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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2권 (20)

카지모도 2026. 3. 30.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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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처로운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옥여는 여러번 한숨을 내쉬었고, 감동이는 눈시울이

그렁그렁해졌으며 무뚝뚝한 갑송이도 연신 헛기침을 했었다. 갑송이는 타관에서 노숙하던

밤의 쓸쓸함을 잘 알고 있던 광대였으므로, 더욱 도화와 버들쇠의 얘기가 가련하게 들렸던

것이었다. 옥여스님이 입을 떼었다.

"그래 그 도화라는 아이가 지금도 여기 있다는 말인가?"

모가비 임가는 머리를 조아렸다.

"예, 그러하옵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도화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버렸지요. 저러다가

는 아예 밥사당이 되어벌릴 모양입니다."

"짝을 맞춰주지 그러나?"

"마음이 잡히지 않았습죠. 이 겨울이 지나 다시 출행하게 되면 좀 달라지겠지요."

마감동이가 불쑥 물었다.

"도화가 그런 마음씨라면 얼굴은 제법 절색이오?"

임가가 빙그레 웃었다.

"절색 아닌 사당이 있답디까? 몸이 천하여 그렇지 생기기는 모두 나라님 뒷궁 마마님들

뺨을 치게 생겨먹었지요."

"내 중신 좀 서리까?"

마감동이의 말에 모가비 임가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중신이라뇨?"

"우리들 중에 총각이 많으니 서로 인연을 맺게 하자 그 말이지."

"아아, 좋지요. 우리 패거리하구두 어슥만하니 서루 지체두 떨어질게 없겠습지요."

지체가 거의 같단 말에 앉았던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갑송이가 은근히 궁금해

졌던지 감동이의 무릎을 꾹 찔렀다.

"누구게 중신을 선다구 그래?"

"누구긴 누구여... 바루 우리 성님이지."

"내게..."

하며 눈을 휘둥그래 떴던 갑송이가 씩 웃었다.

"이 자식아 내는 고자여. 여자라면 천성이 아주 뱀처럼 여기는 사람이란 말이여."

"거참 알맞은 연분이네요. 도화는 아마 고자하구 맞도록 돼 있는갑네."

임가 까지 농을 치자 갑송이는 얼굴이 시뻘개졌다.

"망할 놈 같으니... 제놈이 장가들구 싶으니까, 공연히 나를 부추기구 지랄이네."

했으나 갑송이는 그리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임가도 그것을 아는지라 슬쩍 말을 내어보았다.

"첨 뵙는 분께 실례올시다마는, 생각이 있으시면 작수성례를 주선해 보오리다. 가끔가끔씩

월정사에 들르시지요. 지금 당장이라두 도화년을 데려와 상머리에 앉힐 수가 있지만 덧들이

는 것보다는 은근히 정을 들게 해야 될 듯합니다."

"거 이사람두 별소릴 다 하눈."

어쨌든 사당마을에 내려온 감동이에게는 새로운 일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마감동이는

도화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쩐지 갑송이의 우직하고 순박한 성미에 도화의 슬픈 그늘이 걷혀

질 듯한 느낌을 가졌었다. 갑송이도 도화를 한번 보고 싶었으나 총각다운 수줍음으로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옥여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섰다. 이튿날 탑

고개로 이사를 할 일이 바쁜지라 두 사람은 옥여의 만류를 마다하고 된목이골로 향했다. 갑

송이는 아직 모르는 도화의 흰 얼굴이 어렴풋이 눈에 삼삼하였다.

 

3

산채에 머물러 기다리던 광대들은 은율 탑고개로 이사를 갔는데, 이미 월정사 쪽의 전갈

을 받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서서 우선 집을 세울 동안 기거할 움막을 파는 일을 돕기로

하였다. 노인과 아녀자들이 지낼 집 한채를 비워주기도 하였으니, 이제는 외래자로 생각하지

는 않는 듯싶었다. 이사를 한 뒤에도 갑송이는 산채를 떠나려 하지 않았는데, 드디어 광대

짓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었다. 길산이에 관한 소식이 궁금하여 당장이라도 해주로 떠나고

싶었고 박대근이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단단히 다짐받은 말도 있어서 무료하게 산채에서 뒹굴거나, 옥여를 만나러 월정사

를 들렀다가 탑고개 나한암 동네로 가서 자고 오고는 하였다. 다행히도 이사 무렵부터 날

씨가 풀려서 엉성한 대로 바람을 막을 만한 귀틀집이 여러 채 섰다. 하루는 탑고개서 자고

된목이골 산채에 오르니 마감동이가 몹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어째 죽 먹은 시어미 상판대기냐."

