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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2권 (14)

카지모도 2026. 3. 2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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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들으니 양반들게 실수한 우리 집 차인의 일로 오신 모양이군요. 그런 일이라면 낮

에 사람 한분을 보내어도 이쪽에서 예의를 갖추어 사과드리고 관가의 벌을 기다리게 할 터

인데 무슨 역적의 집이라고 아닌 밤중에 군사를 풀고 횃불을 밝히고 집뒤짐을 하니 이것이

유수나리의 지시란 말입니까? 사또께서 부임하실 적에 비용을 우리네 상단에서 댔고, 지금

도 적지 않은 봉물을 한양으로 보내드리고 있는 줄 압니다. 아무리 관장과 백성의 우의라지

만 인정이 있는 터인데 이런 의리가 어디에 있단 말이오. 내 아버님을 대신하여 사또께 하

소하여 만약 지시가 없었다면, 부장께서 경을 치도록 할 테야요."

"허허, 그 처자 말씨 한번 고약스럽게 하는구나."

귀례의 세찬 기세에 기가 죽은 부장은 그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리고서 박대근이를 향하여

말했다.

"화적이 숨어 있다는 적경을 받고 급한 김에 이렇게 되었으니, 양해하시오. 그자가 돌아오

는 즉시 관가에 보내어 판결을 받도록 해주시고, 오늘 일은 피차에 없었던 일루 합시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바장이 군사들을 휘몰고 나가 버렸다. 박대근이는 기왕에 혼사에 관한 얘기도 있었고, 그

성미도 잘 아는지라 미소를 머금고 귀례를 바라보았다. 귀례는 돌아서서 안채로 들어가며

들으라는 듯이 종알거렸다.

"까짓 하리 하나 구슬리지 못하면서 무슨 상단의 행수 노릇을 한다구 그럴까?"

"사내들 일에 아낙네도 아닌 미혼 처자가 불쑥 나선 게 장한 일인 줄 아는 모양이네."

"요즈음 시정의 친구를 사귐이, 마치 손을 뒤집어 구름이요, 엎으면 비가 되는 경박한 세

상인데 너무 친구만 좋아하지 마셔요."

하고는 안채로 달아나버리는 귀례를 향하여 박대근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배대인이 좀 들어

오라는 지시가 있어 박대근이도 안사랑으로 들어갔다. 배대인은 박대근에게가 아니라 부장

의 무례한 짓에 대하여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대근이가 하리 따의를 상대할 일이

아니나 양반의 앙심은 귀찮은 일이니 자기가 직접 찾아가 사과하겠다고 배대인을 가라앉혔

다. 박대근이 제 방에 돌아와 누웠는데 새삼 막내딸 귀례의 얼굴이 눈앞에 섬삼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명년 봄에 귀례에게 장가들 일을 작정하고 있었다.

 

2

 

갑송이는 한밤중에 배대인네 집에서 뛰쳐나오자 내처 밤길을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벽란나루를 건너 해주로 향하고 싶었지만, 박대근이의 만류도 있고 하여 역시 안전한 길을

택하기로 하였다. 일단 길을 떠나고 나니까 새삼스럽게 재인말에 대한 걱정이 생겨나는 것

이었다. 금천 가까이 당도하자 어느결에 날이 새는 중이었다. 갑송이는 봉놋방에 들어 아침

을 먹은 뒤 해가 높다랗게 뜨도록까지 눈을 붙였다.

평산서 늦게 중화 하고서 밤늦어 금교역말에 들어갔다. 때마침 첫눈이 팔팔 흩날려오고

있었다. 길산이는 옥에 갇히고 재인말은 쑥밭이 된데다 혼자서 눈 내리는 추겨울 밤길을 걷

자니 뚝뚝한 갑송이의 가슴에도 썰렁한 수심이 가득 차는 것이었다. 서흥까지 밤새껏 걷고

싶었으나 배도 출출하고 더욱 날씨 탓인지 목도 컬컬하여 마방이 줄지어 선 주막거리를 찾

아들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금교역에는 역졸이나 역마가 몇 있었을 뿐이고, 사람의 자취가

끊겨 한산하였다. 그는 주막으로 들어섰다. 술청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 좀 보세! 여기 아무도 없나?"

미닫이가 열리며 곰방대를 문 사십줄의 주모가 빼꼼히 내다보았다.

"장사하시게."

"올라오슈. 날씨두 춘데."

"거 방이 뜨뜻하우?"

"아랫목이 절절 끓어."

"그럼 염체불구하고 구들목 신세 좀 집시다."

갑송이는 주모가 앉았는 방으로 서슴치 않고 들어섰다.

"술 좀 주오."

"밥은 안 드시게?"

