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가 모골이 송연하여 이제는 울먹이면서 애걸하였다.
"사, 사또... 소인 죽을 죄를 졌사오나, 다만 직무에 열중한 관원으로서 저지른 일이오니
굽어살핍시오."
이방이 틈을 놓치지 않고 목사에게 간청하는데, 실상은 안성 포교를 구명하였다는 인심을
얻어두자는 속셈이었다. 기실 일이 크게 번지고 나면 밑이 구린 것은 이쪽이 틀림없는 일이
었다.
"아뢰오. 비록 안성의 장교가 월권하였다 하나, 그 일이 백성을 해치는 도적을 잡는 일로
비롯된 죄인즉, 일단 형방을 시켜서 이모와 함게 문초를 하도록 하시고 연후에 벌하여도 늦
지는 않을까 하옵니다."
목사 생각에도 중벌을 내릴 뜻은 없었고, 다만 안성군수에게 목사로서의 위의를 새겨두려
하였은즉, 이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모란 자는 쟁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하옥시켜두고, 안성 관리는 곤장 십 도를 내려
징계하도록 하라."
이경순은 일단 하옥되고, 안성 포교와 포졸은 각각 곤장 십 도로써 징치된 뒤에 이방의
선처로 객사에 머물도록 하였다. 여주 이방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를 않는지라 창골 이
도장네 사기전으로 나아가 그의 아내를 찾았다. 경순의 처는 근래 남편의 행적에 짐작되던
바가 있어서 몸져 누워 근심에 싸여 있었다. 이방이 들어서자마자 도장댁은 우선 에고 소리
부터 먼저 내었다.
"우리 주인께서 무슨 중죄를 지었다구 옥에 갇히도록 내버려둔단 말입니까. 사또께서두
그러시구 이방 어른은 더욱 우리와 자별하게 오가시면서 이런 의리가 있단 말입니까?" "중
병일수록 극약을 써야 합네다. 시방 이도장을 가둔 것은 바로 그와 같지요. 내가 다 선처할
궁리가 있어서 이러는 것이니 아주머니께서는 너무 심려 마십시오. 내가 온 건 다름이 아니
라..."
하면서 이방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 댁에 사당 아이를 데려다 놓았지요?"
도장댁은 가슴이 덜컹하여 입을 열지 못했는데, 아무리 주인과 자별한 사이라 하나 그는
관아의 사람이고 경순이 옥에 들었으니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방은 경순
의 처를 안심시키느라고 껄껄 웃어 보였다.
"아주머니 걱정을 마십시오. 일전에 이서방이 내게 다 털어놓은 사실이올시다. 만약에 그
애가 잡히면 이도장은 꼼짝없이 화적죄를 쓰고 죽게 될 뿐 아니라, 나나 아주머니도 중벌을
면치 못할 게요. 지금이라두 당장 그 계집을 어디 먼 데루 보내버립시다." "그... 그렇지만
우리 주인게서 아무 말씀이 없으셨으니, 저만 몹쓸 년이 되구 말겠지요." 지금 그런 것을
따질 계제가 아닙니다. 이서방이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우리를 탓하지는 못하지요. 다 제
몸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월송골 분원 동네에 있어요."
이방은 눈을 크게 떴다.
"헛... 아직두 거기 두었단 말입니까? 내가 빼돌리라 일렀는데, 그렇다면 이거 더욱 큰일이
로군."
"연못골에 작은집을 두려고 작정하여 돈도 치렀지만,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제가 나가볼
겨를이 있겠어요?"
"그 과붓집에다 두었단 말이지요? 아니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갔군. 홀려두 단단히 홀렸어!
아, 눈이 몇이며 입이 몇입니까. 안되겠습니다. 당장 가셔서 밤을 타구 떠나도록 이르시오.
