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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3권 (19)

카지모도 2026. 5.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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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이게 다 돈이우."

"맙소사 어찌 찾아냈니?"

장쇠는 꼭지가 제 부하 징치하던 것을 낱낱이 일러주고, 반절 상납한 것이며를 얘기하였

다. 절편만큼 네모반듯한 은자가 도합 삼십 개였으니 삼십 냥이엇다. 은자 삼십 냥이라면 쌀

이 삼십 섬이엇다. 묘옥의 표모질로는 삼 년을 하루같이 일해야 받을 만한 돈이 아닌가.

게다가 금가락지와 호박가락지가 각각 하나씩이니 그도 또한 큰 돈인지라 옆에 앉은 노파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연신 에고 소리였다. 묘옥이 장쇠의 손을 맞잡으면서 말하였다.

"얘야, 이 돈으루 우리 송파 장거리에다 장사를 벌이자."

"송파는 터가 드세니 거여에다 작은 주막을 내세요. 거여 떡전거리에 가면 맞춤한 자리가

많을 거요."

"그래 그래, 할머니 모시구 나하구 함께 살자."

묘옥이는 눈물이 글썽해져서 중얼거렸다.

 

이경순은 사흘을 기한하고 하옥이 되었건만, 아무 혐의가 없다고 해놓고서도 어인 일인지

풀려나지를 못하였다. 옥에는 일체 잡인을 금하여 도장댁도 애가 타지만 떡쪼가리 하나 넣

을 수가 없었다. 여주 이방은 제 여식이 조생원네 아들에게서 당한 모욕 때문에 울분을 풀

길이 없더니 이제껏 동무 하여 지내오던 이경순의 재산을 탐하게 되엇던 것이다. 물론 목사

는 대수롭지 않았던 일로 경순이 옥에 갇힌 것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경순의 아

내는 날마다 전생이를 이방 집으로 보내어 관아의 동정을 알아보려 하였으나, 별무 소득이

었다. 그날도 전생이가 코를 쪽 빠져서 돌아왓길래 애가 단 도장댁은 반색을 하면서 달려나

갔다.

"그래 어찌되었느냐. 이방 어른은 만나 뵙고...?"

"참 모를 일입니다. 어른께서는 날마다 어딜 나다니는지 댁에는 통 붙어 계시질 않는구먼

요. 그저께 겨우 뵈었을 때는 오늘은 꼭 나가시게 될 거라구 하더니만." "목사께 선사품이

라두 올려야겠다. 필경 안성 포교가 물고 늘어지는게 틀림없는 모양이여."

"그게 아니랍디다."

하고 나서 전생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방 나으리의 말이, 한양 포도청에까지 장계가 올라갔는데 무슨 하달이 있을 게랍니다.

여주 관아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답디다. 오늘 못 나오시면 포도청에 가서 국문을 받을지두

모른대요. 주인 어른께서 당진 나가셨던 것은 사실 아십니까?" "쉿... 누가 듣겠다. 에그머

니나 포도청 추국청에서 경을 치면 살아두 병신이 된다든데, 이 일을 어쩌느냐?"

"여기서 묵인을 할려구 그래두, 안성서 발교했던 마부놈과 대질을 하게 되면 끝장이랍니

다. 더구나 당진서 동작진 사당 패거리가 잡혔다는데 이방의 말이 우리 주인의 출신을 다

안다누먼요."

그들이 걱정하고 있을 적에, 갑자기 때문 부서지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장교와

나졸 서넛이 자못 서슬이 시퍼래져서 마당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집뒤짐을 하라는 지시가 있으니, 아녀자는 잠깐 피하라. 얘들아, 방안과 광을 샅샅이 뒤

져라!"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나으리?"

전 같으면 이경순네 집에 와서 술 한 잔을 먹고 가도 굽신대던 장교가 으르딱딱이는 것이

고까웠으나, 워낙 다급한 사정이라 도장댁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낸들 아느냐. 찾을 물건이 있어 그런다."

전생이가 외팔을 흔들면서 대들었다.

"여기가 감히 어느 댁이라구 함부로 행패요. 이방 어른 가만 계실줄 알우?" 장교는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전생이의 가슴을 떠밀어내고는 코방귀를 뀌는 것이었다.

"이방? 잠자쿠 있어. 공연히 다치지 말구. 관가에서 다 공론이 돌아서 집행하는데 무슨 애

들 장난인 줄 아느냐."