"밥 새길 틈이 있어야지. 술 반 말에 닭이나 두어 마리 삶아 내오우."

주모는 입에 곰방대를 문 채로 밖을 향해 중노미를 불렀다.

"천둥아! 이애 천둥아. 아니 이 녀석이 어딜 가서 자빠졌어?"

주모는 곰방대를 뽑아내고 다시 불러본 다음에 몸소 술상을 보러 나가려구 투덜대며 일어

났다. 그때에 아이 소리 듣기에는 나이가 많아 뵈는 중노미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아이구 큰일났수. 좀 나와봐요."

"왜 이리 수선을 떨구 지랄이람."

"저 뒤... 뒷방에서 사, 사람이 죽어요."

"뭐라구!"

"뒷방에 들어온 선비 있잖아요. 목을 맬려나 보우."

"이 녀석아 그러면 이리루 달려올 게 아니라 쫓아들어가 말릴 일이지. 아유 큰일났네."

"방문이 안으루 잠겼습니다."

아랫목에서 꺼벅거리고 앉았던 갑송이도 얼결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세 사람은 신발을

꿸 사이도 없이 주막 뒤꼍으로 돌아갔다. 갑송이는 중노미가 손짓하는 방 앞으로 가서 문짝

을 흔들었다. 문고리째로 빠져나오면서 퇴창문이 벌컥 열렸다. 셋의 고개가 안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목에다 옷고름을 휘감은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갑송이는 뛰어 들어가 선비의 목

에 감긴 옷고름을 풀어주었다.

"죽지는 않았구먼."

"에그 하필이면 우리 주막에서 이런 짓을 할 게 뭐람. 까닭없는 송장 치구 그 살은 누가

맞으라구."

"떠들지 말구 어서 냉수나 한바가지 떠오시게."

사내는 얼굴이 새파랗게 되었으나 맥이 완전히 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냉수를 사내의 얼굴에 뿜어주고 손발을 주무르니 차차 화색이 돌기 시작했고, 잠시 후에

는 한숨을 토하면서 눈을 떴다. 사내는 제 목을 만져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모가 성깔을

올리면서 삿대질을 했다.

"아니 이건 누굴 찬밥 멕일라구 이러는 거야. 뒈질려면 곱게 길에 나가 논두렁이나 베든

지 할 것이지."

"아 소란 피우지 마슈. 가서 술이나 빨랑 데워와요."

"나 참 길가에서 술 팔고 먹구 살려니 별꼴이 다 많어."

주모와 중노미가 사라진 뒤에 방안에는 갑송이와 사내만이 남았다. 갑송이는 그가 겸연쩍

어할 것 같아 일부러 말을 꺼내지 않고 덤덤히 앉았는데, 기력을 읽고 누어 있던 사내가 인

사를 차리려는 지 알어나 앉으려고 몸을 일으켰다. 갑송이가 그를 만류했다.

"아아 누워 계슈. 번거로이 인사를 차릴 필요 없소이다."

사내는 다시 뒤로 누웠다.

"누구신지 모르오나 쓸데없는 선행을 하셨소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또 한번 겪게 되

었소."

"에이 여보. 보아하니 우리네 같은 천출은 아닐 듯싶은데 멀쩡한 사람이 목을 맨단 말요.

참말 죽고 싶다면 내일 내가 저 산속에 데려가서 목을 쳐드리리다. 그 대신 수고비는 줘야

하우."

갑송이가 비아냥거리며 사내의 비위를 긁었건만, 그는 조용하게 누워 있었다.

주모가 그 방으로 술상을 날라왔다.

"거 고기두 좋지만, 국물도 뜨뜻하게 한사발 갖다 주시게."

갑송이는 날라온 국물을 사내의 앞에 밀어놓고,

"어찌 정신이 좀 들었으면 이거나 좀 드시우."

사내는 그대로 누워 있었으나 갑송이가 억지로 일으켜 벽에 기대게 하였다. 그는 갑송이

가 술을 연달아 들이켜는 양을 구경만 하더니 드디어 제 잔을 내밀었다.

"나두 한잔 주시오."

갑송이와 사내는 마주 앉아서 묵묵히 술잔을 주고받았다. 갑송이가 물었다.

"어디루 가시는 길이오?"

"봉산으루 갑니다."

"게가 댁이시우?"

"그렇소."

"보아하니 양반이신 모양인데..."

"선고께서는 작은 벼슬을 하셨으나 내 위인이 우매하여 아직 출신하지 못한 학생이올시

다."

"예끼 여보. 우리 같은 불상놈두 이렇게 눈을 멀정히 뜨구 살아가는데, 댁네 같은 양반이

이런 추태를 보인단 말요?"

사내는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부끄러워서 뭐라구 발명할 말두 없소이다."

