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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2권 (8)

카지모도 2026. 3. 18.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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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꼼짝 마시우. 다시 올지두 모르니까."

역시 다른 자들이 다시 한번 들러서 살펴보고는 다짐을 두었다.

"나중에라두 여길 찾아오면 잘 꼬드겨서 붙잡아놔, 알겠지."

"글세 알았다니까. 헌데 무슨 일이냐구. 누가 겁간이라두 하러 들어왔어?"

"입 닥쳐 이놈아. 뉘집에 대구 그따위 말버릇이야."

"아니 이놈이..."

"그만 가세. 미안하오, 영감."

하인배들이 사라지자 늙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쓸개 빠진 놈들 같으니, 색시 어서 나오게."

묘옥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으로 화들짝 놀랐다. 그의 머리 위에서 짐들이 내려지고 묘옥

은 희미한 등잔불 아래 드러났다. 비록 남장은 했건만 총각처럼 땋아서 두건으로 질끈 동였

던 머리가 풀어헤쳐져 있었고, 몰에 젖어 찰싹 달라붙은 옷 위에 부푼 가슴의 윤곽이 드

러나 있어 누가 보든지 그가 여자임을 간단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곳은 갖바치의 움집

이었는데 부자가 나란히 앉아 밤을 새워 신을 꿰고 있는 중이었다. 늙은이가 턱짓으로 오지

화로를 가리켰다.

"쯧쯧, 온몸이 젖었구만, 거기 말리시게."

젊은이는 묘옥의 여자다운 수줍음을 안다는 듯 줄곧 시선을 바늘에 대고서 쳐들 줄 몰랐

다. 묘옥이 화롯가로 다가앉으면서,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늙은이는 모를 일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묘옥에게 물었다.

"헌데 강초시가 그리 야멸찬 사람은 아니건만 무슨 연유로 댁네를 죽이려 했누..."

"저두 모르겠어요."

하고 나서 묘옥은 해주 가는 길에 학령을 밤에 넘을 일이 걱정되어 초저녁부터 아예 과객

질을 나섰다는 얘기부터 차근차근 꺼내었다.

"음, 여인네가 혼자 길을 가려면 남장을 입어야겠지, 그래서..."

묘옥은 처음부터 웬일인지 강초시가 깍듯이 대하더라는 얘기를 했다. 계집종이 환난이 있

다면서 축객을 하더니 어쩐지 젊은 주인이 나와서는 별당으로 모셔두고 귀히 대접하던 일,

마당쇠가 사주를 물어가던 일, 술상을 놓고 주인과 얘기하던 일, 돈이 얼마나 필요하냐는 둥

사는 데가 어디냐는 둥 동행이 없느냐는 둥 꼬치꼬치 몰어서 여자라는 행색이 탄로날까봐

궁색했던 일, 그리고...

"잠을 잤지요. 곤히 자구 있는 중에 누군가 와서 깨우지 않겠어요. 난데없는 소복한 여자

가 나타나서 달아나라구 그러는 거예요."

"음, 이제 훤히 알겠구먼."

늙은이와 젊은이가 서로 눈을 맞추었고, 젊은이는 아예 일손을 놓아 버렸다.

"그게 보쌈이란 겁니다."

"보쌈이오?"

"그렇지. 청상과부들 액땜을 그렇게들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오." 하며 이번에는 늙은이도

일손을 놓아버린다.

"그 작은아씨란 여자가 얼마 전에 과천으루 시집을 갔었지. 신랑이 본시 몸이 약하고 고

질병이 있어서 제대루 남편 구실두 못하고 죽었소. 강초시가 제 식구에게는 끔찍하게 해주

는 사람이라 시집 귀신 만들지 않으려고 당장에 교꾼을 내어 데려다 놓았어. 헌데 사주를

꿰고보니 팔자소관이 남편을 셋이나 잡아먹는다구 나와 있더란 말이야. 우리게선 이미

소문이 짜하게 돌았을걸. 자, 이 양반이 누이를 다시 시집 보내자니 또 과부신세가 될 것

이요, 아니 보내자니 평생을 음양의 이치두 모르고 살아갈 게 너무 애처롭다 그런 얘기여.

