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선이의 어명이란 말이 떨어지자 도사는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다.
"압송장의 내용에 본즉 이미 장계를 통하여 신원이 알려졌다는데 어떤 자들 말씀이오?"
"그자들은 형조에서도 파악한 바와 같이 지금 감영 옥에 갇힌 우대용이라는 자와 임춘삼
이라는 자요."
"예, 저두 대략 보아 알고 있습니다."
"서울에 압송하여 판의금과 각부 판사 지사 대감들을 모시압고 추국을 열라는 지엄한 붑
부를 받잡고 왔소이다."
"지금 형옥이 일어나고 있소이까?"
"그렇소, 하루가 급합니다. 내일 사또께 현신하여 말씀드리고 곧 압송 거행할 테니 동행을
바라오."
길산이 독칸에 갇히고 나서야 곳에 갇혔던 자가 자기의 이름으로 처형되었다는 것을 알았
다. 송도 박대근이가 우선 길산의 목숨을 살려놓기 위해서, 옥사장에 돈을 쓰고 대시수로 바
꾸었던 그것이 기쁜 마음이 아니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백성들의 피나는 사연을 알았고, 혼자서 차입되는 음식을 먹으며 편히 지내는 것이 몹시 괴로울 뿐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감영 옥을 모두 깨뜨리고 갇힌 사람들과 함께 먼 북방으로 달아나고 싶기도 하였다. 어쨌든 그는 옥에서 생각이 많이 자라났다. 만약에 바깥 세상에 나가더라도 제 일신을 버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공부를 하리라 작정하였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무력하고 어리석은가를 깨달았던 것이다. 보통 때처럼 저녁이 끝나고 비교젹 바람이 들이치지 않는 구석의
짚덤불 속에 몸을 파묻는 중인데, 바깥에서 발짝 소리와 불빛이 가까워졌다. 그는 재빨리 일
어나서 칼을 목에 걸고 쇠를 채웠다. 그에겐 차꼬를 벗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지금 이러한
시기에 옥을 방문하는 자가 있다면 틀림없이 옥사장보다도 높은 관리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
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전립을 쓴 머리가 다가오고 있었으며 그 뒤로 옥졸과 옥사장에 둘러싸인 산발한 죄수가 끌려오고 있었다. 길산은 어둠속에서 눈을 빛내며 바깥을 살펴보았다. 끌려오는 죄수는 다른 자가 아니 회자수 우대용이었다. 형방이 옥내를 들여다보면서 말하였다.
"이 자가 임가가 틀림없으렷다?"
"틀림없습니다."
"우가와 임가를 함께 가두어두고 철저히 감시하라. 내일 한양으로 압송하랍시는 도사 나
으리의 엄명이시다."
쇳대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칼과 차꼬를 찬 우대용이가 안으로 떼밀려 들어왔다.
"두 명씩 교대로 지키게 하여라."
그들이 멀어져갔다. 우대용이가 길산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속삭였다.
"허허, 이제 대시수로 되어 탈옥할 날을 기다렸더니 한양으로 끌려가면 꼼짝없이 죽었수.
박행수도 나라님이 아닌 바에야 용 뺄 재주가 없을 게야."
길산은 옥문 앞에 입초를 선 수직 옥졸에게 눈을 주고 나서 소곤거렸다.
"감영서 한양으로 이송하는 꼴이, 틀림없이 중대한 형옥이 일어나 모양이오."
"헌데 하필이면 또 노형과 나란 말이우?"
"그 참 이상하군. 나는 지금 장길산이가 아니라, 살인한 임가라는 사람인데 압송당할 까닭
이 없습니다."
길산과 대용이 그렇게 수작을 나누는 중인데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내다보니 옥사장이었
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길산이를 찾고 나서 두 사람의 수직 군사를 잠깐 비켜나게 하였다.
"장총각... 이거 안되었네. 내 자네에게 부탁이 한가지 있어서 왔구먼."
