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선이가 재빨리 말에 올라 달아나는 군졸의 뒤를 쫓아갔다. 군졸은 연신 뒤를 돌아보면
서 뛰는데 워낙 눈길이 미끄러워 넘어졌다가는 다시 일어나 뛰고 또 엎어지니, 얼마 못 가
서 학선이가 탄 말이 바로 등뒤에까지 다가들었다. 학선이가 환도를 쳐들었다가 군졸의 어
깨에서 아래로 죽 그어내렸다. 핏방울이 튀어오르면서 군졸은 앞으로 고꾸라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학선이는 말을 몰아 지나 되돌아 달려오면서, 이번에는 군졸의 배를 바라고 힘껏
찌르니 칼을 배에 박은 채로 쓰러지고 만다. 대번에 흘러나오기 시작한 피가 눈을 붉게 적
시면서 번져갔다. 학선이는 말에서 내려 잠깐 동안 시체를 내려다보더니 가래침을 돋구어
뱉었다. 그가 칼을 뽑아내어 눈에다 비스듬히 박았다가 몇번 씻어낸 후 발끝으로 눈덩이를
죽 떨어내고는 칼집에 꽂아 넣었다. 안장에서 줄을 꺼내어 시체의 다리에다 묶고는 그냥 말
뒤에 질질 끌고 정자로 돌아갔다. 둘은 타살되었고 장교와 다른 군졸은 독살되었으며, 마지
막 하나는 칼을 맞고 죽었다. 학선이는 다시 한번 목을 길게 빼어 가래침을 뱉어냈다.
"재길... 대근이한테 피값을 따루 받아야겠군."
학선이도 오랜만에 사람을 죽이고 보니 그리 좋은 기분이 들 리가 없었다. 그는 손에 묻
은 핏자국을 한움큼 쥔 눈으로 씻으면서 가마를 턱짓했다.
"두 사람을 풀어줘라."
학선의 부하들이 가마 문을 열고 길산이와 대용이를 나오게 하고는 오라와 차꼬를 풀어주
었다. 길산은 우두커니 서서 그들이 하는 양을 내려다보았다. 우대용이가 기지개를 한번 늘
어지게 하더니,
"고맙소, 용댕잇개 우대용이우."
하면서 인사를 건넸다. 학선이는 대답 대신에 풀려난 두 사람을 힐끗 돌아보았다.
"인사는 나중에 차차 하기루 하구... 얘들아, 시체를 모두 누마루 위로 올려라."
그들이 시체 수습을 하는데 두 장교와 군졸은 턱밑에 피를 토해냈으며, 벌써 얼굴에는 푸
릇푸릇한 두드러기가 돋아나 있었다. 눈이 부릅떠져 있고,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하나는 아귀쇠의 단도에 등과 옆구리를 찔리고 죽었으며, 다른 하나는 졸개들에게 참나무
사릉장을 머리통에 맞아 골통이 깨어져 있었다. 말에 끌려온 시체를 끝으로, 모두 누마루 위
에 쌓아올려진 것이다. 눈 위에 번진 핏자국과 시체는 끔찍해 보였다. 학선이가 말했다.
"정자를 태워버리자."
부시를 치고 불을 살려 유지에 붙인 다음 누마루 위에 던지니, 바람맞이 강변에서 오랫동
안 바싹 말라 있던 나무라 곧 옮겨 붙었다. 정자는 흰 연기를 올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동안 학선이와 졸개들은 어지럽게 번진 핏자국들을 눈으로 덮었다.
"자아 얼른 피하지."
"어느 쪽으루 갑니까?"
"이 삼거리서 공수원쪽으로 일단 가서 거기서 방향을 정하기루 합시다."
학선이는 우대용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고서 말에 올랐다. 그들은 걸음을 재촉하여 세여
울 삼거리를 떠났다. 드디어 정자가 타오르는지 큰 불길과 연기가 높이 치솟은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아귀쇠가 학선이에게 말하였다.
"성님, 임자가 틀림없이 달려올 것인데, 아직 타지 않은 시체를 보면 관가에 고경할 겁니다."
