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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2권 (19)

카지모도 2026. 3. 29.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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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그런 것 좀 가르쳐주시우."

"먼저 사람을 활인 해내는 법을 알면 사람의 사법두 알게 되는 것인데, 너는 아직 활인

할 생각이 없는 놈이니 사람 목숨의 중함을 먼저 깨우쳐야겠다."

곁에서 묵상을 하듯 꼿꼿이 앉아서 듣고만 있던 옥녀가 풍열스님을 향하여 물었다.

"스님, 아까 이 사람과 소승이 대련을 할 적에 어찌하여 제가 졌다구 말씀하셨습니까?"

"음, 너는 삼 년 동안이나 여기서 무예를 익혔다. 내가 보았을 적에 갑송이는 병장기 한번

잡아보지 않은 천래의 역사일 뿐이었다. 허나 그 무예의 자질에 있어서 옥여는 갑송이를 당

할 수 없더구나. 갑송이는 막는 것과 찌르는 것 모든 동작이 몸에 붙어 있어서 마치 손가락

이 가까이 가면 저절로 감겨지는 눈꺼풀과 같고 물 것이 깨물면 날아가 때리는 손바닥과 같

더구나. 옥여가 오히려 그의 힘을 이용하여 한번만 공격했으면 이겼을 것이다. 공격과 방어

가 거듭되니 갑송이는 그 가락을 몸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하니 옥여 네가 진 것이 아니냐?"

옥여는 머리를 숙였고, 풍열이 갑송이에게 물었다.

"너같이 우악스런 사내가 어찌 음률을 아는 듯하니, 춤을 출 줄 아느냐?"

갑송이는 겸연쩍어져서 뒤통수를 긁었다.

"헤헤, 실은 저는 근두자올시다."

"그런 줄 알았다."

풍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송이가 문득 입맛을 다시면서 중얼거렸다.

"제길헐 컬컬해 죽겄네! 거 절엔 탁배기두 한잔 없나?"

"저 아래 거사마을에 가서 한잔 얻어먹구 가려무나."

마감동이가 몸을 일으키면서 말하였다.

"저희들은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갑송이도 덩달아 일어났다.

"스님, 좋은 말씀 많이 배웠수."

"자주 놀러 오너라. 된목이골이면 봉우리 하나 사이니까."

갑송이와 감동이는 옥여스님을 따라서 월정사 아래 계곡에 자리잡은 사당마을로 내려갔

다. 귀틀집 칠팔 채가 있는 사당마을에는 해끔하게 생긴 계집들이 산골 아낙답지 않게 고운

화장을 하고서 얹은 머리 위에는 색댕기를 매고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옥여를 본 사당들

은 공손히 허리 굽혀 합장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스님, 평안하십니까?"

"어, 자네네 혹시 곡차 담은 것 없는가?"

"예, 어서 들어오셔요."

"모가비는 어디 갔나?"

"제가 불러다 드릴게요. 웬분들이신가요?"

사당은 옥여의 뒤에 섰는 갑송이와 감동이께로 연신 추파를 던지면서 물었다. 옥여는 빙

그레 웃고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왜, 정분이라두 맺으려나?"

"혹시 또 압니까요. 좋은 연분이 닿을지... 어서들 올라가 계셔요. 제가 술을 걸러 올리지

요. 제 동무들을 불러올까요?"

갑송이가 계집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우악스럽게 말하였다.

"술이나 빨리 가져와라. 너희들과 노닥거리러 온 게 아니여."

"에이그, 참 뚝뚝도 하셔라. 곁에서 술을 쳐드려야지, 사내들끼리 앉아 안주도 변변치 않

은 터에 술맛이 나시겠나요?"

"어, 그년 말두 많어. 어서 술독째 내오너라."

갑송이의 무뚝뚝한 말투에 찔끔한 사당이 부엌 쪽으로 내빼버렸고 옥여가 감동이와 말을

주고받았다.

"이서방이 승려두 아닌 터에, 계집 보기를 원수같이 아는구려."

"원수같이 아는 게 아니라 저렇게 생겨먹었으니 똥 뀐 놈이 화낸다구, 지레 피하는 겁지요."

갑동이의 농을 듣고 갑송이는 토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아우처럼 옴 오른 낯짝은 아니어. 계집 생각이 나거든 안방에 가서 지분거리구 오지 그래."

'성님이 내 해우채 좀 내줄라우?"