신을 신은 채로 이방 저방을 들락거리다가 나졸이 벙거지 쓴 대가리를 내밀며 외쳤다.

"장롱만 남았느데 잘 열리지 않습니다."

장교가 경순의 아내에게 물었다.

"농이 잠겼는가?"

그제서야 도장댁은 그 안에 무엇을 숨겨놓았는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고 가슴이 털커덕

내려앉았다.

"아니 그건 왜 열어보려구 그러세요. 남의 안방의 세간을 함부루 들추라는 법두 있나요."

"얘들아, 부숴라."

장교가 말하니 육모방망이로 농짝을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경순의 처는 죽는소리를 내지르면서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장롱을 가로막고 엎어졌고, 전

생이는 다시 장교에게 달려들다가 이번에는 호되게 발길에 걷어채어 나뒹굴었다.

"끌어내고, 어서 부숴버려라."

자개 장롱이 무참하게 부서져 나가고 갖은 피륙과 옷이 넝마처럼 마루에 던져지는데 도장

댁은 체념을 하고서 마루에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여기 있다!"

나졸이 장롱 밑바닥 깊속한 곳에서 무명에 싸놓았던 화승총을 꺼내어 번적 치켜들었다.

전생이가 마당에서 악다구니를 썼다.

"우리 주인이 총포를 잘 쓰신다는 건 인근 사방에 알려진 일인데, 그것이 새삼 무슨 죄가

된다구 내정 돌입이오?"

"잔말 마라. 우리는 시키는 대루 이걸 찾아다가 형방에 내밀면 그만이여. 우릴 원망 말구

네 주인의 죄나 원망하여라."

한참 북새통을 들쑤셔놓고 나서 관원들은 모두 몰려나갔다. 한참이나 넋고 잃고 앉아 있

던 경순의 아내는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일어났다.

"안되겠다. 내가 직접 이방을 만나서 수습할 방도를 물어야지." "저하구 같이 가십시다."

전생이와 도장댁은 관원들이 달려간 창골 큰길을 허겁지겁 올라갔고, 길가 주막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던 이방은 그들이 지나치자마자 곧 달려나가서 외쳐 불렀다.

"전생아, 전생아!"

도장댁과 전생이는 공교롭게 만나게 된 이방을 보자 곧 달려와 소매를 부여잡으며 창피한

줄도 모르고 방성통곡을 하였다.

"아이고오 이방 어른, 이런 원통할 데가 어디 있습니까. 무슨 역적 죄를 지은 것두 아닌

데, 관원이 안방을 돌입하여 세간을 모두 부시구... 관가에 가서 사또게 직소하려는 길이어

요."

"허 이건 큰탈이 났군. 내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가는 길이올시다. 문득 바라보니 아주머

니께서 황망히 지나길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긴 하지만 이거 급박하게 되었군요."

"저희는 가장을 옥에 두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 일각이 여삼추로 기다렸건만 나으리두

무정하십니다그려."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관가의 일이니 전들 애가 타지만 어찌하겠습니까.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댁으로 돌아가십시다. 가서 차근차근하게 수습할 방도를 의논해보셔야지요. 사또께

직소한들 공연히 노염이나 더하여 이서방에게 해를 주게 되면 그 더욱 낭패스런 일이올시다."

이방은 침착하게 아낙네를 달래어 그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총포를 찾아내었으니, 이제는 안성의 마부와 대질하는 일만이 남았습니다그려. 그러면 틀

림없이 명일에는 안성으로 압송되었다가 당진서 잡힌 도적들과 더불어 한양 포청으로 추국

을 받으러 올라갈 것입니다."

"어찌 살려낼 방도가 없겠어요?"

도장댁은 사색이 다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매달렸다. 이방은 오만상을 찌푸리고 담배 한

죽을 다 태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더니, "꼭 한가지 방법이 있긴 있소이다. 헌데 그것

은 이서방에게는 몹시 어려운 일일 게요." 이방의 말에 도장댁은 더욱 애가 달아서 말하였

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어서 말씀하시지요." 이방은 잠시

망설이는 체했다가 더듬더듬 얘기를 꺼냈다.