학선이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런 머저리 같으니... 이놈아 그 정자의 꼴을 못 보았느냐. 현판도 떨어지고 기왓장도 반
나마 부서져 있지 않더냐. 틀림없이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이다. 이런 날씨에 불기가 보인다
고 그 벌판에 강바람을 쏘이러 나올 놈이 어디 있겠느냐."
대용과 길산은 오랜만에 행보하는 셈이라, 이렇게 훨훨 들판을 가노라니 마치 다시 태어
난 듯한 기분이었다. 그들이 장봉산 줄기를 넘을 적에 비로소 보행을 멈추고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다 타버렸군..."
고갯마루에서 세여울 편을 바라보니 들판 가운데는 흰 연기가 곧게 퍼져 올라가고 있었다.
눈 위로 드문드문 솟은 바윗돌 여기저기에 걸터앉자, 학선이가 먼저 고개를 끄덕여 수인
사를 건넸다.
"나 송도 이학선이우."
"문화의 장길산이라 하우."
"우가요."
학선이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얘들아, 부담농에서 이분들 의관을 꺼내어라."
곧 패랭이와 의복 일습과 배자를 꺼내어 두 사람 앞에 벌여주었다.
학선이가 말하였다.
"공수원에 이르면, 사람들의 눈도 많고 앞으로 먼길을 가실 테니, 아예 여기서 의관을 갈
아입으슈."
"고맙소, 대근이 성님은 어찌 지내시우?"
"여태껏 두 분 때문에 골치를 썩이더니, 이제 한시름 놓았겠지요."
"송도로 가시렵니까?"
"예, 우리는 그럴 작정이오만, 두 분은 구월산으루 가시우. 그렇게 말하면 어딘지 안다고
그럽디다. 거기서 모두 모이기루 했답디다."
우대용과 장길산이 상투를 틀어올리고 패랭이를 얹고 나서, 의복까지 새 것이요 털배자까
지 입어놓으니 멀쩡한 원행 나그네 차림이 되었다.
"뮛 병장기 하나씩 가지실라우?"
"필요없소. 오히려 거추장스럽지."
"공수원서 술이나 한잔씩 걸치고 헤어집시다."
세여울 삼거리에서 공수원까지가 삼십 리 길이었으니 얼마 걷지 않아 인가를 만나게 되었
다. 공수원은 배천이나 금천이나 재령, 신천을 오가는 관원들이 묵어 가는 관의 객줏집이었
다. 마방이 있고 봉노와 큰 방이 여럿 있는 기와집 한 채가 네거리 모퉁이에 지어져 있었다.
원에는 원주가 있고, 부근에 땅을 주어 그것으로 원을 운영하게 하는 것이었다. 대개는 원주
가 중이게 마련이었다. 공수원 원주는 부근에 있는 동고사에 있었으니, 동고사의 중 하나가
나와서 원을 지키고 있었다. 중이 문 밖으로 쫓아나오면서 물었다.
"묵어 가시렵니까?"
"아니다. 날씨가 추워서 잠깐 기한이나 면할 작정이니, 술을 좀 내오너라."
그들은 아직도 장작불이 아궁이에서 이글거리고 있는 큰 방에 모두 함께 들어가 앉았다.
길산과 대용이 따뜻한 구들에 앉았으려니 실로 쾌적하여 저절로 잠이 왔다. 술상이 들어
와 서로 권커니잣거니 하면서 마시는 중인데, 밖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떠들고 있는
것은 원을 지키는 중의 목소리인 듯했다. 그들은 처지가 처지인지라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
다. 중이 또다른 승려 차림의 중을 떼밀어내며 외치고 있었다.
"나가라면 나갈 것이지 무슨 잔말이 많아. 예가 어디 네 따위 것들을 들이는 덴 줄 알아."
"아니 불자로서 이러한 몰인정한 처사가 어디 있소?"
객승은 누더기의 장삼을 입고 있었는데, 바랑 메고 탁발을 들고 있었다. 그의 뒷전에는 아
낙네와 어린 계집아이가 서로 부축하여 서 있었는데,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아낙
네가 스르르 미끄러져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돈을 드릴 테니, 두 사람을 거두어주오."
