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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2권 (9)

카지모도 2026. 3. 19.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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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윗덩이를 치우니까 피에 흠뻑 젖은 털보의 발목은 아주 으스러졌는지 너덜대고 있었다.

"너희들 달마산 패거리냐?"

사색이 되어 빌고 엎드린 세 도적을 내려다보며 총각이 물었다.

"예, 저희는 본시 탑벌 두내리 사는 농투성이들인데 마름에게 빌렸던 땅을 빼앗겨 먹구

살 길이 막막하여 백운산에 들어가 이짓으루 부모처자를 봉양하구 있습지요."

다른 자가 다시 늘어놓았다.

"여기 학령이 원래는 저희 백운산에서 나와 지키던 목인데 달마산 아이들이 수 많은 것을

믿구 우릴 밀어냈습니다. 그래 저희는 식전부터 오정 때까지 한둘 지나는 행인의 봇짐뒤지기

루 연명하구 있습니다."

"백운산에 너희 같은 놈들이 몇이나 되니?"

"백운산엔 저희말구 너덧 명 있을 뿐이고, 그보다는 불타산 천불사 근처에 도망한 종놈들

이 패를 짠 천불사패가 있습니다."

총각이 제 가슴을 두드리며 제법 큰소리를 쳤다.

"응, 천불사패라면 해적질두 나가는 심백이 식솔들이군. 달마산엔 수돌이가 있을 게구...

그 자식들꼐 내 이름을 대어봐라, 모두 내 하수뻘 되는 놈들이니까."

한 녀석이 용기를 내어 총각에게 물었다.

"장사의 존함이 뉘십니까?"

"나는 장연의 소금장수 강선흥이란 사람이다."

총각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음소리만 내고 있던 털보가 말했다.

"어이구, 그러면 남대천 자갈밭에서 황소뿔을 잡아 뽑았다는 그 강총각입니까?"

소금장수 총각은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도적들은 완전히 기가 죽었을 뿐만 아니라, 인근

에 왁자한 소문이 나 있는 장사에게 걸려 이만이라도 다행이거니 여겨 한숨들을 내쉬었다.

남대천 자갈밭에서 싸움하는 황소들의 가운데로 달려들어가 양손에 뿔을 잡고 떼어 말리고

는, 그중 끝내 날뛰는 놈을 붙잡아 태기를 쳐버린 소금장수 강총각은 도적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천불사의 심백이와 달마산 수돌이는 강선흥이와 술먹기 내기도 했던 사이였다.

"물건이나 뺏으면 그만이지 아낙네를 겁간하면 어쩌누. 어서 그 다친 사람 데리구 가거라."

총각이 받쳐놓았던 지게 앞으로 돌아가며 말하자 도적들은 이제 살았다는 동작이 되어 발

목 부러진 텁석부리를 양쪽에 부축하고는 게발걸음으로 사라졌다. 지게를 지려던 강선흥이

가 그제사 풀숲에 쓰러진 아낙네 생각이 나서 뭐라 혼자서 툴툴대며 아래로 내려갔다. 강선

흥이 내려가니 찢어진 옷자락을 추스르고 있던 묘옥이 경계의 눈빛으로 쏘는 듯 바라보며

일어났다.

"무서워 마우. 도적놈들은 달아났으니까 그 옷이나 좀 갈아입으슈. 그래 가지고 어디 사람

들 앞에 나서겠수?"

묘옥은 대답 없이 돌아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고 초립을 얹었다. 바지는 흙이 묻어 털

어내면 말짱하겠으나 저고리는 온통 찢어지고 고름도 떨어져 나가 입을 수가 없었다. 묘옥

이 새 저고리르 꺼내며 돌아보니 총각은 길 멀찌감치 물러섰는지 보이질 않았다. 그 여자가

복장을 단정히 하고서 길 위에 올라 소금이며 미역이며 굴비두름을 가득 얹은 지게를 진 총

각을 살피고야 그가 도적의 일행이 아니라 행상꾼인 줄로 알게 되었다.

"욕을 보고 죽게 된 것을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묘옥이 단정하게 허리를 굽히며 치사를 했지만 총각은 지게를 지고 앞서 걸어가며 내외하

는 말투로 건네왔다.

"거 아무리 남복을 했다지만, 이렇게 호젓한 길을 다니려면 동행을 구해야지, 욕을 보아

싸다구 말허우."