"나는 지나던 나그네이매 댁에게 사연을 묻는 것도 우습지마는 또 혹시 압니까. 우리 같

은 상놈의 말두 쓰일 데가 있을지..."

"자꾸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내야 외양이 이렇달 뿐이지 실은 농사를 짓고 자리를 잡

고 나무를 해서 살아가니 양반이랄 것도 없소이다."

"어디서 오시는 길이길래?"

"한양서 오는 길입니다."

하고 나서 사내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리쉬었다.

"한양서 죽어버릴 것을...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나는 식년시를 다섯 번, 별시를 세 번이나

보았지만 그때마다 보기 좋게 낙방을 했습니다. 과거를 보느라고 젊음을 허송세월하였지요.

이제 나이 사십줄에 접어들어 가산은 기울 대로 기울고 훈장 노릇으로 코흘리개들의 설경료

나 받아 사는 처지에 돈 삼백 냥을 몽땅 날리고 말았소그려. 그 삼백 냥이란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전답과 가옥을 담보로 잡혀 빌린 돈이지요."

"그 나이에 점잖으신 양반 나리가 투전이라두 했단 말이오?"

"차라리 투전이나 했다면 운수려니 셈치구 생각이나 않게요. 그만 간교한 도적에게 속아

모두 털리구 말았지요. 구실의 길을 트려다가 말이우. 어디 작은 직함이라두 얻어걸릴 줄 알

았지요."

"평생을 글을 읽으셨단 분이 과거를 보시던가 해야지 돈냥으로 벼슬을 얻으려 하우."

갑송이의 빈정대는 말에 사내는 한숨을 쉬고 나서 말했다.

"모르는 말이오. 요즈음 과장은 순전히 아수라들의 저자나 같지요, 고관세가의 자제가 아

니고는 과거는커녕 글귀 하나 제대로 적어낼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소."

"제길 그따위 글을 읽어 뭘 하우. 사나이는 논 매고 밭을 갈든지 나무를 해서 땀흘려 먹

구 살면 되는 게지. 그래 벼슬자리 하나 못 얻어 자진할 사내라면 아예 내가 목을 쳐드리겠

다니까. 환도가 없으니 이집 부엌에 가서 식칼이라도 빌려올까?"

"참으로 부끄러우나 지당한 말이오. 허나 저간의 내 행적을 모두 얘기하면 사정은 족히

이해하리다."

봉산 선비는 먼저 과장의 얘기를 꺼내었다. 식년시 때가 다가오면 몇 달 전부터 없는 살

림에 요리조리 경제하여 우선 여비를 마련한다. 그리고 수년간 읽은 글들을 다시 총정리하

고 조상의 사당에 기도를 드리고 나서, 몇 년간 고생해온 아내에게 금의환향을 다짐하고 길

을 떠난다. 양반의 신분으로 환로에 나가지 못하면, 상놈이 받는 것보다 훨씬 큰 수모를 견

디며 살아야 하고, 이제는 상민들도 땅이 많거나 돈이 많으면 마음대로 양반을 부릴 수가

있는 세상이었다. 남의 머슴을 사는 양반들도 있는 판이었다.

어쨌든 이런 자칭 선비들이 식년시 때마다 전국 각지에서 한양을 바라고 몰려드는데 적을

때에는 팔구만이요, 낳을 적에는 십오만이 넘었었다. 한양 성내 사람들보다도 과거 보러 오

는 자들이 더 많을 정도였다. 객주 주막마다 시제라든가 이번 과거의 동향에 대한 뒷소문으

로 가득 차 있다. 이번 장원은 어느 판서의 자제라는 둥, 승지의 작은사위라는 둥 글귀는 벌

써 지어져 시관에게 가 있다는 둥의 별의별 소문이 들끓는다. 시골 향족의 자제들은 하인들

을 서넛씩 데리고 와서 전 날 밤부터 과장의 놓은 자리를 잡아 교대로 맡아 지키게 한다.

또는 글씨 잘 쓰는 자를 데리고 와서 과장에 동행하거나, 시께나 읊는 자들로 글귀의 작을

채우기도 한다. 한양 불량배들은 이러한 선비들의 행각을 잘 알기 때문에 자리다툼과 시고

내는 일과 대필하는 일등에 관한 거래를 터주러 각 객주집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돈냥깨나

있는 자들은 이들을 고용하는데, 대개는 과장에서 각 선비들이 고용한 불량배들이 서로 자

리타툼으로 때리고 차는 소동이 비일비재하였다.

