을에 돌아오며 날라리를 불어 동네에 알렸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들 장승백이까지

마중 나와서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 마을에서 세 패거리가 나갔는데 손돌네는 가장 늦게

돌아왔던 것이다.

장충의 처는 이미 해주에서 재인들 편으로 전해진 풍문을 듣고 그간의 사연을 대충 알고

있었다. 장충의 처는 술 권할 사이도 없이 아이를 빼앗아 위아래로 어르면서 기뻐했다. 그들

부부는 낙산암에 올라 산신각에 축수를 드린 뒤에 시주를 바치고 이름을 지었다. 성은 장충

의 장씨 성을 따르고, 산의 정기를 타서 믿음직하고 꿋꿋한 사내가 되라는 뜻으로 길할 길,

메 산 이라 불렀다.

길산의 나이 칠팔세 남짓에 장충은 수광대가 되었고,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해서지방을

떠돌며 살았는데, 이때부터 길산은 무동으로서 이미 뛰어난 광대의 자질을 보였다.

 

2

작은 재인말은 까막내를 건너 광대산의 계곡이 시작되는 송핌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개

울가이어서 무성하게 자란 갈대밭 너머로 개간한 땅이 늘어나 이제는 계곡의 위쪽에 있는

큰잿말보다 호수는 적지만 조밭의 경작지는 넓었다.

손돌이가 문화 광대들의 총대가 된 것은 어언 십년이 넘었고, 그는 연희를 떠나지 않게

된 다음부터는 늘 작은 잿말에 틀어박혀 농사나 짓고 틈틈이 광대의 어린 자식들에게 기예

를 가르치며 소일하고 있었다. 그는 늦게 봤던 외아들을 잃고 나서 재작년에 상처까지 하게

되어 재인말 사람들이 모두 동정할 정도로 외로운 신세였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 묘옥이가

밥시중도 들어주고 빨래도 해주며 말상대도 되었으니 손돌 노인께는 늘그막에 무남독녀를

느닷없이 점지받은 거나 한가지였었다. 그렇게 호의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젊은

축들은 손돌 노인과 묘옥의 사이에 무슨 별스런 관계라도 있는가 싶어 입방아를 찧곤 했는

데, 남녀 모두가 묘옥의 뛰어난 미모에 대하여는 의견이 일치했던 것이다.

손돌은 신천 우산포 부근의 어루리벌에 사는 심부자 댁에 잔치 초대를 받아 갔었다. 심부

자는 원래는 남의 머슴살이로 출발했다가 중농으로 일어서고 다시 관전의 소출을 관리하는

고직으로 있다가 둔별장이 되면서 일년에 곡식 백오십여 석씩 착복해서 일시에 부농으로일

어선 사람이었다. 그가 남의 머슴을 살 때 손돌이와 다정히 지내더니 둔별장이 된 뒤로는

다시 안면을 바꾸었다가 피차에 함께 늙어지고 환갑을 맞게 되자 친구 겸 광대가객으로 자

리도 흥겹게 할 겸 하여 새삼스레 불렀던 것이었다. 불려간 손돌은 워낙 상대의 신분을 잘

알지만 이제는 참봉직까지 공명첩으로 얻어낸 사람에게 하게도 놓지 못하고 끝내 불편한 자

리를 지키다가, 어둡자마자 원행을 핑계로 빠져나왔었다.

잔칫집에서 들려준 땅만 비추는 작은 발등거리불을 비춰 들고 손돌은 객사 화산관 앞에

이르렀다. 훈련원과 군기고로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 앞에 여러 채의 색주가가 있었고, 풍

악소리와 계집들의 간드러진 웃음이 요란했다. 지금 밤길을 걸어 추산 마루턱을 넘어간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었으나, 손돌은 심가의 집에 도저히 하룻밤도 묵지 못할 정도로 마음

이 불편하였던 것이다. 이왕 내친걸음이니 문화에 가서 옛날에 함께 한량굿으로 기방을 드

나들던 퇴기 소향의 집에 들를까 하는 마음이었다. 색주가의 수박등 매달린 홍문 앞을 지나

려는데 안에서 수군대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무엇인가 허연보에 싼 것을 거적에 말

아 멘 두 사내와 포주인 듯한 색주가 기생어멈이 쫓아나오는 것이었다.

천사산 깊은 골에다 던져버리구 오게.

술상 봐놓구 기다리슈.

