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걸음으로 물러나 벽을 등진 이방에게로 천천히 달려들면서 이경순은 재우쳐 물었다.
"우리 죽은 마누라한테 물어봐라."
"내... 내가 시킨 게 아닐세. 나는 반대했어."
이방은 두 손을 쳐들면서 애걸하듯이 중얼거렸다.
"자객들게 모두 들었다. 재산이 탐이 나거든 고이 말루 달랠 것이지, 쫓기는 놈의 뒤통수
를 치느냐? 더구나 네가 내 덕을 입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 터에 이렇게 악으루 갚는다니...
내 너를 죽이러 아내의 시체를 노상에 버려두고 쫓아왔다."
"글세 그런 게 아닐세... 내 자네의 재산을 탐낸 것은 사실이나 죽이라구 사주한 것은 내가
아닐세."
"분원 재산을 모두 내게 물려주지. 그 대신에 네 목숨을 거두어주고 가겠다. 마누라와 여
식은 편안히 살 테니까, 내 원망은 말아."
경순이 칼을 이방의 가슴에 힘껏 꽂으니 이방은 처절하게 비명을 내지르며 칼을 받았다.
칼을 꽂아버린 채 뛰어나오는 경순에게로 깨어난 이방의 식구들이 마주 달려오다가 가슴에
채고는 으악 소리를 내지르면서 흩어졌다. 이경순은 대문을 활짝 열고 뛰쳐 달아났다. 경순
이 산성 아랫길을 되돌아 뛰는데 먼 데서 은은하게 파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무한 일이로다!"
경순은 별이 총총한 하늘을 우러르며 홀로 탄식하였다. 이제 제 손으로 동무를 죽이고 나
온 경순의 마음은 웬일인지 하나도 개운치가 않았다. 오히려 묵지근한 분노가 더욱 깊숙이
가슴에 얹히는 듯하였다. 이제는 사람을 한두 명 죽인 것이 아니니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
었고,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주서 이름 높던 분원 재산도, 부덕이 바
다 같던 현숙한 조강지처도, 애틋한 사랑을 일깨워준 묘옥이도, 다정하던 동무도, 고향도 사
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는 되돌아가는 길에 양화 노상에서 포졸들의 시신 곁에 남았던 부담
농 한 짝과 피륙 보퉁이를 수습하여 전생이가 지키고 섰는 아내의 시체 곁으로 돌아갔다.
"나으리...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괜찮다. 우물거릴 시각이 없으니 어서 서둘러야겠다." 전생이가 흐느끼면서 말하였다.
"꼭 생전 그대로이십니다. 방금이라두 일어나셔서 저희를 부를 것만 같은 걸입쇼."
"매장을 해두어야지."
"예, 제가 저쪽 언덕 위에 대강 구덩이를 팠습니다."
"수고했다."
"아무래도 아래쪽은 장마가 들어 범람하면 물이 들겠기에..." 이경순은 보퉁이를 끄르고
아내의 여벌 옷과 무명을 꺼내었다. 피투성이 옷을 벗기고 새옷으로 염습을 해주는데 문득
아내에 대한 죄스러움이 북받쳐서 경순은 잠깐씩 소리를 죽여 오열을 참아야만 하였다.
"제가 거들까요?"
"두어라. 내가 보낼란다."
경순은 아내의 시신을 안고서 둔덕으로 올라갔다. 묘혈에 아내를 누이고는 차마 흙을 덮
을 수가 없어서 경순은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짓씹다가 외면한 채 두 손으로 흙을
덮기 시작하엿다. 봉분이고 무었이고 세울 틈이 없어 그대로 평지와 엇비슷하게 묻고는 구
들돌처럼 널쩍한 바위 하나를 전생이와 맞들어다 눌러두었다. 이것을 표시로 하여 뒷날에
다시 이장하려는 생각에서였다. 마을의 닭들이 연달아 새벽을 알라며 울고 있었다. 경순은
다시 모퉁이에서 새옷을 꺼내어 갈아입고는 나룻가로 내려갔다.
"사공을 깨워낼 필요 없다. 그냥 배를 내자꾸나."
"어떻게요... 경강을 타구 오르시게요?"
경순은 고개를 내저었다.
"경강을 오르다가는 파발에 뒤처져서 곧 잡히구 만다. 이대루 강을 건너서 지평로를 따라
서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를 타야 한다. 낮에는 숨고 밤길을 걸어야지."
