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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2권 (21)

카지모도 2026. 3. 31.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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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따르던 만동이가 잔이 넘치도록 주전자를 기울인 채로 딱하다는 듯이 입맛을 연신

다셨다.

"길산이 성님은 아마 제 심정을 아셨을 겁니다. 성님은 다 좋은데 그놈의 의심하는 버릇

은 아직두 못 버리셨구려."

"의심이 아니야. 풀떼기 먹던 자가 이밥 먹으면 우선 뒷간 다니기가 수월하여지고, 뒷간

다니기가 편해지면 세상살이두 편해지구, 그러면은 관아에 발길이 닿는 법이다. 네 이 고을

아전붙이들 하구두 오락가락 하렷다."

만동이는 역시 입맛을 한참이나 다시더니,

"성님 제게두 꾀가 있구, 세상 사는 이치를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성님을 길가에서

만나 반가워한 것은 물론 옛 의리도 의리려니와 제게 생각이 있기 때문이었소이다. 제 말씀

을 듣고 나서두 의심이 가신다면 당장에 제 집에서 나가셔두 붙들지 않겠소이다."

"그래 무슨 생각이여?"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잠채잡이를 합니다만 노중에 험로를 지나며, 각 곳에 들끊는 좀도

적패에게 바치는 통과세로 거지반 다 빼앗깁니다. 그뿐이 아니지요. 좋은 굴자리가 있더라도

세력 있는 그곳 잠채꾼들과 다투게 되니 수가 적고 약한 저희 아이들은 넘보지도 못하지요.

또한 자금을 들여서 더욱 많이 파낼 수 있으나 돈이 모자랍니다. 헌데 이런 세상에서야 돈

있고 힘있는 놈이 제일인데, 구월산에 기시는 성님들과 통하시니 저희들과 손을 잡으시면

위험을 무릅쓰지 않더라도 취재가 많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두 다 그런 생각으루 그렇지

않아두 구월산에 가서 산속을 헤매서라두 만나뵈려던 참이었지요. 정말 속내를 털어낸 말씀

입니다."

"그런 얘기라면 나는 잘 모르겠네. 내야 아직두 산채에서 더부살이 하는 몸이니까. 여하튼

자네 얘기는 재미있구먼."

"자, 그 얘기는 뒤로 미루고, 길산이 성님은 정말 돌아가셨습니까?"

"아니야, 아직은 무사하시지."

"그러면 산채에 와 계십니까?"

"차차 알게 될 걸세. 길산이만 오게 되면 여러가지루 협조할 일이 많겠지."

"그야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어째 봉산에는 무슨 일루 오셨습니까? 벌이 앞전의 정탐을

나오셨다면 제가 세세히 일러드리리다."

"사람 하나를 잡아 죽이러 왔구먼."

갑송이가 서슴지 않고 말하자 만동이는 목을 움츠렸다.

"어디... 봉산 사람입니까? 힘깨나 쓴다면 제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

"우리네하군 씨알이 다른 놈일세. 그놈이 책상물림이여."

"어디 산답니까?"

"뭐라더라... 동선령고개 어름에 도림골이라던가?"

"예, 여기서 가깝습니다. 혹시 이름을 아십니까?"

"김기라구 얼굴이 길고 하얗게 생겼는데 훈장질을 했다더군."

"제가 아이들을 시켜서 잡아다 드릴 테니, 성님이 직접 가실 필요두 없습니다."

"아닐세, 그리되면 나중에 소문이 나서 자네가 곤란해질 게야. 그보다는 자네 아이를 하나

보내어 정탐을 시키지. 아무 일이 없으면 나혼자 찾아가서 만나겠네."

"만나서 정말 사람을 죽이시려우?"

"속을 떠봐야지."

만동이가 잠깐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동선령 기슭의 도림골로 사람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술잔을 나누는데, 도림골을 다녀오는 자가 들어섰다. 갑송이를 대신하여 만동

이가 물었다.

"그래 살펴보았느냐?"

"예, 김기라는 사람네는 그 집에서 쫓겨나 마을 뒤의 언덕빼기에다 토굴을 파구 삽디다."

"그쪽에두 가서 살폈느냐?"

"그러믄요. 가까이 가서 보니 거적을 쳐놓았는데 안에서 말소리가 두런두런하는 것이 그

선비가 있는 듯하옵니다."

"알았다. 수고했다."

갑송이가 일어나 신을 꿰는데 만동이도 따라 내려서면서 말하였다.

"어쩔라우, 내 성님을 따라가리까?"

"고만두어, 아침 식전에 들르지. 둘이 올지 아니면 혼자서 올지 모르겠지만."