"이서방이 도적들과 같이 한양 포정에 올라간다면 다시는 못 볼 사람이 되구 맙니다. 대

적질을 하였으며 인명을 살상하였으니 자신은 죽거니와 아주머니두 관노비가 될 거외다. 그

러니 차라리 여주를 떠나 세상에서 숨어 사는밖에 도리가 없겠지요. 돈이나 패물 등속을 갖

추어서 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가셔서 사셔야 겠지요. 그러자면 여기서 이루어놓은 가

세는 모두 물거품이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혐의가 불확실하여 이서방이 추국중에 완강히

버티다가 절명한다면 가세는 보존이 되겠지요마는 이미 동참한 자들이 잡혔으니 그것두 어

려운 일입니다."

도장댁이 이방의 얘기를 듣고 보니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어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하나 우선은 사람이 살고 볼 일인지라, "우선 사람이 살구 봐야지 까짓 재물이 무슨 소용

이겠어요. 유랑걸식하는 신세가 되더라도 살아나야지요."

하고 답하였다.

"아주머니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내가 오늘밤에 이서방을 내놓을 터이니 준비를 해두셨다

가, 밤을 도와 달아나시우. 허나 여주 지경을 벗어난 뒤에 일어나는 일은 나두 어쩔 수가 없

겠소이다."

"알겠습니다. 그이를 갯가루 데려다만 주셔요."

"오늘밤 자정 무렵에 내가 이서방을 데리고 양화 어름으루 나가겠소이다. 참으로 사람의

운수는 헤아릴 길이 없는 모양이지요."

"글세 말이에요. 수년래 온 집안에 봄빛이 가득한 듯하더니 단 것이 진하면 쓴 것이 온단

말이 맞은 듯싶어요. 이게 모두 이년의 죄가 맣은 탓이지, 제 주인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

방의 마음속에는 자별히 지내던 동무를 곤경으로 몰아넣는다는 가책이 있었으나, 세상살이

란 으레 남의 불리한 허점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세울 기회를 잃어버리는 법이라고

스스로 다짐을 하였다. 운이 나쁜 놈은 제 운을 따라서 몰락하는 것이고, 이제부터는 그자

의 운이 자기에게로 돌아올 것이 아닌가. 그만한 재산을 가지고 편안히 여생을 즈렸으면

아무 탈이 없었으련만 공연히 사당년에게 눈이 뒤집혀서 못된 자들과 어울린 것은 그만큼

제 운수의 관리를 소홀히 했던탓일 것이었다. 이방은 가장 애석한 듯히 혀를 차면서 한탄하

였다.

"계집은 만사 재앙의 근본이라더니 이서방의 패가는 오직 그 사당계집 때문입니다. 다른

고장에 가시더라도 외입 단속 시키시고 가세를 다시 회복할 궁리나 하도록 하십시오." "그

게 다 이년의 자식 못 낳은 죄 때문입니다.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그러면 저는 다시 길

청에 나가보아야 겠습니다. 내가 일단 퇴청하였다가 이서방의 탈옥을 도모할 것이니, 착오

없이 준비하시구 양화로 나가 기다리시오." "이방 어른의 이런 은혜는 정말 잊지 않겠습니다."

심란한 중에도 가장이 살아난 길이 생긴 것만 감지덕지 하는 도장댁이었다. 이방이 나간

뒤에 경순의 아내는 한참이나 시름없이 앉았다가, "아씨, 그리구 앉았으면 어쩌시렵니까.

준비를 하셔얍지요." 라는 전생이의 말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글쎄다, 갑자기 어디루 간단 말이냐. 이 모든 것을 버리구 떠나려니 도무지 넓고 넓은 세

상 천지가 막막하기만 하구나."

"저두 월송골 분원에 나가서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챙겨가지고 오겠습니다." 너는 그

냥 여기 남았거라. 우리가 떠난 뒤에 너라두 분원을 떠맡아야지 생판 관계두 없는 자가 차

지해버릴 게다. 또 우리를 따라다니며 고생할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아니우, 내가 오늘

날 이렇게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은 전혀 도장 나으리 덕분으루 구사일생을 했던 것이데,

여기 남아서 뭘 한단 말입니까. 그리구 내 소견으로는 이방이란 자의 눈치가 이미 나으리

와 의리로서가 아니라 남의 재물에 마음이 있는 듯하니 은근히 열이 납니다."