해서 액띰을 하겠단 묘한 궁리를 했겠지. 지나가는 타관 사람을 꼬여다가 사주단자를 지어

서 형식으루 예를 갖춘 뒤에 세상모르게 죽여버리는 게요. 오늘밤 댁네가 총각 차림으로 그

런 곳엘 제 발로 찾아들었으니 안성맞춤이었겠지. 그래 댁네는 그 과수댁의 셋째 남편 노릇

만 하고는 객사 원혼이 될 뻔했소. 아마 강초시 같은 사람은 재물이 재일이니, 댁넬 죽여

놓구 그 거짓 고향으루 돈냥이나 보낼 생각이었겠지. 사람 속두 모르구 다 피차에 좋은 일

이려니 여겼던 게요. 아무리 팔자를 고친다지만 그 과수댁 당사자야 얼마나 끔찍한 생각이

들었겠소. 더구나 댁네가 남장을 입어놓고 보면 신선 같은 미남자일 테고... 그래 요놈은 살

려주자 했겠지."

늙은이가 연신 웃어대며 이야기를 했고, 묘옥은 마치 여우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제가 실은 계집이라고 밝혔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을 걸 그랬네요."

"아니지, 여자라 밝혔어두 댁네는 죽었을 거야. 말이 나가서 소문이 밖에 퍼지면 저희 가

문이 위태로울 테니까. 이왕지사 작정 내린 대로 죽였을 거요."

"제 팔자 고치겠다구 남의 목숨을 끊다니요"

"다 복에 겨우면 그리되는 게요. 말 타면 견마 잡히구 싶다잖소."

젊은 갖바치가 말하였다.

"아버지, 지난번에 그 집에 녹피혜를 전하러 갔더니 웬 도령이 별당에 앉았데요. 가만 살

펴보니 빈천한 집에서 소년을 사온 모양입디다. 그때엔 그냥 강초시가 후사가 염려되어 양

자를 들였나 생각했었지요. 며칠 후에 신값을 받으러 갔을 때엔 총각이 보이질 않았어요. 참

이상하다구 생각했지요."

"죽였겠지."

늙은이가 말했고, 묘옥은 그제서야 두려음이 실감되어 덜덜 떨기 시작했다.

"닭 울 녘이 지닜겠지요. 어서 떠나야 되겠습니다."

묘옥이 길을 떠날 것을 서두르며 일어서자 늙은 갖바치가 만류했다.

"이렇게 어두운데 학경을 넘으려고? 몸이 젖었으니 한기에 견디지 못할걸..."

"동이 트면 제가 길안내를 서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눈이나 좀 붙여 두시지요."

젊은 갖바치도 친절하게 말했으므로 묘옥은 다시 주저앉았다. 그들이 가죽을 꿰매면서 서

로 얘기를 주고 받는데 묘옥은 끄덕끄덕 졸면서 듣는 둥 만 둥했다.

"엊저녁에 큰우물골에 거사패가 들어왔습디다. 사당들이 어찌나 고운지 총각놈들 애가 달

아서 밤새껏 사처 근처에 서성거리데요."

"그 모가비는 내가 잘아는 사람이다. 안성 높을쇠 달근네 패라구 여러 장터를 돌아다닌

사람은 대개들 알구 있지. 고달근이는 무동이 때부터 나다녔으니 나보담 위또래까지 모두

얼굴을 알걸. 달근네 여사당들은 기생들 뺨치게 절색이고 가무가 뛰어난데, 거의 도망친 비

녀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지."

"아버지, 그 패거리가 하루 더 묵으면 구경 좀 갑시다."

"미쳤구나... 일거리가 산더미 같은데, 언제 신 다섯 죽을 재가에 넘기려느냐."

어느새 묘옥은 화로 곁에서 잠이 들고 갖바치 부자는 부지런히 가죽 꿰는 작업을 계속했다.

"에그머니... 벌써 이렇게 되었네."

날이 훤해진 다음에야 잠이 깬 모욕이 놀라서 후닥닥 일어났고, 갖바치 부자가 조밥 한

그릇을 밀어주었다. 그들은 아침을 먹는 중이었다.

"걱정 마시오. 아직 사람이 나다닐 때는 아니니까. 조반 마치고 영을 오르면 맞춤일 게요."

늙은이가 말했다. 묘옥은 머리도 가다듬고 두건도 단단히 동인 다음 추립을 쓰고 행전을

조여맸다.

