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순의 아내는 여주 이방이 이르고 간 뒤에 변변히 생각할 염도없이 약간의 패물과 돈
을 내어 싸들고 혼자서 월성골로 나아갔다. 사방이 캄캄해진 뒤이라 아무의 눈에도 뜨일 것
같지가 않았다. 월송골 분원 마을에 이르러 행인을 조심하여 박씨 과부네 집에 당도하니 아
무것도 모르는 과수댁은 호들갑을 떠는 것이었다.
"아유 그러잖아두 저희 시숙이 어찌나 안달을 하시는지 쇤네가 창골루 찾아뵈려던 참이올
시다. 연못골 집이야 아주 실하구 주변두 조용합지요." "이 아이 집에 있는가?"
"예, 방금 같이 저녁을 먹었습죠."
"자네는 들어오지 말게. 내가 은밀히 할 이야기가 있네." "아무렴요, 어련하시겠어요."
벌써부터 밖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듣고 묘옥은 옷매무새를 고치며 앉아 잇었다. 도장댁이
들어서자 묘옥은 황황히 일어났다.
"그리 앉게. 우리가 틈이 별루 없으니 어서 얘기를 끝내세나. 자네 어디 갈 곳이 없나?"
묘옥은 어리둥절하여 태도가 표변한 도장댁을 바라보았다. 실로 마음속으로는 떠나리라고
작정하고 있었건만, 며칠 전까지도 저쪽에서 잡아 붙드는 시늉이더니 지금 와서는 곧 찬
바람이 폴싹거리는 듯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두 자네와 다불어 한솥밥을 먹으며 친동기간 같이 지내리라 여겼더니, 우리가 아마 인
연이 없는 모양이네. 만일에 우리 주인께 아무일이 없거나, 또는 내가 혼자가 되었다 하더라
도 사람이 이리 매정하게 나올 수는 없을 걸세. 자네 어디로든 적당한 곳으로 지금 당장에
떠나주어야겠어."
묘옥은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가, "제가 언제 가더라도 갈 적장이었습니다만, 이렇게 갑작
스레 떠나게 되니 혹 도장 나으리께 무슨 변고나 없으신지 방정맞은 생각이 듭니다."
"왜 아니겠나. 그분이 시방 관가에 하옥되어 계시다네. 안성서 기찰포교가 찾아와 자네를
눈이 시뻘개서 찾는 모양일세. 만약에 자네가 잡힌다면 나으리는 말할 것도 없고, 자네는 장
하에 죽고 말 게야. 안성은 시방 발칵 뒤집혔다네. 어서 안전한 길루 여주를 빠져나가도록
하게."
"저 때분에 이런 곤경을 겪게 되었으니 죽여줍시어도 할말이 없는 터에, 제가 무얼 망설
이겠습니까. 아씨 안녕히 계십시오."
묘옥이 일어나 절을 하였고, 도장댁은 그 정경이 가엾어서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고 오냐
오냐 하며 눈물을 씻어냈다. 도장댁이 싸가지고온 보통이를 묘옥에게 들려주면서 말하였다.
"이건 얼마 되지 않지만, 주인께서 내주셨던 것이니 노자나 하고, 제 몸 하나는 간수할 수
있을 겔세. 언제 형편이 좋아지면 다시 만나겠지. 가만있게... 내가 사람을 하나 붙여줄 테니
길안내를 받도록 하게."
"아닙니다. 저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그게 아닐세. 자네가 무사히 빠져나가야 우리 주인께서 탈이 없을 테니 이러는 게야."
묘옥이도 그 말에는 항거치 못하고 다소곳하니 앉아서 기다렸다. 박씨 과부가 분원에 가서
전생이를 데리고 왔다. 전생이는 이에 눈치가 있는지라 말없이 보퉁이를 받아 지고 앞장을
섰다. 전생이의 뒤로 묘옥이와 도장댁은 따라붙어서 말없이 걸었다. 드디어 창골과 나룻가
로 갈라지는 길에 이르러 도장댁은 묘옥의 손을 잡아주었다.
"잘 가게나. 내가 할말이 없네. 나중에 도장 어른이 나와 아시게 되면 심려가 많으실 테지
만, 어쩌겠나. 우리에게는 하늘 같은 가장인데..."
"아씨! 평안히 사십시오."