"사람이란 다 그런 법이니라. 그래두 다른 사람이 차지하느니보다야 낫지 않겠느냐. 자연

히 그리될 일이다. 그럼 월송골에 갔다가 오너라. 나두 그동안에 대충 짐을 꾸리고, 길양식

할 떡두 해놓아야겠다. 아무두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 도장댁은 포졸들이 들쑤셔놓

은 방안을 치우지 않은 채, 우선 벽장 속에서 물품장부나 토지문서 따위는 제쳐두고 은자

와 돈냥과 패물만을 꾸려서 부담농 두 짝에다 넣었다. 그리고 비단과 무명도 따로 보퉁이

에 차곡차곡 꾸려놓았다. 부담이 두 짝이요, 큰 보퉁이가 하나니 짐이 제법 커졌으므로, 아

주 고급의 비단만을 다시 추려내어 작은 보따리로 쌌다. 그리고는 나머지는 모두 둘로 갈라

서 마루에다 내놓고 영문을 몰라 부엌에서 쥐죽은 듯이 섰던 하녀와 점원을 불러 그들에게

내주면서 일렀다.

"가장에 위급한 일이 생겨서 우리는 여기를 떠난다. 너희들도 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이

것은 내가 그저 서로 마음이나 아프지 않게 헤어지자는 뜻으로 주는 것이나 받아두고, 우리

가 떠난 뒤에 세간까지도 너희 마음대로 나누어 가지고 여길 떠나거라. 그리고 우리가 떠난

뒤에는 너희들도 관의 독촉에 귀찮아질 것이니 아예 오늘밤이 새기 전에 가는 게 가장 이로

울 것이니라."

점원과 하녀는 대강 집안 분위기를 짐작하고 있던 터라 소매를 적시며 울 뿐이었다. 경순

의 아내는 차츰 마음이 가라앉더니, 떡쌀을 안칠 때부터는 더욱 침착해져서 앞으로의 생계

에 대하여 궁리도 해보게 되었다. 창황한 중에 어느덧 저녁이 되어서야 전생이와 도장댁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였다. 양화에서 주인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저 유랑이나 나서는 길

이 아니요, 관의 추적을 피하여 달아나는 길이니 방향이 확실하여야겠기 때문이었다.

"내 친정 작은 오리비께서 양주에 사시는데, 도장 어른을 좋아하시고 또한 올케 성님도

도량이 있으신 분이니 우리를 그리 박대하지는 않을 듯하다. 양주의 저자가 또한 번성하니,

상리를 꾀할 수도 있을 게야."

"관의 기찰이 닿지 않겠습니까?"

"내 친정은 고양인데, 설마 양주로 분가해 나간 작은 오라비댁이야 저희들이 알겠느냐. 그

리루 가기루 정하자."

이방은 사또 모르게 형방과 미리 짜고서 경순을 달아나게 한 뒤에 그 재산을 나누기로 하

였던 것이다. 즉, 그의 전답은 형방이 차지하고 분원과 가게는 이방이 맡기로 하였었다. 나

중에 소문은 경순이 이방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한양 여각으로 나간 듯이 퍼뜨릴 작정이

엇다. 애초에 혐의 없이 경순은 처리하였고, 실상 관아에서도 그들 이외에는 이경순이 하옥

된 사실을 기억하는 자는 형방과 옥사장뿐이었다. 옥사장이라야 장교이니, 그들의 지시를 따

를 것이 뻔했다. 그러나 형방은 이경순을 그저 달아나도록 하고 말자는 이방의 의견에는 반

대하였다. 그들은 저녁 늦게까지 주막 뒷방에 앉아서 경순의 건을 숙고하였다.

"후환이 있으면 안된단 말일세. 아예 없애버리는 게 나을 게야." 형방은 역시 이경순을

죽여버릴 것을 고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거기까지 이르지는 않은 이방으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일인지라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이도장이란 자가 제 꽁무니가 뜨거워서 달아나는 판인데 설마 뒤에가서 누구를 원망하겠

나. 죄가 없으면 모르되 제 죄가 명명백백히 드러난 마당에 구명하여 달아나는 것으로도 감

지덕지할 걸세. 죽일 필요까지야 있을라구."

