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따위야 나 혼자서도 이 집 기둥뿌리를 뽑아 던질 수가 있소이다. 댁네의 궁량을 빌리
잔 얘기우."
선비는 혼자 중얼거렸다.
"위로 임금에 충성하고 아래로 백성을 보살피는 성현의 가르침에 어긋나서 도적이 된다..."
"그거 다 책에만 있는 소리지, 실행이 없는 세상이우. 오히려 우릴 가르쳐서 그런 일을 행
하느니만 같지 못하겠수. 내키지 않으면 그만두시오."
"우선 생각해볼 여유를 주시겠소? 집에 노모도 계시고 처자가 딸렸으니 가볍게 결정할 일
이 아닌 듯하오."
갑송이가 낮고 강한 어조로 다짐을 했다.
"우리가 나눈 얘기를 혼자서만 새기시오. 아무래두 봉산까지는 함께 가야 할 터이니..."
"여부가 있겠소. 당신이 나를 살렸는데, 내 어찌 그런 의리를 배신 할 수가 있겠소."
"우리 작당하기로 결정이 되면 한잔 다시 나누기루 합시다."
"내 만약 댁을 따라 구월산으루 들어간다면 가족을 수습할 수가 있겠소?"
"염려 마오. 모두 안돈시켜드리리다."
갑송이는 선비를 혼자 남겨두고 뒷방에서 나왔다. 그는 주모를 불러 선비와 자기의 숙식
비를 함께 치렀다.
손님이 없던 끝이라 주모는 희색이 가득하여 접대하는 뜻으로 술 한상을 더 차려주었다.
이튿날 아침에 갑송이가 뒷방으로 건너가니 선비는 벌써 일어나 의관 정제하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갑송이는 퇴창문을 벌컥 열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어찌하기루 작심했소?"
"함께 가십시다."
갑송이는 빙긋 웃었고 선비는 어제처럼 초췌한 몰골이 아니라 점잖고 침착하게 미소를 지
었다.
"재주가 없으나마 도와드리겠소. 허명과 썩은 생각에 잡혔던 나는 어제로 죽은 것이고, 기
왕에 그릇된 세상이니 그릇된 대로 이름이나 남기려오. 세를 키워서 팔도를 걸치는 녹림당
으루 만듭시다. 나 김기라하오."
"이갑송이우. 봉산 거쳐서 구월산으루 가십시다."
이갑송과 김기는 서흥과 검수역을 거쳐서 봉산에 닿았다. 갑송이가 주장하여 김기만이 제
집에 들러서 그 밤을 지내고 이튿날 식전에 지진나루를 건너 안악으로 향하기로 의논이 되
었다. 김기는 집에 들러서 우선 쌀 섬이라도 들여놓고, 가족들에게는 평양으로 장사를 떠난
다며 안심을 시켰다.
이튿날 걸음을 재촉해서인지 갑송이와 김기는 아직 해가 높다랄 때에 배고개를 넘어 고심
산을 지나 실토봉으로 올랐다. 투구봉 기슭을 돌아 구월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아사봉 아래
편의 된목이골에 이르니 이미 사방이 컴컴해져 있었다. 된목이골의 분지에는 불빛이 몇 점
보였다. 두 사람이 앞으로 더욱 나가려는데 문득 번을 서는 자의 군호 소리와 함께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황급히 바위 뒤에 몸을 숨겼고, 갑송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 이갑송이란 사람이다. 느이들 마두령의 성님뻘 되는 사람이니 활을 거두어라."
어둠속에서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앞으로 나오시오."
그들이 앞으로 걸어나가자 일시에 사방에서 창과 칼을 겨눈 자가 다섯이나 뛰쳐나와 두
사람의 앞뒤로 둘러쌌다. 어둠속에서 창을 비껴든 사람이 마주 달려나왔다.
"무슨 일이냐?"
"예, 부두령이십니까? 누가 두령님을 뵈러 오셨습니다."
"누군데..."
부두령이라니 전에 박대근이께 창으로 대어들던 안주의 오만석이가 틀림없었다. 평안진군
의 초장이었던 사내다. 갑송이가 얼른 손을 잡으면서,
"나 이갑송일세. 만석이 아닌가?"
하노라니 그쪽에서도 알아보고 반긴다.
"아이구 성님이 웬일요. 소문은 들었습니다. 자 어서 들어가십시다."
오만석이가 그들을 안내하여 산채로 들어가는데 전보다 더욱 형세가 커진 것이 초가가 세
채이더니 이제는 여섯 채로 늘어나 있었고, 졸개들도 군율이 엄정해 보였다. 그들이 공회소
로 쓰이는 초가에 다가들 때 벌써 전갈을 받은 마감동이가 툇마루로 나왔다. 갑송이가 가까
이 가자 감동이는 맨발로 뛰어내려왔다.