묘옥이 어찌 여인이 그 지아비를 사랑하는 마음을 모르랴. 더구나 지금 딱히 편을 들라면
이경순 쪽이 아니라, 그의 남편으로 하여 애를 태우로 시앗에게마저 정을 보이며 아기를 낳
지 못하여 끝내 죄스러워하는 도장댁의 편을 들고 싶었다.
"그래, 어서 가게."
묘옥은 전생이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달은 초승달이었으나 별이 총총한 밤이었다. 하
염없이 뻗어나간 길을 타박이며 걷고 있는 묘옥의 가슴에는 웬일인지 썰렁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는 듯하엿다. 이 적막강산 아래 다시 몸붙일 데 없는 신세가 되었고나 하는 외로움이 서
서히 밀려오는 것이었다. 여자의 마음이란 또한 얼마나 얄궂은 것이까. 경순이 곁에 있을 적
에는 그의 다정함이 짐스럽고 송구하여, 자기는 그 사람의 계집이 아니라고 수십 번 외게
되더니 이제 돌아서서 떠나오자마자 그가 그리워지는 것이엇다. 길산은 이미 죽은 사람으로,
스스로가 길가의 돌맹이처럼 구르며 살아왔던 세월을 씻기 위하여 정분을 끝내 지켜내리라
작정하였으나, 생시의 사람은 아니었다. 이미 저승의 사람임에 틀림없고, 너그러운 아버지
같던 경순이야말로 묘옥에게는 매우 또렷한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묘옥은 새
로이 다짐하는 것이었다. 자신에게는 아직도 길산이라는 광대의 넋이 소중하였고, 그의 넋을
간직하는 중에 심신이 정화되고 오히려 모든 험난한 세상살이를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으리, 제발 무사하십시오."
묘옥과 전생이는 도사공을 깨워 배를 띄우도록 하였다.
"제가 모셔다 드리고 싶지만, 우리 원주 어른 일이 걱정인지라 갈수가 없습니다. 나중에라
두 혹시 주인께서 찾으실지 모르니 행선지나 말하여주십시오." "글쎄요... 한양으루 가겠습
니다."
전생이가 도사공에게 뱃삯 닷 냥을 내어주니 보통 때의 거의 다섯배가 넘는 돈이었다.
"마포나 동작진까지 대어주시우."
"우리 배는 어제 선적한 화물이 있는데, 송파에 부려놓아야 합니다. 거기 이르러 배를 갈
아타시도록 하시우."
"하긴 송파까지만 가면 배는 지천으루 깔렸으니까. 그럼 잘 부탁하우." "우리가 시방 배
를 띄울 시각은 아니오만 돈을 받았으니 아무려면 어떻겠소. 잠 좀 덜 자구 돈을 벌어야지."
도사공은 집에 들어가 아들인 듯한 떠꺼머리를 깨워서 데리고 나왔다. 총각은 연방 투덜
거리면서도 닻줄을 풀었다. 전생이가 묘옥에게 당부하였다.
"동작진이니 마포의 유기와 사기를 취급하는 아무 여각에나 찾아가셔서 통기해 놓으십시
오. 서루 대번에 연락이 닿을 겝니다."
전생이가 꼼꼼하여 제 주인의 뒷일까지 모두 거두려 하였다. 묘옥은 아무 말 없이 뱃전에
올랐다. 경강 사공이라면 그 물길 타는 재간이나 노질이 전국의 하천에서 으뜸이었고 화물
을 실어나를 사공 정도라면 수로를 제 안방 처럼 훤히 아는 사람들이었다.
여주서 한밤중에 배를 띄위 경강으로 오르는데, 북한강과 남한강의 지류가 모이는 분원까
지는 강물을 거스르는 셈이었다. 분원을 지나고부터 강물은 서쪽을 바라고 완만하게 흐르다
가, 송파를 넘어서면서 바로 도도하게 한양성 밖을 싸고 돌아 서해로 빠지는 것이었다. 비록
물길이 백여 리가 넘는다 하지만 육로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광주의 송파와 삼전도는 동북
지방과 삼남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목구멍과 같았으니, 이현 칠패에 직접 통하는 가장 큰
장시였다. 밤배가 여주서는 몇척 없더니 이천장을 지나며 한두 척씩 늘고 양근을 휘돌고 부
터는 어느덧 십여 척의 줄이 이루어졌다. 배는 안개를 뚫고 경강을 향하여 거슬러 올라갔다.
