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산이 할멈에게서 밥과 소채가 들어 있는 바가지를 넘겨받고 첫술을 뜨는데, 할멈이 옷
고름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것이었다.
"어째 그러우?"
"아무래두 우리 아이가 오래 못 살 것 같소."
하며 할멈은 한숨을 쉬었다.
"몹쓸 병이 들었소. 며칠 전부터 몸을 잘 쓰지 못하더니 실성기를 보입니다. 음식을 배앝
는 고로 죽을 주면 넘길까 하였으나 바닥에 자꾸 쏟아버립디다. 고사나 지내줘야겠어요. 아
마 몹쓸 망나니귀신이 씐 모양이지."
"그게 다 밖에 나가면 나을 병이우."
"옥송이나 빨리 열려서 차라리 귀양으루 내쳤으면 제정신을 찾을 텐데... 아무래도 세상엔
벌써 인연이 끊겼나 보오."
노파는 창살 속의 어둠을 향해 젖은 눈으로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아들이 죽으면 나두 아마 살지 못할 거외다. 내 들어 있는 집이 옥졸의 집인데 그 계집
에게 댁네 뒷바라지를 부탁하여 두지요."
"원 별말씀두 많으슈."
그들이 이러한 수작을 나누는 중에 뒷전에서 다투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돌아보니 양선달
이 그의 여종이 들인 밥을 남겼고 그를 두고 밥붙이 없는 주린 죄수들이 서로 밀치고 닥치
는 판이었다. 먼저 그릇을 잡은 자가 가슴에 껴안고 있었으며 비틀 걸음으로 달려든 자들이
그것을 서로 뺏으려는 중이었다.
"밥 남은 것 있수?"
길산이 묻자 할멈은 고개를 저었다.
"아예 밥 나눠줄 생각 마우. 내 코가 석자라구, 상여 목도를 거들어서 죽은 사람 삽디까?"
"할멈 입 닥치슈."
곁에 앉았던 색장이 발끈하면서 할멈에게 눈을 부릅떴다.
"아침부터 재수없이 거 무슨..."
길산이 제 밥을 조금 남겨 할멈에게 다시 내밀었다.
"여기 물을 부어 밥물이나 꺼룩하게 내어주."
하면서도 길산의 심사는 편안치 않았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지금 자기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 제 등뒤에서 굶어죽어가고 있는 자를 두고 모두들 밥때를 넘기지만 지금 이런 판국
에 굶어죽건 목 잘라 죽건 죽기는 매일반이나, 자기의 죽는 일을 앞에 두고 남의 죽음이 심
기에 걸려 밥술을 넘길 수가 없다니, 그런 불편은 밥붙이를 갖고 있는 모든 죄수들이 느끼
고 있었다. 반대로 주린 자를 뒤에 둔 그들은 더욱 식욕이 왕성해졌고 자신들의 보다 편안
한 식욕을 위하여 제 밥에서 고시레를 떠내듯이 남겨서 뒤로 밀어주는 것이었다.
길산이 노파가 짓이겨준 밥물을 들고 앓는 사내에게로 가니, 사내는 희미한 눈을 떠서 그
를 올려다보았다.
"이것 좀 들겠소?"
길산이 바가지를 쳐들어 보였으나 사내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내저었다. 길산이 무
력하게 그것을 내려놓자 다른 죄수가 아무 말 없이 끌어다가 손으로 건져서 후루룩거리며
들이마셨다. 길산이 자리르 뜨려는데, 병자가 손을 뻗어 길산의 저고리 자락을 잡아당겼다.
"응... 고맙소이다."
병자는 나약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고마울 것 없수. 오늘 아침은 속이 좋지 않아 아무래두 버릴 것이기에..."
길산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댁은 병으로, 내는 집행으로 열흘을 못 넘길 목숨들이오."
하고는 껄걸 웃었다. 병자도 하얗게 열에 들뜬 입술을 달싹이며 미소를 짓고 부드러운 표정
으로 물었다.
"뭘루... 잡혔수?"
"관원과 무뢰배를 셋이나 베었소이다."
중년의 병자는 끄덕이는 시늉을 하였다.
그가 마른 삭정이 가지처럼 뻣뻣한 손을 내밀어 길산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금년에... 몇이오?"
"예, 을미생이올시다."
"지금 거긴... 내가 나선 싸움에 되놈들꼐 끌려나갔을 나이겠군."