"시고를 낼 때에 시관 가까이 있는 자가 아니면 한번 읽히게 할 수도 없소이다. 그 많은

것을 어찌 다 보겠소. 그저 성명이나 확인하고 첫귀를 읽을까 말까지요. 또한 알려진 가문이

나 향족의 자제들은 제 이름을 미리 써서 시관에게 많은 선물과 함께 넣어두지요. 이십여

년을 과거로 허송세월했는데 집안은 기울고 조상에 뵐 면목도 없어, 그냥 직함이나 따서 가

족들과 일가들게 체면이나 내세울 생각을 했었지요. 우리 선친과는 동문수학인 어른이 교리

벼슬을 하고 계시는데 그이를 찾아 뵙고 부탁을 드려보리라 작정했소. 그래서 아무리 아는

분이지만 돈은 있어야겠기에 내 전답과 가옥을 담보로 봉산 자모전가에서 돈을 삼백 냥이나

빌렸지요. 그 돈으로 장사나 했더라면 큰 이를 보았을 것을... 돈을 마바리에 싣고 한양성을

찾아들었는데 교리 댁에 가서 청지기께 허통을 넣으니 그 어른이 저를 만나줘야 말이죠. 청

지기가 말하길 우선 백 냥만 자기를 통해 넣으라는 겁니다. 오십 냥으로는 진귀한 당화를

사서 나리마님께 들여놓고 나머지 오십 냥으로는 산삼을 사다 올리겠다구 그럽디다. 하도

고마워서 나중에 직함이 떨어지면 꼭 사례를 하마 다짐하며 돈은 내주었지요. 그자가 사흘

뒤에 다시 찾아와 당신 직함이 결정되었다며 교리 어른 혼자 하시는 게 아니라 다른 교리가

또한 계시고 판서도 계시니 각각 오십 냥씩 일백오십 냥만 넣으면 모두 깨끗이 끝난다는 것

입니다. 두말 없이 내주었지요. 한 닷새 지나서 그자가 술과 고기를 사가지고 와 내게 술을

권하면서 축하를 해주는 거요. 벼슬자리가 생겼다는 얘기지요. 그러니 관복도 지어야 하고

인사도 다니려면 선사품을 준비해야 하므로 돈이 좀 필요할 거라는 말에 모두 일임하겠다며

돈 오십 냥을 선뜻 내주었지요. 그래서 내가 전답 가옥을 잡혀 마련했던 돈 삼백 냥은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헌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청지기 사내가 나타나질 않습디다. 나중에 애

가 달고 의심이 부적 생겨서 주위에 물어보니 모두들 조롱하여 말하기를 대가에 겸인 청지

기가 하나둘이 아닌즉 어느 자에게 당했는지 알게 뭐냐는 것입니다. 공연히 양반 댁에 와서

있지도 않은 돈 떼였다고 행역질 말고 다음에 조심하는 게 상수라는 것입니다."

"거참 한양놈들이 순전히 날강도 놈들이군."

갑송이가 눈을 부릅뜨고 중얼거렸다.

"그래 삼백 냥을 바쳐 벼슬자리가 나오면 그 돈 삼백 냥을 국록으로 갚는답디까. 아니지,

모두들 우리네 같은 상놈들의 목통을 조르고 비틀어서 우려내시겠지. 그깐 생각하면서 글은

뭣 땜에들 읽는지 모르겠네."

"혼자서 지난 세월을 생각해보고 나니 부끄럽고 욕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습디다. 고향에

가봤자 남은 땅도 없고 집마저 쫓겨나게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처자를 대하겠소. 그래서

자진할 생각을 먹었지요."

갑송이가 껄걸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일이 있소이다. 내 나리께 돈을 마련할 방도를 일러드리겠수."

"뭔데요?"

"같이 구월산으루 들어갑시다."

"구월산엘?"

"그렇소, 구월산에 들어가면 댁네 같은 글 잘하는 사람이 있어야 될듯하우."

갑송이가 말했지만 선비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구월산에 들어가 무엇을 하우."

"녹림당이 되자는 게요."

"그렇다면 명화적이 되잔 말이오?"

갑송이가 다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과거로 허송세월가고 가산을 날려 자진해 죽는 일보다는, 의로운 녹림당으로 그릇된 재

물을 많이 가진 자에게서 빼앗고, 포악한 관원을 징계하는 일이 더욱 낫지 않소."

선비는 별로 놀라지는 않았으나 잠깐 마음이 내키는 듯한 눈치를 보였다. 실상 그로서는

막다른 길이었고, 이십여 년이나 억눌러온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우직한 갑송이의 소견에도

이십여 년이나 하루도 빼지 않고 글을 읽은 선비라면, 비록 산채의 두령인 마감동이가 글도

알고 꾀도 있지만, 선비 족이 훨씬 일을 도모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선비가

상 위로 머리를 가까이하면서 되물었다.

"그래 힘도 없고, 병장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우리 같은 책상물림을 데려다 뭣에다 쓴단

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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