"죄송하다고 여쭙니다."

소금장수 총각과 묘옥의 내외하는 수작이 오고갔다.

"어디까지 가시느냐구 여쭈오."

"해주까지 가는데 오늘 해 안으로 닿아야 한다구 여쭙니다."

"어째서 그 먼 길을 혼자서 가시느냐구..."

"우리 댁 어른이 도적으로 몰려서 해주 저자에서 참수형을 당하시게되어, 먼빛으로 얼굴

이라두 볼까 하여 찾는 길이라구 여쭙니다."

"허 그 참 딱한 사연이라 하오."

강선흥이 박대근이와 아우 형 하는 사이라서 길산이가 만났다면 대번에 기억해낼 수도 있

었건만 두 사람 모두 알 턱이 없었다. 갑송이의 기운이 맞간다고 박대근이 여러번 자랑해오

던 아우였던 것이다. 선흥이가 인정이 뚝뚝 돋는 말씨로 얘기했다.

"거 같잖게 내외 말투를 쓰자니 거북해서 안되겠소. 그저 댁네 시동생 만난 셈치구 허물

없이 말하슈. 나 지금 해주에 물건하러 가는 길이니 댁네를 데려다 드리리다."

묘옥이 눈을 내리깐 채 고개를 숙여서 사례를 올렸다.

"정말 고마워요."

강선흥이가 묘옥이 동행하여 영을 내려와 해지점에 이르렀는데 아직 점심 먹을 시각은 아

니지만 중간에 마땅한 곳도 없어서 이른 대로 주막을 찾기로 하였다. 겉보기에는 보상과 부

상이 사이좋게 장사 다니는 것만 같았다. 하나는 광대뼈가 불거지고 얼굴이 시커먼 쇠도적

놈처럼 우락부락한데 다른 하나는 선비같이 해사하고 얌전하여 기아한 대조를 이루었다. 아

직 길 가는 사람들이 모여서 넘을 시각이 이른지라 마당 안이 텅 비었으려니 생각했는데,

주막의 싸리 울타리로 다가서자 여럿의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서

니 사당패들이 마침 점심을 먹는 중인데, 거사 몇사람과 여사당들이 마루와 마당의 멍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툇마루에 포교와 포졸 두엇이 앉아서 먹걸리잔을 들고 여사당들과

농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강선흥이와 묘옥은 멍석 한쪽에 주저앉으면서,

"요깃거리 좀 주오."

선흥이 말하니 주모가 다가온다.

"국밥하구 탁배기두 좀 하시려요?"

"국밥 둘만 말아주구, 막걸리 두 되쯤 주오."

묘옥이 선흥이와 마주 앚아 옆에 시선을 주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타령을 낮은

곡조로 흥얼대던 사당 하나가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참으로 인물일세! 저리 잘난 사내는 처음 보겠네."

묘옥이 얼결에 얼굴을 들어 바라보니 녹의홍상 받쳐 입고 얹은머리에 붉은 댕기 길게 드

리웠는데 눈가에 요염한 기가 서려 있었다. 묘옥과 눈이 마주치자 여사당은 입가에 웃음을

흘리면서 종알거렸다.

"행하를 안 주어도 정분이 나겠네."

거사가 그 소리를 듣고 돌아보는데 다른 사당들도 맞받아 속삭였다.

"에그, 저런 사내나 따라가 어디 들어앉아 살았으면."

술상이 올라와 묘옥이 국밥을 뜨는데 사당 하나가 몸을 기울이며 말을 건넸다.

"여보셔요, 술 한잔 주시겠어요."

강선홍이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다가 껄걸 웃고는 묘옥이 대신 술을 권한다.

"그래라, 한잔 마셔라."

"누가 총각보구 달랍디까, 저분에게 그랬지."

"얘, 이것아 술맛이 인물 따라 간다더냐. 한잔 먹어라."

사당이 받으려 하지 않고 묘옥의 쪽만 바라보는데 곁에 앉았던 거사가 핀잔을 주었다.

"무슨 짓이야, 모가비님께 혼찌검 당할려구 그래?"

"얘, 너 이리 와서 술 좀 따라라."

툇마루에 앉아 사당의 거동을 보고 있던 포교가 말하였다. 흘긴 눈으로 포교롤 노려보면서

사당이 새침하게 받았다.