강위에는 새벽 바람이 가득 차 있고 노를 올리고 돛을 올린 배들이 돛대마다 매달린 등불빛
이 반작거렸다. 사공은 고물에서 키를 잡고 앉았으며, 묘옥은 덮개가 씌워진 선복의 쌀섬 위
에 푹신한 멍석을 깔고 누워 있었다. 앞으로는 덕판에 앉아 물길을 내다보는 젊은 사공이
있었다 묘옥이 가끔 고개를 들어 내다보노라면 늙은 사공이 말하는 것이었다.
"분원을 지나고도 한참 갈 테니 푹 잠이나 자두오."
했으나 묘옥은 잠들 수가 없었다. 자신을 태운 배는 끝도 없는 어둠속으로 한없이 흘러가
는 것만 같았다.
별빛이 희미해지고 수면 위로 안개가 퍼져나갈 무렵에 배는 북한강의 지류가 합치는 봉안
앞의 분원목에 이르렀다. 물결이 세 갈래로 갈리면서 강복판에 자리잡은 모래섬의 주위를
거세게 맴돌았다. 이번에는 두 사공이 노를 젓는 참이었다. 배가 전혀 물결을 헤치고 나갈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북족에서도 줄이은 상선들이 불을 달고 나타났다. 한참을 허위적거리
던 끝에 배가 소여울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섬을 한바퀴 돌아서 서편에 머리를 돌릴 수가
있었다. 배들은 서로 엇갈려서 제각기 방향을 달리하였다. 일단 소용돌이를 지나자 얼마 동
안은 급류가 계속되었다. 광주를 지날 때 해가 뉘엿뉘엿 떠오르고 있었다.
밤새껏 시달린 사공은 피로했는지 아들과 바꾸어 덕판에 반듯이 드러누워 잠들었고, 아들
이 대신 키를 잡았다. 실로 하룻밤 사이에 배는 덕풍말을 돌아서 송파나루로 흘러드는 중이
었다. 묘옥은 이제껏 이렇게 많은 배들을 보지 못하였다. 돛단배와 나룻배, 병선을 개조하여
높이가 사람 키는 훨씬 넘는 상선들이 그물이라도 짜는 듯이 송파와 삼전도와 학여울에 걸
쳐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강변에 다닥다닥 붙여 지은 가가에서는 아침을 짓는 연기가 안개
와 휩싸여서 양쪽 강안이 자욱할 지경이었다.
"저기가 한양인가요?"
묘옥이 묻자, 젊은 사공은 껄껄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어떠우... 장관입지요? 저기가 송파 장터랍니다. 마포나 서강보다두 물자 많기로는 경강서
으뜸이지요. 한양까지야 한 식경이니 뭐... 다 한울타리입니다. 들고 나는 이가 얼마나 되게
요."
"대처로군요."
"대처다마다요. 허지만 인심은 아주 사납수. 모두가 뜨내기들이니 언제 인정 가리게 됐습
니까. 아씨두 조심하슈, 순 날도적놈 판이외다."
"객점두 많이 있을까요?"
"헛허, 맨 천지에 객점이우. 글쎄 한번 뭍에 올라가보시라니..." 송파가 배를 대기에 맞춤
한 것은 굽어도는 물길이 두 섬으로 하여 느슨해지고, 더욱이 봉은사 옆의 학여울 앞은 일
단 주춤해진 물길이 호흡을 가다듬고 그 흐름을 바꾸는 곳이었다.
두 섬 중에 송파를 감싼 것은 상림이요, 그에 연이어져 딱섬이 잇는데 모두 한양성 밖의 왕
십리로 통하여 위로는 흥인문에 닿고, 아래로 광희문에 닿는다. 송파와 삼전나루는 이곳을
근거지로 시정아치들을 피하여 원산지 상인과 직접 교역하려는 강상 무뢰배들의 본거지가
되어 있었다. 아래로 서빙고를 지나 동작나루와 노량나루에는 과객과 보부상들의 주막이 즐
비하고 마포와 서강이야 말로 경강 상인들의 여각이 밀집한 대창고들이 즐비하였다. 서강
건너편의 밤섬에는 이들 주상들이 만든 조선장이 여럿이었다.
