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젠 이 갑갑한 털벙거지와 더그레를 벗어두 되겠습니까?"
"안된다. 완전히 익힐 때까지 좀더 연습을 해둬야겠다. 사릉장 다루는 것두 그렇고... 어이
나장, 자네는 나졸들이 죄인을 꿇린 다음에 무엇을 하라고 그랬었지?"
"죄목을 외치라 하였던가요?"
"예끼 이놈, 내가 위에서 하는 말을 받아 복창 거행하라구 그랬잖느냐."
"성님, 저희들두 이젠 지쳤습니다. 좀 쉬어가며 합시다."
"그래, 행수 성님께서 오셔서 점심을 들려던 참이다."
춘래와 계집종이 겸상과 원반을 차례로 들고 들어왔다. 학선이와 대근은 상을 마주하고
반주로 몇잔 걸치는데, 학선이가 한양서 겪은 일을 이야기하였다.
학선이 한양에 이르러 먼저 한 일은 판의금 댁을 알아내는 일이었고, 알아내자마자 사직
골의 대감 댁 앞에다 사관을 정하였다. 그리고는 데려간 부하들과 함께 그 댁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일일이 파악하고, 손님의 말구종배들이나 교꾼이 잘 들르는 목로에 파묻혀 그
들과 사귀면서 자세히 정탐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학선의 부하들은 판의금 댁 하인들과
절친한 술친구가 되어버렸고, 의금부의 관원 부스러기들과도 안면을 트게 되었었다. 어느 저
녁때에 학선이 심심하여 그의 오른팔인 아귀쇠와 더불어 투전을 노는데, 마흔장짜리 가보잡
기를 하고 있었다. 부하가 급히 뛰어와 방문을 벌컥 열고 고하기를,
"사또! 판의금 댁에 은등자에 은방울 올린 호마 한 필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학선이는 쌍교자가 나갔다든가, 글방 도령이 외출에서 돌아왔다든가, 아침에 허청
에 앉아 면회를 기다리던 꾀죄죄한 선비가 이제 자리를 떴다는 얘기처럼 무심히 들어 넘겼
었다. 한참이나 투전에 열중했던 학선이가 갑자기 패를 던지며 아귀쇠에게 일렀다.
"그 말의 내력을 급히 알아오너라."
학선이는 무슨 꿍꿍이속인지 아귀쇠를 대감 댁에 보냈고 잠시 후에 돌아온 부하가 알아본
바를 상세히 고하였다.
즉 병판에게는 십오세 된 딸이 있었고 판의금의 아들이 이제 아홉 살인데 얼마 전 술자리
에서 언약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제 두 집안이 사돈이 되는 것은 정해놓은 일이었고, 마
침 병판에게 북방에서 공물로 말 한쌍이 바쳐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병판은 장래의 사돈
에게 말 한 필을 보내어 그 정리를 표시하는 것이라 하였다. 얘기를 듣고 난 학선이가 고개
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아귀쇠야, 하나만 데리구 나서라."
하고 나서 학선이가 아귀쇠의 귀에다 대고 뭔가 잠시 동안 소근거렸고, 아귀쇠는 알아들
었다는 둣이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쪽에서 널 알아보면 만사가 끝나는 거여. 감쪽같이 하여라."
아귀쇠와 부하는 재빨리 사관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광통교 다리께에 가서 삼패 기생년
하나를 급히 물색하여, 그들이 지적하는 행인을 끌어들여 무조건 만취하도록 해주면, 술값
외에 은자 열 냥을 주리라 약속하였다. 어느 시러베년이 거절을 하랴. 술 팔고 돈 받을 욕심
에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이 손가락질하기만 기다리며 애를 태우는데, 역시 학선의 예언대로
판의금 댁의 수노가 옆구리에 가죽함을 끼고 어정어정 걸어왔다. 학선의 말에 의하면 선사
품을 받았으니 사돈지간에 틀림없이 답례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시 답례가 있을 것
인즉 판의금 댁의 수노가 갈 것인데 그자를 후려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병판 댁이
모싯골이니, 사직골서 가려면 빠른 길이 적선방을 지나 종루로 해서 광통교를 지날 것인즉
목을 지키라는 얘기였다.
"바로 저기 보퉁이를 옆에 낀 녀석이다."