"성님이 왠일이야. 어서 오우."
"아우 잘 있었나?"
"소문은 들었수. 길산이 성님이 해주에 갇혔다며. 대근이 성님께서 무슨 연락을 주시리라
믿구 좀이 쑤시는 걸 참구 있었다오."
"다 나오게 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 말어."
그들은 모두 들어가 자리에 앉았고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갑송이가 말했다.
"나두 녹림당으로 좀 끼워주겠나?"
"여부가 있수. 성님이 오셨으니 나는 두령자리를 물리겠수."
"아냐 그럴 것 없네. 나야 식객으로 밥이나 먹여준다면 내 힘써 도와주겠네."
그들은 한참이나 두령이 되라거니 아니라거니 옥신각신하다가 김기의 말에 가벼운 다툼을
그쳤다. 김기가 말하기를,
"규율이 있는 곳에는 서열이 있게 마련이오만, 그것이 귀찮다면 제일 제이 두령을 각각
맡으시고 그때 그때마다 의논하여 일을 정하면 될 것이오."
"내가 내일은 재인말루 내려갔다 오겠네. 그전에 길상이 부모님을 옥에서 구원해낼 일을
짜야겠어."
"아이들 데리구 문화 관아를 들이칩시다."
라고 오만석이가 말했고, 마감동이는 고개를 저었다.
"관아를 들이치면 세상의 이목을 모으게 되니 별루 좋지않아. 또한 서루간에 죽고 다치는
자가 많이 나올 테니 우리가 손해구... 속임수로 빼내어와야지."
다시 김기가 말했다.
"내일 이두령이 재인말에 들르실 제 감옥 내막을 대강 알아오시우. 그리고 나서 의논해두
늦지는 않겠소. 사실 시골 군의 옥이래야 두어칸도 못 되는 토옥인데 사람을 많이 풀어서
섣불리 형세나 드러낼 필요는 없겠지요."
"자 날씨두 추운데 먼길을 오셨으니, 술이나 실컷 마십시다."
감동이네는 그동안에 평안도, 강원도를 넘나들며 화적질을 거듭하여 재물이 풍족했고 이
제는 입당한 졸개들도 수가 많은데다 만석이와 감동이가 조련을 시켜서 제법 병장기들도 익
숙하게 다룬다는 것이었다. 여러 얘기가 오가던 중에 갑송이가 선비 김기와 만나게 된 얘기
를 꺼내니 마감동이는 선뜻 돈을 봉산으로 보내어 잃은 땅과 가옥을 되찾아 감기의 가족들
이 걱정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갑송이는 이튿날 산채에서 하루 종일 머물렀다가, 연락시킬 졸개 한 명을 데리고 광대산
줄기를 따라 재인말로 내려갔다. 큰잿말에는 빈집이 많이 있었고 눈이 덮인 밭고랑에는 강
아지마저 뛰놀지 않았다. 갑송이는 걸음을 재촉하여 우선 큰돌네 집으로 향하였다. 뜨락에
들어서서 헛기침을 했더니 부엌에서 뭔가 부스럭대던 큰돌의 처가 기웃이 내다 보았다.
"아니, 이게 누구유?"
"형수씨, 안녕하슈. 큰돌 성님 어디 갔나요?"
하는데 방문이 열리면서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누군가? 나 여깄네."
"웬일이오. 어디 아프오?"
큰돌의 아내가 말하였다.
"글세 무슨 병인지 온몸이 퉁퉁 붓고 옴짝달싹 못하네요."
갑송이는 윗목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을이 어째 이 모양이 되었소. 겨울인데 출행들 나갔을 리두 없구."
"출행이 다 뭔가. 관에서 이번 겨울 안으로 우리를 재인말서 모두 쫓아낸다네. 미리 떠난
사람들이 많다네."
"총대 어른은 안녕허시고..."
"안녕이 다 뭔가. 돌아가셨네. 그 묘옥이란 아이가 여기서 떠나던 날 집에 불을 지르시고는..."
갑송이가 차차 마음이 격해하면서 다급하게 물었다.
"우리 집엔 별일 없지요?"
"자네 노모께선 요새 고생이 말이 아니라네. 낙상을 하셨는지 몸을 못 쓰신다네."
"이젠 예전의 재인말이 아니군."
"다 빼앗겨버린거나 마찬가지야. 여기는 명년 봄부터 둔정으로 몰수 된다네."
"좋다. 내 눈을 멀쩡히 뜨고서 이대로 물러가지는 않으리라. 문화현감을 쳐죽이겠어."
갑송이가 일어섰다.
"좌우간 며칠만 기다리우, 모두들 이사를 시켜놓고 일을 벌여야지."