그래, 그 골칫거리만 처분해주면 해골머리가 개운할 거여.

수작을 주고 받더니 앞뒤로 거적대기 만 것을 둘러멘 사내들이 성큼성큼 읍내를 빠져나가

는 것이었다. 손돌은 짐작한 바가 있어 두 사내의 뒤를 멀찍이서 따라갔다. 죽령방 부근에

이르러 사내들은 천사산 마루턱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손돌 노인도 그들을 따라서 산길로

올랐는데 중턱에 이르니, 홀연 길이 텅 비어 그들의 자취가 보이질 않았다.

웬놈이 뒤를 밟느냐?

하는 소리가 버럭 나더니 숲 양쪽에서 두 놈이 한번에 달려들어 손돌 노인을 덮쳤다. 기

운 쓸 것도 없이 노인은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한놈이 머리만한 돌을 들어 허리를 부숴뜨릴

기세로 번쩍 쳐들었다.

손돌은 정신이 아뜩해서 두 손을 저으며 고함쳤다.

잠깐 내 말 들으시오.

말은 무슨 말을 들어.....

연유나 압시다. 뭣 땜에 이러시오?

곁에 섰던 자가 고개를 숙여 손돌을 찬찬히 살피더니 말했다.

노인인데..... 그만해두지.

손돌이 놓치지 않고, “나는 이 고장 사람도 아니고 문화에서 묵어 갈까 하고 길 가던

사람이오. 당신네가 도적이 아니라면 행인에게 이러는 까닭이 무엇이오?“

“이 고장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그들은 잠시 속삭이며 무엇인가 의논을 해보더니 한 사내가 말했다.

그럼 길을 가슈.

손돌이 그제야 일어나 옷자락을 털고 꺼진 채로 들고 왔던 발등거리를 찾아 펴고 부러진

몽당초를 찾는 체 지체하다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남의 눈을 꺼리는 일이 있나 본데..... 혹 도움을 드려도 좋겠소.?” 그들이 겉보기엔 기세가

사나울망정 차림새로 보아 술집 중노미나 머슴들이 분명하니 무턱대고 사람을 해코지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의 일에 상관 말구 길이나 가오.”

“젠장 공연히 놀랐네. 채 죽지두 않은 사람을 내다 버리라니. 이거 사람이 할 짓이야.....”

“인석아 말 조심해..... 어서 가라니까, 이 늙은이가 경을 칠려구 이래.”

그러는 중인데 그들이 길섶에 내려놓았던 거적이 흔들리면서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려왔

다. 한 녀석이 투덜거리며 고개 아래로 내빼는데, “난 모르겠다. 니가 알아서 버리든지 파묻

든지 해라.“

다른 녀석도 겁이 난 듯 거적을 피해 돌아섰다.

“어라! 저놈이..... 어이 여보게.....”

두놈이 차례로 달려 내려갔다. 손돌이 거적을 헤쳐보니 속곳 바람의 여자가 실신한 채 늘

어져 있었다. 몸이 뜨겁고 숨을 쉬는 게 아직 살아 있음이 틀림없었다. 손돌은 잠깐 망설였

다.

그도 고개를 쫓아 내려가며 숨찬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여보, 여보, 내 말 좀 들으시우, 뒤탈 없게 할 터이니..... 내 말 들어요.”

어둠속에서 마주 외치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뭐요.....”

“아직 죽지는 않은 사람인데 인명을 살리구 봅시다.”

“곧 죽을 거요. 내일 아침엔 시체가 됩니다. 거 역병 앓은 사람이라 버려두 무방해서 버린

거요.“

“나는 의원 해먹는 사람이오. 회생시킬 수가 있는데 문화까지만 업어다 주겠소? 열 냥 드

리리다.“

“정말..... 열 냥 있수?”

하는 목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과연 그들은 돈 열 냥 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해서 되돌

아온 것이었다.

“문화에 가서 모른다면 안되니..... 우선 돈부터 내우.”

“그러지, 하지만 닷 냥 먼저 주리다. 남은 닷 냥은 문화 가서 드리겠소.”

“우리두 뒷맛이 썩 좋진 않았는데 홀가분하게 됐군.”

두 사내는 멋쩍은 듯이 거적대기를 들치고 여자를 홑이불에만 싸서 업고 손돌의 뒤를 따

랐다. 맨몸으로 따라오는 사내가 손돌의 곁에 서더니 변명조로 중얼거렸다.