병자는 눈을 감고 있더니,
"후통강에서 송가라강까지 올라갔지. 오랑캐들게 강제로 끌려가서 싸웠소. 나선이란 서양
국의 별종들인데 오랑캐와 땅싸움을 합디다. 세상의 끝까지 안 가본 데가 없소. 병자년 난리
통에 태어나 태평성대에 죽는다 하지만, 이것이 태평성대는 아닌 듯하오. 댁네는 뭘 해서 먹
고 살았수?"
"하천 중의 광대요."
"나두 구경 많이 했지. 소리 잘하오?"
"잘은 못하나, 흥은 아오."
"춤도?"
"탈박놀음이 좋습디다."
"허... 그 참 김이나 매다가 땀들일 때 그늘에서 탁배기 한잔 마셔봐. 어깨춤 다릿짓 신명
에 농사 다 버리지."
병자는 정말 풍악이라도 잡혔다는 듯 입을 벌죽거리며 박자 소리를 흉내내는 것 같았다.
길산이 물었다.
"어디 살우?"
"서흥 잔벌서 양반네 땅 갈구먹구 살던 사람이오."
"헌데 어쨰 처자식이 없수."
"둘 다 사노비로 팔려갔소. 환곡이랍시고 도적놈같이 몇곱절 빼앗아 가려는 나졸을 굉이
로 찍어 상하게 하고 나는 처작식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하였소. 내 땅은 아니지만 정든
고향과 집을 버리고 어디루 갔겠소. 대처에서 장사라두 얻어걸릴까 하여 황주로 갔소이다."
병자는 숨차하면서도 얘기를 털어놓았다. 황주에서 얻어걸린 일거리란 가진 것이 없으니
고작해야 저자에서 짐을 부리는 짐꾼이나, 장이 서면 점포 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불러주는
곁꾼 노릇을 하여 간신히 처자를 부양했다. 큰달골에서 토굴을 파고 살았는데 그 동네는 촌
에서 농사를 짓지 못하여 대처를 찾아온 유민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토박이
들의 괄시가 심하였고 큰달골 움마을은 자주 포교들의 기찰 대상이 되었다. 사는 사정이 험
악해지니 순박한 농군이더라도 차차 생활에 악착스러워졌다. 사내들이 일거리를 찾아 나가
면 부녀자와 아이들은 구걸과 품팔이를 하노라고 사방 동네를 싸돌아 다니는 것이었다.
그가 하루는 양반댁에서 서찰을 받아 강서 쪽에 방자를 다녀오는데 산속에서 노루 사냥꾼
을 만났다. 화승총을 갖고 있었으며 제법 총포를 잘 쏘듯이 이야기했고, 예전에 조총수의 조
련을 받고 싸움까지 해본 그는 엽사의 총을 빌려 장끼 한 마리를 쏘아 떨굴 수가 있었다.
그와 곧 의기 투합하여 사냥질을 다니기로 하고서 산속을 헤매고 다녔는데 벌이가 괜찮았
다. 하루는 물정 모르고 첨사 일행의 사냥터에 끼어들었다가 잡혀가 볼기를 맞고 총포마저
빼았겼다. 알고 보니 사냥꾼은 군적에서 달아난 자라 하여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의 움집
으로 피하여 함꼐 숨어 지내게 되었다. 사내가 둘씩이나 아무 일도 못하고 누워 뒹굴고 있
으니 밥이 입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이놈이 안달이 나서 자꾸 나를 꼬드기는 것이었소. 우리 꼭 한번만 강도를 하자 그것이
오. 주린 배가 나라님이라고 언놈이 마다하겠소. 황주서 제일 큰 여각을 밤에 뚫고 들어갔소
그려."
그는 밖에서 망을 보았고, 엽사가 먼저 들어가 주인을 식칼로 위협하고 돈냥을 빼앗았다.
갑자기 순라꾼의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그들이 달아난 골목에서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업결에 달아나려는 순라가,
"네 이놈, 뭣하는 놈이냐?"
하고 등뒤를 덮쳤고, 그는 돌아서면서,
"칼이나 받아라!"
하며 순라의 배때기를 푹푹 쑤셔버렸다. 그러는 동안에 다른 조들이 들이닥쳤으며 그는 사
방에서 던져진 투승에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두 그 녀석처럼 칼로 내 배를 긋고 가는 것인데... 아주 독하구 야무
진 놈이었소. 생각해보면 참으로 덧없는 인생이 아니겠소. 누구에게 말이라도 전하고 싶지
만... 쓸데없는 노릇이지요. 여보 젊은이, 만약에 내가 오늘밤에라도 죽게 되면 넋걷이라도
불러주오. 진혼이 못 되면 또다시 구천을 떠돌며 행악을 저지를 나쁜 귀신이 될까 두렵소."