갑송이는 우선 제 집에 들렀다. 마당에는 치우지 않은 눈들이 그대로 지저분하게 녹아 있
고 퇴락한 울타리가 군데군데 뚫어져 있었다. 갑송이는 노모가 계신 부엌에 딸린 안방의 퇴
창 밖에서 기침을 몇번 해보았다.
"게 누구요?"
하는 말소리가 이미 기력이 쇠잔하여 집안의 모습처럼 썰렁하게 여겨졌다. 갑송이는 눈시울
이 뜨거워졌다.
"누구시우?"
끙하며 일어나 앉는 소리와 함께 창이 밖으로 열렸다.
"어머니, 접니다. 갑송이요."
"응, 인제 오냐?"
어머니는 마치 마실 나갔다가 돌아오는 때처럼 갑송이의 귀가를 담담하게 맞았다. 그녀
자신이 예전에는 연희를 돌아다니던 굿중패였기 때문이었고, 재인말의 흔한 관습이기도 하
였으며 무엇보다고 그들은 길 위에 서 있는 생활을 잘 알아왔기 때문이었다.
"관에서 시끄럽게 굴더라. 길산이하구 어울린 게 너 아니냐구 말이다. 끝까지 네가 북관
쪽으로 올라갔다구 발뺌은 해두었다만."
"어머니 고생되시죠. 이제 재인말을 떠납시다."
내야 재인말이든 한양이든, 저어기 되 땅에서라두 못 살 거 있겠냐. 아무 데나 좋다. 산
있고 물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살 수 있어."
"어머니 그러면 대강 짐을 꾸려두십시다."
갑송이는 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일러주는 대로 초라한 세간살이 중에서 정 버리기 아까
운 물건들을 추려 싸놓았다. 잠시 앉았노라니 문화 고을에서 정탐하던 졸개가 돌아왔다.
"다 알아봤습니다. 장두령께서 처형당했다는 소문이 있기 전에는 파옥을 두려워하여 경계
가 엄중했답니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또 재인말이 아직 정돈되지 않아 광대들이 소란을 부
릴까 걱정하는 모양입니다. 아마 조금이라두 이상한 기미가 있으면 군졸을 풀어 마을을 아
예 쑥밭을 만들 것 같습니다."
"너는 이 길루 마두령에게루 가서 낱낱이 아뢰고, 나는 이사시킬 준비를 서두르겠노라 일
러라. 내일까지 모두 이사를 시킨 다음에 모레쯤에 들이칠란다."
"관아루 쳐들어가게요?"
"아예 불을 확 싸질러버려야지."
"이번엔 큰 판을 치르겠네. 벌써부터 팔뚝이 욱신거리네요."
졸개는 그 길로 된목이골로 돌아갔다. 갑송이가 제 동무들을 찾아다니는데 이미 많은 광
대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뒤라 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결단을 못 내리고
정든 땅을 버릴 수가 없어 주저앉아 있는 중이었다. 갑송이가 이미 이사할 곳을 정해두었다
고 말을 꺼내면서, 떠나기 전에 문화현감의 버릇을 고치자 하니 모두들 찬성해 왔다.
다시 그는 까막내 갖바치 박서방네로 찾아깄다. 길산이의 누이와 박서방 외에도 여태껏
읍내를 드나들며 옥바라지를 해온 봉순이가 함께 있었다. 봉순이는 그동안에 어느덧 계집아
이 티를 벗고 이제는 쳐녀꼴이 완연하여 갑송이가 막말을 주고받기에도 거북스러웠다. 갑송
이가 들어서니 봉순이는 부엌으로 달아났고, 건너편 토방에서 가죽을 꿰매던 박서방이 뛰어
나왔다. 봉순이는 툇마루에 와서 귀를 기울이고 섰고 박서방과 갑송이와 길산이 누이 셋이
서 둘러앉아 해주 소문을 주고받았다.
"여기서는 길산이가 죽었다는 소문이 자자했었네."
"어머니나 아버지두 그 얘기는 숨겨서 잘 몰라요. 어제두 길산이가 놓여나서 돌아왔냐구
몇번이나 물으시더래요."
박서방과 길산의 누이가 말했다. 갑송이가 물었다.
"옥리는 몇 명이나 됩니까?"
"뭐, 둘씩 번을 들어 교대루 지키는갑데. 허나 관아 안에 있으니 파옥하려면 싸움을 벌여야
할걸."
"까짓 놈에 썩은 군졸들이야 나 혼자서라두 문제없습니다. 그보다는 일단 까막내를 떠납
시다. 얼마 동안 구월산에 가 있다가 마땅한 곳이 생기면 마을을 이루어 모여 살기루 하구
말이우."
"글세, 파옥을 정 해낸다면 우리가 예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네."
"길산 오빠는 감영 옥에서 나오게 되나요?"
봉순이가 얼굴은 내밀지 않고서 밖에서 물었으며 갑송이도 내외 말투 비슷이 대답해주었다.