그 계집만 없다면 이 서방은 사흘 안으루 무사히 나오게 될 겁니다." 이방의 말은 진정 도
장댁으로서는 그중 반갑고 고마운 얘기였다. 아이를 낳지 못하여 도장댁은 남편에게 늘 죄를
지은 듯했고, 씨받이댁까지 주선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젊은 여인이 남
편의 정을 독차지해버리고, 남편이 늘 좌불안석이던 것이 못내 섭섭했었다. 더구나 이제 경
순의 몸에 닥친 위급함을 보니, 이방이 말하지 않더라도 어째서 거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
였나 후회가 되었다.
"예, 그러면 제가 이 길루 월송골엘 나가겠어요. 그리구... 며칠 계실지는 모르지만 옥내가
불편하실 텐데, 제가 옥바라지를 해야겠어요."
"그건 염려 마십시오. 아주머니가 아니더라도 내가 다 가려서 해놓을 테니까요. 옥사장 아
이들도 이도장이라면 깍듯이 예우를 합니다. 궁금하시면 언제든지 가서 들여다보셔두 좋구
요. 허나, 시방은 처지가 처지인지라 남의 눈을 피해야겠습니다. 의심을 받으면 아무래도 불
리하니까요."
"이방 어른만 믿구 있겠습니다."
이방이 헛기침을 하고 나서 잠깐 머뭇거렸다.
"돈 있거든 백 냥만 내놓으십시오. 내가 지금 나가서 객사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안성 포교
라는 자가 제법 눈치있는 자이니 입막음을 해둬야 합니다. 사또께는 일이 마감된 뒤에 따로
이 선사품을 마련하기루 하구요."
"주인이 안 계시니 수결 없는 어음을 떼어 드릴 수도 없고... 꿰미는 너무 부피가 크니 은
자를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서슴지 않고 은자 스무 냥 반을 내놓았다.
"더 드릴 수도 있으나, 아직 객주와 경주인의 계산이 떨어지질 않아서요." "아니 이것이
면 충분합니다. 제깟 장교놈 주제에 막걸리 사발 들이켜기두 쉽지 않은 터에 백 냥이면 과
합지요. 그러면 아주머니는 사당 아이 일을 잘 수습해두십시오." 이방과 경순의 처는 의논
을 마치고 일어났다. 이방은 객사에 가서 안성 포교를 끌어내어 술을 퍼먹이고 계집을 안
겨준 뒤에 적당히 돈을 안길 작정이었다. 공연히 까탈 잡히게 뇌물 쓰는 양을 하는 게 아니
라 앞으로 장사차 안성엘 가는 일이 있을 적에 저자일을 잘 보아달라더라고 전하는 형식을
취할 셈이었다. 피차에 봉변이니 장사치보다야 관원이 더욱 욕본 게 아니냐, 그러니 이것은
서로 위무하고 잘 지내자는 돈이다. 이방의 머릿속에는 그런 식으로 안성 포교를 무마시킬
생각이 술술 풀려나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탑골을 지나가다가 이방은 문득 어떤
생각에 부딪치게 되었다.
"젠장할... 평생 요 모양 요 꼴루 여주에 틀어박혀 서리배 노릇이나 하다 죽는가부다..."
하긴 여주 이방은 삼 대째의 향리였다. 원래 아전이라 하는 것은 향소의 직이니, 관장이
부임해 올 적에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관장을 들이고 보내면서 백성들과의 다리를 놓는 역
할을 하는 것이었다. 즉, 지방 사정에 밝은 자라야만 아전배 노릇이 가능하였고, 따라서 서
리는 마음만 먹으면 지방 사정에 눈이 어두운 상사를 속여먹기가 손바닥 뒤집는 일과 같았
다. 여주 이방이 본시 순하고 의기를 아는 사람이언만, 그의 경우에 있어서도 목사가 모르는
수입원들을 몇가지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여주서 밥술깨나 먹고 지내지만 그렇게 큰 부자는 아니었고, 그도 다른 서리배들의
꿈과 마찬가지로 현감 저옫의 벼슬아치가 되어 보고 싶었다.