"어디루 가시게요?"
"글쎄다... 어디로든 먼 데루 뛰어야 할 텐데."
"아씨께서는 양주로 가시겠다구 하던 걸입쇼."
"음, 작은처남이 게서 살지. 허나 살인을 한 내게 관의 기찰이 미치지 않을 턱이 있겠느냐."
"허지만 어찌 아무 연고도 없는 고장으루 가시겠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너는 나하구 퇴계원까지만 하께 가구, 양주로 가거라. 나는 어디 암자에나 의탁해서 네 기별을 기다리겠다."
3
광주 남한산성 건너편으로 북을 향하여 곧게 뻗은 산줄기가 바로 척마산 줄기로서 길운산
과 묘적산이 갈라져 이어졌는데, 묘적산 아랫녘의 깊은 골짜기에 노적사가 있었다. 노적사는
원래 퇴계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나, 절이 항폐해지자 길운산 쪽으로 옮겨가고 다만 절
이름과 자취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정원태라는 기이한 사람이 찾아들어와 터를 닦고 암
벽 아래 석굴 한 칸을 지은 다음에 불상을 모셨다.
그는 삭발하지 않은 장발승이었는데, 목에 염주 걸고 가사 장삼을 걸쳤다. 그리고는 염불
과 더불어 궁궁을을이란 말로 시작 되는 주문을 외는 것이엇다. 그가 늘 기거하는 석굴암에
는 언제나 손님의 내왕이 그치질 않았는데, 가령 명당 쓸 자리를 묻는다거나 점을 치고도
하였다.
일종이 술가와 지사를 자처하는 정원태는 원래 양주 아전의 자손이었다. 어릴 적부터 학
문에 힘을 쓰더니 중인의 자식으로서는 아무리 노력해보았자 과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단 출가하여 중이 되었었다.
진관사에 있을 적에 황회는 정원태와 가까이 지내어 스님이라 부르지 않고 성님이라면서
가까이 지냈던 것이었다. 정원태가 절에서 떨어져 나와 노적사를 재건하였던 것은 새로운
뜻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정원태는 사당질을 하다가 신이 내려서 노량나루에서 무당을 하고
있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었다. 그들 부부는 곧 사당패나 괴뢰배, 걸립패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고, 가끔씩 몇패가 오가는 듯하더니 아예 노적사를 중심으로 거점이 이루어져 늘 십
여 대가 들락나락하였다.
세상에서 제외된 자들이었으니 그들의 행각을 아무도 짐작할 수가 없었고, 대개 죄를 저
지르거나 관의 체포 대상이 되어 있는 자들은 노적사를 거쳐서 천마산 은거지로 흡수되고는
하였다. 천마산 북녘 기슭에는 깊은 송림이 십여 리에 걸쳐서 빽빽하였는데, 그 가운데 솔부
리골이란 숨은 마을이 있었다. 솔부리골에 모인 자들은 거의 화적이나 다름없는 자들이었으
나, 그곳을 산채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큰산의 떼도적들과는 조금 다른 데가 있었다.
즉, 그들은 천마산을 소굴로 삼아서 촌락이나 고을에 나가 강도질을 한다거나, 또는 요로와
고개를 지켜 서서 행인의 봇짐을 털어내지는 않았던 것이다.
한양이 멀지 않은 뿐만 아니라, 천마산이 애초에 웅거할 만한 깊은 산도 못 되었고, 무엇
보다도 그런 우직스런 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일부는 한양 외곽의 이름난 저자 무
뢰배로 풀려나가 교묘하게 상리를 도모하거나. 또는 대를 이루어 말을 끌고 행상을 다니
다가 여차직하면 그때의 형편에 따라서 화적떼로 돌변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관이 아무 혐
의 없이 솔부리골을 살피기도 어려웠고, 다만 부근 마을에서는 부랑잡배들이 모여서 사는
곳쯤으로 알려져 잇었다.
이런 곳은 전국의 도처에 있었으니 한양 주변을 근거지로 하는 자들은 주로 노적사와 천
마산 기슭에 모여 있었는데, 한 대가 대략 이삼십여 명이요, 무리를 이루면 이십여 대나 되
었으니 그 수가 적지 않았다. 광주 근처의 무뢰배라고 할 적에는, 노적사와 천마산 솔부리골
을 가리킨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순안 법흥사 같은 곳에는 그 패거리가 도합
오십여 대나 모였고,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삼남에는 만여 명이 들끓어 흘러다니고 있었다.