아귀쇠가 지적하자마자 기생년은 수자리 가서 오랑캐와 싸움하다 돌아온 제 서방이나 마
중하듯, 허겁지겁 뛰어나가 무조건하고 팔을 덥석 잡았겠다.
"아이 서방님 얼마만이셔요. 그래 통 발길을 않으시긴가요?"
판의금 댁 수노가 입이 쩍 벌어져 어안이 벙벙하더니, 이윽고 정신을 차려 뿌리쳤다.
"자네가 날 어찌 안다구 이 요살을 떨구 야단인가. 내 수중엔 한 닢두 없네. 깝데기를 벗
겨봐야 재작년 그러께 알 깐 서캐만 우수수하리."
"차암 서방님... 아무리 노류장화인들 치마폭에 사연이 있더라고, 어디 까짓 쇳뎅이에 좌우
되겠습니까요. 오늘 쇤네는 장사하지 않을랍니다."
"글세 이거 벼락 맞은 쇠고기가 너저분한가, 왜 길에 나와 서서 남바쁜 사람 붙잡구 까실
르구 그래. 아무리 그래보아야 호조돈 얻어올 사람두 아니라니까."
아귀쇠와 부하는 바깥 길로 난 들창문에 구멍을 뚫고 숨죽여 내다보고 있었다. 기생이 다
시 허리를 비틀면서 수노의 옆구리에 바짝 붙어 매달렸다. 제깟년이 돈냥이나 준다니까 저
지랄이지만 평소에 구종배나 노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이었다.
"허허 이거 꽉 물렸네!"
수노란 녀석이 분냄새와 교태에 녹았는지 뿌리치지도 못하고 이끌려 왔다.
"꼭 한 잔이여. 내 시방 급한 볼일이 있단 말일세."
"서방님 꼭 한 잔만... 예전에 서소문밖에 있을 제 제가 서방님을 뫼신 적이 있다니까요."
하긴 홍제원과 모화관 부근에 하천들을 상대하는 색주가가 많이 있었으니 수노란 놈도 거
기에 몇번 걸음을 했던 기억이 있는지라 알딸딸하면서도 그러려니 믿는 눈치였다.
"얘, 여기 다담으로 큰상 차려서 들여라."
기생년 재치있게 떠들어대면서 드디어 판의금댁 하인을 꾀어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놈이
아무리 목전에 다급한 일이 있다손, 미녀와 술을 버리고 어디로 가랴.
술잔이 거듭되자 수노는 차차 심부름에 대한 생각은 잊고, 퍼질러앉아서 기생의 허벅지나
주무르며 밤을 새울 듯한 지경이 되었다. 염라대왕도 주색에 빠지면 저승사자가 묘지로 압
송 간다는데, 아무리 눈치가 빠릿빠릿한 놈이지만 술에 장사 있나. 눈꺼풀이 게게 풀리고 혀
가 비틀어졌으니, 기생이 이쯤이면 되겠다 싶어 손뼉을 요란하게 두드렸다. 손뼉소리가 들리
자마자 문간방에서 기다리던 아귀쇠와 부하가 안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그 녀석 아주 인사불성이군."
"술값하구 상금...?"
기생년이 손을 내미는데, 아귀쇠는 서슴없이 돈꿰미를 방바닥에 던진다.
"누... 누구여..."
눈을 멀거니 뜨고서 연신 딸꾹질을 하면서 수노가 말했고 두 사람은 대답 없이 보에 싼
가죽함부터 슬쩍 빼앗았다.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주절대는 판의금 댁 하인 녀석
의 팔다리를 두 사람이 들고서 색주가를 나갔다. 원래가 광통교 부근은 깍정이들의 잠자리
여서 그 아래로 던져버리니 곧 검은 그림자들이 다가와 수노의 옷을 벗겨가버렸다. 아귀쇠
와 부하가 사관에 돌아가 학선이에게 가죽함을 바치고, 일의 자초지종을 얘기하였다. 학선이
는 흡족해서 두 사람에게 용채를 두둑이 던져주고는 곧 가죽함을 열어보았다. 함 속에는 아
이놈 팔뚝만이나 한 산삼이 두 뿌리나 들어 있었고 녹용이 한재 들어 있었다.