아전직이 원래 지방에서 가세를 유지하기에 족한 업이건만, 중인은 물론이요 상놈들 간에
도 관가의 아전이라면 그리 쉬히 여기지를 않았다. 그것은 대개 아전의 급료가 헐하여 백성
과 수령 사이에서 포흠이 많기 때문이었고, 시정 장사치들도 앞에 면대하여서는 가장 존중
하는 듯하나 돌아서면 비웃게 마련이었던 것이다. 여주 이방은 그리 악한 사람은 아니로되
심기가 매우 여린 사람이었다. 그가 객사에 들러 안성 포교와 술을 걸치고 돈냥을 전한 뒤
에, "이것은 사또께서 귀관의 충직함을 대견히 여기셔서 내리는 상금일세. 한편 곤장으로
징치하신 것을 수령의 위의를 세우고자 함이었으니 마음을 풀게나." 하고 은근히 달래주었
으며, 촐촐하게 객사에서 죽치고 있던 안성 관원은 의외의 횡재에 감지덕지하여 한사코
물리치다가 받는 체하였다.
"소인이 월권한 죄가 있어 다스림을 받은 터에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이제 위무까지 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를 지경입지요."
남의 고을에 와서 매를 맞고 나서 뜻하지 않은 돈까지 얻게 되었으니, 어느 겨를에 의심
을 가지며 설령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할지라도 눈녹듯이 사라질 만하였다. 백 냥이란 시골
장교로서는 제법 큰 돈이었던 것이다. 이방은 안성 관원을 색주가에 재워두고 거나하여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그때까지는 간교한 마음을 먹지 않았었고, 다만 자신의 입장에
관하여 평상시처럼 가볍게 탄식하였을 뿐이었다.
"젠장할... 나이 사십줄이 넘어서 이게 무슨 꼴이람. 남들은 턱짓으로 아랫것들을 부리며
한 고을의 수령으로 하늘처럼 떠받들려 지나는데, 포교 따위와 냄새나는 술을 퍼먹고 다니
다니!"
이방은 비틀거리며 걷다가 자기 집 문전에 이르러 드디어 견디지 못하고 왁왁 토해냈다.
문득 대문이 삐걱 열리더니 그의 처가 내다보는 것이었다.
"흥, 집안에 환난이 있는 줄도 모르고, 술만 퍼먹구 다니면 제일이오?" "허허, 내가 술 먹
는 일이 어제 오늘이 아니거난 왜 지청구가 이리 심한가?" "그야 술도 술 나름이지요. 사
대부나 토반 향족 어른들과 함게 마시면 약주이지만, 그따위 술을 퍼먹구 다니는 당신이야
말로 술지게미에 취한 술도가의 강아지와 뭐 다른 게 있단 말이우?"
"뭘... 이년이 정말 미쳤군!"
이방이 술김에도 달려들어 한 대 치려고 문간으로 쏟아져 들어가니, 그의 처는 피하여 마
당을 건너지르면서 통곡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아이고오, 분하고 원통해서 이 일을 어디다 호소할꼬. 제 딸년이 살지 못할 능욕을 당하
였건만, 가장이 무능하여 설원할 길이 없고나."
곡성이 요란한 중에 이방은 사랑에 올라 앉아 우선 하녀에게 냉수를 청하였다. 그가 냉수
를 다 마시고는 아무래도 집안 공기가 심상치 않았음을 눈치채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물으니, 하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주워섬겼다.
"아가씨가 자진을 하셨더랬습니다."
요란한 소리로 물그릇이 떨어져 댓돌 아래 박살이 났다. 이방은 그만큼 놀랐던 것이었고,
취기가 대번에 가시는 듯하였다.
"뭐라구... 그랬느냐?"
"아가씨가 목을 매셨습니다."
청천에 벽력 같은 말이니, 이방의 얼굴에서는 대번에 핏기가 가셔버렸다.