"내가 어디 기둥서방인 줄 알아. 네 오입값을 내주게."

그들은 농지거리를 하면서 토방에 둘러앉아 있었다. 모가비 임가라는 자가 뒤에 거사 두

엇을 거느리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머리는 상투잡이였으나 승복에다 염주까지 걸고 있었다.

"스님이 여긴 웬일이시우?"

"아, 절에 손님이 오셔서 곡차나 대접하자구 이리 모셔왔네."

"그러시면 저희 집으루 모시지요."

"아무려면 어떤가. 술이 있으면 되었지."

모가비 뒤에 따라왔던 거사가 말하였다.

"아 그러믄요, 편히들 기십시오. 여긴 우리 집입니다."

"백련이 짝이 자네든가?"

"예, 그리구 홍도두 여기 있습죠. 어찌... 불러다 술시중 들라구 할까요?"

옥여는 그들을 손짓해서 올라오도록 하였다.

"아닐세, 올라들 와서 세상 얘기나 좀 듣지."

"어유, 저희들이 뭘 안다구 세상 얘깁니까."

"자네들은 전국에 안 가본 데가 없으니 얘깃거리두 많겠지. 앉아서 얘기들이나 허지."

그들은 못 이기는 체 토방으로 들어섰다.

"심심허니 애기나 해보라니까."

"원 참 옥여스님두, 무슨 얘깃거리가 있다구 늘 만날 적마다 그러십니까?"

하며 모가비 임가가 말하자, 거사 하나도 사양한다.

"우리네가 지껄여봤자 음담패설입지요."

갑송이와 감동이는 묵묵히 술을 마시고 안주를 집어넣었는데, 옥여는 놓인 술잔에 입도

대지 않고 그들에게 얘기만을 독촉하였다.

"그럼 지난 가을에 우리 행중에서 실지루 있었던 일 하나를 말씀드릴까요?"

"그래 해보게나."

"우리가 한양 올라갔을 적이지요. 남촌 초동의 어느 마당에다 놀이판을 벌여놓고 한판 벌

이는 참이었지요. 웬 이목이 수려한 미동자 하나이 구경을 하는데, 놀이가 다 끝나구 사방이

어두워질 때까지 돌아갈 생각을 않는 것이었습니다그려. 우리가 하두 이상히 여겨서 물었지요.

여보 총각, 어째서 갈 줄도 모르고 거기 서 있소? 집을 모르면 우리가 데리다 드리리다.

했는데도 그 총각은 여전히 꼼짝도 않고서,

나 같은 사람이 집에 간들 무엇하오.

하며 대답할 뿐이었지요. 제가 거동을 보고는 저렇게 잘생긴 미동은 구하기 어려우니 잘 꾀

어다가 행중에 넣어 무동을 시키면 벌이도 좋으리라 생각했었지요. 그래서는,

얘야, 네 성명이 무엇이며 네가 집에 가도 별 재미가 없다니 우리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노래나 부르고 산천경개나 구경하면 어떠냐?

하니까 그 소년은 즉시 응낙하더군입쇼. 그래서 제가 그 소년에게 기예를 가르쳐주니 위인

이 영리하여 동료들의 뜻을 잘 받아주고 재주를 금방 익혀서 우리 행중의 사랑을 받았습니

다. 그러니까 그것이 지나간 봄의 일입지요. 해서 그애는 우리 사당 아이들보다도 더욱 돈벌

이에 요긴하였소이다. 절에서 가져간 부적도 잘 팔릴뿐더러 아이들이 몸을 팔지 않아도 제

법 벌이가 되었지요. 이것이 모두 그 무동이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무동이의 소문이 향촌

에 널리 퍼져 있어 모두들 그 애를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헌데 한가지 이상한 일은 다른

때엔 그렇지 않다가도 밤 되어서 잘 때만 되면 언제든지 여러 사람들과 같이 자질 않고 으

레 문을 꼭 잠그고 혼자 기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괴이하게 여겨서 여러번 그러지 말라

구 타일러도, 다른 일에는 거역하는 일이 없다가 그 일만은 듣질 않았지요. 정 그렇다면 행

중을 떠나겠다구 그러잖습니까. 우리네 함께 다니며 가락이나 맞춰주는 거사들은 모두 제

사당이 있는지라, 내 생각하기를 저놈은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음양의 화합을 이루지 못하