"아무래두 마음이 안 놓이네. 성님은 그자를 믿우?"

"그자라니 누구 말여?"

"누구긴 누구겠소. 김가인가 하는 책상물림 말이지."

갑송이는 어쩐지 가슴이 철렁하여 눈을 휘둥그래 떴다.

"아니 김기가 뭘 저질렀나?"

"슬쩍 없어져 버렸소."

감동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두 달아난 것 같우. 큰일인걸... 산채를 훤히 알구 있으니, 관에 찔러바치면 우리

는 몰이사냥을 당할 게유."

"아뭇소리 없이 꺼졌단 말야?"

"그런 건 아니지만..."

하고 나서 감동이는 얘기했다. 갑송이가 탑고개로 내려간 뒤에 김기가 의관을 차리고서 마

감동의 방으로 찾아왔더라는 것이었다. 봉산엘 다녀오겠다는 것인데, 이유를 물으니 아무래

도 노모가 걱정되어 밤마다 잠이 오질 않는다는 얘기였다. 구것은 아마도 갑송이가 제 모친

을 업고 탑고개로 이사시키던 광경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 모양이었다.

"졸개 하나에 상목을 짊어지워서 따라붙였수."

"뭐 걱정할 일인가. 제몸이 편해지면 우선 부모의 생각이 나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글쎄 그건 맞는 얘기유. 헌데 어떤 생각이었는지 따라간 졸개놈을 따돌려버렸단 말이외

다."

"따돌리다니..."

"그 바보 같은 녀석이 배고개에서 안악으로 내려가다가 김기를 잃어 버리구 방금 되돌아

왔거든. 도중에서 쉬어 가자더래요. 그래서 쉬고 앉았으려니 그자가 목이 마르다며 물을 떠

달라구 그러더라지. 이 녀석이 표주박을 꺼내들고 비탈 아래를 내려갔다가 올라가보니까 상

목두 없어지구 김기두 자취가 없더라데. 부근을 한참 해매다가 하는 수 없이 되돌아왔다지.

그래서 어찌할까를 몰라서 망설이는 중이우."

"전에 약조했던 바를 아우가 지켰나?"

갑송이는 문득 김기가 산채에 들어올 때 집안의 안돈 문제를 걱정했었고, 마감동이가 한

기백 냥 봉산으로 보내겠다던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감동이는 몹시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우선 다른 일로 정신이 없었고, 아니 제깟 것이 무엇인데 다같이 숨어 사는 처지에 그런

거액을 요구한단 말요."

갑송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도 애초에 김기를 만나 이리루 데려올 적에 집안 얘기를 듣고서 딱하기는 하면서

도, 한편 아우께는 몹시 미안하데. 그러나 돈은 그가 먼저 달란 얘기는 없었잖나. 오히려 아

우가 반갑고 사람 만난 기분에 선뜻 그렇게 맞장구를 쳤을 뿐이지. 섭섭하고 기대에 어긋나

서 되돌아설 수도 있는 일이지."

"되돌아선다는 데 문제가 있소. 놈이 어쩌면 관가에 발고를 할지도 모른단 말유."

갑송이도 침울하게 생각에 잠겼다가 벌떡 일어났다.

"자네 갓하구 도포 좀 내주게."

"어쩌시게..."

"뒤를 밟아야지. 내가 어느 집인가는 몰라두 동네는 알구 있어. 수소문하면 단번에 알아낼

게야. 눈치를 보아서 정 발을 뽑을 생각이라면..."

"어쩌겠수?"

"없애버려야지."

"김기는 원래 궁량이 깊은 사람이니 벌써 그럴 줄을 알구, 그물을 쳐놓지 않았을까?"

"음, 그럴지두 모르지..."

감동이의 말을 듣고 나니까 갑송이도 조바심과 울화가 단번에 치밀어서 김기가 보이기만

하여도 즉시로 박살을 내어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감동이가 말하였다.

"좌우간에 우리 산채를 알고 있는 자를 살려둘 수는 없수."

"내가 해치우고 오지. 처음부터 내 잘못이었으니..."

"책상물림들은 우리하구 종자가 틀려서 의리보다는 이해가 앞서는 자들이우, 그러니 평생

을 글이나 읽구 보내지."

"내가 그만 워낙에 무식하여... 일이 경솔히 되었구먼."

감동이가 안에서 갓과 도포를 내주면서 말하였다.

"성님, 가겠으면 혼자 가지 말구 만석이를 데려가우."

"에이, 봉산 가면 다 아는 이들이 있는데 만석이 데려가면 귀찮기만 허지."

"가시는 길에 말동무라두 삼으시구려."