"네 따위가 돈이 어디 있단 말이야. 더구나 부처님까지 들먹였으니, 너 같은 보도 듣도 못
한 땡중이 어디 와서 야료를 부리는가."
형편을 짐작한 학선이가 문을 닫으려는데, 길산은 조용히 말했다.
"문 좀 엽시다."
"예? 왜 그러우."
"좀 엽시다."
학선이가 어리둥절하면서 문을 열었다. 길산이가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여보, 우리 나으리께서 무슨 일이냐구 여쭈오."
중이 돌아서더니, 그 살집 좋은 얼굴에 노기가 등등하여 객승을 손가락질하면서 말하였다.
"허, 이자가 어디서 걸인 모녀를 데리고 와서 묵어 가게 해달라니, 여기가 어디라구 저런
상것들을 들이겠소이까, 양반 나리들께 불쾌하게 해드려서 심히 죄송합니다."
하더니 다시 중을 떼밀었다.
"자, 썩 나가지 못해!"
밀려나던 객승이 고개를 들어 그들 일행이 있는 방에다 대고 외쳤다.
"약한 것을 어여삐 알고 가엾은 것을 긍휼히 앎은 사람으로서 상하 귀천이 없거늘, 더구
나 백성의 윗자리에 있는 양반들로서 이런 처사를 하신단 말이오?"
길산이 말하였다.
"우리 나으리께서 그 사람들을 안으로 들이랍시오."
"예? 그렇지만..."
"숙박비를 두 곱으로 주신다 하오."
"아이구... 원주께서 아시면 제가 큰일납니다만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객승이 봉놋방에다 두 모녀를 들여놓고는, 다시 그들의 방 앞에 다가와 합장 배례하였다.
"이런 보시를 하셨으니, 전정에 복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승 물러가겠습니다. 나무 관
세음보살."
객승이 등을 돌려 나가려는데 길산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를 불러 세웠다.
"스님, 잠깐만 보십시다."
돌아서서 나가려던 승려가 발을 멈추고 길산을 바라보았다.
"스님, 추운데 요기나 하고 가시지요?"
"고맙습니다만, 갈 길이 바쁩니다."
길산이 다시 묻는다.
"어디까지 가시는 길입니까?"
"해주까지 가오만, 앞으로 오십 리 길이니 한밤중에야 이르겠소이다."
"저희들도 곧 떠날 작정입니다. 요기를 하셔야 길을 가시지."
두 사람이 수작하는 것을 듣던 학선이가 끙하고 돌아앉으면서 투덜거렸다.
"이런 망할... 제 주제를 생각해야지, 낯선 중놈은 끌어들여 무얼하겠다는 게야."
우대용이가 다시 바깥을 내다보더니 기겁을 하였다.
"아니... 저건 결성 송림방에 있는 중이로군!"
학선이가 우대용이를 돌아다보며 눈을 크게 떴다.
"무어라구? 댁네와 안면이 있단 말이지."
하는데 이미 바랑을 벗어든 중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중은 좌중을 향하여 우선 정중하게
합장 배례하고 길산이 손짓하는 자리에 앉았다. 길산이 손수 국과 밥을 퍼서 상 위에 올려
놓아주면서 말하였다.
"많이 드십시오. 그래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중이 식사를 하면서 대답하였다.
"예, 온정서 옵니다. 자모산을 지나 도여울께서 저 모녀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자주 돌아
다니는 고로 유민지배를 많이 만난답니다."
"스님 계시는 절은 어디길래 몸소 시주를 얻으러 다니시오?"
"송림방 사자암에서 혼자 수도하는 중입니다. 사실은 온정의 어느 부자가 아프다고 해서
부적을 팔러 갔었지요."
길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두 부적 한 장 그려주우."
승려가 문득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부적을 그려드리지 않더라도 액운은 이미 멀리 갔소이다."
길산이 어쩐지 자꾸만 묻고 싶어졌다.
"액운이 멀리 가다니오?"
승려가 수저를 멈추고 잠시 길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장에 갇혔던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니 천지가 내 것 아니겠습니까?"
"허..."