조반 뒤에 따라 나서려는 젊은이를 끝내 사양하고서, 일러준 대로 큰길을 피하여 숲속으

로 들어갔다. 골짜기가 깊어진 다음 가파른 산길을 올라 길에 들어섰다. 나무들이 거지반 낙

엽을 떨구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으나 울창하여 굽돌아진 길 앞은 잘 보이지 않았

다. 달마산 줄기가 남북을 가로지르고 동서쪽으로 백운산과 불타산에 이르고 다시 바다까지

치밀어 가서 연지봉과 장산곶을 이루게 되어 있었다. 또한 남북으로는 구월산 줄기의 끝에

서 수양산에 이르니 학령은 참으로 녹림당들에게는 그럴 듯한 요충의 지점이 아닐 수 없었다.

해서를 횡으로 가르고 지나가는 멸악산맥의 연이은 산줄기는 구월산 줄기처럼 깊은 골짜

기와 숲이 많고 길이 여러 곳으로 통하여 세상을 등진 자들이 숨어 살기에 적당했다. 더구

나 학령은 풍천, 은율, 문화, 송화의 여러 읍에서 해주로 닿는 직로의 가운데 지점이었으므

로 포도 군관이 해지점을 근거로 산길을 순찰하였다.

묘옥은 굽이굽이 도는 영 넘어 길을 올라 달마산에서 내달은 등성이가 왼편에 보이고 오

른쪽으로 백운산, 불타산으로 닿는 등성이가 보이는 영 중턱에 이르렀다. 사방은 잣나무와

도토리나무, 사철나무의 짙은 숲인데 어디선가 낙엽을 밟는 사람의 발짝 소리가 들렸다. 겁

이 덜컥 생긴 묘옥이 걸음을 빨리하는데 좌우 등성이에서 맨두건 바람에 몽둥이를 든 장한

두엇이 우뚝 일어섰다.

"이놈, 게 섰거라."

섰거라 했다고 그 자리에 섰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 묘옥은 귀떨어지면 내일 줍자고

내리막길을 달음질쳤다. 뒤에서도 뛰는 발자국 소리가 났다. 쫓아오면서 그들은 각기 위협을

하는데,

"이놈 서지 않으면 박살을 낼 테다."

"달아나면 너는 다 살았다."

순간 묘옥은 눈앞이 캄캄하였다. 정면 길 가운데에 날이 시퍼런 환도를 빼들고 섰는 텁석

부리 사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묘옥이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몽둥이를 든 두 녀석은

뛰지도 않고 싱글거리면서 걸어왔고, 앞에 섰던 털보도 칼을 두어 번 뿌리쳐 보인 다음 느

릿느릿 다가섰다.

"잘 걸렸다. 안 그래두 피맛을 보지 못한 내 칼이 마수거리를 기다리던 참이다."

묘옥은 장딴지와 무릎에서 저절로 기운이 빠져버려 스르르 주저앉아, 괴나리봇짐을 벗어

그들의 발 앞에 던졌다.

"달아나지 말라구 몇번이나 일렀지. 이젠 살아갈 생각 마라."

"어디 우선 봇짐이나 뒤져볼까."

"어이 묵직한데."

그들은 봇짐을 끌러보고 돈꿰미가 두 줄이나 있는 것을 보자, 입이 주욱 찢어졌다.

"아침 해장치고는 꽤 배가 부르겠네."

"대강 치워버리구 내려가지. 달마산 수돌네가 목 잡으러 나오면 가만있지 않을 테니."

"생피할 놈들, 멸악에나 자빠져 있지 예까지 와서 남의 목을 빼앗아..."

"시끄럿, 쓸데없는 소리들 말구 내려가."

털보가 두 놈을 윽박지른 뒤에 묘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그 여자의 턱에 슬그머니

칼끝을 대어 치켜들었다.

"어디 보자. 허허 그놈 참 계집처럼 예쁘게 생겼고나. 어디부터 베어주랴. 헌데 웬 상놈이

이렇게 속살이 희단 말이냐. 가만있자..."

칼을 거둔 털보가 묘옥을 훑어보다가 다리를 포개고 얌전히 앉은 모습을 확인하고 픽 웃

었다. 그의 입가에서 웃음이 가시는 듯하자 와락 달려들어 묘옥의 저고리 앞자락을 움켜쥐

었다. 묘옥이 본능적으로 비명을 내지르는데 새된 여자 목소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털보는

묘옥의 가슴을 더듬고 나서 앙탈하기 시작한 여자를 가볍게 들어 안고 후미진 고랑으로 내

려갔다.