송파는 상림과 삼전도와 딱섬 주변으로 거래하는 장시가 다섯 군데가 넘는데. 이미 강안에
서 묘옥이 강가를 보았듯이 장터마다 초막으로 이루어진 간이 집들이 송파와 삼전나루 양쪽
길가에 열을 이루었고, 움으로 지은 창고와 굉장한 객점의 지붕드리 다투어 솟아나 있었다.
묘옥은 백사장에 내려서자, 아치부터 웃통을 벗어젖히고 짐을 실어 내리고 실어 올리는 수
많은 장한들 때문에 길을 잡지 못할 정도였고, 도선장에는 배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혼잡
을 이루고 있었다. 날마다 열리느니 장이요, 특히 닷새 간격마다 어물이며 목재며 곡물이며
소금이며 각종 공산품들이 품목별로 크게 거래되곤 하는 것이었다.
마침 건어의 교역날이라 도선장에서는 온통 마른생선의 비린내가 가득 차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저자 가운데로 걸어 올라갓다. 묘옥은 딱히 어느 곳에 내리겠다 마음먹은 바 없었으
나, 배가 그곳에 닿았으니 구태여 한양으로 향할 마음이 아니었고, 이렇게 사람이 들끓는 가
운데 섰으니 어쩐지 마음이 놓이기도 하였다. 우선 요기를 하면서 천천히 거취를 생각해보
리라 작정하고 묘옥은 탕반집이며 국숫집이나 죽을 파는 가게를 훑어보고 있었다. 누군가
그의 치맛자락을 흔들면서 흥얼거렸다.
"아주머니, 죽 한그릇만 사주오."
묘옥이 내려다보니 나이는 열두어살이나 됐을가 싶은 수세미 머리의 낯바닥이 새까만 아
이놈이었다. 의복은 사방에 꿰맨 자리요, 땋은 머리는 헝클어진 채 쇠똥이 켜로 앉았을 듯하
였고, 맨발이었다. 눈이 반짝이는 것이 몹시 총명해 보였다.
"네가 누구냐?"
아이가 힝 웃으면서 다시 치맛자락을 흔들었따.
"죽 사주면 되었지 누군지 알아 무엇하우."
"나두 시방 요기를 하려구 찾는 중이란다."
"그런 줄 알구 이렇게 개 꽁지에 검불 붙듯 하는 게 아니우. 날 따라오시우. 요기두 하고
잠두 한숨 잘 수 있는 곳이 있으니까."
묘옥은 그럴 듯이 여겨 타박거리며 앞서서 걷는 아이의 뒤를 따라갔다. 지붕은 초가요
벽은 기둥에 거적을 말아올린 간이 주막이 나왔고, 큰 쇠솥에서는 뼈다귀가 끓는지 냄새가
구수한데 이미 해장을 하는 사내들과 국밥을 먹는 행객들이 멍석 위에 촘촘히 앉아 있었다.
아이는 묘옥을 여자들만 내외하여 앉는 칸막이 뒤로 데려다 주었는데, 훨씬 한적한 곳이
어싸. 묘옥은 선선히 어죽 두 사발은 시켰다.
건어와 민물조개를 넣고 끓인 죽이 뚝배기에 하나 가득 담겨져 나왔고, 묘옥은 우선 아이
에게 그릇을 내밀고 나서 자신도 숟가락을 들었다. 아이는 죽을 떠먹기 전에 휘장 밖으로
소리쳤다.
"아주머니 내가 손님 모셔왔으니 그 맡긴 그릇에 죽 좀 담아놔주오!" "이 녀석아, 아직도
다섯 분은 더 모셔와야지. 아제 겨우 마수거리에 벌써 성화냐?" "내 얼른 집에 다녀와서
부지런히 모시리라. 열 분만 모시면 저녁에두 주어야 하우." "어쨌든 빨리 나가 모셔만 와
라."
묘옥은 아이와 아낙네의 오가는 말을 듣고 대강 짐작할 수가 있었다. 유객으로 가가에서
걸식을 하는 모양이었다. 묘옥은 허겁지겁 죽을 퍼먹고 있는 아이에게 조심조심 물어보았다.
"누굴 갖다 주려구 그러냐?"
"우리 할머니요."