"내게 무슨 부탁할 게 있겠소."
"다름 아니라, 내가 바깥의 부탁으로 자네를 당장 집행당하게 하지 않노라구 대시수를 대
신 집행하도록 주선했었네. 그래서 자네가 임가성 가진 살이자가 되었더니 이제 한양서 큰
형옥이 죄수가 바뀐 것이 알려지면 나는 끝장일세. 아무래두 죽을 목숨이니 산 사람께 선심
좀 쓰소."
"아무리 목숨이 초개 같은 팔자라 하나, 대장부의 신의가 있수, 옥사장이 나를 잘 돌봐주
었거늘 내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옥사장을 찌르겠소이까. 염려 마시우. 내 임가라는 백성의
이름으로 죽으리다."
길산이 까다롭게 굴지 않고 선선히 옥사장의 청을 받아들이자 옥사장은 연신 허리까지
구부렸다.
"장총각 고마우이. 우리 소리들이야 자네들게 무슨 포한이 있었겠나. 다 먹고 사느라구 돈
냥두 받구 그랬지."
"내 가진 것이 있으면 더 남기고 가고 싶지만 빈손이오그려."
옥사장도 가난한 백성의 한 사람인지라 곧 목이 메었다.
"뭣 청할 것이 있으면 말허게. 내가 어떻게든 들어줌세. 계집이라두 넣어주겠네."
하자마자 우대용이가 목에 쓴 칼을 휘둘러 옥문 창살을 후려치면서 고함을 질렀다.
"얼른 비켜라! 이 쥐새끼..."
"우서방 좀 참으시우. 아무려나 죽을 놈들이 남에게 섭섭허게 대하여 뭣한단 말이오."
길산이가 우대용이를 말리면서 옥사장께 말했다.
"고맙소. 계집은 그만두고 술이나 한동이 들여주오."
"그러지. 셋이서 이별주라두 나누세."
옥사장이 총총이 사라지고 씩씩거리는 우대용에게 길산이 침착하게 물었다.
"노형은 어째서 노여워하시우?"
"산 놈들이 간사하기가 망하는 나라의 환관보다 더하오. 제놈이 일찍이 우리를 빼주리라
해놓고서는 돈냥을 얼마나 처먹었소이까. 이제 우리가 한양 올라가면 죽는 것보다도 금부의
잔혹한 형국을 받을 것이 더욱 끔찍한 터에, 제 발밑 걱정이나 하노라구 궁지에 몰린 사람
들을 놀려대니 화가 안 나겠소."
길산은 손을 더듬어 우대용의 손목을 잡고 한 손으로 그의 손등을 가볍게 두두렸다.
"진정하시구려. 내가 성을 갈면서까지 대시수가 되는 것을 원했던 것은 노형과 똑같은 심
정이었소. 어느땐가 탈옥할 기회가 찾아올 줄 알았소. 이제 곰곰 생각해보니 구차한 목숨을
붙이려고 몸부림쳤던 것 같소이다. 딴에는 보다 대장부다운 일을 하리라고 마음먹으면서 더
욱 살고자 했으되, 다른 죄수들의 정상을 보니 너무 욕심이 많았지요. 이제 섭섭한 마음 없
이 불경이나 외우면서 한양으로 끌려가겠소이다. 저 옥사장은 한갓 가난한 소리에 지나지
않으니 우리들로 하여 처자가 배를 불렸다면 또한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오."
우대용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주먹 같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는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내 살아 나간다면 꼭 신복동이를 단숨에 때려 죽이리라!"
"술이나 먹고 잠을 푹 자둡시다. 내일 길을 걸을려면 기운이 남아돌아야지."
"죽기를 감수하겠단 사람이 기운은 남겨서 뭣에다 쓸라우?"
"글쎄 혹시... 우리가 길에서 놓여날지 누가 안단 말이오?"
"무슨 낌새를 잡았소?"