"나리는 행하도 주실 리 없으니... 싫소이다."

"이년아 행하를 누가 안 준다더냐, 어서 술 좀 쳐다우."

불그레하게 술기가 오른 포교가 비실비실 웃더니 성큼 퇫마루에서 내려와 사당의 손목을

붙잡아 끌었다.

"에그, 이 손목 놓아요."

"이년, 말 안 들으면 민가에서 상풍한 죄로 끌어다 가두리라."

"언제 내가 상풍했나요?"

"모르는 행인에게 버젓이 드러내놓고 매음을 하려 드니 여기가 놀이 마당두 아닌데, 상풍

이 아니고 무엇이냐."

포교가 막무가내로 사당의 손목을 잡아끄는데, 다른 사당들은 모두 제가 봉변당할까 두려

워 움츠리고 있었으며, 거사들은 또한 제 계집이 아닌 외사당인지라 포교의 하는 양을 방관

하고 앉았다. 강선홍이 참지 못하고,

"나리, 거 너무 심하우. 나리두 상풍하시는구려."

"뭐야... 네놈은 누구냐?"

"보시다시피 장사 다니는 사람이요."

"그래 장사 다니는 녀석이라면 무엇을 파느냐 짐뒤짐을 해봐야겠다."

"마음대루 하슈. 소금하구 미역에 조기 몇두름 있을 뿐이오. 그나저나 거 손목 좀 놓아주

시지요."

"이 건방진 놈 보아라."

포교가 사당을 놓고 강선흥이의 멱살을 잡더니 대뜸 뺨따귀를 철썩 올려붙였다.

"어..."

눈에서 불이 번쩍 나도록 얻어맞은 선흥이가 드디어 분기를 참지 못하고 포교를 달랑 들

었다.

"명색이 포교라면 도적을 잡아야지, 어디서 건주정이야. 나중에 관가에 가서 토설할 셈치

고 혼 좀 나야겠어."

강선흥이는 포교가 지푸라기 뭉치나 된다는 듯이 위로 번쩍 치켜들고 뺑뺑이 맴돌기를 시

켜주고 나서 땅에다 쿵 내려놓았다. 어지럼증에 비틀대면서 포교는 감히 달려들지 못하고

강선흥이를 멍청히 올려다보았다.

"이놈이 학령에 출몰하는 화적패가 틀림없다. 달려들어 오라를 지워라!"

포교가 벌떡 일어나 쇠도리깨를 허리춤에서 빼어내면서 말했다. 포졸들이 육모방망이를

잡고 손바닥에 침을 뱉고 나서 강선흥이를 둘러 쌌다.

"여러 거사님들, 나중에 말 좀 해주시우. 내 이 나리님들 버릇 가르칠 테니."

거사들이 대답은 하지 않았으나 속으로 은근히 즐거워하였다. 포교가 멍석에 차려진 밥상

을 발길로 걷어차내고 강선흥이께로 달려들었다. 한꺼번에 와락 달려들 기세들인데, 마침 싸

리문으로 들어서던 사당패 모가비 고달근이가 가운데로 들어섰다.

"아이구, 나리들 이거 웬일들이슈?"

고달근이의 목소리는 마치 솥바닥 긁는 소리처럼 되게 갈라졌다. 고달근이는 검은 얼굴이

심하게 얽어 있었다.

그는 방금 해지점 사금터에 찾아가서 광부마을의 공연 허가를 얻어 가지고 돌아오는 길어

었다. 고달근이는 문 밖에서 소란한 소리에 이미 주인께 물어 대강 자초지종을 알고 있었다.

"나리 고정하시우."

"음 달근이 왔느냐. 이놈 너희 사당 사나를 불러 술 한잔 쳐달랬는데, 내게 욕을 보이는

구나. 너희들두 모두 상풍 혐의루 잡아가야겠다. 우선 이 행상놈을 때려잡고 나서..."

달근이는 눈짓으로 제 패거리를 문 밖에 내몰도록 하고 보퉁이에서 무명을 꺼내어 취한

포교를 달랬다.

"나리 술값이나 하시지요. 얼마 되지는 않습니다만..."