여 애를 태우는가 하여 우리네 애사당과 짝을 맞춰주기루 했습니요. 그애가 바루 도화라는

아이입니다. 이 사람 집에 같이 살구 있지요. 제가 오 년 전에 원주서 흉년 든 농가에서 다

섯 냥에 사들인 계집아이였습니다. 스님께선 꾸짖으시겠지만 기왕지사 헐벗고 굶주려 죽게

된 집안에 사느니, 저희 부모도 구명시키고 저도 우리 틈에 끼이면 비록 몸은 천하나 밥을

주리는 일이 없으니 잘된 일 아니겠습니까. 하여튼지 이년이 그때에는 늘상 제 부모가 자기

를 팔았다 하여 포한을 품고서 놀이판에 나서서 곱게 노래는 하여도 절대로 웃는 법이 없었

습니다. 그러니 저희들께는 아주 밉상이었습죠. 그렇게 웃지두 않던 도화가 버들쇠 소년이

행중에 들어온 뒤부터는 언제든지 웃음을 띠고 그 앞을 떠나기 싫어하며 흔히 은근한 말로

속삭일 적두 있구 애달픈 표정으로 바라볼 때두 있었지요. 헌데 짝을 맞추어주었는데도 역

시 그 녀석은 도화라는 년을 버리구 저 혼자 풀밭이나 헛간에서 잠을 잔단 말입니다. 우리

들두 은근히 궁금하여 버들쇠 총각과 도화가 어떻게 되는가 지켜봤습니다. 허허 가을이 다

되도록 아무 변화가 없습디다.

그러니까 그것이 지난 추석이었던가요? 경기도 어름에서 썰렁한 추석밤을 새우는데 나중

에 알았지만 이년이 버들쇠의 곁으로 파고든 모양입니다. 헌데 이 녀석이 자꾸 돌아눕기만

하니 도화도 아무리 사모는 하지만 여자의 오기가 있는 터에 너무 사내를 밝힐 수야 있겠습

니까. 그래 하염없이 울고 앉았으니까 우리 거사 하나가 그 울음소리에 잠이 깨어서는 슬쩍

일러주었지요. 사내란 술을 마시면 계집 생각이 나는 법이니 몰래 술을 먹이구 정을 맺도록

하라구 말입니다.

자, 이 지경이니 아무리 애사당이라지만, 사내가 많은 철광산이나 저자에 나가면 계집이

모자라는 터에 한 년이라두 아쉬운데, 이년이 해우채를 벌 생각을 해야 말이죠. 추석 이튿날

은 달도 밝았고 음식도 푸짐하여 놀이판이 아주 흥청댔지요. 달 밝은 상당산성에서 두견새

가 울어예는데 참 집 없이 떠도는 신세가 처량해지는 밤이었지요.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도화가 그날 밤에 단단한 결심을 했던 모양입디다. 둘이 숲속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데, 어린

것들이라 그 정경이 더욱 아기자기했지요. 우리들두 그날 밤에 성사가 되지 않으면 버들쇠

놈을 쫓아 낼 작정이었거든요. 도화와 버들쇠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다가 서로 울기도 하

고 웃기도 하다가 어느덧 술이 만취가 되었죠. 헌데 술자리가 치워지자마자 버들쇠놈은 전

처럼 헛간으루 들어가더니 역시 고리를 딱 걸어 잠그었단 말입니다. 도화가 정말 노했지요.

제아무리 철석 간장일망정 이럴 수야 있겠는가 하고, 저 사람이 여자라 한다면 수염자리가

보일 리 없고, 남자로서 자기 애타는 심정을 몰라준다면 차라리 죽여 미련을 끊음만 같지

못하다며 살기등등했지요.

결심한 도화가 행중에서 쓰는 큰 칼로 버들쇠가 자는 방문을 곁쇠질 하여 열고 들어가보

니, 서창의 달빛이 낮같이 환한 방안에 홀로 누운 버들쇠가 술에 취하여 사람 들어오는 것

도 모르고 곤히 잠들었고, 베갯머리는 눈물로 젖어 있더랍니다. 도화가 염치 가리지 않고 버

들쇠의 곁에 달려들어 허리띠를 끄른 다음 그 바지 속에 손을 넣었다지요. 어, 이게 웬일이

란 말입니까. 지금까지 미소년인 줄로만 생각했던 것도 한바탕 꿈이요, 도화는 허전한 마음

으로 손을 꺼냈다는 것입니다. 있을 것이 잡히지는 않으나 버들쇠는 분명히 소년이었습니다

그려. 도화는 비로소 버들쇠가 혼자서 잠자리를 버티는 이유를 알았습죠. 도화는 봄부터 버

들쇠를 사모했던 정회가 이렇듯 허무하게 끝난 것도 야속하거니와 버들쇠의 처지가 불쌍해

졌지요. 그래서 도화는 다시 밖으로 나가 칼을 더욱 날카롭게 갈아서 방으로 들어갔지요.