"필요없어, 거 두 뼘짜리 단검이나 한자루 내줘. 안 가겠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목을 뎅

겅 베어서 차구 올 테니까."

갑송이는 비수를 가슴에 품고서 된목이골을 나섰다. 산을 타지 않고 곧장 부처고개로 내

려와 안악 가는 큰길로 들어섰다. 한내를 건너는데 일단의 군사들이 지나는 사람들을 기찰

하고 있었다. 그쪽을 피하여 다시 산길을 타고 가자니 실토봉 길을 오를 일이 아득하였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갑송이 나름으로 꾀를 낸 것이 바로 기찰포교의 행세였다. 살피자니

군사들의 몇몇이 길 아래 화톳불을 피워놓고서 주위에 둘러앉은 것이 보였다. 남은 서너 명

이 행인들의 봇짐과 몸을 뒤짐하는 중이었다. 갑송이는 그쪽을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대뜸

불가에 모여 웅크린 포도 군사들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놈들! 모두 이리루 올라오너라."

무턱대고 고래 고함을 질러놓았는데 포졸들은 갑작스런 호통소리에 멍한 표정들이었다.

"뭣들 하구 있느냐. 냉큼 올라오지 못할까?"

그들은 아직도 납득이 안 가는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

고는 다시 쑤군거렸다. 그중 용기가 있어 뵘직한 자가 우물쭈물 물었다.

"나리는 뉘십니까?"

"어허, 이놈들 아주... 바닷가 똥강아지 호랑이 몰라보듯 하는고나. 너희들이 왜 여기에 나

와 있는고?"

"예, 보시다시피 행인을 기찰중입니다. 구월산 일대에 화적떼가 발호하여 일전에는 문화

고을이 기습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감영에서 나온 기찰포교다. 구월산 일대를 정탐하는 중인데 너희는 도적을 잡아야

할 놈들이 불가에서 애녀석처럼 불알이나 굽고 있으니 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곤장을

좀 때려주고 가리라."

버젓하고 점잖게 꾸짖으니 포졸들은 모두 송구하여 코를 쭉 빼고 둘러서 있었다. 다른 자

가 숙인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예, 저희들두 처음에는 부처고갯목을 열심히 지키면서 오가는 자들을 살폈으나, 며칠 되

고 보니 끼니도 거르고 교대도 되지 않는 터에 날씨는 추워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

다. 가엾이 여기시고 이번만은 덮어주십시오."

갑송이도 그들의 홑것 더그래 자락을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갈까 하였으나

또한 그렇게 하기도 난처하였다. 의심을 받겠기 때문이었다. 아주 기를 죽여놓지 않으면 혹

시 댁이 어느 고을 무슨 직함에 있느냐고 꼬치꼬치 물어올지도 몰랐다.

"이놈들 안되겠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너희 사또 어른을 대신하여 곤장을 때리구 가리라.

모두 그 자리에 엎드려라."

갑송이의 추상 같은 재촉에 포도 군사들은 우물쭈물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갑송이

가 창대를 들어 거꾸로 잡고서 궁둥이를 호되게 몇차례씩 두들겨주었다.

"군율이 해이한 놈들에게는 매가 약이니라."

군사들을 잔뜩 겁을 주고서 갑송이는 휘적휘적 안악길로 나아갔다. 안악 읍내로 들어가지

않고 들길을 지나쳐 월호산 봉수대 옆을 지나 월당강이 가로막은 지진나루로 나아갔다. 구

월산록은 안악에서 끝나 있으므로 나루에는 진별장과 포졸 네댓 명이 지키고 있을 뿐이엇

다. 어쨌든 구월산 사방의 군읍에서는 도적들이 내려올 만한 길목을 철통같이 막고 있는 모

양이었다. 나루를 건너 봉산까지 사십 리를 걷는 사이에 날이 저물었는데, 워낙 된목이골서

늦게 출발했던 탓이었다. 읍내 쇠전거리로 들어가 기웃거리는데 코가 납작하고 광대뼈가 유

난히 튀어나온 불량하게 생긴 자가 마주 지나치다가 아는 체를 하였다.

"아이구 이거, 갑송이 성님 아뉴?"

갑송이는 얼결에 걸음을 멈추었다.

"이게 누군가?"

"누구긴... 나 만동이요. 아따 봉산 만동이 형제를 잊으셨수?"

"쉬잇... 어디 사처라두 우선 정하구 들어가 얘기하세."

"원 성님이 그 어울리지 않는 복색에 사처까지 찾아 구색을 갖추시니, 저는 나귀라두 대

령해야 되겠소이다."

"그런 게 아냐."