“쥔 여편네가 어찌나 극성인지 할 수 없이 나섰지요.”

“색주가의 여종이오?”

“아니우. 신천서 그래두 제법 인물이라는 창기입니다. 헌데 두어 달 전에 겨드랑이에 종창

이 나더니 시방은 가슴께까지 온통 번져 버렸답니다. 계집이야 흔천이고, 벽촌 농가에 가면

서로들 사가라구 아우성인데 의원을 부른답디까? 색주가 인심이 혹독하지요. 인사불성이

된 것을 골방에 사흘쯤 처박아 두었는데, 우리 주모가 송장 치겠다며 아무도 몰래 산에 갖

다 버리라구 하잖습니까. 그러니 그 집구석에서 밥 빌어먹는 처지에 우리가 어쩝니까.“

“종창이라면 멀쩡한 병인데 산 사람을 내다 버린다니 천인공노할 노릇이군.”

그들은 덕천리에 이르렀고 퇴기 소향의 집을 찾아갔다.

“우린 갈라우. 닷 냥 내슈.”

“ 테니 염려 마오. 사람이나 들여놓구 가야지.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안에서 신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중문 안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셔요?”

음 손돌이란 사람인데, 안어른 계시냐?

손돌 어른이라굽쇼?

그래, 재인말서 왔다구 여쭈어라.

하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신 끄는 소리와 호들갑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구, 오라버니가 웬일유. 읍내 출입을 다 하시구.

문이 열리면서 소복을 입은 다정한 차림새의 오십대 부녀가 나왔다.

소향이 신세 좀 질라구 왔지.

신세는 뭐..... 그런데 밖에 누구하구 같이 왔수?

응,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어서 안으로 들이시오.

두 놈이 머리와 다리를 맞들어 대청에 부려놓고 나가는데 뒤따르던 자가 손돌의 곁을 지

나며 손을 내민다. 닷 냥을 떨구어주니 어둠 속으로 내빼면서 그래도 뒤가 구린지 한마디 외쳤다.

복 많이 받으슈.

열 냥이면 계집 하나 싸게 샀수!

고연 놈들.....

손돌이 중얼거리자 소향이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어서 들어갑시다. 아니..... 온통 중치막에 흙칠이니 무슨 일이 있었구려." 소향은 원래 재

령의 관기였는데 스물여덟에 속신 하고소 맞임개 부자의 소실로 들어앉았다가 아들 둘을

낳아주고 이제 주인 잃어 삼년상을 입고 있는 중이었다. 마음이 착하고 일찍이 규중에 들

어앉아 아이를 기른 탓으로 기생의 티는 보이질 않았다. 큰 아들은 의주와 평양을 오가는

장사꾼이고 작은 아들은 약산의 철광에서 감관으로 있었다. 손돌이 대강의 이야기를 전하

자 소향은 하녀에게 아랫방에 불을 넉넉히 넣으라 이르고는 하인을 시켜 의원을 불러 오도

록 했다. 불빛에 보니 여자의 온몸과 안면이 굴곡을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부어있었고, 고

열에 들뜬 채 인사 불성이었다.

의원이 와서 맥을 짚어보고 종처를 살피고 나서 말했다.

지금 함부로 째었다간 생명이 위태하겠소. 그보다는 멍울을 가라앉이구 피가 돌도록 해야

됩니다. 나쁜 피를 고름으로 만든 뒤엔 저절로 창구가 터지지요. 우선 경락에 피가 뭉쳐 있

으니 흩어지게 하려면 뜸을 떠서 나쁜피를 잡아먹게 해야 되오. 그 다음엔 압통점을 찾아내

어 진통이 되게 침을 놓아줍시다.

질료를 마친 두에 의원은 처방한 약재를 보내겠다며 하인을 데려갔다. 처방전이 되돌아왔

는데 쇠비름 한줌과 사향, 황백 가루와 복룡간 두 냥쭝을 보냈다. 계랑네 개어 종처의 시발

점인 겨드랑이와 멍울이 섰는 가슴께로 집중해서 붙이라는 것이었다. 날이 밝아 의식이 돌

아오면 우엉씨와 감초와 딱지꽃을 한데 우려내어 따뜻이 데운 꿀물을 섞어 먹이라는 것이었

다. 그리고 냉수 찜질을 해주어야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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