"허허, 모르는 소리 작작 하시게. 자네는 아전의 우두머리로서 그만한 궁량도 없단 말인

가. 이보게나, 이서방이 달아났다가 관아에서 저를 찾는 기색이 없으면, 그제서야 우리 일을

깨닫고 되돌아올지두 몰르잖나. 그러면 사또에게 이 일이 알려질지도 모르고, 우리는 끝장나

는 걸세. 또한 무사하다 하더라도 모처럼 차지했던 이서방의 가산은 모두 사또의 차지가 될

테니, 죽 쑤어 개 주는 격이 아닌가. 예전부터 큰 일을 도모하려면 철저히 마무리를 해야지,

어물쩡했다간 낭패를 보구 마네. 자네도 아마도 예전의 정리 때문에 망설이는 모양인데 내

야 무슨 상관이 있나. 자네는 그저 모른 척하면 되네. 내가 아까 낮에 보냈던 아이들을 시켜

서 양화의 강변에 매복시켰다가 단칼에 베어버릴 테여. 이서방의 일행을 모두 베어 죽인 다

음 다리에 돌을 매어 강물에 가라앉히면 여주목사가 알겠는가, 다른 아전들이 알겠는가. 아

마 물귀신도 잠자느라구 모를 게야. 자넨 그저 하직 인사를 각별히 하고 따뜻이 한 연후에

돌아서서 여주로 오면 되는 게야. 뒤는 내가 맡지."

"글세... 인명은 재천이라니 이서방의 목숨이 경각이로구먼." 이방은 딱히 뭐라고 의사 표

시를 하려 들지는 않았으나 대강 저와 같은 말로 형방에게 찬동하는 뜻을 비쳤다. 나는 모

르고 하늘만 아는 일이니 책임이 없다는 말이 바로 그 얘기였다.

"그러면 내가 아이들을 먼저 보내두겠네. 자네 옥으루 가려나?" "음... 모두 일러놓았겠지."

"염려 말게. 옥사장은 자네가 가면 곧 이서방을 내놓을 테니까." "이서방의 여편네가 준

비하여 양화루 나가겠지?"

"만일을 염려해서 미리 아이들을 집 앞에 세워두었다가 따르도록 하게." "그게 좋겠군.

지니구 가는 돈냥은 아이들게 모두 나눠주도록 하면 좋아들 할 게야." 이방은 형방과 주막

에서 헤어져 여주 옥으로 향하였다. 그는 날이 새기만 하면 여주 고을에서도 알려진 사분원

의 재산을 고스란히 차지하게 되엇으니, 이경순이 죽을 일보다는 자신의 흥분으로 온통 가

슴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이방은 동헌에서 멀직이 떨어져 있기는 하나 남의 눈에 띄어 좋은 일이 아닌지라 우선 담

장에 붙어서서 동정을 살폈다. 옥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소슬한 바람이 일어 빈 땅에

머지만 일어난 따름이었다. 우선 옥사장을 찾아야겠기에 두리번거렸으나 주위에는 등롱 한

점 보이질 않았다.

"옳거니... 형방이 미리 다 조처하여 어디 주막으로 술이나 마시러 나갔겠지, 헌데 옥문은

무슨 수로 깨뜨린다."

중얼거리며 옥으로 다가들자 죽창틀 사이로 옥 안이 보이는데 칼도 쓰지 않고 질펀히 누

워서 자는 이경순의 몸이 짐작되었다. 이방이 목소리를 낮추어서 경순을 깨웠다.

"여보게 이도장, 어서 일어나게!"

처음에는 뭐라고 대답하는 듯하더니 문득 벌떡 일어난 경순은 잠결에 큰 소리로 물었다.

"거 누구야? 옥사장인가."

"쉬이... 날세."

이경순은 목소리를 알아듣고 창틀 앞에 다가섰다.

"아니 이 밤중에 웬일이며, 왜 그간 꼼짝두 하지 않았나?" "얘기는 나중에 하기루 하고

지금 그럴 경황이 없네. 내가 자네를 빼가려구 며칠 전부터 기회를 엿보던 참일세."

"나를 빼가다니... 혐의진 일이 없는데, 그 무슨 말인가?" "안성 포교가 마부의 일로 물

고 늘어졌다네. 아무튼지..." 하면서 이방은 혹시나 하여 밖으로 빗장을 지른 자물쇠를 더듬

어보니, 아니나다를까 열려진 채로 헛되이 걸려져 있었다. 그는 자물쇠를 돌려 빼고 옥문을

열었다.

"살구 싶으면 어서 나를 따라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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