학선이가 눈짓을 했고, 알아챈 아귀쇠는 품속의 단도를 쥐며 문 앞을 막고 앉았다. 여차직
하면 승려를 찔러 죽일 셈이었다. 학선이는 길산이 쓸데없이 낯선 사람을 들여 본색을 드러
내는 얘기나 지껄이는 것이 못마땅했다.
"거 대강 자셨으면 어서 길이나 가시오. 승속이 다른데 웬말이 그리 많아."
아귀쇠가 불평을 터뜨렸다. 학선이가 심기가 자못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상좌에
까치다리로 앉아 장죽을 빨고 있었다. 길산이 아귀쇠에게 은근히 위압적으로 말아였다.
"듣기가 좀 거북하우. 아무래두 상 물리면 떠날 터인데..."
중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알아챘는지, 좌중을 한바퀴 휘둘러보더니 수저를 놓았다.
"손님들께선 어디까지 가십니까?"
길산이 학선이 쪽을 한번 돌아다보고 나서,
"우리네 하리들은 상관께서 가시는 곳을 따라가 뿐입니다."
중이 길산에게 빙긋이 알지 못할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 눈은 못 속이십니다. 감영 옥에서 나오시는 길이 아닙니까?"
학선이가 나직하게 외쳤다.
"묶어라."
졸개들이 좌우로 달려드는데, 길산이가 팔을 휘저어 막았다.
"잠깐... 당신은 누구요?"
"예, 해주 송림방 사자암에 기거하는 행자 여환이란 사람입니다. 내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해서의 길은 하도 돌아다녀 내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니, 가장 안전한 길을
가르쳐드리고자 하였을 뿐이외다."
그제서야 구석에서 묵묵히 앉았던 우대용이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알아보시겠소?"
"아무렴, 알아보다뿐입니까. 용댕잇개에 계셨지요. 신가놈의 모함에 빠져 갇힌 소문이 결
성골에 파다합니다. 아까 방안에 들어설 때부터 눈여겨보았소이다."
학선이가 벌떡 일어섰다.
"내 아까부터 참자 참자 했더니 하는 짓들이 실로 어리석소. 나는 일을 끝마친 터이니 이
길로 떠나겠소이다. 얘들아 노자 한꿰미 내주어라!"
아귀쇠가 먼저 나가고, 학선이는 졸개들과 같이 마당으로 내려섰다. 길산이 마루 끝에까지
쫓아나와 말하였다.
"너무 노엽게 생각 마시오. 언제 또 만납시다."
"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소. 내게 대한 말은 절대 꺼내지 마우. 소문이 한두 입씩 건너
다 보면 우린 장사 다하는 거니까..."
아귀쇠가 말에 실린 부담에서 엽전 한 꿰미를 꺼내어 마루에 던지고 가버렸다. 학선이가
끝으로 말하였다.
"감영서 나온 봉물은 우리가 나눠 쓸 작정이오. 길 가기 편하도록 말 한필 두구 갈까?"
"아니 그만두오."
"이 길로 금천으로 해서 송도로 들어갈 터인데, 아마 박행수께서는 벌써 구월산으루 떠났
을 거외다."
"잘 가우. 또 만나게 될 거요."
"글쎄... 우리네야 돈 주고 일시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수."
학선이는 졸개들을 거느리고 백마에 오르더니 동쪽 길을 향하여 떠났다. 길산이 돌아오니
우대용이와 중 여환은 용당포의 뒷얘기들을 하는 중이었다. 길산이 물었다.
"스님, 우리가 감영 옥에서 나온 것은 어찌 알았소이까?"
"그야 간단하지요. 당신이 고개를 내밀고 말을 걸 때에 보았소만, 목에는 칼에 쓸린 자취
가 남아 있습디다. 그리고 이분이 눈에 띄길래 대번 알았지요. 좌우지간... 장길산이란 이름
은 소승도 많이 들었던 이름 같소이다."
곁에서 우대용이가 대신 말하였다.
"다른 대시수가 저 사람의 이름으루 주내방 저자에서 대신 참수당했기 때문에 해주 바닥
에 이름이 났을 게요."
"참... 그렇군.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연이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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