또한 남해 화방사에는 삼십여 대가 들끓었고, 창평에는 수십대, 함흥 백운사에는 그들의
자체 병력까지 있었으니, 실로 명화적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 결속된 하나의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양인 이상의 신분층에 대하여 몹시 폐쇄적이었던 반면에 저희끼리의 결속력
은 대단하여 아무도 속을 헤쳐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해마다 재해와 학정으로 밀려난 농민들
이 집과 고향을 버리고 이들 부류에 흡수되어 흘러다니니 그 수는 점점 많아졌던 터이었다.
노적사 근거지의 부랑 무리들은 모두 경기도와 도계 어름의 강원, 충청 양도 바깥고을을
활동 무대로 삼고 있었다. 한양 성내에서 상인들의 돈줄과 별감 따위들의 비호 아래 설치는
무뢰배들은 대개 큰 댁 하인이나 양인 잡배들이었고, 삼강의 무뢰배들은 깍정이들을 거느
린 경강 장사치들이었으나, 양주의 누원점, 포천의 송우점, 광주의 삼전나루와 송파와 거여
객점의 무뢰배들은 그 정체와 출신을 알 수 없는 부랑 무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른 상
인들이 그들을 겁내는 것은 그 주거를 분명히 알 수가 없었고 보복의 방법도 감쪽같았기 때
문이었다. 그들은 말에 물건을 싣고 한양 외곽의 난장판을 떠돌면서 팔기도 하였고 광대인
듯하면 장사치요, 장사치인 듯 여기면 난전꾼이요, 그런가 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되어서 밤에 부잣집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고달근이와 황회가 당진에서 명화적당을 지은 것은 그때뿐이고, 그들은 노적사로 돌아와
서는 곧 장사를 벌일 궁리를 하게 되었다. 그들이 도피처로서 노적사를 택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노릇이었다. 고달근이와 황회는 제 식구들과 더불어 큰쇠네 동작진 패거리를 관의 미
끼로 하여 무사하게 당진을 빠져나온 다음에, 버젓이 강경까지 가서 다른 사당패와 합세하
였었다. 질탕하게 연희를 팔고 나서 조심스럽게 육로를 거쳐 광주로 스며들었다가 노적사를
찾았던 것이었다. 거기서 고달근이와 황회는 제 식구들을 다른 대에 붙여주고 박거사와 시
동이만을 거느리고 천마산 솔부리골로 들어갈 셈이었었다. 조심하노라고 오랫동안 장물을
처분하지 못하더니, 정원태의 알선으로 송파 깍정이패 꼭지인 까마귀에게 연줄이 닿았던 것
이었다. 그들은 까마귀네 움막에서 사흘 동안 기다리며 장물을 처분하여 말 한 필에다 환전
한 돈꿰미를 싣고 노적사로 올라갔다.
평구말을 지나 삼십여 리 등성이를 타고 가면서 넓은 계곡이 떡 벌어져 있었고 가파른 절
벽 아래 노적사의 암자가 있었으며, 그 아래편 송림을 베어 넘긴 널찍한 공터에 간이로 지
은 낮은 초막들이 여러 채 있었다. 방금 어디선가 새로운 패가 돌아왔는지, 풀어놓은 짐들이
사방에 널려져 있엇고 계집들의 울긋불긋한 옷자락들이 어지러웠으며 노천에 걸어놓은 쇠솥
에다 대식구의 밥을 짓는 연기가 골짜기 가득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원래 노적사의 절터는
바로 그곳이었건만, 주추만이 남아있엇다. 정원태가 재건한 노적사는 비탈을 더 올라거서 쪼
개진 바위 틈에 석굴을 들여놓았는데, 거기가 법당인 셈이었다. 그리고 이제 터를 잡아 공사
를 시작한 대웅전의 조촐한 얼개가 짓다 만 채로 옆 공터에 서 있었다. 달근이와 황회는 말
을 아래 매어두고 돈꿰미를 싼 봇짐들을 힘들여 짊어지고서 석굴로 올라갔다. 법당 앞에는
짚신짝들이 가득히 널려져 있었다.
황회가 앞장서서 큰기침을 하더니, "성님 기시우?"