포교는 곁눈질로 무명을 내려다보고 나서 제 졸개들에게 받아두도록 하였다. 강선흥이 잔

뜩 손을 벌리고 포교의 도리깨를 막을 태세를 취하고 있다가 휑하니 돌아서더니 지게를 지

는 것이었다.

"이놈아 어디루 갈려느냐."

"죄지은 일 없으니 나는 가겠소."

"공무중인 포교를 꼬나잡고서 죄가 없다...?"

"이거 왜 이러슈. 나두 감영엔 아는 이가 많다우. 내가 누군고 하니 장연 사는 강선흥이요."

"소금장수 강선흥이냐?"

"글세 당장 굶어두 남의 쌀 한톨 넘보지 않는 사람더러 화적이라니 화가 안 나겠수. 좌우

간 시비가 모두 끝났으니 나는 갈라오."

머쓱해진 포교를 남겨두고 강선흥이는 주막을 나섰다. 나와 보니 묘옥이와 사당패들은 밭

둑길에 웅기중기 앉고 서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년들 너희 때문에 벙거지 나부랭이와 시비할 뻔하였다. 추파를 던지려면 나 같은 대장

부께 던져야지."

"강선흥이 주절대며 그들께로 다가서는데, 고달근이가 따라왔다.

"여보 총각 나 좀 봅시다."

"왜 그러우?"

"당신 땜에 상목 한 필을 빼앗겼으니 조기 몇두름 두고 가슈."

강선흥이 어이없다는 듯 껄걸 웃어젖힌다.

"별꼴 다 보겠군. 제 발이 저려서 뇌물 쓴 것을 누구보구 물어달래. 여보 중화 자신 것 얹

혔수?"

고달근이도 객지 물을 평생 먹은 사내라 만만치 않았다. 곰보 얼굴이 시뻘겋게 되었으나

그는 꾹 참고서 점잖게 나왔다.

"사리를 따져보시우. 우리 아이를 포교가 희롱했다손, 댁이 중뿔나게 나설 게 무어요. 예

서 사단이 터지면 혹시 망르 놀이에 지장이 있을까 하여 수습했는데 이건 모두 총각 때문이

아니오. 당신 관가루 끌려갈 것을 무마해주었으니 어서 굴비 서너 두름 내놓우."

강선흥이도 코웃음을 치고 섰더니 지게를 벗으려고 어깨를 구부렸다. 그러나 벌써 눈치를

첸 고달근이가 손을 내저었다.

"댁네 성깔만 울락불락했지 도통 물정을 모르는 구먼. 여기선 남의 눈두 많으니까 또 벙

거지들 밥벌이 시켜줄 게야. 청산내 모래밭에서 얼러보지."

"좋두룩 해. 만약에 씨름을 해서 내가 이기면 거기 갖구 있는 상목을 모두 내게 내놓구

거기가 이기면 이 지게째 몽땅 내줄 테여."

고달근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우린 씨름 같은 건 안해."

고달근이는 강선흥이를 깔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따위 기운 자랑은 않는 성미라서..."

"좋아 한바탕 싸워보잔 말이지. 허리뼈가 부러지거나 다리가 꺾어져두 원망 말라구."

"누가 부러지는가는 실지루 해봐야지. 헌데 보아하니 면총각두 못한 주제에 누구에게 대

구 반말지거리야?"

"겨루는 마당에 반말 온말 가리게 됐나?"

"이 사람아, 그래두 예의는 있는 법인데... 나는 거의 반팔십 된 사람이야."

"이기는 사람이 성님이지 나이가 무슨 소용이래."

둘이 쓸까스르는 어조는 험악하기보다 어딘가 장난스러운 데가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볼

적에는 오랜만에 만난 소년들이 서로 젠척하며 타시락대는 것으로 여길 정도였다. 묘옥이도

곁에 따라가면서 그들의 어조가 자못 흥겨운 데 안심을 하였다. 사당패들은 콧노래를 흥얼

거리며 두 사람의 뒤에 멀찍이 떨어져서 왔다. 청산내 모래밭이 내려다뵈는 둔덕에 이르러

다른 사람들은 남고, 웃통을 벗어 던진 강선흥이와 고달근이가 아래로 내려갔다. 강선흥이

먼저 손을 뻗쳐 달근이를 잡으려고 덤비자 그는 공중 곤두질로 휘익 떴다가 선흥의 반대편

으로 섰다.

"여기야,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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