"걱정 마십시오. 우리두 재인말이 폐촌되구 길산이 성님이 감영 옥에서 돌아가셨단 소문

을 알구 있습니다. 저희 집으루 가십시다."

만동이는 그 아우 천동이와 더불어 봉산 쇠전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이름난 불량배였다.

봉산 저자를 드나드는 장사치들치고 그들 형제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일찍이 길산이와 갑송이는 그들 패거리와 싸움 재주를 겨룬 적이 있었다. 갑송이는 하릴없

이 주막 봉놋방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기찰에 걸려들기보다는 만동이네서 묵는 게 나을 성싶

어, 그의 뒤를 따라갔다. 갑송이가 인사조의 말을 던졌다.

"천둥이두 잘 있나?"

"그 녀석은 요새 평안도에 가 있습니다."

"평안도엔 뭣하러?"

"예, 잠채잡이를 하러 다닙니다."

"자네는 왜 여기 있나?"

"아우가 애들을 데리고 나가서 산을 파서 재물을 얻는데, 저는 여기 봉산 저자에 남아 장

사를 해야 되지 않겠소이까."

"백정 노릇은 안하는가?"

"그따위 일은 해서 뮛합니까. 저자에서는 우리가 화척이었음을 아는 자가 이젠 별루 없지

요. 우리는 그래두 사민 중의 세 번째인 공입니다요."

"느이 형제가 그렇다면 나는 두번째 농이다."

갑송이의 말을 듣자 만동이는 낄낄대며 웃었다.

"에이 성님네들야 사민 중에두 없는 도가 아닙니까."

"이 녀석아 혓바닥 간수 좀 해라. 도는 그중 으뜸이니라. 큰 도는 바로 조정에 있는 벼슬

아치들이고, 따지고 보면 입국하는 호걸들이 모두 도이다."

"헤헷 구월산에서 신주 나겠네요. 나두 충렬 공신으루 한자리 끼워넣어주오."

"농지거리 그만두자. 누가 들으면 큰탈나겠군. 자네 집이 정말 괜찮은가?"

"염려 마우. 우리 집이야 늘 타관에서 오르내리는 잠채꾼들이 들락날락합니다."

만동이네 집에 이르러 보니 제법 덩치가 큰 초가인데 앞채와 뒤채로 나누어져 있었고, 길

에 면한 앞채는 대장간이었다. 토벽으로 세운 도가니 속에 신탄의 불빛이 시뻘겋거, 손풀무

가 세 대나 있었다. 웃통을 벗어붙인 살집 좋은 사내 넷이서 번갈아 쇠를 두드려대고 있었

으며, 아이놈 몇이 둘러않아 풀무질을 해서 도가니의 쇠를 녹이고 있었다. 갑송이가 의아하

여 만동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풀뭇간은 언제 이렇게 이루었나?"

하니까, 만동이가 목소리를 낮추어 갑송이의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쇠뿐이 아닙니다. 금두 있습지요. 돌에서 뽑아내려면 제련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난해부터 이렇게 풀뭇간을 세웠지요."

"흐음 취재가 막대하겠느걸."

"일손두 없구 관가의 기찰두 심하여 많이 못하는 것이 한입지요."

"굴은 많이 있는가?"

"각지에 있답니다. 대개 지방 토호들이나 수령들이 나라 모르게 해 먹는데 우리네야 그저

그 찌끼를 줏어온다뿐입지요."

그들은 안채로 들어갔다. 마당에 마구간이 있었는데 짐 벗은 골격 좋은 말들이 줄줄이 매

어져 있었고, 사랑에는 장한들이 칠팔 명 들끊고 있었다. 갑송이가 보기에도 만동이네 형제

는 이제 봉산 저자의 단순한 무뢰배가 아닌 듯하였다.

갑송이는 이러한 처지의 만동이가 어찌해서 자기처럼 세상을 피해야하는 녹림패를 예전의

의리로 대하려는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만동이가 끄는 대로 큰사랑에 마주 앉았

다. 떡벌어진 다담상을 두 계집이 맞들고 들어왔느데 풀뭇간 주인의 밥상으로는 과분한 것

이었다. 갑송이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음식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자네 예전의 만동이가 아니로군."

"예? 성님 그 무슨 말씀이우."

"쇠전거리서 봇짐장수들 뒷덜미나 치던 자가 아니라 이제는 배부른 자가 되었단 말여."

"사람이야 어찌 변하겠습니까. 아직두 길산이 성님이나 갑송이 성님하구의 의리는 잊지

않구 있습니다."

"그걸 누가 믿어... 자네 서투른 수작하는 건 아닐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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