길산이는 대답 없이 익숙한 솜씨로 차꼬와 칼을 벗어서 손 닿기 쉬운 곳에 세워놓았다.
우대용이 침을 삼키면서 다시 한번 거칠게 물었다.
"놓아날 방도가 있단 말이우?"
길산은 목소리를 낮추어 중얼거렸다.
"한번 생각해보시오. 어딘가 그럴 듯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점들이 있단 말요. 두 가지
로 생각할 수가 있소."
"뭐가 두 가지요? 우리가 한양에 끌려가면 죽거나 아니면 귀양가는 일 말이우?"
"그런 말이 아니라, 우리가 내일 옥 밖으로 끌려나가면 그것이... 탈옥일지도 모르겠소."
길산의 속삭이는 말에 대용은 어이가 없는지 입을 딱 벌리고 눈망울을 크게 번뜩였다. 길
산은 계속해서 말하였다.
"너무 믿지는 말고 내 이야기를 가벼이 들으시우. 죽고 사는 일을 담담하게 생각하고 보
면 전혀 탈옥의 가망이 없는 건 아니니까. 뭔가 이상하지 않소? 노형이 한양에 아는 벼슬아
치가 있을 턱이 없고 또한 물꼬를 시비로 동리 사람을 쳐죽인 임가란 자 역시 천출 농민이
니 한양의 형옥에 관계가 닿을 리가 없소."
"그건 그렇군."
하면서 우대용이는 그제사 고개를 끄덕였다.
"금부도사가 감영에 내려온 것은 필시 역모에 관한 옥일시 분명하외다. 헌데 우서방은 임
가를 아시우?"
"전혀 모르우. 어떻게 생겼는지두 모르겠수."
"그것 보시오. 내가 임가를 대신하여 대시수로 급한 행형을 모면한것이나, 노형이 회자수
가 되어 참수형을 일시 모면한 것은 우연히 그리된 것이 아니라, 송도 박행수의 입김 때문
이었소."
우대용이는 재빠르게 속삭였다.
"어 이제 생각나는군. 노형 대신에 내가 얘기하리다. 이제 또한 역모에 관련되어 우리가
한양으로 압송을 가게 되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라..."
"쉿... 누가 오는군."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옥사장이 옥졸에 들린 술동이와 안주 찬합을 마련해서 옥 앞에 왔
기 때문이었다. 길산이 말하였다.
"답답하여 잠시 칼과 차꼬를 벗었소이다."
"어 괜찮아. 우서방두 벗지 그러나?"
"내 것은 새 것이라 손에 익질 않소이다."
옥사장이 창살 안으로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이리 가까이 대게나. 벗겨줄 테니까."
그는 대용의 칼과 차꼬를 차례로 벗겨주었다. 술동이에서 탁주를 한 표주박 그득히 퍼서
먼저 길산이에게로 내밀었다. 길산은 단숨에 마셨고 옥사장이 말하였다.
"송도서 무슨 기별 없는가?"
"전에 밥집을 대어준 뒤로는 통 소식이 없소이다."
옥사장이 혀를 찼다.
"감옥 뒷바라지란 부모 처자식 간에두 죽을 사람은 버리게 되는 법이지."
우대용이가 술잔을 건네받으면서 옥사장에게 물었다.
"헌데... 경비하는 나졸은 몇이나 됩니까?"
"아까 객사 앞에서 보니 나장까지 합쳐서 다섯이더군."
"까짓 여차직하면 때려 죽이구 달아나야지."
옥사장이 교활한 웃음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그러게나. 자네들 기운이라면 호젓한 산길 같은 데서 열 놈인들 못해내겠나. 그래 어디쯤
으루 달아나게..."
길산이 짐짓 대답하였다.
"고향이 해서도이니, 삼남으루 내칠지 모르겠소. 허나 십중팔구는 한양에 갈 게요."