"이제 그 녀석은 죽은 목숨이다. 감히 두 대감의 교분에 흙칠을 하고 답례품을 잃었으니
마땅히 거적에 말려 타살되리라. 너희는 문밖에 나가서 살피다가 그자가 돌아오면 즉시 알
려라."
학선이는 이르고서 자리에 들었다. 새벽녘에 번을 서던 자가 와서 벌거숭이의 수노가 방
금 돌아왔다고 알렸다. 학선이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잠을 자는 것이었다. 적
당한 시각이 되어 학선이는 복장을 단정히 하고 머리에는 상사람처럼 패랭이를 얹은 뒤에
옆구리에 가죽함을 끼고 판의금 댁 대문간의 허술청으로 찾아갔다. 녹사에게 판의금께 통자
하여줍시사 청하니 녹사는 학선이의 주제를 보고는 코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학선이가 더
이상 승강이하지 않고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그럼 하는 수 없군. 만약에 판의금 대감께서 오늘 아침에 역정을 내시는 경우에는 저쪽
맞은편에 있는 사관으로 나를 부르러 오시우."
녹사가 수염을 비틀고 서서 코바람 소리를 냈다.
"별 미친놈 다 봤네!"
대감이 아침에 일어나 의금부로 나가시기 전에 담배 한 대를 태우는 중인데, 문득 어제
병판에게 호마에 대한 답례품을 보냈던 생각이 났다. 하나 어찌된 일인지 여태껏 그 결과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대감이 적이 불쾌하여 설렁줄을 당기는 손짓이 거칠었다. 마당쇠가 달
려오고, 살림 맡은 청지기를 부르라 일렀다. 청지기가 와서 뵙자마자,
"이놈들 심부름을 시켰으면 일의 선후를 말해야지 어찌 아무런 뒷말이 없느냐. 심부름을
보냈느냐?"
"예예, 산삼 두 뿌리와 녹용 한 재를 보내드렸습니다."
"확인을 하였느냐?"
"아직 소인은..."
"그 수노란 놈을 부르라!"
대감의 호령이 추상 같았는데 하인은 거의 죽을상이 되어 뜰 아래 부복하였다. 대감이 마
루 위에서 소리쳤다.
"네가 심부름을 갔었드면 일의 내종을 고해야지 어째서 나타나지도 않았는가?"
"소인이 죽어도 남을 죄를 저질렀으모로 못 들어왔습니다."
"무슨 죄냐?"
"예, 답례품을 가지고 모싯골로 가는 도중에 그만... 술을 두어 잔 하고서 정신을 잃었던
고로 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놈, 그것이 뉘게로 가는 물건인데, 그따위 버릇을 가르치더냐. 도중에 술을 먹고 정신
을 잃었다? 그 무엄한 놈을 단매에 때려 죽이라!"
수노를 타살하고자 형틀이 벌어지는데, 녹사가 가만히 생각하니 아무래도 식전에 찾아왔
던 자가 심상한 일로 온 것은 아니고, 이제 생각하니 옆구리에 함을 가졌던 듯 싶었다. 녹사
가 나중에라도 통자 넣지않은 죄책도 면할 겸, 대감께 자기 빈틈없음을 알릴 겸 하여 마루
아래로 나아가 아마도 잃은 물건을 찾을 수 있으리라 아뢰었다. 대감이 즉각 행형을 중지하
고 직접 녹사를 사관으로 보냈다. 녹사가 함을 내어주기만 원하였으나 학선이는 신을 꿰고
나와 앞장서면서 말하였다.
"지금 댁에서는 난리가 나서 사람이 하나 죽을 모양일 텐테... 내 직접 습득한 자로서 대
감을 뵙고 구명을 청할까 하오. 하인들의 생사는 그 노주의 감정에 달렸으니, 잃었던 물건을
보고 또한 외인이 청하면 노염을 부실 게유."
녹사가 들으니 이치가 가장 합당하여 주인께 생색내려던 것이 머쓱해져버렸다. 학선이가
판의금 대감께 현신하는데 대처의 오입쟁이로 잔뼈가 굵었으니 그 얼굴이며 태가 과연 남에
게 좋은 인상을 줄 만하였다. 학선이는 공손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아뢴다.