"내 이런 봉을 봤나! 이년아 사지를 찢어 죽이기 전에 가만 있거라."

"사... 사람... 살려요."

"네년이 소리쳐봤자. 듣는 이는 우리 아이들뿐이다. 공연히 곱으로 당하지 말구 얌전하게

한번만 주면 봇짐두 찾아주지."

잡초가 무성한 풀숲에 묘옥을 내던진 털보는 묘옥의 바지를 끌어내리려고 허리끈을 찾았

고, 묘옥은 눌린 상체를 빼치려고 버둥대면서 한손은 바지를 꼭 잡고 놓질 않았다. 기왕지사

천기가 사내를 가릴 것인가마는 이제 묘옥은 예전의 묘옥이 아니었다. 처형을 기다리는 사

랑하는 지아비를 찾아나선 아내와 같았던 것이다. 혀를 깨물고 죽을지언정 그 어느 사내의

몸도 닿게 해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여자의 힘에는 한도가 있는지라 우악스런 사내의 힘을

당하지 못하여 저고리는 찢기고 아래도 속곳이 드러났다.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온 나

머지 놈들도 이 뜻밖의 광경을 보고 희희낙락하여 제 두목을 도우려고 풀숲으로 들어섰다.

"다리 좀 잡아, 다리를."

텁석부리는 거친 숨을 내쉬며 다급하게 외쳤다. 다른 두 놈이 묘옥의 다리를 슬쩍 비틀어

잡고는 막 끌어내려지는데 길 위쪽에서,

"거, 뭐하는 짓이냐!"

하는 찌렁찌렁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텁석부리는 아직 정신을 돌이킬 여유가 없었고 묘옥

의 다리를 누르고 있던 두 놈이 벌떡 일어났다. 덩치가 제법 크고 어깨가 탄탄해 보이기는

하였으나 지게에 물건을 얹은 품이 혼자서 시골 마을로 장사나 다니는 녀석이 분명하였다.

행상꾼이 다시 호통을 쳤다.

"까짓 계집 하나에 사내 셋이 달라붙어 바둥대누나."

"저놈이 죽지 못해 환장했나."

"감히 장사치 녀석이 달마산주를 몰라보구..."

두 놈이 번갈아 시선을 마주쳤고, 텁석부리도 못내 아쉬운 듯이 속을 드러낸 채 죽은 듯

이 자빠진 묘옥의 몸 위에서 일어나 환도를 집어들었다.

"사지를 토막 내주마."

행상꾼은 지게를 벗어 작대기에 받쳐 세워놓고 무언가 한 줌을 집어 들었다.

"예끼 놈들, 희한한 구경을 하노라 말참견 좀 했기로서니... 에 더럽다 더러워, 부정 탄다

부정이요 부정이오. 쉬이..."

사내가 손에 쥔 것을 아랫녘의 세 도적에게로 뿌리는데 바로 소금이다.

"저 망할 자식 같으니!"

"등골을 분질러놔라!"

몽둥이를 든 두 놈이 행상꾼의 양쪽으로 다가섰고 환도를 비껴든 털보는 잠시 관망하고

서 있었다. 행상꾼은 전혀 놀라는 빛도 없이 싱글벙글하는데, 두건으로 동이지도 않은 더벅

머리가 등뒤로 늘어져 있었다.

"어허.. 이러지들 말자구. 나는 그저 지나가다 구경이나 하려던 참인데 잠자코 지나가기가

아까워서 그만, 실수했네."

"어린 놈이 입만 살았구나."

"소금장수 반십 년에 별별 것을 다 봤지만, 청천백주에 사나이 세 놈이 계집 하날 같이

깔구 앉은 꼴은 또 처음 봤군."

더 이상 지지재재할 것도 없이 두 놈이 제깐엔 악에 받친 고참을 내지르며 몽둥이를 휘두

르고 달려들었다.

"어!"

황소라도 그런 매를 맞고는 뼈다귀가 으스러졌겠는데 의외에도 행상 총각은 양손에 몽둥

이를 턱 받아 쥔 것이다. 양쪽의 몽둥이를 잡고 섰는데 두 놈이 서로 죽을 힘을 다하여 당

기건만 꼼짝도 않는다.