"잘 다녀오슈. 그건 그렇구... 아까 제가 말씀드린 일두 있구 하니, 구월산 오르실 젠 저두

데려가주시우."

갑송이는 만동이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글세 나중에 봐서..."

그는 만동이를 된목이골로 안내하기는 께름칙하였다. 그의 말대로 이제 그들은 류가 다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나중에 봉산을 오락가락할 적에 그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리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도림골에 이르러 만동이의 하인이 일러준 뒷산으로 올라갔다. 과연 흙이 드러난 언덕 아

래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발자국 소리를 죽여서 불빛으로 다가갔다. 그

는 거적을 조금 들치고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안쪽에 짚북더기를 두툼히 쌓은 자리에는 노모

인 듯한 할머니가 누워 있었고, 김기는 그 옆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김기의 처인 듯한 부인

네가 까물대는 등잔머리에 붙어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갑송이가 아무리 기다려도 그

들은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갑송이는 더 이상 엿들으려 하지 않고 가슴에 품은 비수를

옷 겉으로 쓰다듬어보고 나서 큰기침 소리를 냈다.

"거 누구요?"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드렸을 때 갑송이는 거적을 들치며 안으로 상반신을 들이밀었

다.

"갑송이 왔소."

여자가 질겁을 하며 김기의 뒤로 숨는데, 김기가 허리를 굽힌 채로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이두령이 무슨 일루 이렇게 몸소 내려오셨소?"

갑송이는 안으로는 상반신만 들이민 채 묵묵히 서 있었다.

"어서 좀 앉읍시다."

김기가 갑송이의 손목을 덥석 잡고 끌어 앉혔다. 갑송이는 다시 아무 말 없이 김기를 건

너다보았다. 김기가 고개를 숙이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모전가에 둔을 갚지 못하여 이 꼴이 되었습니다."

갑송이는 한참이나 묵묵히 앉았다가 불쑥 물었다.

"가족을 안돈시키는 일두 우선 급하고, 어서들 구월산으로 가십시다."

그러나 김가는 고개를 내젓는 것이었다.

"저는 못 갑니다. 마두령께도 이해가 가도록 전언하여주십시오."

갑송이는 가슴에 손을 넣으려다가 질린 얼굴로 앉은 노파를 둘러보았다. 노파의 더 안쪽

으로는 짚더미에 싸인 어린아이 셋이서 갓난 짐승처럼 곤히 잠들어 있었다. 갑송이는 울컥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며 일어났다.

"좀 보십시다."

김기도 갑송이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고, 그의 아내가 뒤따라 나오며 소리쳤다.

"여보, 이 밤중에 어디 가셔요?"

"당신은 어머님 모시구 안에 있어. 내 잠시만 다녀올 테니..."

갑송이는 그들의 실랑이하는 말을 귓전에 들으며 앞서서 언덕을 올라갔다. 갑소이는 맞춤

하다고 생가되는 곳에 와서 뒤로 돌아섰고 김기도 마주 섰다. 갑송이가 말했다.

"구월산에 가지 못한다면..."

"내 뜻은 아니지만 노모가 이곳을 떠나시기를 반대하시니 어쩔 수가 없게 되었구려."

갑송이는 김기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품안에 감추고 있던 비수를 꺼내들었다.

"못 가겠다면 나으리의 모가지라두 가져가야겠소이다."

김기가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듯 무릎을 꿇더니 땅바닥에 털썩 주저 얹았다.

"신의를 배신한 죄 죽어 마땅하오. 베시오."

갑송이는 칼을 쳐들고 머리를 내민 김기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처음부터 인연이 없었다면 모르되 혈당이 되자고 약조하지 않았소. 일단 녹림패로 작당

이 되었다가 온다 간다 말 없이 산채를 나갔으니 당신이 관군에게 내통한 것과 다름이 없

소. 우리는 앞으로도 나으리를 믿을 수 없어 화근을 끊고자 합니다. 원망 마시우."

김기가 고개를 숙인 채로 침통하게 내뱉었다.

"좋소이다. 그러나 과거로 허송세월 보내는 동안에 고생한 부모 처자는 죄가 없으니 내가

이대로 죽어지면 천추에 씻지 못할 불효가 되오. 내게두 사정이 있고 핑계가 있으니 죽기

전에 한번 이야기나 하도록 해주겠소?"

"당신의 목을 가져가는 대신에 가족들이 살아가도록 처음에 약조했던 빚값은 우리가 탕감

해주겠소."

김기는 고개를 흔들더니 이윽고 거칠게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것이었다.

"비록 빚이 탕감되어 살 방도가 생긴다 하더라도 우리 집안이 받은 원한과 수모는 씻기지

않을 거외다."