"제가 급한 볼일이 있어 성문 열릴 즈음 하여 광통교 쪽으로 식전 길을 재촉하는데, 마침
깍정이들 두엇이 거적대기에 무언가 싸가지고 갑디다. 새벽이니 걸을 달아가는 길도 아니겠
고 하여, 무심코 고개를 돌려 유심히 살피는데 거적 틈으로 함이 보이질 않겠습니까. 이것은
분명 귀한 댁의 물건을 도적질한 것이라 믿고 그놈들을 불러 세우고 두드려준 다음에 함을
빼앗았습니다. 열어보니 참으로 진귀한 약재가 있는지라 주인에게는 더욱 소중할 듯하여 하
는 수 없이 안에 있는 일봉 서신을 읽었습니다. 그리해서 허술청에 와서 녹사에게 통자를
넣었던 것입니다. 감히 서찰을 개봉하여 읽은 죄 죽어 마땅합니다.
대감은 함을 열어보고 물건을 확인한 다음에 마음이 몹시 흡족하였다.
"너는 어디 사는 누구냐?"
"예, 양주 살던 유가올시다. 본시 소인의 아비는 아전질을 했사옵고, 집안이 기운 뒤에 저
는 한양 와서 어느 댁 청에라도 붙일까 하여 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올시다."
"네가 중인의 자식이니 글은 알겠구나."
"예, 아옵니다."
"음, 그렇다면 오늘부터라도 책실에서 일하도록 하여라."
하고 나서 수노는 매를 때려 광에 가두어 사흘을 굶기라 하는데, 학선이가 은근히 품하였다.
"소인 황공하고 무엄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비록 저 사람이 죽을 죄를 지었다고는 하오나,
벌은 잃은 것에 내리는 것이요, 이미 찾았으니 소인께 일자리를 주시듯 저 사람도 사합시는
것이 도리인 줄로 아뢰오."
학선이는 판의금 대감 댁에서 책실을 맡아보게 되자, 졸개들을 모두 송도로 돌려보냈다.
책실에 있으니 의금부의 돌아가는 사정을 한눈에 짐작할 수가 잇었고, 더구나 수노는 학선
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그가 묻는 대로 의금부와 형조의 이야기를 해주곤 했었다. 더구나
학선이는 수노의 여동생인 하님 여비와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그 여자는 정경부인과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난 소꿉동무였고 말이 종이지 친형제와 다름이 없는 사이였던 것이다. 판
의금 댁의 책실과 안방을 소상하게 꿰고 있었으니, 학선이가 진짜 도사 보다도 더욱 의금부
의 사정을 아는 셈이었다. 학선이가 거기까지 얘기를 마치자, 흥미 깊게 듣고 있던 박대근이
가 껄걸 웃었다.
"미친놈 같으니... 네가 이렇게 늦어진 것은 바로 그 여비와 통정하느라구 그랬구나. 재미
는 봤으니 내가 주었던 착수금은 도로 내놓아라."
"어유 무슨 말씀이슈. 밤에 슬쩍 빠져나오는데 그동안에 깊은 정이 생겨서 정말 발길이
내키질 않습디다."
"어디 내일 해주로 가겠나? 일을 급히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 아우들은 모두 엄동에 얼어
죽을 게야."
"내일 새벽밥을 지어 먹고 떠나겠습니다. 성님두 가실려우?"
"부하 하나를 내 집에 보내어 기별이나 해다오. 그럼 뒤따라 구월산으루 가겠다."
"장길산이와 우대용이를 꺼내어 구월산까지만 데리고 가면 된단 말씀이지요?"
"그렇지. 내일쯤이면 모두들 만날까?"
"아닙니다. 내일 저녁은 객사에 들어 하룻밤 쉬고 모레 죄수를 인계받아 압송하여 나올
작정입니다."
"그러면 기별 보낼 필요두 없겠군. 글피쯤에 내 구월산으루 가겠네."
"구월산서 뵙겠습니다. 어찌... 저희들 연습하는 거나 더 보구 가시렵니까?"
박대근이는 그냥 일어났다.
"일찍들 재우지 그래. 내일은 정말 피곤할 텐데."
"성님이 안 보시겠다면 저희두 그만두겠습니다."