두 사람은 옥사장이 특별히 들여준 술을 마시자 한기가 훨씬 덜해졌다. 짚덤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서 그들은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나누었다. 길산이 말하였다.
"박대근이란 사람이 일을 엄벙뗑하는 사람이 아니외다. 밥집을 대어 주고 옥사장에 뇌물
까지 쓰던 사람이 일시에 소식을 끊을 리가 없소. 원래 송상들이란 허투루 돈을 쓰는 사람
들이 아닙디다. 일에 조리가 있고 꼼꼼하게 마련이지. 한양서 형옥이 있어 우리가 끌려가게
됨을 모를 리가 없을 터이고... 아니면 그가 빼내어가는자두 모르겠소."
"이야기가 그럴 듯은 하오만, 우리 뱃놈들은 풍랑을 겪어놔서 합쳐 달아납시다. 둘 중에
하나라두 살겠지."
"자 이젠 눈을 좀 붙여볼까?"
그들이 취기를 빌어 잠을 청하는데, 사방의 감옥 속에서는 춥고 굶주림에 떠는 죄수들의
신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다. 턱에 받친 신음소리가 밤새껏 들려오는 듯하였다. 한밤
중에 북풍은 거세게 불엇고, 아귀가 어긋난 문틀과 지붕에서 들리는 삐걱이는 소리에 한빙
지옥이 지상으로 올라온 것만 같았다.
갑자기 옥 안이 훤해졌다. 어렴풋이 잠이 들었던 길산은 실눈을 뜨고서 옥 창살 바깥을
내다보았다. 사방등을 치켜든 무장의 융복자락이 불빛에 울긋불긋 드러나 있었다. 그는 들으
라는 듯이 큰소리로 외쳤다.
"졸지 말고 엄중히 경계하라. 두 역적들을 놓치거나 무슨 짓을 하게 한눈을 팔았다간 모
두 어육을 면치 못하리라!"
밖에서 수직하는 군사들의 굽신거리는 그림자들이 어른거렸다. 안을 들여다보던 나장이
역시 큰 소리로 호통을 친다.
"누가 임가고 누가 우가냐?"
깨어난 길산이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내가 임가요."
그때에 나장은 참으로 이상한 동작을 하는 것 같았다. 손을 안으로 내밀어 가까이 오라는
듯 끄덕거렸던 것이다. 길산은 믿기지 않는 채로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니 이런 천하에 고얀 놈들 보았나. 어째서 저놈들이 칼과 차꼬를 벗고 있느냐? 내 손
수 채워두어야겠다."
나장은 그렇게 외치면서 연신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길산이 어기적 대면서 그러나 마음
은 급하여 거의 깨끼발걸음으로 다가서는데, 그의 손 안에 뭔가 종이를 쥐여주고 난 나장은
길산이 둘러쓴 칼의 자물쇠를 잠그는 체했다.
"네 이놈, 내일 아침 도사 어른께서 잠시 국문을 벌일 것인즉 이실직고하지 않고서 애를
먹이면 압송은커녕 예서 물고장을 낼 터이다. 알아듣겠느냐?"
"예..."
길산이 날카로운 눈을 들어 나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나장은 눈을 끔쩍인다. 그리고는
날쌔게 손을 뻗쳐 길산의 턱을 밀어붙이니, 스스로 차꼬를 차고서 다리가 자유롭지 못한 터
이라 길산은 나무등걸처럼 뒤로 나가떨어졌다.
"어, 대매에 때려 죽일 역적들 같으니!"
투덜대면서 나장이 사라진 뒤에 길산은 땀에 젖은 손을 펴서 꼬깃꼬깃한 종이 쪽지를 펴
들었다. 그것은 상단의 체장이었는데, 행수 박대근이란 서명이 씌어 있었다. 송도 임방에서
나온 행상 증서였고, 길산이 비록 글을 모른다 하나 낯익은 것이었다. 곁에서 잠이 깨어 일
어났던 우대용이도 그것을 함께 들여다보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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