갑송이가 칼을 쳐든 채 망설이고 있는데, 김기의 아내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언덕을 올

라왔다. 여자는 저돌적으로 곧장 달려와서 뒷걸음치는 갑송이의 다리께를 붙잡고 쓰러졌다.

"나으리, 무슨 일로 저희 주인을 죽이려 하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출사하지 못하여 세상

을 못 만난 죄로 갖은 수모와 포학을 당하여 심신이 기진한 이를 죽여 무엇하시겠습니까?

저를 죽여주십시오."

김기가 그의 아내를 떼어내려고 뒤에서 잡아당겼다.

"어머님 곁에 있으라니까, 이 무슨 행역인가."

"못해요. 당신이 화적들의 꾀임에 빠져 녹림당이 되었다지만, 이제 다시는 못 가십니다."

갑송이가 쳐들었던 칼을 내려뜨렸다.

"아주머니, 댁의 주인께서 구월산으로 돌아오시겠다면 칼을 거두겠소이다. 허나 못 가신다

면 우리들도 다 법도가 있으니 산에서 맹약한 대루 목을 칠 수밖에 없지요. 주인께서 입산

하시면 아주머니도 노모를 모시고 들어와 인근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 수가 있습니다."

김기의 아내는 제 남편을 위에서 가리우듯 팔로 막으면서 울부짖었다.

"우리 부부는 어디에 가서 산다 한들 두려울 것도 꺼릴 일도 없습니다. 다만 노모께서 몰

락한 양반의 지체와 패가해버린 가문을 되찾기 전에는 고향을 떠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묘자리만 남긴 선산까지 모두 빚으로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갖은 포학을 당했으며

주인의 다정했던 동접 선비님들께서는 무고에 의해서 장형을 당하셨습니다."

묵묵히 서 있던 갑송이가 비수를 다시 칼집에 넣고 품속에서 찌르고 나서 자기도 땅바닥

에 쭈그리고 앉았다.

"좋소이다. 산에서는 그러한 저간의 사정을 모르고서, 다만 나으리가 우리를 관가에다 밀

고하려는 것으로 알구 있지요. 이 댁의 포한을 풀고서 가산을 다시 일으키게 된다면 다시

입산하시겠습니까?"

김기는 아까처럼 담담하게 말하였다.

"내 심정은 그냥 훌훌 떨쳐버리고 산으로 들어가버리고 싶소이다. 다만 어머님을 설득하

는 데엔 조금 시일이 걸릴 것이오."

"나으리가 이 고장에서 맺힌 사연이 있는 듯 하온데 누구와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이오?"

"참으로 부끄러워서 내가 꺼내지 못하였던 일이 있소이다마는, 이제 무엇을 주저하겠소."

김기는 허공을 우러르며 한참이나 제 분노를 삭이는 듯하더니 얘기를 시작하였다.

"참으로 갯벌에서 게를 줍다가 광주리를 잃은 꼴이오. 자전에서 혀로 밭을 갈다가 오로지

곤욕만 받은 꼴이 되어버렸소이다. 일찍이 이두령과 노중 주막에서 만나 내 생명을 건졌고,

세상에 쓸모없는 폐물이 유익한 제목이 될 성부른 느낌도 가졌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지금

세상의 선비라는 이들이 모두 그릇된 세상을 한하며 광기와 자학으로 나날을 보내구 있습니

다. 내게는 봉산에만도 세 사람의 동문 수학한 절친한 벗이 있지요. 나와 또 한 사람은 그간

과거 준비를 하며 훈장으로 연명하였고, 또 하나는 의생이며, 다른 하나가 지사였소이다. 가

진 실력이 빼어나고 일세를 뒤엎을 경륜도 있지만, 조정은 벌족 수십여 가의 각축장이 되었

으며 과거는 있으나마나 합니다. 내가 주막에서 자진하려다 이두령의 제지를 받고 회생하여,

이제는 깨우쳤지만 그릇된 세상을 혁파하지 않고서 그릇된 벼슬자리에 들어가겠다고 평생을

발버둥친다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노릇이오. 글자깨나 읽었으니 우리 벗들은 모두 과거를

보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못한 채 쥐꼬리만한 수입을 바라며 훈장, 의생, 지사질로 연명하며

갖은 수모를 당했습니다. 천자를 떼고 난 아이들에게 초보적인 글을 가르치는 것이 생활 중

의 생애로 되었지요. 아동들의 미둔으로 이렇게 저렇게 가르치다 보니 자기 공부는커녕 생

가도 차츰 희미해졌습니다. 옛 성현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속수오정니례의 보수도 예나 이제