"골방에서 목을 매신 것을 천행으로 쇤네가 발견하여 끌어내리고 의원을 불렀어요. 침을
맞히고 사지를 주물러서 가까스로 회생을 하셨습니다만, 아직 제정신이 들질 못하였습니다."
이방은 한걸음에 뛰어가 외동딸의 모습을 살피고 싶었건만 꾹 눌러 참으면서 침통하게 한숨
만 내리쉬었다.
"그래... 그 연유가 무엇이라더냐?"
하녀는 옷고름만 비틀고 섰을 뿐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고 있었다. 이방이 눈을 부릅뜨
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 외쳤다.
"말하지 않으면 아가리를 찢어서 내치겠다. 어서 직고하여라!" "예... 저... 생원 댁 조수재
를 아시겠지요?"
"그놈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하면서도 이방의 머릿속으로 퍼뜩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조생원과는 인근에 이웃하여
산 적이 있었고, 철없는 아이들은 곧잘 양지바른 그의 집 마당에 와서 함게 놀고는 하였던
것이다.
조도령이 책을 끼고 서당 출입을 하게 되면서부터 내외를 하게 되고 집이 서로 이사를 하
여 떨어져 살게는 되었으나 이방과 생원 사이에도 이웃의 정리가 가신 것은 아니었었다. 요
즈음도 어쩌다 노상에서 만나면 안부를 묻곤 하는데, 물론 이쪽에서 먼저 하정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저쪽은 깍듯한 반말이고 이쪽은 처음부터 끝까지 양반을 대하는 예의에 어그러짐
이 없었다. 조생원이 그리 부자는 아니었으나, 이 고장에서는 선산도 지녀 있고 제수답도 너
른 터에 밥끼니나 족히 먹을 만하였으니, 엉치뼈가 송곳 같은 샌님은 아닌 셈이었다. 의식이
족함에 자연히 양반 자세가 은근하게 꿋꿋하였던 것이다. 일찍이 이경순의 아내도 조생원
마나님께 능멸을 당했다고 여겨 까짓 것 공명첩이나 사들이리라 작정한 그만큼이었다. 그러
나 이방으로서는 아주 아전 집안으로 삼대를 물려온 터에 향족에게 하정배를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 여겨왔던 터이었다.
"음, 조도령이 우리 아이와 소꿉동무라는 건 아니다. 그래 어떤 일이 있었느냐?" 이방은
한결 침착해져서 나직한 소리로 물었고, 그제사 마음이 놓인 하녀는 눈물을 글썽이고 울먹
여 말하였다.
"지난해 한가윗날이었습니다. 그날 나으리께서 퇴청이 늦어지신 틈에 아가씨는 달구경을
나가자구 졸라대어 제가 뫼시구 나룻가에 나갔었습니다." 이방은 벌써 일의 내막이 손바닥
에 올려놓은 것처럼 환히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자신도 아잇적에 양가 처녀를 꾄다고 달
밤에 여주 강변에를 나가 휘돌고 다니던 생각이 났다.
"게서 조도령을 만났느냐?"
"예... 뒤를 밟은 듯하였습니다. 아가씨가 잠시 비켜 있으라 하거늘, 쇤네는 떨어져서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를 듣지 못하였지요. 그뒤로 두 분 사이에 정분이 나서 글이 오락가락
하였습니다. 어쩐 때엔 방자 대신에 그분이 직접 담 너머에서 휘파람을 불고는 던지고 가는
적도 많았습니다."
"네년두 편지 심부름을 하였겠구나."
"죽여... 줍시오."
"에미두 알구 있겠지?"
"예, 대강은 아시는 듯하옵니다."
이방은 입맛을 다셨다.
"헛허! 집안 망하는구나. 언감생심 그 댁이 뉘 댁이라고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쳐다봐? 그
래서 어찌되었단 말이냐?"