이 한 칼로 내 팔자는 정해진다. 버들쇠가 죽어지면 나도 살인한 죄로 따라서 죽을 것이

요, 천만다행히도 그가 완전한 사내로 되어진다면 내 소원을 그밖에 다시 없다라고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도화는 버들쇠 총각의 바지를 헤쳐 내려놓고 불룩한 살주머니를 사정없이 죽 쨌단 말입니

다. 버들쇠가 놀라서 저를 죽이려는가 하여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잠이 깼습니

다. 도화는 버들쇠가 고함을 지르거나 말거나 계속 째어보니 피가 낭자한 가운데 살 속에서

사내의 것이 튀어나와 있더란 말입니다. 버들쇠는 벌떡 일어나 흘러내린 피를 씻을 사이도

없이 도화를 껴안았지요.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요. 도화와 버들

쇠는 서로 껴안고 웁디다. 평생을 불구자로 보낼 줄 알았던 버들쇠도 감격했던 것입지요. 도

화가 반 울며 웃으며 하는 말이,

그런 까닭으로 쌀살하게 구는 것을 모르고 내가 사내들게 몸을 팔아 더럽게 여기는 줄 알

았어요. 당신을 몰인정한 사람으로만 알고서 죽일 작정으로 문을 부수고 칼을 들고 들어왔

건만...

이튿날 행중이 길을 떠나는데 두 사람의 거동을 보니 애틋하고 살뜰하여 젊은 것이 부럽

습디다. 헌데 이것들이 정을 알고 새내 계집의 재미를 알게 되니 머물러 사는 세간의 생활

이 그리워지지 않을 리가 있겠소이까.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해두었건만 아마도 달아날 생각을 하구 있는 게 틀림없습디다. 실은 저두 어렸을 적에 애사당과 정분이 나서 둘이 도망

쳤던 적이 있었지요. 허지만 우리 거사패와 사당이란 것들은 팔자에 역마살이 진동하여 양

민의 생활을 이룰 수가 없지요. 한 두어 달만 정착해보면 좀이 쑤시고 갑갑하며 견딜 수가

없게 되어 훌쩍 떠나게 되지요. 계집은 계집대로 다른 사내와 눈이 맞거나 여하튼지 역마살

과 도화살을 면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날부터 도화와 버들쇠는 의논을 했던 모양입디다.

나는 부모를 잘못 만난 탓으로 이 몹쓸 구렁창에 빠졌으나 당신은 아마 몸이 불구임에 상

심이 되어 이런 패거리에 빠졌군요. 이제는 정로를 밟아 다시 살으셔야죠.

저 구렁이 같은 모가비가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데, 언제 어디로 빠져나간단 말요.

하, 이렇게 의논들을 했답디다. 버들쇠는 알고 보니 양반댁 도령이었지요. 즉 사대부댁 외

아들이었다 그것입니다.

우리 부모가 나를 퍽 귀엽게 여기시면서도 한편으로 늘 섭섭하게 한숨 지으시는 것을 보

았지만, 어려서는 몰랐다가 십오세가 넘으면서 부모의 뜻을 확실히 알게 되었지. 그래서 나

도 병신 된 한스러움이 날로 깊어져 공부를 하려 새도 머리에 들지 않고 멍하니 섰거나 이

것을 잊으려고 놀기만 했었소.

라구 얘기를 하더랍니다.

부모님들도 내 하는 것을 내버려두었는데, 그날 사당패가 초동 집 근처에서 판을 벌였기

에 구경을 갔다가 도화의 거동과 노래에 그만 정신을 잃어서 멍하니 서 있었지. 모가비가

가자 하여 깊이 생각지 않고 서슴없이 따라 나섰던 것이외다. 실상은 도화를 따라 나선 것

이었지, 그 뒤 도화의 눈치를 짐작은 하였으나 그럴수록 내 병신 된 것을 감추려고 쌀쌀히

굴었던 것이오.