"그게 무슨 행악이우? 내 댁네 말을 가만 듣는 중에 한 생각이 떠올랐소이다."
"무슨 생각..."
길산이 병자의 손을 꼭 쥐어주며 낮게 말했다.
"나는 꼭 살아야겠소. 어찌됐든 살고 나서 여기서 도망갈 테유!"
사내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길산을 올려다보면서 애타게 말하였다.
"내 몸이 회복되어 건강해지면 날 데리구 같이 가주오!"
"그럽시다. 함께 달아납시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사내의 머리가 옆으로 떨어지며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아니오, 사람은 자기 죽을 때를 아는 모양이오. 내... 오늘밤... 넘기지 못할 것만 같구려."
사내의 말은 틀림이 없어 보였는데 이미 혀가 까부라지고 숨소리가 죽이 끓는 듯한 탁한
소리로 가라앉아 있었다.
과연 그날 밤에 사내가 운명하였다. 죽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 사내는 눈에 총기를 빛내며
길산에게 속삭였다.
"죽지 마우... 달아나오. 달아나면 황주 가서... 소식이나..."
혀가 점차로 굳어지는 말소리이다가 딱 끊기며 사내에게서 기가 빠져나갔다. 길산은 한
많은 그 사내의 육신을 무릎에 얹고 한참동안이나 앉아 있었다. 다른 죄수들은 모두 잠이
들었거나 깨었어도 잠든 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죽을 사람들이라 남의 죽음을 대하기가
싫은 것 같았고 그만큼 죽음은 그들과 가깝게 붙어 있었으므로 이미 구경거리도 슬픔도 아
니었다. 길산의 넋걷이소리가 나직하게 옥 안에 울리고 있었다.
"넋이야 넋이야 넋이로구나. 암흑천지에 가는 넋이야. 넋일랑 넋반에 담고 몸에 시체는 관
에 담고 북망 산천을 돌아가니 한심하고 처량하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에 저승일세.
이 터전에 각인 각성 열에 열 명이 댕기시더라도 뉘도 탈도 보지 않으시는 영부정 영부정
가망해, 산 간 데 그늘이요, 용 계신데 소이라, 깊숙컨만 모래우에 해소로도. 넋이야 넋이야
넋이로구나. 암흑천지에 첫 넋이야. 넋일랑 넋반에 담고 신에 시체는 관에 모셔 세상 나오신
상제님 놀고나 갈까. 서낭당의 뻐꾹새야 울지를 말어라."
길산이 옥에서 달포를 지내는 중에 문득 설움받는 백성의 삶을 스스로 깨우치게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헌헌장부로 되어진 지금까지 받은 온갖 수모는 자신이 오직 천출 광대이기
때문이려니 하여 세상의 귀천과 빈부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남칸 살
옥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숱한 사연을 보고 듣는 가운데, 일찍이 박대근이와 초대면하
여 그가 포부를 말할 적에 느끼지 못했던 점이 이제 와서 환히 보이는 듯하였다. 지금까지
자기가 무턱대고 관원께 느끼던 적개심이나 양반 호족들에게 가졌던 원한은 얼마나 우직하
고 무모하였던가를 알았다. 이제부터는 보다 더욱 지혜롭게 더욱 강하게 되어야만 할 것이
다. 불행히 황해감영 남칸에서 참수 귀신이 된다면 모르되, 꼭 살아 나가게만 된다면 그는
세상을 알고 지혜를 갖추어 진실로 강한 사나이가 되리라는 결심을 하였다. 주먹과 칼날을
휘둘러 싸움에 능함을 자랑삼는 것은, 마치 곰이나 범이 이빨과 발톱을 내세우는 짓과 다름
이 없을 것이었다. 힘은 지혜로움만 같지 못하니 맹수가 함정에 빠지는 격이요, 지혜는 또한
덕에 미치지 못하니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 아닌가. 여럿의 마음을 움
직이려변 마음이 올바를 것이요, 따라서 마음을 닦아야 할 것이었다. 아, 여기서 내 미욱하
고 짧은 젊음을 마칠 수는 없구나.
집행 기간이 다하였으나, 밖에서는 아무런 기별이 없더니 옥졸이 와서 자물통을 따면서
외쳤다.
"죄인 장길산은 칼과 차꼬를 가지고 나오라."
"왜 그러시우?"
길산이 영문을 몰라서 주춤거리는데,
"나오라면 빨리 나올 것이지, 어째 꾸물거리는가."