"할머니하구 함께 사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죽그릇에 고개를 처박았다.
"내가 돈을 줄 테니 한그릇 더 사서 갖다 드리려무나." 이윽고 아이가 눈을 빛내면서
묘옥을 말갛게 쳐다보았다.
"아주머니 돈이 많소?"
"그래... 어서 더 먹어라."
곁에서 죽을 먹고 있던 아낙네들도 가장 신기하다는 듯 두 사람을 연신 곁눈질하는 것이
었다.
"여기 어디 조용한 객줏집이 없니?"
"장거리를 지나면 객주뿐만 아니라 마방이 딸린 기와집 여각이 즐비하지요. 아주머니는
장사하러 왔나요?"
"아니, 한양으루 가는 길이다."
"그럼 객주는 어찌 찾소?"
"쉬어 갈까 해서 그런다."
"한양이 예서 엎드려지면 코 닿을 덴데, 어서 배나 타요." "어째서..."
아이는 인중으로 흘러내린 코를 기묘하게 훌쩍 들이켜고서 말하였다.
"장거리 새새 틈틈이 깔린 게 알건달 소악패들인데 아주머니처럼 예쁜 각시 혼자 노중에
오가다간 봉변을 당하리다."
딴은 그럴 듯한 얘기였으나 이미 노중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묘옥인지라 웃음으로 넘기
면서 아이의 어른스러운 염려를 기특하게 생각하였다. 노자에서 몇푼을 내어 죽값을 치르고
묘옥은 아이가 손가락질 하는 대로 장거리 쪽으로 향하였다.
"잘 가거라."
"예, 가시는 길에 무고 평안하십시오."
묘옥은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네 이름이 무어니?"
"장쇠라고 부르오, 요기 잘했습니다."
묘옥은 죽그릇을 받쳐들고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는 장쇠의 뒤꼭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
다. 장거리 양편에는 각종 어물이며 과일이며 채소, 지물, 방물, 쌀, 잡곡, 해초, 가죽, 포목,
담배, 사기 소금 등등이 각처에 쌓여 있는 객점과 가가들이 즐비하였다. 상인들이 서로 외치
고 부르며 거래흐는 소리로 장바닥은 떠나갈 듯했고, 가가와 객점 앞으로는 지게를 받쳐놓
거나 보따리를 풀어놓은 좌고들이 또한 촘촘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가운데의 비좁은 길을 지나치려니 남녀노소가 서로 소매를 얽을 지경이었다. 또한 그뿐
아니라 각 점포에서 목청 좋고 잘생긴 자들을 길가에 내세워 제마다 손님을 불러대니 장바
닥은 마치 설렁탕을 끓이는 가마솥처럼 들끓어대고 있었다.
떡전을 지나 쇠전마당으로 나오니 거기서부터가 장돌뱅이나 저자 소악패들의 올음터였다.
네댓 명이 앉아서 마흔 장 투전의 돌래태기를 하는 패도 있었고, 거의 십여 명이 둥굴게 몰
려 서서 엽전 치기를 하는 축도 있었다. 또 들병좌판 앞에서는 서넛이 웃통을 벗고 고래 고
함을 지르면서 싸움질을 벌였다. 한 사내가 밑에 깔렸는데, 이에 올라탄 자가 주먹으로 연방
내질러 코피가 억수로 쏟아져 나오는 참이었다. 묘옥은 그리 낯선 느낌이 아니었다. 그녀가
처음에 해서에서 색주가로 팔린 곳이 철광산이었고, 거기서 광부들의 싸움을 숱하게 보았던
것이다. 어쩐지 그러한 광경을 보니 새삼스럽게 사는 일이 서러운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돌
리는데, "이게 눈알딱지를 얻다 빼놓구 다녀?"
하는 컬컬한 사내의 목소리와 함께 묘옥의 어깨가 거세가 떠밀렸다.
"에그머니나!"
묘옥이 넘어갈 듯하다가 몸을 나누었으나, 옆구리에 끼고 있던 보퉁이는 사람들의 발 아래 굴러 떨어졌다.
"조금 부딪쳤다구 이러는 행패가 어디 있어요?"
묘옥이도 저자 풍물에는 익숙한 처지라 졸연치 않게 악다구니를 쓰며 마주쳤던 사내에게
대느니, 그는 더욱 성깔을 돋우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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