나중에야 이들이 빠져나갈 계획을 했던 것을 알았지요. 양반의 아들인 버들쇠와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습니다. 우리가 광주서 송파를 휘둘러보고 있던 어느날 두사람은 우리의 눈을

피하여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들은 사람을 잃으면 각 향시를 떠도는 무리들

게 통문을 보냅니다. 행중에서 발을 뽑겠다면 누가 안 놓아줄까봐서 밤을 타구 달아나버렸

단 말입니까. 해서를 골짜기마다 돌고 보니 곧 겨울입디다. 그래서 월정사루 들어왔는데, 그

도화란 년이 먼저 와서 기다리구 있었다 그겁니다. 그래 일부러 매도 때리지 않고 뭣 때문

에 도로 왔느냐구 살살 캐물으니까, 다음을 기약하구 헤어졌다는데 필시 버림을 받았던 모

양입디다. 우리네가 겪어봐서 알지만 정분의 맛을 본 사당은 이미 장사에는 소용이 없습니

다. 내쫓았지요. 이제 너는 우리 행중과 아무 관계가 없느니 떠나가서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하구 말입지요. 허 그랬더니 도화란 년이 울음을 터뜨리며 말하기를 그 양반댁 아들이란 총

각은 이미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총각이 죽게 된 얘기는 바로 이렇습니다.

초동의 유승지 댁으로 두 사람은 찾아갔었더랍니다. 유 총각이 없어진 뒤에 승지댁에서는

그가 병신 된 것이 한이 되어 물에라두 빠져 죽었으나 싶어 한강에서 토정이까지 다섯 줄기

를 샅샅이 훑어보아도 전혀 자취두 없더라지요. 할 수 없이 지면 있는 자가 지방관으루 내

려가면 수소문하여 알아달라고 부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건만, 병신된 것으로 하여 더

욱 애처로운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질 않았으니, 유승지는 양자를 들이게 되었답니다. 총각과

동갑이며 그에 못지않은 미남자에다 글도 열심히 읽는 시골 선비의 막내아들을 양자로 들여

놓았고, 그해 식년시에는 과거도 보여 초시를 따고 이어서 홍패까지 받았답니다. 유승지는

가내에 엄명하여 버들쇠 총각이 행방을 감춘 사실을 절대 함구하도록 하고서, 양자를 버들

쇠 총각으로 못박아 바깥 사람들이 눈치 체지 못하도록 했다지요. 이제는 과거에도 나아갔

고 또한 남자의 구실을 하여 대도 이을 수 있는 아들이 생겼으니 승지댁은 전화위복이 된

것입지요. 헌데 이렇게 모든 일이 정해진 다음에 사라졌던 총각이 이상한 꼬락서니로 나타

났단 말입니다.

양반의 아들이 유랑 광대패가 되어 가무를 팔아왔고, 게다가 창녀 애사당까지 달고 돌아

왔으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승지댁에서는 모처럼 고생 끝에 돌아온 아들

을 바깥사람에 머물도록 하고 안에는 들이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승지는 그의 부인이 알게

되면 일에 지장이 있을까 하여 안채에 알려지지 못하도록 하인들 단속을 단단히 해놓았지

요. 그날 밤에 힘깨나 쓰는 하인 네뎃 명이 사랑을 덮쳤답니다. 그들은 불문곡직 버들쇠와 도

화를 자루 속에 넣고 밧줄로 꽁꽁 묶은 다음에 밖으로 떠메고 나갔지요. 이제는 그가 돌아

온 것이 바로 양반댁의 환난이 되어버린 것이었습죠. 원래 유승지의 지시는 마포에 내다 버

리라 하였으나 그중에 유총각을 동정하는 노비가 있어서 삼개쯤 가서 풀어주며 멀리 떠나라

고 권고하더랍니다. 도화는 다시 행중에 돌아가자 하였으나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양반댁 도

령이 어디루 가겠습니까. 도화가 잠든 틈을 타서 그자는 강에 투신하구 말았습죠. 사당년들

이란 아무리 나이가 어려두 사는 게 모질다는 걸 아는지라 아주 독합지요. 도화는 강에서

버들쇠의 시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답니다. 서강에서 시체가 떴다지요. 도화는 동작나루에

있는 아는 사당패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여 소년의 시체를 수습하였답니다. 이렇게 기담 비

슷하게 지껄이기에는 참으로 가슴아픈 얘깁지요. 네, 우리 아이들은 별의별 일을 다 겪은 것

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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