재촉이 심하였고 뒤에는 환도와 창을 겨눈 다른 옥졸들의 서슬이 푸르렀다. 길산이 벗어
두었던 칼롸 차꼬를 들고 옥 밖에 나오자 옥졸들은 달려들어 칼을 목에 씌우고 발목에는 차
꼬를 채웠다.
"너를 독칸에 넣으라는 엄명이시다."
길산이 돌아서는데 그의 등뒤로 색장의 텁석부리 얼굴과 돼지 같은 양선달의 머리가 창살
로 내밀어지면서 제각기 떠들었다.
"이놈아 꼴 좋게 되었다. 걸핏하면 사람을 치더니 네 목은 강철인가 하였다."
"그 광대 천출이 양반을 수모하였으니, 부디 참수하지 말구 대매에 때려 죽이슈."
길산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걸음을 멈추어 그들의 외침을 들었다. 다시 간장이란 자가 나
서서 색장과 양선달을 뒤로 끌어들이고는,
"저승에 가서 만날 텐데 그리하면 쓰는가. 여보, 먼저 가서 자리나 잡아놓으슈, 덕 좀 보게."
낄낄대는 소리가 들리자 옥졸이 조용하라고 윽박질렀건만 길산은 그들에 덩달아 너털웃음
을 웃었다. 옥졸 하나가 마음에 꺼렸던지 부드러운 어조로 길산을 위로하였다.
"여게 맘놓으시게. 이칸이 협소하여 불편할 듯아여 옥을 옮기는 겔세."
"괜찮소이다. 이미 살인 대죄를 지은 대장부가 그깐 일에 안달할 리가 있겠소. 집행이 내
일이지요?"
하니 혹졸은 헛기침을 몇번 하고 나서 서로 미루다가 한 사람이 대답한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내일 집행할 자의 이름이 장길산이라네."
길산이 큰 죄를 짓고 옥에 갇혔다는 소문은 진작에 재인말에 파다하게 알려져 있었다. 문화
관아에서 포졸들이 풀려나와 온 재인말의 남자라면 노소를 가리지 않고 잡아다가 문초를 하
였다. 관대들이 틀림없이 화적패들과 내통을 했을 것이란 추측 때문이었으며 실상은 감영
의 관문을 핑계로 하여 재인들이 화전 개간해놓은 토지를 현감이 빼앗으려는 꿍꿍이 속이었
다. 만약에 원래가 유민지배인 광대의 무리를 내몰고 그땅을 관전으로 바꾸어놓으면 같은
결수만큼의 비옥한 토지를 착복할 수가 있는 셈이었다. 대지주와 짜고서 세입의 전부를 관
아기 먹고 천한 무리들을 화적으로 내몰면 현감은 자신의 수입이 늘어나는 셈이었다. 그는
새봄이 오기 전에 광대들이 문화 경내에서 떠나기를 명하였다. 첫째로 풍속을 해친다는 것
이며, 둘째로 궁벽하여 화적패와 서로 내통하기 쉽다는 것이며, 셋째로 농사에 게으른 자들
에게 농토를 맡길 수가 없다는 등의 이요였다. 문화현감은 감영에 계를 올려놓고 관찰사의
하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뿐만아니라 길산의 어미 아비를 토옥에 하옥시켜놓고 국법에
준하여 도적의 친족을 관노비로 처분한다는 것이었다. 관문이 감사에게서 왔는데 떠나기를
원하는 자만을 보내되 신역에서 벗어난 자들만을 놓아 보내고 농사를 짓고 국세를 납부하며
걸립하지 않겠다는 자들은 토지를 그대로 맡겨 농사를 권유하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이었다.
현감의 분부가 아전을 통하여 득달같이 재인말에 전해졌으나, 연희로 철마다 걸립하여 살던
광대들 사이에는 의견이 엇갈려 서로 아무 작정도 못 짓고 갈팡질팡하였다. 젊은이들은 재
인말에서 달아나 먼 대처로 나가고 싶었으나 신역이 있는 고로 길산과 갑송의 부모처럼 제
혈족에 죄가 내릴까 하여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러나 가족 전원이 떠나기로 결정한 집은 밤
사이에 봇짐을 싸서 어디론가 소리없이 떠나갔다.
길산의 양어미 무당의 신딸이던 봉순이는 두 양주가 관가에 잡혀간 뒤, 까막내 갖바치 박
서방네 집에 가 있었다. 거기서 길산의 누이와 봉순이가 번갈아 읍내를 드나들며 늙은 두양
주의 옥바라지를 하였다.