박대근이는 춘래네 집에서 나왔다. 이제 길산이와 대용이가 나오게 되면 당분간 구월산에
근신시켜두었다가, 삼남 쪽으로 내려갈 상단을 만들 작정이었다. 북으로는 선흥이와 갑송이
가 있으니 또한 염려될 바가 없을 듯하였다.
이튿날 새벽에 학선이네 패거리들은 행상의 차림으로 송도를 떠났다. 벽란나루를 건너 연
안으로 해서 삽교에 이르기까지는 관복을 꺼내 입지 않을 작정들이었다. 그들은 부담을 얹
기에는 호화스러운 백마 한 마리를 끌고 갔는데 행인들이 보기에도 장사치들이 백마에다 짐
을 올려놓은 꼴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말의 장식은 떼었으니 꾸며놓기만 하면 훌륭할 것 같
았다.
드디어 삽교를 지나 석장승에 이르렀다. 그들은 길에서 내려가 숲속으로 들어갔다. 보따리
속에서 온갖 변장할 옷이며 무기들을 꺼냈다. 학선이는 주립을 쓰고 홍철릭을 걸쳐 입었다.
부하들도 한 놈은 나장, 그리고 나머지 넷은 나졸로 차림새를 바꾸었다. 금부도사로 변한 학
선이가 백마에 올라앉았고, 그 뒤를 나장이 거느린 네 명의 나졸들이 따르는데 지나던 사람
들은 모두 그 위엄스러운 행렬에서 비켜섰다. 그들은 해주 군관이 나와 있는 우름내 쪽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학선이 일행이 우름내를 건너니 마침 나와 있던 군관이 금부도사의 행차
를 보고서 놀라 뛰어와 군례를 드렸다.
"원로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오냐, 너희 감영은 아직 멀었느냐?"
"해운정이 바로 저희 송별하는 곳입니다. 우름내서 성내까지가 삼십리 되겠습니다."
"안전께서도 무고하신가?"
"평안하십니다."
백마 위에서 군관과 수작을 나누는 학선은 의연하고 빈틈이 없었다. 그들은 주내방을 지
나서 순명문을 향해 나아갔다. 이미 주내방을 들어설 때부터 금부도사가 해주에 떴다는 전
갈이 관아로 득달같이 들어갔고, 도사가 감영에까지 온다는 것은 즉 역모에 관한 형옥이 있
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역모에 관련된 자를 한양으로 압송하기 위해서 금부도사가 출현하면,
아무리 관찰사라 할지라도 그가 지목하는 죄인을 잡기 위해서 군졸들의 지휘를 맡기게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순명문 앞에 당도하자 미리 전갈을 받았던 중군과 형방 비장이 나와 있었
다. 그들은 군영 옆의 객사로 안내되었다. 형방이 죄수압송장과 의금부의 공문서를 받아 관
아로 들어갔다. 관찰서에 밑에는 정삼품의 목사가 있었고 종사품의 무관 만호 등이 있게 마
련이었다. 그리고 감영에도 도사가 한사람씩 있어서 지방 관리들의 규찰을 맡아 보았다. 해
주감영의 도사가 객사로 학선이 일행을 찾아왔다.
"처음 뵙겠소이다."
학선이는 이미 그에 대해서도 뒷조사를 해두었는지라 서슴지 않고 말하였다.
"안녕하시오. 외직이 어떠하오?"
"한양에 가고 싶소이다."
학선이가 미리 해주도사의 입을 막아놓으라고 한마디를 찔렀다.
"들으니 동관께서는 현령을 지내셨다니 치민도 잘 아시겠구려. 요사이 일반 백성들 중에
불충한 색각을 품는 자들이 있다하오."
"허허 제가 현령이었다는 것은 또 어찌 아시오? 의금부에 계신지 얼마 안되셨을 터인데..."
"예, 형조에서 좌랑을 하다가 지난 가을에야 올랐습니다."
학선의 말을 듣고 난 해주도사는 다소 가볍게 여기는 눈치로 변하였다. 이제 막 정육품
좌랑 벼슬에서 종오품 도사로 순서를 밟은 신출내기이기 때문이었다. 눈치를 채고서 학선이
가 말하였다.
"환로에 오른 지 여태껏 형옥에 관한 일만을 하여 사헌부와 형조와 의금부에서는 저를 모
르는 사람이 없소이다. 이번에는 어명을 받잡고 역모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두 죄인을 압
송하러 내려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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