"이번 겨울 안으루 나오게 된다지."
"몸은 건강하데나요?"
"그전보다 더 팔팔하다우."
봉순이가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억지로 묻는 것 같았다.
"묘옥이란 여자가 해주로 떠났다는데 옥에서 만났대나요?"
"그런 얘기는 못 들었다구..."
봉순이는 길산이 묘옥을 좋아했고 묘옥이도 길산이를 제 서방으로 여기고 있음을 누구보
다도 잘 알고 있었다. 봉순이는 장충이와 안무당이 자기와 길산이 두 사람을 이미 성혼시
키려고 작정했다는 눈치도 알았다. 어릴적에 무당의 신딸로 들어와서 철없이 자라나면서 길
산이를 사내로 생각하지 못했던 봉순이였으나 어느결엔가 길산이를 그리운 남자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봉순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해가지고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마감동이와 오만석이가 졸개들 십여 명을 데리고 재인말에 내려왔는데, 김기도 뒤따라 들
어섰다.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재인말 사람들의 은밀한 이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간단한 세
간들을 싸짊어지고 구월산 아사봉의 된목이골 산채로 들어갔다. 반나마 어디론가 흩어져 버
린데다, 구월산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가족들이 있어서, 한 열댓집 정도가 된목이골로 들어
간 것이다. 나머지 광대 식구들은 바닷가의 광대들이 모여 사는 강령이나 옹진 등지로 떠나
갔다. 하루 만에 재인말은 인적이 끊어지고 빈집만이 남았다.
갑송이와 김기를 비롯하여 감동이, 만석이 등은 연희 나갈 때 계회장으로 쓰이던 마당에
모여 있었다. 김기는 도포에 통영갓을 쓰고 옥관자 달고 녹피혜를 신었으니, 누가 보기에도
한양서 유람 나온 높은 관리쯤으로 여겨질 만했다. 그에게는 졸개 둘을 구종배로 붙였다. 나
머지 사람들은 모두 봇짐을 하나씩 짊어지고 머리에는 패랭이를 썼으니, 보부상 패거리의
행색이었다. 장사꾼으로 변장한 갑송이 등이 먼저 신천서 문화로 나가는 큰 행길로 나아갔
고, 김기는 뒤미처서 말에 올라 거드럭거리며 따라갔다. 문화읍에 도착하여 김기는 객사를
찾아 갔다. 수직하는 자에게 허통을 넣자 이르니, 그들은 어리벙벙하는 것이었다. 시중들던
졸개 하나가 김기의 눈짓에 따라 호통을 쳤다.
"이놈들, 이분이 누군 줄 아느냐. 영의정 김수흥 대감의 사촌 되시는 분이다. 어서 수령께
현신하라 일러라!"
누구의 말이라 거역을 하랴. 먼저 이방이 달려나와 문안을 드렸고, 잠시 후에 관복을 단정
히 차려 입은 문화군수가 와서 현신하였다.
"원로에 노고가 많으십니다. 저희 동헌으루 들어가시지요."
"아니오, 내는 객사에 있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외다. 공무가 아니라 그저 갑갑하여
바람이나 쐬려고 유람을 나온 것이니, 사또는 너무 괘념하지 마오."
"이곳은 시골이라 사람 구경을 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손님이 오시면 제가 친히 모
시곤 합니다. 어서 저와 같이 드시지요."
김기는 그들이 관아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고 있었고, 그것이 당초의 계획인지라 더 이상
버티지 않고 사또를 따라 들어갔다. 좌정하여 조정 얘기며 서인이며 남인 쪽의 지면 있다는
인사들에 관하여 얘기하는데, 영상이 서인이며 또한 그들 일파가 득세하는 세월임을 알고
있는 수령은 연신 복제의 기년설이 타당함을 역설하였다. 몇 년간이나 계속되어온 조정의
예송을 관리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기는 능숙하게 기년설의 정당한 이론
적 근거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자리를 안으로 옮기시지요. 부끄러우나마 작은 자리를 장만하였습니다."
사또가 은근히 청하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떡벌어지게 차려놓은 다담상 주위에 관기
서넛이 앉았고, 악공도 뒷전에 앉아 음률을 잡히고 있었다. 술잔이 오고가는 중에 차차 취흥
이 무르익어 사또가 먼저 말하기를,
"보아하니 거기나 나나 연수도 비슷한 듯하고, 또한 초시를 치른 해도 같으니 막역지우로
지냅시다."
하였고, 김기도 서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압다, 그러지. 자네 내게 잘 보여야 내직을 얻어 하지. 내 한양 올라가면 아저씨께 말씀
드려서 적당한 자리를 보아주겠네."
"황공합니다."
"이 사람, 막역지우로 하랬다가 어찌 말도 못 놓고 그리 설설 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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