작은 잿말의 묘옥이도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자세히 수소문하여 알고 있었건만 봉순이나
그 누이처럼 앞에 나설 수 없는 제 처지를 괴로워 하였다. 어서 달려가 임을 보고 싶은 마
음에 밤마다 베갯머리가 흠씬 젖을 정도였으나 묘옥은 우선 그의 부모님들을 돌봐드리리라
작정하게 되었다. 관아에서 터처로 두 분을 보내기 전에 얼마쯤의 돈이라도 장만하여 잡숫
고 싶은 음식이라도 넣어주고 싶었다. 그날부터 묘옥은 인근 부촌으로 나다니며 날품을 팡
랐다. 어느날 온정마을의 부잣집에서 하루 종일 잔치일을 거들다가 까막내 쪽으로 올라오는
데 멀리 들판으로 사람들의 무리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묘옥이 처음에는 무심하다
가 그들이 가까워져 살펴보니 통장고와 구슬상모와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연희 나갔던 패가
분명하였다. 묘옥은 그들 틈에 길산이 없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행여나 하는 그리움에 눈시
울이 화끈하여 정신없이 마주 달려나가며 소리쳤다.
"여보아요!"
광대패들이 주춤주춤 걸음을 멈춘다.
그쪽에서 먼저 달려오는 그녀를 알아보았고, 패거리 중에 큰돌이가 나서며 말했다.
"길산이 찾는 모양인데, 여긴 없수."
묘옥이 그제사 좀 부끄러워져서 할딱이는 숨을 가라앉히고 나서,
"함께 가셨던 패가 아닌가요?"
"응, 우린 을대니까... 하여튼지 갑대나 을대나 간에 길산이가 감영에 갇혔다는구려."
"무슨 소식 없던가요?"
큰돌이가 제 패거리를 돌아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해주 관싯날에 길산이와 나하구 수룡이네 팔문이네가 모두 만나기루 했었는데 우린 용댕
이서 만났지. 해주 바닥이 발칵 뒤집혔데. 그래 포졸들을 피해서 갈대밭에 줌었다가 신평서
잡혔더. 풀려나오는 길에 길산이가 갇혔다는 걸 알았소. 모두들 코가 석 자나 빠졌지요. 갑
송이는 어디로 달아났는지 모르지만 무사할 것이고, 길산이는 살인을 한데다 양반댁 내정
돌입한 일로 화적죄까지 뒤집어썼대요."
묘옥이 가슴을 죄며 물었다.
"그건 대강 알아요. 판결이 어찌 났답니까?"
큰돌이가 우물쭈물하더니 몸을 돌리면서 곁에 사람에게 미루었다.
"나는 잘 모르니... 자네가 말하게."
"왜 공연히 날더러 미루구 그래."
묘옥은 부끄러움도 잊고 큰돌이의 소매를 잡아 흔들었다.
"그분이... 죽게 되나요?"
큰돌이가 하는 수 없이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했다.
"참수형이랍디다."
살인 대적죄를 지었으니 참수형이 뻔하건만 묘옥은 국법이 제 마음이나 되는 것 같아 행
여 귀양형이나 내릴 줄로 믿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놀라지 않고 묘옥은 다시 물었다.
"집행 일자가 어떻게 나왔나요?"
"거야 낸들 알 수 있겠소. 관찰사와 형방이 아는 일이지. 허나... 오래 끌지는 않을 거외다.
그냥 살인수는 봄 가을로 처형한다지만 도적은 한양서 장계 떨어지면 곧 죽인답디다."
하고 나서 큰돌이는 멍하니 선 채로 까막내의 흘러내려가는 물을 바라보는 묘옥에게 물었다.
"마을은 별일이 없소?"
"네..."
"관가에서 조용히 있더냐 말이오?"
"포졸들이 몰려와 여러 사람을 잡아갔었지요. 모두들 고생했대요. 여러 집이 대처루 떠났어요."
광대들이 서로 우리집은 괜찮으냐, 누구네가 떠났냐는 등으로 중구난방 질문을 던졌으나
묘옥은 벌써 그들 곁을 떠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탄식을 주고받았다.
"길산이 결기 땜에 못 살 고장이 되었구나."
"누가 아니래. 예서 쫓겨나면 어느 골 수령이 우리를 발붙여줄까나..."
"떠들 것 없네. 정 살 수 없으면 산에 들어가 녹림당이라두 짜자구."
"터전을 닦아놔야 도적질두 하는 게야. 살 길이 막연하게 됐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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