하였다. 대답 대신에 방문이 빼꼼히 열리며 정원태의 아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그 여자를 원주보살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서니 우선 어둠에 눈이 익
질 않아서 그 안에 누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고 뾰족한 상투끝만 가득히 보일 뿐이었다.
"헛...황가에 달근이까지 왔구먼."
컬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 누구여?"
달근이가 뒷전에서 고개를 뽑는데 정원태가 상석에 앉았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장발에 가사 장삼을 입고 묵주를 손에 쥐고 앉아 있었다.
"누구긴 누군가, 다 알 만한 식구들이지..."
황회가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이런 제기럴! 복만이 아녀?"
"왜 아니래. 오래 사니까 자네 얼굴 볼 날두 있구만그랴." 동작나루의 가장 큰 사당패 모
가비로 그들 사이에 입담 좋고 수완있고 힘깨나 쓰는 것으로 알려진 복만이가 정원태와 나
란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천마산 솔부리골에 들어와 두령 노릇을 하고 있었고,
달근이와 황회는 노적사에 도착하자마자 그런 소문을 들었던 것이었다. 복만이도 옛날 동
무들이 일을 저지르고 왔다는 것을 듣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산을 내려왔던 것이다. 그들이
서로 반기는 것을 보자, 정원태는 뒷전에 앉아 있던 새 패거리의 모가비들에게 말하였다.
"자, 이젠 내려들 가서 저녁 공양이나 허게나. 손님들이 오셨으니..." 모가비들 중에 오래
묵은 자는 두 사람에게 제각기 아는 체를 하고는 물러나갔다. 굴 안에 고달근이와 황회, 복
만이만 남게되자, 복만이는 대뜸 물었다.
"당진서 큰 손 보았다며?"
"응...거 뭐 애초엔 할 맘두 없었는데, 그 집 망나니 같은 애녀석의 행패가 심해서 말이지.
버릇 좀 가르치려다 내친 김에 손을 봤지."
"장물은 처분했나?"
"까마귀가 다 알아서 해 줍디다. 패물은 그저 그렇구, 피륙들은 반값이나 쳤을 게유." 황
회가 정원태를 향하여 말해주니, 그는 새까맣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세가 그럴 게야. 까마귀는 제법 엇구수한 데가 있는 녀석일세. 하여간 돈이 되긴 되었
으니, 좋은 데만 쓰면 복으루 가는 게야."
"염려 마슈, 대웅전 짓는데 내 사종시주 두둑히 할 테유, 백 냥 내지요."
"아무려나 그건 마음대루 하게나."
정원태는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고달근이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던지 복만이를 바라보
며 말하였다.
"그 식구에 큰쇠라구 있었나?"
"큰쇠라...옳지, 있었지. 원래 중매구 다니던 녀석인데 사당 가로채기 싸움으루 우리 패를
떠난 지가 몇 년 되는구만. 그건 왜 물어?"
황회가 말하였다.
"실은 이번에 그 사람 식구들이 모두 당진서 결단이 났네."
"분명히 패를 떠났단 말이지? 헌데 동작나루 식구라구 하던걸."
"한양 근처로는 못 올라오지, 뜨내기 식구니까."
달근이는 복만이의 말을 듣고는 아주 맞춤하게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헌데 솔부리는 들어오겠다며?"
복만이는 여태 참아왔다는 듯이 말을 꺼내었다.
"받아줄 테여?"
"몇 명이야?"
"우리하구 둘 더 있어."
"그러지 뭘."
시큰둥하게 받은 복만이는 상을 찌푸리면서 이어서 말하였다.
"그런데 우리게서는 말야, 모두 똑같이 나눠 먹구 사네. 한 식구건 열 식구건 밥알 하나두
똑같이 먹어야한단 말야. 그래두 살림은 유족허니까."
"몇 가구나 사나?"
"한 마흔나뭇 되지. 자네들두 그냥 혼자들 지내지 말구 이런 때에 계집이나 하나씩 얻어
서 살림해여."
"아이구 나는 계집이라면 신물이 나는 사람이네. 그저 오가는 사당년들이나 가끔 건드리
구 살라네."
"그럼 안 붙여."
복만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안식구 없는 홀애비가 많으면 기강이 없어진단 말이네. 솔부리는 어엿한 임집이 있는 동
네란 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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