"그 뒤로 편지만 오가다가 얼마 전에 조수재가 그만 월장을 해 오셨습니다." 이방은 얼
결에 벌떡 일어났다.
"내 이놈을 단매에 때려 죽이구 올까부다. 아무리 향족이란들 남의 집안을 이리 업수이
여길 수가 있단 말인가."
안방에서 곡성이 멎고 이방의 처가 달려나와 울부짖는 것이었다.
"여보 그리 마오. 당신은 입이 열 개라두 말을 못합네다. 재물이 없으면 지체라두 높든지,
지체가 낮으면 부가옹이라두 될 일이지. 남들은 아전질 삼 년에 만석꾼이 부럽지 않다던데,
당신네 집안에는 돈꿰미는커녕 썩은 곶감꼬치 한 줄 들어온 적이 없으니 관노와 무에 다를
게 있단 말요? 이도장을 보우. 비록 신분은 신량역천이건만 누만 전을 쌓아두었으니 고관대
작을 부러워 하겠소. 아마 정승이라두 살 거외다. 그가 돈냥을 써서 동지나 첨지나 풍헌이라
두 될작시면 우리 따위와는 하게도 놓지 않구 살 게란 말유. 공연히 당신만 홍야홍야하면서
그 삶의 동무입네 하지만 이득 본 게 뭐가 있소."
집안일이 이렇게 된 바에 이방은 입이 열 개라도 말을 못할 지경이었다. 그는 울화를 짓
씹고 앉아 아내의 험구를 제 몸에 쑤셔박히는 사금파리의 고통인 양 참아 견디는 중이었다.
"조수재인가 도적놈인가 하는 놈이 제멋대로 춘정이나 발동하여 일을 저지르고는 씻은 듯
소식이 없더니, 오늘 성혼을 마쳤다는구려. 상대는 평택의 호통 최풍헌네 막내딸이랍디다.
풍헌이니 선달이니 그것두 공명첩 양반일시 분명하니, 아무려면 우리네 아전배보다 못하겠
수. 아이구 원통해라. 이 지지리 못난 가장을 믿고 사는 우리가 모두 쓸개 빠진 년들이지."
"에이... 썩을 것들 같으니!"
울분이 채 터져나오지도 못한 채 이방은 사랑으로 들어가 어둠속에 뻗고 누워버렸다. 한
참이나 마누라의 지청구하는 소리가 들리다가 집안이 괴괴해졌는데 잠이 올 리가 없엇다.
그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궁리에 궁리로 머리통이 깨지는 것만 같았다.
약한 사람이 능멸을 받고 그것을 강한 상대에게 풀지 못하게 되면 자신에게로 그 원한을
돌리게 되고, 자신에게 돌린 원한이 깊으면 깊을수록 복수하겠다는 심정이 세상 전반에 향
하게 되는 것이 인생살이의 이치가 아닌가. 따라서 일찍이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잘 다
스림이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는 첩경인 줄을 알지 못하고, 자신과 집안을 모두 그르치기가
쉬운 게 심약한 사람을 특징이엇따. 그가 제 집안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지 못하겠거든 차
라리 무면 풍류로 모른척 잘라버리든지, 아니면 생원네로 달려가 당당히 따져서 포한을 푸
는 것이 하책 중에도 해늘 수 있는 사람의 짓이었다. 그러나그는 엉뚱하게도 자기의 아전
처지를 통탄하였다.
"오냐... 두고 보자. 내 벼슬을 하든지 돈생원 도주공이 되든지 하여 이 포한을 씻겠다!"
새벽녘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허튼 공상으로 새우는
데, 문득 생각이 어느 골에 가서 딱 멈추는 것이었다. 아전배란 십 년을 하루같이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도록 차근차근 착복하지 않으면, 결손 때마다 관장에서 의심을 받기가 일쑤요,
무엇보다도 지방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재물을 지니기가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에
게는 이제 한가지 신통한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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