나 같으므로, 내가 청하는 것은 언제나 조 일 석, 전 일 냥뿐이었소이다. 그런데 제자배의

아비 되는 자들중에 금력이나 권력깨나 있다는 향족 토반 부스러기들은 감투를 비뚜름히 쓰

고 수염을 곤두세우며 고성대언으로 모욕을 주곤 합니다. 이 양반이 물정을 모르는군. 시절

이 이 같은데 예조란 무엇이며 의자란 다 무슨 소리요. 천리 행상으로도 빈 채찍만으로 돌

아오고, 일년 머슴을 살고도 빈손으로 가는 터에 당신 문자가 그 값이 얼마길래 동짓달 모

립값이오. 이렇게 욕하며 어깨를 걷어붙이고 눈을 부라리며 욕질을 하는데 마치 쥐가 얼굴

돌리듯 하고 호랑이가 덮치는 듯 사납지요. 만약 그들이 조가 없고 돈이 없어서 예조를 낼

길이 없다면 비록 해가 새도록 훈장을 하여도 원통하지 않으나, 그런 자들일수록 쌀을 곳간

마다 쌓아두고 썩이며 돈냥은 궤 속에 차고 넘치는 형편입니다. 그렇게 한두 해를 살아오는

동안에 세상에 대한 깊은 원망과 불신이 가슴 깊이 맺히게 되었소이다. 참으로 몰락한 선비

로서 우리가 향족 토반이나 벼락 부자들게 당한 수모는 헤일수가 없습지요. 그러나 그중에

서도 원한이 깊은 자가 둘이 있으니, 하나는 예전에 내수사의 노비였다지만 지금은 부상으

로서 호적과 공명첩을 사들인 여첨지라는 자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봉산관아의 좌수질을

다니는 서가라는 자가 있습니다. 원래가 향소 벼슬이란 중인들이나 해먹는 말직이언만, 백성

들을 착취하기에는 이보다 적당한 업이 없으니 몰락한 시골 선비들 중에는 신임 수령이 올

적마다 운동을 하여 이방이나 병방을 맡아 조세와 군역의 이를 탐하는 자들이 많은 법이지

요. 사실 서가는 우리 동접의 벗이었습니다. 서가도 우리처럼 십여 년을 과거에 실패하고 가

난에 허덕여 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자가 친구를 배신하고 작은 이익과 말직을 탐하게 된

연유가 있었습니다. 이두령의 말처럼 먹물깨나 먹은 자를 믿을 수 없음은 바로 그 깨인 지

능이 세간의 고난을 간교하게 넘기려는 데로 쓰여지기가 쉬운 때문이지요. 그것은 또한 배

운 놈은 약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책상 앞의 신고는 알지언정 산야에서의 노고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자연히 생활에는 허황한 뜻을 가지기가 쉽다는 말이지요. 은어 뱃바닥같이

희고 고운 손을 가진 자가 어찌 우직하고 순박한 백성의 고난을 함께 겪을 수가 있겠소이까."

김기가 서가라는 자가 친구들을 저버리게 되었던 날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몇해 전의 유

월 중순 찌는 듯한 여름날이었다. 땐는 흉년이어서 논밭의 곡식이 말라 죽고 논은 드러난

바닥이 갈라지고 터져서 먼지가 풀썩거렸다. 흉년이라 제 먹을 것도 없는 터에 학동을 사당

에 보낼 부모는 없는지라 김기는 빈 마루에 홀로 앉아 하릴없이 글을 읽고 있었다. 사흘 동

안에 두 끼를 먹었는데, 한번은 겨를 섞어 끓인 멀건 미음이요, 또 한번은 황토와 밀 한줌과

송기 껍질을 섞어서 쑨 죽이었으니 먹었다고 할 수도 없는 끼니였었다. 아이들은 쇠잔한 기

력을 다하여 울며 보채고, 노모는 누워서 헛소리를 하는 중이었다. 낭랑히 소리내어 자구에

운은 달 기운도 없는 김기에게 그의 처가 다가섰다. 처는 무엇인가 보에 싼 물건을 내밀었다.

"여보, 당신두 참으로 딱하오. 어머님과 아이들이 굶주려 사경을 헤매는데 읽는 글이 머릿

속에 들어가십니까? 과거에 붙기 전에 가솔은 모두 죽고 말겠소."

"허어... 군자로서 식사하는 데는 배부르기를 바라지 않고 거처하는 데는 편안하기를 바라

지 않는다는 성현의 말씀도 모르오. 무슨 수가 생길 테지, 설마 굶어죽기야 할라구. 가서 나

물이나 좀 뜯어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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