"이놈들아 똥 싸겠다. 헛기운 쓰지 말어라."

총각이 별로 힘도 주지 않고 슬쩍 잡아채니 두 도적이 고꾸라지며 몽둥이를 놓쳐버렸다.

"뭘, 이까짓 작대기 따위로 그렇게 항우 같은 소리만 냅다 질러댄담."

총각은 벌벌 기어서 몸을 빼쳐나가는 놈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굵기가 한주먹 감은 넘

어 뵈는 몽둥이 두 개를 포개어 잡고서 끙 한번 힘을 주었다. 웃는 얼굴인 채 잠깐 입이 다

물어졌나 싶었는데 우지직하며 몽둥이 두 개가 대번에 꺾어졌다.

"옜다, 가져다가 느이 집 뒷간에 부춛대루 박아놓고 된똥 나와 힘쓸 때마다 붙들구 용써

봐라."

두 녀석은 완전히 기세가 죽어서 제 두목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네놈의 목을 치지 못하면 내 불알 찬 사내가 아니다."

기세 좋게 환도에서 쌩 소리가 나도록 좌우로 휘둘러 보이며 털보가 소금장수 총각에게

로 달려들었다.

"어어라... 나는 맨손이여. 다칠라, 그 위험한 짓 그만두게."

뚝심깨나 믿고 있는 듯한 총각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농지거리를 하면서도 뒤로

물러섰다. 날이 시퍼런 환도는 들었으되 검술 한번 배운 적이 없는 두목은 무지막지하게 휘

둘러대면서 총각을 덮쳤다. 총각은 뒷걸음질치기도 하고 옆으로 빠져 달아나기도 하면서 칼

날은 피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텁석부리에게서 멀찍이 달아났다. 털보가 의기양양하

여 칼을 연신 내리찍으면서 쫓아갔다. 총각이 잠시 구부리더니 길가에 박힌 다듬잇돌 두어

배 됨직한 바윗덩이를 쑥 뽑아냈다. 총각은 짚덤불 다루듯 가볍게 머리 위로 치켜들며 텁석

부리에게로 마두 섰다.

"칼 치우지 못해..."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입을 뻥하니 벌린 채 섰던 텁석부리가 칼을 늘어뜨리고 섰더니

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총각은 바위를 쳐들고 성큼성큼 따라간다.

"이 자식아, 어디로 도망가니."

"아이구 미련한 놈 다 보겠다. 네까짓 거하구 상대 안할란다."

"바위 찜질이나 맞아봐라."

에잉 하면서 총각이 쳐들었던 바위를 냉큼 집어던지는데 달아나는 털보의 다리 장딴지에

가서 떨어지며 그는 애고 소리 한 번에 앞으로 고꾸라진다. 오른발을 바위가 찍어눌렀는데,

갈 데 없이 다리뼈가 요절이 나버린 모양이었다. 총각은 숨결 한번 거칠게 내쉬지도 않고

어슬렁어슬렁 다가와서 도적의 상투를 꺼들어올리고 쇠스랑 같은 손바닥을 펴서 번쩍 치켜

들었다.

"옳지 주먹으루 치면 뒈질 테니까 따귀나 몇대 때려줄까."

"아이구 장사님, 살려주... 목숨만 살려주시우."

그렇지 않아도 총각의 괴력에 정신이 아뜩한데다 왼쪽다리를 바위에 찍혀 눌린 털보는 이

빨을 맞부딪치면서 싹싹 빌었다. 멀찍이 섰던 도적들이 제 두목이 당하는 꼴을 보고 나서

달아나는데, 총각이 그 자리에 서서 고함을 꽥 내질렀다.

"쫓아가 모가지를 뽑아놓기 전에 게 섰거라. 거리 섰어!"

주춤하더니 두 놈이 발을 떼지 못하고 서버렸다. 총각이 또 한번 외친다.

"이 우애 없는 놈들, 제 동무를 버리구 달아나면 어쩌느냐, 이리와!"

두 도적들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비실비실 무릎들을 꿇고 엎드러졌다.

"비록 눈은 있으되 분별이 모자라 경거망동하였습니다."

"천하장사를 몰라 뵙고 죽을 죄를 지었소이다."

"어서 이 녀석을 끌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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